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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230924
    작성자 : 멜로디데이
    추천 : 368
    조회수 : 36031
    IP : 117.111.***.225
    댓글 : 6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16/02/04 02:16:04
    원글작성시간 : 2016/02/03 22:44:03
    http://todayhumor.com/?bestofbest_230924 모바일
    패륜아
    옵션
    • 창작글

    'Fn 뉴스 오늘의 사건사고 앵커 김상미입니다. 화창한 오늘, 경악스러운 사건이 발생 되었습니다. 열 일곱살의 여학생이 보험금을 노리고 아버지를 토막살인 한 사건이 대구 달서구에서 발생되었습니다.'

    일명 '달서구 패륜아' 사건, 뉴스가 보도 된 날 부터 일주일, 한동안 포털 사이트들은 이 사건에 대해 떠들었다. 열 일곱의 여학생이 아버지를 죽이고 토막내어 시체를 유기한 충격적인 사건, 나는 살인사건의 주인공인 '강지혜'의 담당 형사였다.  

    "왜 그랬니?"
    "...보험금 때문에요."

    지혜는 취조실에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허공을 응시했다. 그녀의 목소리 또한, 아무런 감정도, 높낮이도 느껴지지 않았다. 
    어떠한 감정도 느껴지지 않는 열일곱의 소녀에게서 나는 지독한 한기를 느꼈다. 

    그리고 머릿 속을 비집고 들어오는 한가지 의문, '이 왜소한 아이가 어떻게 성인 남성을 죽였을까?' 아무리 봐도 지혜는 체구가 작았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비정상적으로 작았다. 만약 내가 이 아이의 담당 형사가 아니라 우연히 길에서 마주쳤다면, 초등학생이라고 착각 할 정도였다.

    "어떻게 죽였니?"
    "......"

    새카만 눈동자가 내 미간으로 박혔다. 내 질문에 지혜의 눈동자가 떨렸다. 몇초상간에 그녀는 다시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돌아왔지만, 그 짧은 찰나에 나는 보았다. 토끼마냥 떨고 있는 작은 소녀를 -

    "칼로... 칼로 찔렀어요."
    "어떻게?"
    "그냥 찔렀어요. 자백 했는데, 그냥 감옥 보내주세요. 더 해서 무슨 의미가 있나요?"
    "이 사건은 살인사건이야. 중대한 사건이기 때문에, 사소한 것 까지도 알아야해."

    이 말과 동시에 지혜는 묵비권을 행사했다. 

    "김형사."
    "네 반장님."
    "더 이상 힘 빼지 말고 검찰로 송치해."

    취조실의 벽면 뒤, 이 반장님은 허공을 응시하는 지혜를 바라보며 말을 뱉었다.

    "반장님, 저 아이가 범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흠... 자네가 하는 말의 속 뜻이 뭔지 알아, 하지만 cctv와 흉기의 지문, 사건의 모든 증거가 저 아이를 지목해. 저 아이가 누군가의 협박에 의해 사건을 저질렀다 해도....무슨 말인지 알지?"

    나는 반장님의 말에 아무말도 할 수 없었다. 그렇게 지혜는 검찰에 송치 되었고, 청소년 최고 형량인 15년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혜는 지독한 한기를 품은 눈으로 허공만을 응시했다.

    그리고 그 표정은 기자들의 카메라에 담겨, '아버지를 죽이고 표정 한 점 변화 없는 시대의 패륜아'라는 제목을 달고 보도되었다.

    사건이 종료 되고도 두 달 동안 그 사진은 인터넷에 나돌았고, 인터넷의 댓글 창엔 속이 메스꺼울 정도의 욕설이 달렸다.

    어째서였을까? 나는 취조실에서 지혜의 떨리는 눈동자가 자꾸만 마음속에 맴돌았다.
    그리고 살인 사건 당시, 주변 탐문을 나갔을 때의 주민들의 반응 - '부녀 사이가 좋았는데, 그럴리 없다.', '그 작은 애가 무슨 힘이 있어서?', '찢어지게 가난 했지만, 지혜 아버지는 돈을 꿔서라도 딸년 밥은 챙겼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다.'-이 마치, 이 사건은 빙산에 일각에 불과하다는 것 처럼 느껴졌다.

    마음에 돌은 얹은 기분이 이런 것 일까? 말끔하게 해소 되지 않은 사건에 나는 호기심인지, 아니면 연민인지 모를 감정으로 몇 달간 지혜에게 편지를 보냈다.

    편지의 내용은 평범했다. '나는 너를 담당했던 형사이고, 너와 대화하고 싶다.'라는 뻔한 내용, 그리고 그녀의 비정상적으로 마른 몸이 기억나 매번 사식도 동봉했다.

    그렇게 여섯 달을 노력했지만 내게 돌아온 것은 '면회 거부'였다. 나 또한 인간이고, 더럽게 바쁜 형사였기에 '시대의 패륜아 강지혜'는 조금씩 잊혀갔다. 동시에, 알 수 없는 찝찝함 또한 점점 희미해져갔다.

    전국을 떠들썩 하게 만든 '달서구 패륜아'사건이 발생되고 삼 년이 지났다. 사람들의 기억속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나 또한 그녀를 잊어 갈 쯤, 편지 한통을 받았다. 보낸이는 '강지혜', 편지의 내용은 면회를 하고 싶다는 내용이였다.

    정자로 또박또박 적힌 글자에 나는 머리털이 쭈뼛서는 것을 느꼈다. '왜 이제 와서?' 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채웠고, 슬그머니 그날의 진실에 대한 호기심이 튀어나왔다.

    만약 삼년 전의 나였다면 이 아이에게 조금 더 도움이 되었을 지 모른다. 그때의 나는 베일 뒤의 가려진 진실에 대한 의무감이랄까, '정의'라는 것에 심취해있던 시기라...아마, 사건이 발생된지 얼마 지나지 않았기에 판결을 뒤집을 수 도 있었을 것이다.

    다 늙어버린 고물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 늦여름의 찝찝한 더위가 폐를 채우는 마당에 나는 어째서인지 지독한 한기를 느끼고 있다.

    "오랜만이네요."
    "그래, 잘 지냈니?"
    "...."

    지혜는 대답 대신 나를 빤히 쳐다봤다. 취조실에서 마주했던 지혜는 없고, 꽤 예쁘장하게 살이 오른 숙녀가 내 맞은 편에 앉아있다.

    "살이 오르니 보기 좋구나."
    "...네"

    지혜는 가만히 나를 들여다 보았다.

    "예전에, 사식 잘 먹었어요. 맛있었어요."
    "그래 맛있게 먹었다니 다행이네, 어디 불편한 점은 없고?"
    "네 덕분에요."
    "....."

    어색한 침묵이 우릴 감싸 안았다. 

    "한가지 묻고 싶은게 있는데, 내가 너에게 편지를 보낸 기간에 면회를 거부했다고 들었어. 근데 이제와서.."
    "무서워서요."

    지혜는 이전과는 다른 단호한 말투로 내 말을 잘랐다.

    "뭐가?"
    "내 스스로가요."
    "어째서?"
    "형사님, 지금부터 제가 이야기 하나를 들려드릴께요."
    "..."
    "아마, 이 이야기는 형사님의 궁금증을 해결해 줄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수도 있어요. 그래도 들으시겠어요?"
    "좋아. 들을게"

    지혜는 내 손 끝을 응시했다. 그러곤 잠시 숨을 골랐다.

    "형사님, 아주 예전에 찢어지게 가난했지만 서로 아껴주던 부녀가 있었어요. 아버지는 딸을 너무나도 사랑했죠. 왜냐면 먼저 천국을 간 아내와 너무나도 닮았었거든요."
    "그래"
    "하지만, 아버지는 돈이 없었어요. 사실, 아이의 어머니는 술집 잡부였고 아버지 또한 막노동판에서 굴러먹던 양아치였죠. 사랑은 위대하다고 하죠? 그 둘이 사랑에 빠지면서 부터 둘은 완전히 바뀌었었어요."
    "..."
    "술집 잡부였던 여자는 엄마가 되기 위해 손을 털고 양아치였던 남자는 정신을 차리고 돈을 모으기 시작했죠. 그들이 만든 생명이 너무나도 소중해서요. 하지만, 술집잡부였던 어머니는 아이의 분유값으로 돈을 다 탕진해서 주사 몇 번 맞으면 끝날 성병과 합병증 때문에 하늘나라로 갔죠."

    지혜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를 처음 본 순간 부터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감정이 실린 얼굴이 내 심장을 시큰거리게 만들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노력했어요. 그리고 딸과 함께 굶는 날이 많았지만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했어요. 겨울의 한파보다 짙은 생활고에 그래도 그들은 '희망'을 품었던거죠."

    "그래요. 우린 가난했지만 꽤 괜찮은 부녀 였던 것 같아요. 하지만 지속되는 생활고와 쌓여가는 빚, 겨울이 되면 얼어죽진 않았나? 아침에 서로의 생사를 확인하는 생활이 시작되었죠."

    "내가 열일곱이 되던해, 드디어 일이 터졌어요. 네 맞아요. 그날, 그날이에요. 아버지의 다리가 반 쯤 부러져서왔어요. 노가다 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아버지는 미끄려졌어요. 하지만 퇴근길에 다친거라 어떠한 보상을 기댈 수 없었죠."

    "하루를 벌어 하루 겨우 먹고 살던 우리에요. 일주일이 지나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태가 되었어요. 우린 같이 삼일을 굶었거든요."

    "아버지는 그날, 부러진 다리를 끌고 주변 사람에게 구걸하듯이 이만원을 빌려왔어요. 그리곤 이렇게 말하더군요. '지혜야, 아빠 집 청소하고 있을 테니까 김밥 천국 알지? 거기서 먹고 싶은거 잔뜩 먹고와. 아빠가 지혜 밥 투정이 심해서 같이 이때까지 굶은거야. 거기서 먹고 싶은거 먹고와' 그때 아빠는 환하게 웃었어요."

    지혜는 눈물을 떨구기 시작했다. 법정에 설 때까지 단 한 번도 보지 못했던 얼굴 - 

    "나는 배가 너무 고파서, 깊은 생각을 할 수 없었어요. 돈이 없어서 고등학교를 못가서 그런가, 엄청 멍청했죠. 돈을 받아 들고 이십분 거리에 있는 김밥천국에서 돈까쓰랑....그러니까 돈까쓰랑 김밥을 신나게 먹었어요."

    "후....아... 흡 내가...내가 밥을, 밥을, 다 먹고 말이에요. 아버지 줄라고 참치김밥 세줄이랑, 아빠가 좋아하는 밀키스를...."

    "내가..집을 비우고 돌아온 한 시간, 한 시간 상간에 아빠는 죽어있었어요."
    "뭐라고? 왜 그럼 그때!"
    "형사님, 제 이야기 아직 안 끝났어요."

    바들바들 떨던, 지혜가 독기 품은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 눈에서 쏟아져 나온 독기는 조폭이나 범죄자와는 전혀 다른 형태의 독기였다. 뭐랄까 비참함의 끝을 달리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때 김밥 천국에서 먹은 것 들을 다 토해냈어요. 어떻게 해야되지? 아빤 손목을 긋고 죽었는데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어요. 나는 죽은 아빠랑 같이 삼일을 지냈어요. 나는 태어날 때 부터 가난해서, 가난 하다는 이유로 친구 하나 없었고, 작다는 이유로 놀림 받고 내 유일한 세계는 아빠였어요."

    "삼일, 아빠의 유서를 발견한건 삼일 뒤였어요. 아 - 말하지 않은게 하나 있는데 우리 아빤 까막눈이에요. 아빠도 나처럼 태어날 때 부터 가난했었든요."

    "유서엔 거창한 건 없었어요. 그냥 보험 수령인으로 지정된 내 이름과 보험 금액이 적힌 보험증서였죠. 까막눈인 아버지가 남긴 유서는 하얀 바탕위에 우리 가족 셋이 손잡고 있는 그림에 하트를 잔뜩 그려놓고 아빠가 돈을 내게 주는 졸라맨 그림이 다 였어요."

    "아마, 보험 금액을 받아 살라는 내용이였겠죠. 근데 말했잖아요. 우리 아빤 까막눈이라고, 보험을 든 기간은 이년인데 보험은 삼년 이내에 자살 할 경우 수령이 불가하다고 적혀 있는 걸 몰랐던거죠."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지혜는 얼빠진 나를 보며 피식 - 하고 웃었다.

    "난 남들처럼 똑똑하진 않지만, 태어날 때 부터 가난한 내가 앞으로 살아갈 길이 아주 막막할 거란 걸 직감했죠. 아- 내일 부터 또 난 지독한 배고픔에 시달리겠구나, 그래! 그냥 자살하자! 근데...막상 하려니까 손발이 달달 떨리데요?"

    "흐흐.....허....네 자살에 실패하고 한참을 죽은 아빠 다리위에서 엉엉 울었어요. 죽은 아빠 다리를 베고 티비를 보는데 뉴스가 나오더라구요. 그때, 범죄자 인권인가? 하는 내용이였어요. 거기서 수용시설의 밥이 부실하다고 클로즈업 되는데 내 눈엔 진수 성찬으로 보였어요."

    "그리고 그때 내 귓가에 '사랑한다 우리 딸, 아빤 괜찮다.'라는 말이 들렸어요."

    지혜는 울면서 억지로 웃었다.

    "그 다음은, 형사님이 기억하는 그대로에요."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끝나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리고 조용히 일어서는 그녀를 붙잡지 못했다.
    그녀가 면회실을 나가기 직전 겨우 내가 던진 말은

    "후회되진 않니?"
    "전혀요. 만약 내가 그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면... 난 가난이라는 놈에게 살해 당했을 걸요."



     
    출처 세모녀 사건 기억 하시는 분 있나요? 그 사건에 영감을 받아 쓴 글입니다.
    가난에 쫒겨 범죄자가 되는 일, 상상하기 힘드시죠? 하지만 실제로 대한민국엔 배고픔 때문에 일부로 도둑질을 하거나 범죄를 저질르는 '생활형 범죄'가 발생되고 있고, 가난 때문에 스스로 목숨을 버리는 안타까운 사건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들에겐 아마 '가난'이 귀신이나 살인마보다 두려운 존재였겠죠.

    사회의 안전망의 부재로 목숨을 잃은 모든 분께 조의를 표하며, 좋은 곳으로 가셨길 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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