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의 가장 널리 인정되는 기억체계의 큰 틀은 언어 및 표현과 엮여있다.
다시 말하면, 현재의 가장 널리 인정되는 기억체계의 큰 틀은 서술기억(declarative memory)과 비서술기억(non-declarative memory)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서술"은 곧 "언어"나 문자형태의 "표현"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기존의 기억체계는 크게 서술할수 있는 서술기억과 서술할수 없는 비서술기억으로 구분이 되기 때문에
정보를 언어(말, 문자)만으로 온전히 전달할수 있는 것과 없는 것으로 구분된다고 보면 된다.
질문1. 최초의 차는 누가 만들었나?
질문2. 어제 무슨 차를 타고 갔나?
질문3. 어제 운전한 차는 승차감이 어땟나?
질문4. 차는 어떻게 운전하나?
그리하여 '질문1'이나 '질문2'에 대한 정보같이 서술형태만으로도 온전히 대답이 가능한 종류의 기억은 서술기억이 되고
'질문4'에 대한 정보 같이 서술형태만으로는 온전한 대답이 불가능한 종류의 기억은 비서술기억이 된다.
한발 더 나아가 서술기억은 '1'과 같이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기억인 사건기억(episodic memory)과
'질문2'와 같이 자신과 무관한 서술기억을 의미기억(semantic memory)으로 또다시 구분한다.
이렇게 기억을 언어형태의 표현능력을 기반으로 분류하다 보니 몇가지 문제점이 발생된다.
첫번째는 서술기억 체계의 출현과 부제 그 자체이다.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서술기억 체계는 반대로 이야기 하면
언어능력이 없던 시절에는 없었다가, 언어능력이 생기면서 갑자기 관련된 기억능력이 발생한 것이 된다.
기억체계의 한 축이 언어능력이 생기면서 갑자기 생긴다는 생각은 뭔가 어색하다.
또한 이 개념에 따르면 어쩌다가 언어를 익히지 못한 사람이라면, 또는 언어능력이 없는 반려동물같은 경우
이 언어능력을 기반으로 하는 이 서술기억 체계 자체가 없어야 하는데 이것 역시 뭔가 어색하다.
이들도 말로 표현을 하지 못할 뿐, 어제 무슨 차를 타고 갔는지는 분명히 어떤 형태로든 기억하고 있을듯 하기 때문이다.
또 하나 문제는 "온전한"의 의미에서 발생한다.
그러니까 언어형태로 온전한 표현이 가능하면 서술기억일텐데 그 온전함이 정확히 어느정도인가 이다.
그 온전함을 "객관적"으로 간주해 보자.
그렇다면 '질문1'이나 '질문2'는 분명 서술기억이고, '질문4'는 비서술기억이 된다.
그러나 이 기준으로라면 '질문3'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질문3은 서술기억인가? 비서술기억인가?
자신의 사건과 관련된 것이니 사건기억인 서술기억이라 할수 있지만
자신이 느낀 승차감을 타인에게 객관적으로 온전히 전달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비서술기억이라 할수도 있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질문1' 역시 오롯이 서술기억이라고 할수는 없다.
누군가에게는 비서술기억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언어능력이 떨어져서 '최초' 라던가 '차'라는 말의 의미를 모르거나 인식이 없는 사람에게라면
저 내용을 서술할수가 없기 때문에 그에게라면 '질문1'은 서술기억이 아닌 것이다.
그러나 타인에게 서술하지 못할 뿐 그 사람이 '질문1'에 대한 정보를 어떤 형태로도 기억할수 없는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에
이 사람에게 '질문1'은 비서술기억이 되는 것이다.
그러다가 이후 이사람에게 최초나 차라는 용어에 대한 언어 표현능력이 생기면 돌연 서술기억이 되게 되는 것이다.
같은 식으로 한발 더 나아가 보면 '질문4'도 과연 비서술기억이기만 할까?
그러니까 지금 우리의 보편적 인식능력, 표현능력으로는 아직은 '질문4'에 대한 답을 온전히 객관적으로 서술할수는 없지만
(그래서 비서술기억으로 분류되고는 있지만) 행여라도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면 그런 능력을 가지게 되어
언어만으로도 충분히 대답을 할수 있는 순간이 되면 (조금 전의 언어무능력자의 예에서 처럼) 그것 역시 서술기억이 되어야 하게 된다..
요는, 언어와 엮어서 구조화 시킨 기존의 기억체계대로라면 그 경계가 모호한 기억형태가 있고, 분류형태가 고정적이지도 않게 되는 문제가 발생된다.
또한, 기억은 명시적 기억(explicit memory)과 암묵적 기억(implicit memory)으로도 분류되는데 이들은 흔히 그냥 뭉뚱그려서 각각 서술기억과 비서술적 기억으로 대응시킨 형태로 정립되어 있다.
그리고 '명백함'을 뜻하는 explicit기억인 명시적 기억은 흔히 스스로가 알고 있다고 인식하는 기억이고, '은연중'을 뜻하는 implicit기억인 암묵적 기억은 스스로가 알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기억이다.
그런데 서술할수 있는 기억을 인식할수 있는 기억으로, 서술할수 없는 기억을 인식할수 없는 기억으로 간주한다는 것에는(물론 일부 일치하는 부분도 있겠지만)심각한 어폐가 있다.
예컨데 '질문4'와 관련된 기억은 스스로가 알고 있음을 인식하지 못하는 암묵적 기억으로 간주되어서는 않될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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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이 꼭 언어 및 표현과 결부되어 구분될 필요는 없다.
언어가 없다면 일부 형태의 기억에 한계가 발생할수는 있을지언정
언어능력이 없다고 해서 명시적 기억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할수는 없다.
언어능력이 없어도 같은 내용의 정보를 다른 어떤 형태로든 저장할수 있음을 충분히 가정할수 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굳이 표현할수가 없더라도 명시적 기억은 존재할수 있다.
표현할 도구가 없을 뿐이지 그렇다고 표현할 내용자체가 없거나 만들수 없는 것은 아닌 것이다.
나중에 어휘나 용법을 좀더 익히고서 기존에 가지고 있던 정보를 오롯이 표현할수 있는 상태는 충분히 가정할수 있다.
이경우,그냥 표현능력이 조금 향상된 것이지 갑자기 명시적 기억이 생긴것으로 해석할수는 없다.
언어능력이 없어도 가능한 명시적 기억은 가정할수 있고, 언어능력이 있어도 불가능한 명시적 기억 또한 가정할수 있다.
기억의 문제는 본질적으로 인식능력의 문제이지 언어능력의 문제는 아닌것이다.
정리하면 기억체계를 언어,표현과 결부시켜서 구분하면 뭔가 뒤죽박죽이 된다.
기억은 그것과 관련된 '언어적''표현능력'상태가 아닌, 그것과 관련된 '자기''인식수준'으로 분류되면 그런 문제들이 사라진다.
즉, 선언적 비선언적 기억이 아니라, 명시적 암묵적 기억이 주가 되어 기억체계는 정립되는 것이 더 합리적이다.
물론 명시화 되는 과정에서 언어는 중요하게 개입하겠지만 언어 그 자체가 마치 기억의 주인공인것 처럼 나서면 복잡해지는 법이다.
각종 자극들로 발생될 원시형태의 기억은 암묵적인 형태이지만, 이들 중에서 일부는 주의작용을 통해 명시적인 형태를 띄게 된다.
명시적 형태의 기억은 기본적으로 스스로 인식이 가능하지만 그 기본형은 주관적인 형태로 인식된다.
이중에서 지식과 인식능력의 발달로 객관적인 형태로 충분히 인식할수 있는 기억을 발생하면서 객관화된 기억형태를 띄게 된다.
1. 대단히 다양한 형태로 존재할 초기형태로 머무르는 원시적 기억 (암묵 기억)
2. 원시적 기억들 중에 자신이 그것의 존재를 인식하고 있는 내면에 명시화 된 기억 (명시 기억)
3. 명시화된 기억들 중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온전히 인식할수 없는 주관적 기억 (주관 기억)
4. 명시화된 기억들 중에 그것을 객관적으로 온전히 인식할수 있는 객관화된 기억 (객관 기억)
* 기억(암묵기억, 명시기억(주관기억, 객관기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