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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621년 춘추시대 진(晋)나라 문공은 천토(踐土)라는 곳에서 천자(주나라 양왕)을 위해 회맹식을 열었다.
제후 가운데 최고 실력자인 문공이 다른 제후들을 거느리고 천자(양왕)를 위해 베푼 충성맹세의 장이었다. 역사는 이 사건을 ‘천토지맹(賤土之盟)’이라 일컫는다. 이로써 진 문공은 춘추시대 제후국을 대표한 첫번째 ‘춘추5패’가 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 있다.
공자가 쓴 역사책인 <춘추>가 이 역사적인 팩트를 기록하지 않은 것이다. 대신 “천자가 하양(河陽)이라는 곳으로 사냥을 나갔다”고만 기록했다. 이것은 ‘있는 그대로의 역사’가 아닌 명백한 왜곡이었다. 공자는 과연 왜 그랬을까.
그것은 바로 문공의 행위가 대의에서 벗어난 짓이라 봤기 때문이다.
이미 천자국인 주나라의 세력이 위축됐던 때였다. 반면 제후국 중 하나인 진나라는 문공의 치세에 천자국을 위협하고 있었다. 그 때 진 문공이 제후국을 대표한다는 명목으로 천자(주 양왕)를 초청해서 회맹, 즉 충성맹세의 의식을 펼친 것이다. 하지만 말이 초청이고, 충성맹세였지 천자를 ‘소환’해서 자신의 위세를 떨친 것이었다.
공자는 아무리 천자를 위한 충성맹세의 장이라 해도 제후(진 문공)가 감히 천자(주 양왕)를 소환, 즉 ‘부를 수는 없다’고 포폄을 가한 것이다. 이것이 바로 ‘춘추필법’의 핵심이라 할 수 있다. 공자가 역사를 왜곡하면서까지 전하고자 한 뜻은 분명했다....
출처 | http://media.daum.net/culture/others/newsview?newsid=2015090815461539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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