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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인들은 어떻게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에서 세계의 지배자가 되었나?
많은 역사학자들이 묻는 질문입니다.
진부한 주제이기도 하죠.
하지만 역사에서 가장 충격적이고 폭넓은 영향을 끼쳤기에 그만큼 많은 관심이 가고 많은 토론의 대상이기도 합니다.
중세시대만 해도 유럽은 유라시아 대륙의 변방이었고, 생존 자체가 불투명한 포위된 문화권이었습니다.
이슬람 세력은 동으로는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격하고 있었고 서쪽으로는 히스피니아(스페인)를 점령하면서 유럽을 점점 포위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서방세계를 지켜주던 방벽 콘스탄티노플은 함락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전대미문의 사건은 오히려 유럽이 발흥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주었습니다.
비잔틴 제국의 망명자들이 이탈리아의 르네상스를 선도했고, 동방과의 교역이 끊긴 서유럽은 어쩔 수 없이 다른 루트를 찾아야만 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대항해시대가 시작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개인적으로 대항해시대의 정신사적인 측면에 더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대항해시대는 그것이 유발한 무역혁명이나 가격혁명 이상으로 유럽인들의 정신적 세계에 큰 충격을 가했기 때문입니다.
대항해시대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그 전에 알지 못했던 세계를 알게 해주었고, 그 전에 알지 못했던 사람들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게 왜 중요하냐면, 이로 말미암아 <자연상태>라는 개념과 <인류>라는 개념이 탄생했기 때문이죠.
특히, 정치학에서 말하는 자연상태(state of nature)라는 개념은 대항해시대 없이 탄생하기 어려웠습니다.
토마스 홉스나 장쟈크 루소는 모두 그들의 정치학적 논의의 출발점을 <자연상태>에 두고 있었습니다.
문명 존재 이전의 자연상태로부터 어떻게 사회를 <지적으로> <설계>할 것인가가 이들의 목적이었습니다.
이들이 그러한 <자연상태>를 상상할 수 있었던 것은 신대륙의 발견, 그리고 그곳에서의 원주민들의 생활에 대해서 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그곳 원주민들의 생활을 문명 이전의 원시상태로 간주하고, 이를 기준으로 어떻게 해당 사회를 변모시킬 것인가,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자신들 당면의 과제였던 영국이나 프랑스 사회(물론 루소는 제네바 출신이었지만...)를 발전에 대해 고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대항해시대를 통해 아메리카 원주민, 아프리카 원주민, 그리고 인도의 수많은 토호들, 인도네시아 원주민, 그리고 중국과 일본인 등을 만나면서 유럽인들의 사고는 협소한 유럽공간에서 벗어나 <전지구적>인 차원의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런 지구적 차원에서 사고가 <인류>라는 개념을 탄생시켰고, 이 <인류>라는 개념은 나아가 기독교적 보편사상과 합쳐지면서 <문명의 보편주의>라는 사고를 탄생시켰습니다.
물론 대항해시대를 이어나가기 위해 필요했던 기술적 지식, 그리고 신대륙과 동인도에서 발견된 수많은 다양한 동식물과 환경을 분류할 필요성이 <분류>와 <분석>을 기본으로 하는 <근대과학>을 탄생시킨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17-18세기 동안 유럽은 전례없는 수준의 국제무역을 바탕으로 폭발적인 경제성장을 했고, 이러한 생활수준의 향상은 정신적/과학적 혁명과 합쳐지면서 <계몽사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계몽시대 유럽 지식인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이성을 바탕으로 모든 종류의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믿었고, 이를 통해 인류의 존재 자체를 더 큰 차원의 발전으로 선도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계몽주의자들은 이성이라는 빛을 통해 불평등, 부조리를 해결하고 병을 고치고, 국가 간의 전쟁을 없애고, 인간의 자유를 증진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디드로, 몽테스키외, 칸트, 아담 스미스 등 모두 이러한 흐름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이성, 과학, 부, 그리고 힘이 합쳐지면서 19세기 유럽인들은 전 세계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고, 이는 유럽인들로 하여금 전례 없는 수준의 자신감을 갖도록 했습니다.
이제 유럽인들은 스스로 자문하기 시작했습니다.
왜 지구의 수많은 문명권 중에서 유럽인들만 이토록 발전했는가?
왜 수많은 다른 민족들은 유럽인의 지배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는가?
한 마디로 왜 유럽인들이 세계를 지배하고 그 반대가 되지 않았던가?
유럽인들은 이 순간 걷잡을 수 없는 오만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유럽인들 고유의 특성(극단적으로는 유전적/인종적 특성, 또는 마일드하게는 그들이 처한 자연적 환경 또는 문화)이 그들을 강하게 만들었다는 것고 반대로 유색인종들은 열등하기 때문에 지배받을 수밖에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항해시대 내내 폭넓게 이루어진 혼혈이 오히려 19세기에 들어서는 극도로 기피되었습니다.
사실 19세기 말 유럽인이 그렇게 느끼는 것은 무리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실제 당시 유럽인들, 특히 영국이나 프랑스의 중산층은 전 세계 어디에서나 자국의 깃발이 휘날리는 것을 볼 수 있었고 그곳에서 그들은 귀족 수준의 대접을 받았으며 유럽에 돌아와서는 안정된 정치, 비교적 공정한 법치, 깨끗한 도시, 전기등, 전신, 철도 등의 선진문물의 혜택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습니다.
대항해시대로부터 탄생한 정신적 혁명은, 계몽주의와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다양한 종류의 철학으로 발전했고, 이는 다시 마르크스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민주주의로 발전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공통점은 모두 인간생활 양식의 과학적 설계에 대한 믿음과 보편성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믿음이 깨지게 된 계기가 바로 1차,2차 세계대전과 그 직후 지속된 냉전.
양차세계대전을 통해 유럽은 역사상 최악의 참극을 경험하였고, 그러한 불행에도 불구하고 냉전이 바로 이어지면서 유럽인들은 인류의 진보, 이성 등에 대한 믿음을 잃었습니다
문명이란 무엇인가, 옳은 것은 무엇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1960년대 극도의 회의주의가 번지면서 온갖 종류의 포스트OOO 사상이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포스트모던이라고 하는 것에는 실체가 없었고, 단지 이성과 과학 그리고 진보로 대표되던 <근대>를 부정한다는 것에 급급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유럽의 급진적 지식인들은 이색적인 것, 비서구적인 것에 심취하게 되었고 어떤 경우에는 이게 너무 나가서 도저히 정당화할 수 없는 것까지 반서구/반근대의 이름으로 정당화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냉전이 서방세계의 승리로 끝나면서, 진보에 대한 믿음은 다시 불붙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극도의 회의주의 끝에 다시 나타났기 때문인지 진보에 대한 믿음도 극단화되면서 <네오콘>같은 집단을 탄생시켰죠. 즉, 인간의 이성과 행동이 역사를 좌지우할 수 있다는 믿음이었고 이를 통해 영구한 평화를 이룩해야 한다는 믿음입니다. 그 결과가 이라크 전쟁이죠.
게다가 시장경제와 자유에 대한 믿음은 2008년 경제위기로 다시 큰 위기를 맞게 되었습니다.
대테러전쟁 경제위기로 인해 서방세계는 다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옳은 일인가, 진보란 무엇인가, 인간사회를 지적으로 조율할 수 있는가? 진보란 과연 가능한 것인가?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우리가 다시 깊은 회의주의와 상대주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계몽주의가 탄생시켰던 보편적 정신, 이성에 대한 믿음과 진보에 대한 믿음을 결코 사라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반서구지식인들의 비판에도 불구하고 결국 계몽주의 사상이 우리가 지금 누리는 문명을 탄생시켰고, 계몽사상 덕분에 인간의 보편적 자유가 증진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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