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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조
1.연애소설을 좋아하여 가끔 자신의 글에서도 소설을 인용하기도
하였다.
성품이 근검하여 백성들에게 사치를 금하라는 뜻으로 금주령을
내리기도 하였다.
2. 영조의 어진에 나와있는 쌍꺼풀지고 길쭉한 눈과 오뚝한 코에
조그마한 입술은
조선의 남성들이 추구하는 최고의 미인상이었다.
왕실에서는 이런 외모를 천하다 하여 기피하였으나,
영조의 어머니 숙빈 최씨가 양반 사대부가 출신이 아닌 무수리
출신에서 정1품 빈까지 신분상승 한 것을 감안할 때,
숙빈 최씨는 굉장한 미인이지 않았을까.
3. 영조가 왕위에 등극하기 전, 연잉군이었던 시절
달성 서씨 집안의 규수(정성왕후)를 아내로 맞이하여 첫날밤을 치를
때의 일이다.
영조가 아내의 손을 잡고 ‘손이 참으로 곱다.’ 면 서 칭찬을 하자,
연잉군부인이 무심코 ‘궂은 일을 해본 적이 없어 그렇다’고 했더니
영조가 그날로 부인을 소박하며 그 다음부터는 멀리하였다.
아마, 무수리로 고생했던 어머니의 거친 손과 발을
생각한 게 아닌가 싶다.
4. 영조의 계비인 정순왕후가 간택에서 아버지의 이름이 쓰인 방석에 앉지 않자,
그 이유를 물으니 “자식이 어찌 아버지의 존함이 쓰인
방석을 깔고 앉겠습니까." 라고 답하였다고 한다.
또 ‘고개 중에는 어떤 고개가 제일 넘기 힘드냐’ 묻자, 강원도에서 온
규수가 대관령고개라 답하고
경상도에서 온 규수가 추풍령고개라 답하였다. 헌데
보릿고개라 대답하였다.
보릿고개라! 겨울 양식이 봄이 되자 다 떨어지고 그렇다고 햇보리는
아직 나오지 아니한 때
세끼, 아니 두 끼, 심지어 한끼를 채우기가 그 얼마나 난감한가.
이것이 보릿고개인데
하니 얼마나 명답인가!
다음으로 꽃 중에 제일인 꽃을 묻자,
답하였다.
이유를 물으니, “목화 꽃이 다른 꽃들보다 화려하지도 예쁘지도
않지만, 핀 연후 사람에게 혜택을 주는 면에서는
다른 꽃이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유익한 꽃이니, 바로 목화가 백성의
옷감이 되어서 예절도 지키고
품격도 살리고 추울 때 보호하여 주기 때문입니다.” 라고 답하였다.
정조
1. 정조가 말하길,
“매양 취침하기 전에 두 발바닥의 가운데를 마주 문질러 비비면
기운이 절로 퍼진다.
내가 밤마다 시험해 보았는데, 처음에는 힘이 드는 듯
했으나 오래도록 계속 했더니
신통한 효험이 있다.”
2. 연애소설을 비롯한 소설을 무척 싫어하여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서고에 있던 모든 소설을 불태웠다.
또한 숙직을 하던 집현전 학자들이 몰래 연애소설을 읽고 있다
들켜서 정조에게 혼이 났고 벼슬을 삭탈했다.
그들은 정조에게 다시는 소설을 안 보겠다는 반성문을 쓰고 나서야
벼슬길을 다시 열어주었다.
3. 영조는 근검하여 백성이 먹을 쌀이 없어진다는 이유로 금주령을
내렸지만
정조는 개인적으로 술을 너무 좋아해서 영조가 죽고 왕이 되자마자
금주령을 없앴다.
4. 공부 못하는 신하한테 공부하라고 끈임 없이 시키며, 숙제를 내고
제대로 하지 못하면 망신을 주고 술을 마시지 못하는 신하에게 술을
강요하여 기절할 때까지
마시게 하고, 활을 못 쏘는 신하에게 끈임 없이 연습을 시켰다고
한다.
5. 술을 무진장 좋아하여,
하기를 강요하여
그때 당시 필통에 술 붓기라면, 요즘 사발에 소주를 들이붓는 거와
맞먹는다고 한다.
헌종
1. 이 헌종이 그렇게 미남이었다고 한다.
기록을 보면 여색을 즐기는 왕 때문에 궁궐 내 용모가 예쁘다고 하는
궁녀들은 거의 승은을 입었다고 한다.
(덕분에 후궁첩지도 아무나 내리지 못했음. 딸을 낳은 궁인 김씨도
첩지를 받지 못했다.)
왕 자체가 너무 미남이라 젊은 궁인들이 참 많이 유혹을 했다고 한다.
하지만 너무 어린 나이부터 가진 잦은 성관계 때문에 건강이 악화되어
죽기 직전에는 피가래까지 토하며 고생하다가
23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요절한다. 궁녀들이 유혹을 할
정도였으니 엄청난 미남이 아니었나 한다.
2. 헌종은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었으므로 늘 아버지의 얼굴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에
마음 아프게 여겨 한 신하에게 늘 물었는데,
“진전에 모신 수용이 오히려 매우 닮으신 전하의 용안에
미치지 못합니다.”
하니 헌종이 거울을 보고 눈물을 줄줄 흘렸다고 한다.
고종
1. 고종 황제가 행차하다가 땀을 뻘뻘 흘리며 테니스 라켓을
휘두르는 미국인들의 모습을 보고
“어찌 저런 일을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하느냐”고
안타까워 했다.
2. 명성황후가 죽고 나서 끝까지 재혼을 하지 않았지만 아끼던
후궁이 있었는데 명성황후가 부리던 상궁이었다고 한다.
명성황후는 그녀를 곁에 둔 이유가 못생겨서 고종이 쳐다 도
안 볼 것이라고 생각하고 곁에 두었는데
나중에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녀는 명성황후와
똑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 추가
정조임금이 정약용한테 높은벼슬주려고 시험열었는데 정약용이
1등못하고 맨날 3등만해서 결국 화나서
"경은 그거밖에 못하오?" 하면서 베개 던졌다는 얘기도 있어요 ㅋㅋㅋㅋㅋㅋㅋ
죄송합니다. 댓글 작성은 회원만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