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저는 사실 만게는 잘 안 가고, 애게에 지박령처럼 들러붙어서 오유를 하고 있지만, 사실 저는 만화를 비롯한 문화계 전반에 대한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특히 만화에 대해서는 한국의 스콧 맥클라우드가 될 것이다! 하는 장대한(?) 꿈을 가지고 연구하고 있는데, 우연히 새로운 형태의 만화를 접하게 되어서 여러분께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요즘 웹툰계가 들썩거리고 있지만, 잠깐이라도 이 글을 읽으면서 머리를 식혀보시는게 어떠실까요?
문득 떠올라 써올리는 것이라 글이 조금 거칠 수 있겠지만 양해해 주시길 바랍니다. 또한 아래에 있는 내용 많은 부분은 제 의견만으로 적힌 부분도 많으니 주의하시길 바랍니다.
만화란 무엇일까요?
만화가 만들어진 시기는 아주 오래전으로 잡을수도 있고, 지극히 최근으로 잡을수도 있습니다. 만화라는 것은 애초에 그림으로 이야기를 표현한 것이기 때문에 고대 동굴벽에다가 그린 그림도 만화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죠.
한국 최초의 만화또한 아무리 만화의 범위를 좁게 잡아도, 글에 그림을 곁들인 예나 그림 여러 장을 나열한 예는 어느 시대를 짚어봐도 튀어나올 수 있습니다. 때문에 만화의 역사에 대해 논하고자 하면 먼저 만화의 정의를 짚어봐야 할 것입니다.
출처 - 예스24 만화의 이해 페이지
위에서 언급한 스콧 맥클라우드 같은 경우 "만화의 이해"라는 책에서 만화를(정확히 말하자면 이야기 만화를)
"정보를 전달하거나 보는 이에게 미적인 반응을 일으킬 목적으로, 그림과 그밖의 형상들을 의도한 순서로 나란히 늘어놓은 것"
라고 정의한 바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맥클라우드는 만화를 우리가 흔히 말하는 칸만화와 신문만화등이 포함된 카툰으로 나누어 정의했기 때문에 이견이 있습니다)
쪽만화의 예시: 스콧 맥클라우드, 만화의 이해. 알라딘 소개페이지에서 가져옴.
이 정의에서 중요한 것은, 만화라는 것이 만화책과 같은 어떤 특정한 매체나 '반드시 칸 안에 그림이 있어야 한다' 같은 특정한 형식에 따라서 제작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고,
또한 만화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글, 혹은 글과 그림의 조합이 아니라, 그림에 의한 이야기의 연쇄반응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웹툰은 쪽만화와 달리 스크롤을 내려서 읽을 수 있게 고안되었음에도, 여전히 만화의 틀 안에 있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가로스크롤 만화의 예. 한번 읽어보시길. 사진은 만화전문 웹진 유어마나 맥클라우드 초청강연 편에서 가져옴.
또한, 웹툰 이전으로도 이후로도 비록 활성화되지 않았지만, 가로 스크롤 만화와 계속해서 그림 내부로 들어가는 Z축 만화가 등장해도 이것들은 만화라고 인식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만화들은 하나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바로 특정한 공간에서 칸들이 모여 이야기 구조를 이룬 것입니다. 이것은 만화라는 것이 이미지의 연쇄적인 반응에서 이야기를 읽어내는 것이기 때문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야기는 이어지지만 서로 다른 그림이, 멀리 떨어진 장소에서 하나씩 보게 된다면, 그것을 그냥 그림(회화)라고 생각하지, 만화라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니까요. 이런 공간적인 가까움은 만화를 구성하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한편으로, 하나의 페이지 뿐만이 아니라, 만화책을 구성하는 각각의 페이지들이 묶여 있는 것도 공간적인 가까움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상식을 깨버린 일이 있었습니다.
하나의 화면에는 칸이 여럿이 있거나, 적어도 칸 안에 여러 행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지만 이야기에 흐름이란 것이 생겨서 다른 페이지/화면으로 넘어가도 무리없이 이야기가 연결될 수 있지요.
하지만 네이버에서는 스마트폰에 최적화된 컷툰이란 만화를 내놓으면서 화면 하나에 하나 혹은 아주 적은 양의 그림을 넣고, 이를 터치하면서 다음으로 옮길 수 있게 하였습니다.
컷툰의 소개. 이미지는 웹툰전문 웹진 웹툰 인 사이드에서 가져옴
만약에 같은 장소에 하나의 그림이 올라온 다음 어느정도 시간이 지난 다음에 다른 그림을 올린다면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그 시간이 지극히 짧지 않은 이상(그리고 그 시간이 매우 짧아 연속된 동작으로 보이게 된다면, 영상/애니메이션이 되겠지요.) 별개의 그림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적어도 하나의 주제로 그린 다른 그림이 될까요.
하지만 묶인 페이지라는 물리적인 가까움 대신 터치하면 다음 화면이 나타난다는 시간적인 가까움이 물리적인 가까움과 같은 효과를 내면서(즉, 한 페이지에 한 컷씩 그려진 만화를 넘겨보는 것과 같은 느낌을 주면서) 만화에 새로운 이미지 연결방식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연결 방식은 지금 소개시켜드리고자 하는 VR만화의 주된 이야기 연결방식이 되었습니다.
사실 VR 만화의 등장은 이미 예고되어 있었습니다. :
http://www.your-mana.com/Interview/DetailView/15웹툰이 나온 시점에서 결정된 일이었지요.
종이에 인쇄 "되어야만" 하는 만화가 인터넷에 올려 컴퓨터로 볼 수 있게된 시점에서 만화의 진화는 한계가 사라진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VR만화가 어떻게 구성될지 예측하지 못했어요.
사족입니다만, 제 안목이 짧았던 탓일지도 모르지요. 저는 가로로 읽는 만화나 만화의 갈래 같은 것에 대해서 고민하고 있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VR만화가 나온다면 저는 막연히, 증강현실을 이용해서 벽이나 바닥에 만화의 칸이 떠오르는 형태가 되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직접 그 칸에 들어가는 방법도 떠오르긴 했습니다만, 과연 그것을 그릴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었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공간, 코믹스브이에서 가져옴,
만화의 칸 안에 들어간다는 것은 자신을 중심으로한 모든 시선이 닿는 공간에 그림을 그린다는 것입니다. VR로 편하게 안쪽에서 그릴 수 있으면 쉽겠지만, 아직은 그렇게 해서 퀄리티가 충분한 시간내에 나올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다면 남은 방법은 하나인데, 평면에서 그려서 종이 접기 하듯, 공간을 접어서 사용자 주위를 둘러싸는 것이죠.
하지만 그렇게 되면, 투시부터해서 조립까지 문제되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왜냐면 우리를 둘러싸는 공간은 구의 형태니까요. 구의 전개도는 나온적이 없고,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면으로 이루어진 다면체도 방법이긴하지만, 선이 삐뚤빼둘해질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의외로 간단한 방법이 있었습니다.
정육면체 투시도에 그림을 그려서 사용자를 그곳에 넣은 것이었습니다.
진정 VR 만화라고 한다면, 사용자가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상호작용하는 "게임"과 같은 만화가 되어야 하겠지만*, 그렇게 된다면 필연적으로 많은 자본의 투자와 함께 전문적으로 프로젝트를 이끌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작가들은 먼저 사용자가 "그 장소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부터 시작했고, 그 결과 사용자는 비록 이동할 수 없지만, 적어도 가만히 서서 사건을 지켜보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때 사용자는 움직일 수 없기 때문에, 주변 공간은 엄밀하게 계획되고 구성될 필요 없이, 공간감이 느껴질 수 있도록 착시 현상을 일으킬 수만 있으면 난이도가 확 낮아지게 될 것이겠죠.
(그리고 공간감이 느껴지는 착시 현상이란, 모두 아시다시피, 투시입니다.)
물론 일반적인 만화에 비해 생각할 것도 많고, 귀찮은 것도 많지만, 적어도 아마추어 작가들도 VR만화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용자가 만화 안에 들어간 대신, 이야기의 전개는 시간적인 가까움으로 해결했습니다. VR만화는 말하자면, 순간이동을 하는 것인데, 순간이동을 하는 장소마다 각각의 이해할만한 연계성이 있어서 하나의 이야기 흐름이라고 인식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VR만화는 앞으로 기술의 발전에 따라 진화하고 발전해 나갈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최종 종착역은 "게임"같은 만화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독자와 만화 사이에서 상호작용하면서 이야기를 이끌어나가는 형식은 그동안의 작가 중심의 작품 구조에서 벗어나, 독자 중심의 만화를 접할 수 있게 하겠지요. 물론 작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평치는 형식의 만화는 계속 이어져 나갈 것이고, 독자 중심이 만화의 흐름을 주도하진 않을 것입니다. 독자에게 선택을 강요하다 보면 독자들은 쉽게 피로감을 느끼고 흥미를 잃을 수도 있으니까요.
하지만 분명한 것은 만화의 발전이 계속되면서 작품의 다양성이 늘어나게 될 것이고, 독자들은 더욱 많은 만화를 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만화계가 기술의 발전만으로 성장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아니, 성장하지 않습니다.
만화계를 이루는 주체는 작가와 독자이고, 만화의 주체는 이야기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야기는 사람의 삶입니다.
작가와 독자 사이의 관계는 보다 발전해야 할 것이고, 작가에게 프로 의식이 갖추어져야 할 것입니다. 작가와 업체 사이의 수익구조는 더욱 개선되어야 할 것이고, 작가가 독자들에게 소홀해지는 일이 있어선 안될 일일 것입니다. 또한 이야기에는 정말 주제가 잡힌, "이야기"가 들어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저는 지금의 담론들이, 작가분들의 작품에 대한 열정과 독자분들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지금도 수많은 작가분들은 작품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고 있으며, 독자분들은 자신의 마음에 든 작가에게 후원하길 꺼리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VR만화가 나타나게 된 것은 그러한 일의 일환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아래에 있는 링크는 제가 이 글을 쓰게된 계기입니다.
혹시나 하고 말씀드리는 것인데, 광고나 홍보 목적으로 글을 쓴 것이 아닌, 새로운 만화 형태를 많은 분들과 공유하기 위해서 글을 썼습니다.
한 번 들러보시고 의견을 남겨보시는 것이 어떠신가요?
앞으로 만화와 문화계에 무궁한 발전이 있기를 기원합니다.
VR만화를 만드는 법 :
http://comixv.blog.me/221051713888코믹스브이-가상현실 만화 사이트 :
http://comixv.com/ko VR기기가 없어도 만화를 보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다만, 기기가 있는 편이 몰입도가 더욱 높을것 같습니다.(저는 VR기기가 없어서 기기로 보지는 못했습니다.)
PS. 혹시나 "게임"같은 만화는 게임이 아니냐고 물으실 수 있을 것 같아 남깁니다. 호랑 작가의 봉천동귀신은 애니메이션적 요소가 들어가 있음에도 만화입니다. 하일권 작가의 고고고 역시 그렇고요. 또한 외국 쪽에는 반응형 만화들이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미지의 연쇄이지요.
PS2. 이 글은 애게와 만게 양쪽에 올리겠습니다.(좀 많은 의견을 받고 싶어서...) 만일 문제가 되면 삭제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블로그 같은 거라도 할까요;;; 역시 글을 써 보니까 한 데 모을 곳이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