<div> </div> <div> </div> <div> </div> <div>나는 이를 마주하고 있다.</div> <div>이는 그러지 않아도 허여멀건해서 유령같아 보인다.</div> <div>동물 털 속에 서식하는 이로 착각했다면 그거야말로 큰 착각.</div> <div>이는 외계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저렇게 허여멀건 해서는 나와 대치하고 있을리가 없다.</div> <div> </div> <div>이는 두시간 전에 내 앞에 나타났다.</div> <div>시내에 걸어다니던 사람들을 모두 정지시키고는, 나만을 남겨둔 채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다.</div> <div>나는 두렵다. 길거리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을 찾아봐야 했다. 길가에 떨어진 정체모를 쇳조각</div> <div>하나를 보고는, 무기로써의 효용성에 대해 잠시 고민하다가 그만뒀다.</div> <div> </div> <div>내 쇳조각 공격이 이에게 먹힌다면 나는 대통령 표창을 받을 수도 있겠다.</div> <div>세계의 영웅이 되어 타임지에 실리고, 그 특혜로 5급 공무원이 될 수도 있겠다.</div> <div>흠. 아니면 일조원 쯤 달라고 해도 괜찮겠다. 명예와 돈 사이에서 고민하다가 나는 돈을...</div> <div>아니 씨발 이게 문제가 아니잖아.</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는 아주 조금씩이지만 나에게로 다가오고 있다.</div> <div>그것을 알아차린 것은 삼십분 째에 들어서였다.</div> <div>분명히 콜라캔뚜껑은 이의 발 앞에 있었는데, 지금은 이가 반쯤 그것을 밟고 있기 때문이다.</div> <div>하루나절 정도 되면, 이가 내 코앞까지 다가올텐데 그때가서는 어쩌지?</div> <div> </div> <div>지구 최초의 외계인과 키스를 한 인류가 되어야 하나?</div> <div>키스만으로 이가 내 십이지장에 외계인의 아이를 임신시키면 난 항문으로 아이를 낳아야 하나?</div> <div>요도에서 나오면 그것도 끔찍할 것 같다.</div> <div> </div> <div>어쨌든 이가 내 코앞까지 와서 날 범해버리기 전에, 나는 어떠한 대비책이든 강구해야 한다.</div> <div>이는 내가 사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내가 아주 느리지만 움직일 수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div> <div>이의 허여멀건한 형체에서 나를 바라보는 눈알이 이리저리 굴러다닌다.</div> <div> </div> <div>왜 하필 나냐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안녕"</div> <div> </div> <div>"어...안녕... 어? 뭐?"</div> <div> </div> <div>뭐야. 단순한 인사잖아. 안도하는 순간 나에게 또 다른 공포가 엄습한다.</div> <div>이가 왜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외계인인 걸까?</div> <div>의문이 공포로 승화된다면, 그것은 미지와의 조우를 가장 원초적으로 경험하는 것이 된다.</div> <div>그것은 마침내 공황으로 정신을 이끈다.</div> <div>나는 용캐도 대답을 했고, 이는 눈알을 아래로 깔아내렸다.</div> <div> </div> <div>"너네, 이거 줄거야."</div> <div> </div> <div> </div> <div>이는 천천히 내 앞으로 투명한 상자를 내밀었다.</div> <div>나는 그 상자가 무엇인지 알고싶지도 않고 알아서도 안된다는 생각으로 고개를 필사적으로 절레절레</div> <div>흔들었다.</div> <div> </div> <div> </div> <div>"부담가지지 마. 사양하지 마."</div> <div> </div> <div> </div> <div>이의 존재자체가 부담이라고 이야기하고 싶었지만, 무서워서 말도 안 나오는데다가</div> <div>'니 존재가 부담' 이라고 함부로 주둥이를 놀렸다가는 주둥이 위아래를 잡혀 확 까뒤집히는</div> <div>고문을 당하지 않을까 싶어 나는 입을 다물고 여전히 고개만 절레절레 흔들고 있다.</div> <div> </div> <div> </div> <div>"우린 실험한다. 너희가 만약에 이것을 잘. 다룰 줄 안다면. 좋은 일이 생겨."</div> <div> </div> <div> </div> <div>언뜻봐도 판도라의 상자인데 이자식아.</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는 처음에는 부담스럽게 그 다음에는 공포스럽게 상자를 내 코앞까지 밀어넣었다.</div> <div>차라리 보수를 대변하는 모 신문 정기구독권을 준다면 마침내 그것은 내 일용할 삼겹살 구이용</div> <div>기름막이로 사용할 수 있을테니 감사히 받겠지만 이건 이야기가 다르다.</div> <div> </div> <div>그도 그럴 것이 으레 전래동화에서 보면 미지의 무언가로부터 상자를 건네받은 친구들은</div> <div>그다지 결말이 좋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이유도 있다. 허여멀건 한 생명체가 눈알만 이리저리</div> <div>굴러다니며 입은 어디인지 모르는데 한국말도 잘 하는 것이 무슨 물질로 구성되었는지도 모르는</div> <div>것을 넘겨줬을 때 '당케!' 하며 지구의 언어로 기쁘게 응할 사람이 60억 인구중 몇이나 되겠나.</div> <div> </div> <div>나는 한사코 상자를 넘겨받기 원하질 않았다.</div> <div> </div> <div> </div> <div>"어서 받아"</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는 부글부글 끓기 시작했다. 눈이 충혈되기 시작한다.</div> <div>나는 무서웠다. 저놈이 내 장기로 줄넘기를 하기 전에 얼른 상자를 낚아챘다.</div> <div>상자는 매우 차가웠지만 나는 그것을 끌어안았다.</div> <div>공포스러운 눈으로 이를 쳐다봤다. 이는 언제그랬냐는 듯 다시 온화하고 허여멀거한 빛을 뿜으며</div> <div>말을 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지구인의 유전자 정보는 생각보다 부족했다. 우리는, 너희의 *딸깍 딸깍* 우리는, 너희의</div> <div>수많은 정보 중 소리를 낼 수 있는 기관과 시야를 확보하는 기관의 정보를 수집했고, 그것을 토대로</div> <div>지구의 실정에 맞게 우리의 몸을 바꿨다. 임시방편이지만 우리는 지구인과 흡사한 모습을 가지고</div> <div>있으므로 이것이 너희에게 익숙하게 비춰진다고 확신하고 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만약 너같은 것이 사람이랍시고 내 부하직원으로 들어온다면 인사과에 찾아가 말하겠지.</div> <div>'나는 많은 걸 바란 것이 아니라 단지 사람같이 생긴 걸 원했을 뿐이에요' 라고.</div> <div>항상 그렇지만 나는 이것을 생각으로 그쳤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우리가 건네준 그 상자 안에는 인류가 가지고 있는 가장 많은 감정을 담고 있다. 그 상자를 열면,</div> <div>그 감정이 너희 행성 전체로 퍼져 너희는 멸망하거나 아니면 번영할 것이다. 너희 행성에는</div> <div>바이러스가 있다지. 바이러스와 같은 개념으로 이해하면 될 것이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바이러스라고 꼭 나쁜 것만 있는 것은 아니다.</div> <div>전염성 강한 물질 중에는 엔돌핀이라던지 하는 희망적인 것들도 있으니까.</div> <div>하지만 파멸이라니? 그러면 이 안에 들어있는게 복불복이라는거잖아. 그러고보니 우리엄마나,</div> <div>외할머니는 날 많이 미워하던데 만약에 여기 들어있하는게 미움이라면 지금 당장 중국에서 우리나라로</div> <div>핵미사일을 발사해도 전혀 이상할게 없다는 것 아닌가?</div> <div> </div> <div> </div> <div>내 주변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자.</div> <div>승철이는 아마 내가 저번에 빌려준 돈을 갚지 않았다고 타박한 것 때문에 나와 연락을 안하고 있지.</div> <div>정대리님은 2/4분기 업무보고때 내가 프로젝터를 제대로 돌리지 않아서 날 갈궜지.</div> <div>아빠는.... 하 씨. 꺼내지도 말자. 지금도 경마장에서 말밥주다가 마권이나 줍고 있으려나.</div> <div>아오! 내 주변에는 인생에 도움되는 인간이...</div> <div> </div> <div>아니야. 잘 생각해야 해.</div> <div>테레사 수녀도 있잖아? 마틴루터킹도 있고. 방정환 선생이라던지 그래... 세상은 아름답다고!</div> <div> </div> <div> </div> <div>"상자를 까는 것은 우리가 정해준다. 상자를 여는 건 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정상적으로</div> <div>중력에 따라 움직이게 되는 시점이다. 네가 상자를 열 지 말지 결정만 한다면 우리는 바로 실행할 것이다.</div> <div>하지만 알아둬라. 네가 상자를 열지 않겠다고 하면 우리는 이곳을 그대로 둔 채 태양계를 떠난다.</div> <div>지구의 수치로 반경 일키로미터가 이 상태이다. 바깥고리는 매우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으며</div> <div>이곳은 지구의 관광명소가 될 것이다. 다리가 아플테지. 고통은 심해지고 마침내는 힘들어질 것이다.</div> <div>허리는 아프고 머리는 띵한데 잠들 수가 없다. 너와 네 주변 인간들은 그 상태로 우주가 멸망할 때까지</div> <div>지내야 한다."</div> <div> </div> <div> </div> <div>그건 곧 상자를 열라는 이야기잖아.</div> <div>이건 선택이고 자시고 할 것도 없다. 그냥 협박인데, 차라리 협박이라고 하라고.</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이런것을 지구에서는 제안이라고 한다지."</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저 씨발놈이!</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그로부터 마침내 두시간이 더 지났다.</div> <div>나는 이제 선택을 해야 했다. 몸이 불편한 것은 도무지 문제가 되질 않는데,</div> <div>이는 상자를 건네줄 때에 그것을 받지 않으려던 내 모습을 보곤 화를 내던 순간으로</div> <div>돌아간 것 같기 때문이다. 이는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지만 눈이 충혈되고 있다.</div> <div> </div> <div>내가 빨리 결정해주길 바라는 것 같다.</div> <div>뭐랄까 빨리 근무 끝내고 돌아가고싶은 4번초의 마음이 느껴진다.</div> <div>하긴 쟤들도 대가리가 있는 생명체라면 당연히 귀찮음이라는게 존재할 것이다.</div> <div>이정도 기술력과 마인드컨트롤 능력을 가진 외계인이라면 최소한 지구인보다는 성숙한</div> <div>의식을 가졌을거라고 생각했는데 아 그건 그거고 이건 이거고, 이런 느낌으로 상당히</div> <div>나의 결정을 기다리는 것을 귀찮게 여기고 있다.</div> <div> </div> <div>길게 생각해보려고 해도 선택은 하나다.</div> <div>나는 상자를 까야 한다. 마침내 이의 화가 폭발하여 그냥 돌아가 버린다면 80년 뒤 쯤에</div> <div>그때 오바질 하지 말고 상자를 열어야 했어 라고 회한을 느끼고 싶지는 않다.</div> <div> </div> <div>나는 용기를 내어 이에게 말을 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상자. 열게..."</div> <div> </div> <div> </div> <div>이는 다시 온화하게 허여멀건 해져서, 눈알을 이리저리 굴렸다.</div> <div>그리고 나에게 말했다.</div> <div> </div> <div> </div> <div>"잘 생각했다. 이제 네 몸은 자유로워졌다. 네가 상자를 까면 곧 나머지 사람들도 자유로워 질 것이다.</div> <div>그들은 우리의 대화를 잊은 채로 살아간다. 옳은 결정이었다. 우린 간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갑자기 뭔가 확 하고 바람이 불어왔다.</div> <div>주변은 다시 웅성웅성 평소의 시내로 돌아와 있다.</div> <div> </div> <div>나는 이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div> <div>평생가도 누구 하나 겪어보지 못할 그 경험이 경이롭다기 보다는,</div> <div>다시는 그런 경험을 하고 싶지 않다.</div> <div>이가 다시 오기전에 나는 얼른 상자를 열었다.</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 <div>내가 마지막으로 본 것은 피투성이가 된 사람들 사이에 간판으로 여자친구의 머리를 세차게 내리찍는 광기어린 남자의 모습과</div> <div>흐릿해져가는 의식 사이로 하늘에 십자수를 놓으며 날아다니는 미사일 궤적이었다.</di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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