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눈팅으로 태세전환한 한솥매니아입니다. 역게엔 오랜만에 글을 씁니다.
대단한 내용을 얘기하려는 것은 아니고, 요새 공지와 식근론 때문에 어그로 종자들이 유입되어서 다소 시끄러운데, 나오는 얘기 중에 조금 짚고 넘어가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몇 줄 쓰려고 합니다.
아무래도 '식민지 근대화론'에 대한 대중적 반감이 지배적이고, 어그로들을 상대로 방어적인 입장에서 논의를 전개하다 보니 식민지 체제 하에서의 한반도 근대화에 대해 논의가 가능한 여지를 자체적으로 줄이고 계신 분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대표적인 게 "식민지 근대화에서 말하는 근대는 오직 협의에서의 근대, 물질적 근대만을 말하는 것이다"라는 주장인데요.
현재 방어전을 치르고 계시는 분들의 논리에서 새롭게 배워 가시는 선의의 유저분들도 꽤 계신 것 같아, 조금의 엄밀성을 기하고자 합니다.
결론적으로는 제목과 같이, 엄밀히 말해 식민지 근대화에서 말하는 근대가 꼭 물질적 근대만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마르크스주의 역사관을 배경 지식으로 좀 알아 두셔야 하는데요.
이미 알고 계신 분들도 많겠지만 마르크스주의에서는 역사의 추동 동력을 물질적 발전으로 봅니다. 유물론이라고 하죠.
이에 대해서는 오해도 많고 철학적으로 이런저런 얘기들이 많이 나올 수 있지만 일단 본론이 아니니 생략하고....
이러한 시각에 따르면 물질적 근대화와 정신적 근대화는 애초에 분리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서로 동등한 두 개의 본질도 아닙니다. 물질적 근대화가 본질이고, 정신적 근대화는 그 부산물이죠.
즉 공장이 들어서고, 철도가 들어서고, 전기와 병원이 들어서야만 민주, 자유, 평등, 민족에 대한 개념도 생겨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국내에서 식민지 근대화론의 초창기 주창자 중 한 명이었던 안병직 교수의 경우에서도 보듯, 식민지 근대화론의 뿌리는 이러한 마르크스주의에 있습니다.
따라서 식민지 근대화론은 자신의 논의를 물질적 근대로 '한정'하는 것이 아니라, 애초에 물질적 근대만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물질적 근대화가 이루어졌다면 정신적 근대화도 당연히 이루어졌을 테니까요.
자, 여기까지만 얘기하면 많은 분들께서 "저거 저 새끼들 본성을 드러냈네. 결국 일제가 근대를 가져와 줬고 그래서 고맙다는 거 아냐! 저 친일파 새끼들!"이라고 반응하시겠지요?
그러니 오해를 풀기 위해 좀 더 구체적인 얘기를 해 봅시다.
우리 국사 교과서 보면 일제강점기 당시의 민족의식의 성장이나, 민족문화의 발전 같은 걸 많이 다루지요?
왜 <개벽> 같은 잡지도 내고, <동아일보> 같은 신문도 내고, 언어영역 문학 파트 공부할 때 무수히 많이 나오는 시인과 소설가들 나오고 그러잖아요.
그런가 하면 민족주의나 사회주의적 의식을 가진 엘리트들도 나와서, 자기 이념에 따라 독립운동도 하고 그러죠?
자, 이러한 현상은 근대적 정신활동일까요, 아닐까요?
기실 정신적 근대화라는 것이 별 거 아닙니다. 복잡하게 얘기하면 상당히 복잡한 얘기이긴 하지만, 간단하게 줄여서 말하면 '시계로 측정되는 표준화된 시간에 따라 움직이고' '사적 인간관계를 넘어선 단위의 사회조직을 상상할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자기 자신의 인간으로서의 위치와 역할을 사회 속에서 상상할 줄 아는' 것이 바로 정신적 근대화고 근대인입니다.
마르크스주의적 역사관에 동의하고 안 하고는 둘째치고, 위에서 제가 예시로 든 것이 존재하지 않았다거나 전근대의 속성이라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면, 일제 시대에 정신적 근대 역시 함께 찾아왔다는 사실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마찬가지 맥락에서, 엘리트를 떠나 대중적인 얘기를 하자면, 당시 식민지 조선의 많은 젊은이들이 농촌을 떠나 원산, 대구, 경성 등지의 공장에 취직하고, 시간표에 맞춰 출근하고 노동규율에 맞춰 일하고, 임금과 노동조건 향상을 위해 파업도 하고 그랬죠? 이런 걸 인식할 수 있고 상상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정신적 근대화인 겁니다. 전근대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의식이니까요.
이 근대화가 그럼 일본 덕분에, 식민지가 된 덕분에 일어났다는 얘기냐, 그런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도 이해하시더군요. '물질적 근대화는 철도와 전기를 놔 준 일본 덕분 -> 정신적 근대화는 물질적 근대화 덕분 -> 그러니 우리의 정신적 근대화도 일본 덕분'이라는 3단 논법으로 말이죠.
하지만 이것도 틀렸습니다. 왜냐면 식민지 근대화론에서 말하는 주장엔 '덕분'이라는 단어가 들어갈 자리가 없기 때문이죠.
정당하게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한반도에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물질적 근대화의 과정은 일본이 식민지에 대한 투자로서 행한 철도와 전기 설비를 기초로 발생 -> 정신적 근대화는 이러한 물질적 근대화의 부산물 -> 따라서 우리의 정신적 근대화도 일본의 대 식민지 투자라는 근간에 의해 규정된 측면이 있음.'
이게 이상해 보이시나요? 아니, 실제로 과거에 일어났던 일의 요약이지 않습니까. 만약 우리의 정신적 근대화가 일본의 식민지 정책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할 수 있다면, 대체 지금 대한민국 사회의 무수한 친일파 청산 얘기와 일제 잔재 비판은 왜 있는 걸까요?
정 이해가 안 되시면 이렇게 생각해 보세요. 정신적으로 근대화된 식민지 조선의 엘리트들은 민족의식을 토대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렇죠? 그런데 만약 우리가 식민지 상태에서 근대화가 된 것이 아니라면, 그들이 '독립운동'을 했을까요? 당연히 아니겠죠? 오히려 '제국주의'를 했을 수도 있겠죠?
결국 이 얘기들은 어떤 일들이 일어났을 때 영향을 미친 배경과 조건에 대한 논의일 뿐입니다. 어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인격이 마치 사람처럼 움직인 것을 상정하고, 그 행동의 도덕적 성격을 따지는 얘기가 아니에요. 그런 건 종교적 사고이지 역사적 사고나 학문적 사고가 아닙니다.
이상의 논의에서 보여드린 바와 같이, 식민지 근대화론의 근대는 협의의 근대다! 라고 말하는 건 꼭 맞는 얘기는 아닙니다. 시혜론과 근대화론을 구분하는 선은 거기가 아니란 얘기죠.
이 글은 현재 공지를 방어하고 계신 역게분들과, 선의의 유저분들께 부치는 글이므로, 어그로 종자들의 궤변엔 일절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글을 보신 분들께서도 병먹금을 해 주시길 작성자로서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