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절대 거짓말은 하지 않습니다. 어디까지나 사실만을 이야기합니다. 단지 들리기에 달콤할 뿐입니다.
훈련을 시작합니다.
이 총은 전통적인 육군 강국이 채택하여 1차대전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함께한 경기관총입니다.
1차대전중 적아를 가리지 않고 그 어떤 경기관총 모델보다 많은 수인 26만정이 양산된 베스트셀러이며, 무려 초기 자동소총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전선 투입을 늦출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군수의 제왕인 미군이 얻어다 사용할 정도의, 양적 가치에 통달한 경기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군용 총기로 채택되어 대량 양산되었다는 점이 이미 양적 가치만이 아니라 질적 가치도 어느정도 대변해주지만,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전혀 안할 수 는 없는 법입니다.
설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먼저 신뢰성 높은 롱리코일로 작동하는 총열과 노리쇠뭉치가 리시버 내부에 정밀하게 맞물려 안정적으로 왕복운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이시대의 경기관총은 주력소총이 볼트액션 소총이었고 보병화력이 별볼일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낮은 발사속도와 적은 장탄수로 안정적인 화력을 투사하는 고비용, 고화력의 반자동 소총처럼 운용되는 실정이었습니다.
수십발의 탄환을 짧은 시간에 높은 발사속도로 끊어 쏘아 국소지역에 탄막을 펼치는 보병지원화기의 개념이 아니었죠. 조준을 마치고 방아쇠를 당겨 시야가 가려질정도의 총구화염을 내뿜는 높은 발사속도로 간간히 끊어쏘며 중간중간 조준하는, 한번에 많은 총알이 나가는 반자동소총같이 쏘아야 하는 현대 경기관총과 달리 1차대전 실상에 요구되던 경기관총은 방아쇠 컨트롤로 단발 2점사 3점사등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컨트롤이 가능하며, 연사하는 도중에 조준점이 흔들리는 리듬을 타며 지속적으로 조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인 낮은 발사속도로 급격한 탄 소모를 막으며 지속사격을 구사하는 기관총이었습니다. 조준점이 흐트러지기 전에 이미 십수발의 탄환을 발사해버린다는 이후의 경기관총들과는 개념이 다르죠.
이 총은 당시 군부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낮은 발사속도와 함께 많은 수를 휴대하기 좋은 20발 용량의 탄창은 시대가 요구하는 경기관총상에 충분히 부합하는 특징이었습니다. 싱글스택식이었기 때문에 얇은 두께를 자랑해서 많은 탄창을 휴대하기 용이했으며, 일본군의 99식 경기관총 탄창처럼 복잡한 카운터 장치를 부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구멍을 크게 뚫어놓음으로써 잔탄수 확인을 가능하게 한 탄창이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설계방식도 주목할만 합니다. 총의 성능만 확보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당시 군용무기들과는 달리 수직 손잡이나 돌격 사격용 개머리판 고정 장치 같은 사수의 편의를 위한 구조가 다수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높은 생산량과 낮은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이런 명설계였기 때문에 미군 또한 이 총의 설계에 자국의 30구경 소총탄의 규격으로 컨버팅한 모델을 생산하고, 보병 전투력의 근간이라 할만한 훈련과정에서 조차 이 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총으로 훈련받은 병사들이 제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것이지요.
이 총은 총기계에서 욕의 대명사가 되어버린 프랑스군의 Mle 1915 쇼샤 경기관총입니다. 이런 쇼샤 같은 놈
이제 다시 읽어보도록 합시다.
이 총은 전통적인 육군 강국이 채택하여 1차대전의 영광스러운 승리를 함께한 경기관총입니다.
이 총은 2차대전의 아둔한 일본군의 반자이 어택의 모태가 된 바보돌격의 시초이자 나폴레옹의 창피한 후손인 프랑스 육군이 싼맛에 써먹은 경기관총입니다.
1차대전중 적아를 가리지 않고 그 어떤 경기관총 모델보다 많은 수인 26만정이 양산된 베스트셀러이며, 무려 초기 자동소총계의 전설이라 할 수 있는 브라우닝 자동소총의 전선 투입을 늦출 정도의 영향력을 발휘합니다. 군수의 제왕인 미군이 얻어다 사용할 정도의, 양적 가치에 통달한 경기관총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저렴한 가격으로 26만정이나 양산된 고철덩어리이며, 이것만 (그것도 많이) 있으니까 쓰는거지 좋다고 골라 사간건 아닙니다. 싼게 비지떡이라는 말을 처절하게 증명해주는 모범적인 표본이며, 도와주러 온 주제에 기관총 얻어쓰던, 기관총의 발명국인 주제에 그 중요성을 알지 못했던 1차대전기 미 육군 군부의 똥대가리를 설명하는데에 항상 예시로 들어지는 전형적인 무기입니다.
나중에 말하겠지만, 미군형 쇼샤가 완전히 망해서 전투용으로 사용할 수 없게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많아서 미군마저 프랑스형 오리지널 쇼샤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많았습니다. BAR이 대량 투입되기 전까지 훌륭한 땜빵총이었죠.
어떤 면에서는 연합군의 어그로꾼인것이, 멍청한 미육군 똥별들은 BAR은 비밀무기이기 때문에 생산되는대로 투입하다가 적에게 노획당할 위험 없이 충분한 양이 창고에 쌓인 후에 일거에 전선투입한다는 생각을 했었는데, 대량의 쇼샤가 그럭저럭 화력땜빵을 해주고 있었기 때문에 이 덜떨어진 아이디어가 실제로 실행 가능했고, 덕분에 명품 BAR은 나중에 시간이 흘러 BAR 따위는 그다지 특별한것도 아닌 시점이 되어서야 "이때다 결전병기!"하고 외치며 유럽에 투입되었습니다.
군용 총기로 채택되어 대량 양산되었다는 점이 이미 양적 가치만이 아니라 질적 가치도 어느정도 대변해주지만, 그렇다고 그 이야기를 전혀 안할 수 는 없는 법입니다.
정상적인 군부가 정상적인 상황에 놓였을때는 말이죠. 프랑스군은 무려 그 프랑스군이고(...) 또 애초에 상황이 상황인지라 채택한다는것이 좋은것이라는 말을 대변해줄 수 없는 시대였습니다.
설계에 대해 간단히 언급하자면, 먼저 신뢰성 높은 롱리코일로 작동하는 총열과 노리쇠뭉치가 리시버 내부에 정밀하게 맞물려 안정적으로 왕복운동을 한다는 점입니다.
리시버 내에서 밀봉되어 왕복하는 작동구조는 장시간 자동사격시에 성실하게 부풀어올라 리시버 내부에 끼어버리고, 총을 분해하거나 다시 식히지 않는 이상 억지로 작동시키는것도 불가능하게 되기 때문에 볼트액션소총 이하의 연사력을 자랑하는 경기관총이 되어버리는 상황이 종종 발생했습니다.
롱리코일과 성능 희생 등 여러가지로 확보한 신뢰성은 이 특성이 다 갉아먹어 버렸고, 우리의 롱리코일 쇼샤에게 남은 것은 자동사격중에도 매 발마다 앞뒤로 요동치는 총의 극악의 사격능력이었습니다. 이정도 발사속도를 가지고도 조준점 유지가 어렵기도 참 힘듭니다.
이시대의 경기관총은 주력소총이 볼트액션 소총이었고 보병화력이 별볼일 없었던 시대이기 때문에 낮은 발사속도와 적은 장탄수로 안정적인 화력을 투사하는 고비용, 고화력의 반자동 소총처럼 운용되는 실정이었습니다.
요구된 스펙과 교범은 말이죠. 실제 전장에서 요구되는 성격과 병사들이 진짜로 사격하는 습관은 결코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때문에 이렇게 쏘라고 만든 물건을 죽어라고 갈겨대니 문제점이 속출하는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전장에서는 죽어라고 갈겨대는게 정상이기 때문에 잘못은 사수가 아닌 총에 있습니다. 부러진 칼을 들고 항의하는 병사에게 살살 휘두르라고 만든 칼이라고 설명해봤자 잘못은 칼과 그런 성격의 칼을 요구한 안목없는 군에 있습니다.
수십발의 탄환을 짧은 시간에 높은 발사속도로 끊어 쏘아 국소지역에 탄막을 펼치는 보병지원화기의 개념이 아니었죠. 조준을 마치고 방아쇠를 당겨 시야가 가려질정도의 총구화염을 내뿜는 높은 발사속도로 간간히 끊어쏘며 중간중간 조준하는, 한번에 많은 총알이 나가는 반자동소총같이 쏘아야 하는 현대 경기관총과 달리 1차대전 실상에 요구되던 경기관총은 방아쇠 컨트롤로 단발 2점사 3점사등을 조절할 수 있을 정도의 컨트롤이 가능하며, 연사하는 도중에 조준점이 흔들리는 리듬을 타며 지속적으로 조준을 유지할 수 있을 정도의 안정적인 낮은 발사속도로 급격한 탄 소모를 막으며 지속사격을 구사하는 기관총이었습니다. 조준점이 흐트러지기 전에 이미 십수발의 탄환을 발사해버린다는 이후의 경기관총들과는 개념이 다르죠.
이 총은 당시 군부의 기대에 충분히 부응하는 물건이었습니다.
그 정도로 낮은 발사속도로 쏘는데에도 작동불량이 발생하고, 조준점 유지를 위해 음악적 재능(?)이 요구되며, 탄창내 장탄수가 증발해버리는 총이었습니다. 부응하는건 전장의 요구사항이 아닌 안목없는 군부가 주문시에 요구한 스펙이죠.
그런 점에서 낮은 발사속도와 함께 많은 수를 휴대하기 좋은 20발 용량의 탄창은 시대가 요구하는 경기관총상에 충분히 부합하는 특징이었습니다. 싱글스택식이었기 때문에 얇은 두께를 자랑해서 많은 탄창을 휴대하기 용이했으며, 일본군의 99식 경기관총 탄창처럼 복잡한 카운터 장치를 부착하지 않고 단순하게 구멍을 크게 뚫어놓음으로써 잔탄수 확인을 가능하게 한 탄창이었습니다.
그리고 투입된 곳은 1차대전의 진창 참호전이었습니다. 전장의 진공청소기가 되어서 탄창 구멍 안으로 진흙을 흡입했고, 결과는 볼트액션 기관총이었습니다. 또한 두께가 얇아서 망가지기 일쑤였고, 모양도 괴이한 반원형이어서 전용 탄입대가 요구되었습니다.
시대를 앞서가는 설계방식도 주목할만 합니다. 총의 성능만 확보하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만들어진 당시 군용무기들과는 달리 수직 손잡이나 돌격 사격용 개머리판 고정 장치 같은 사수의 편의를 위한 구조가 다수 존재하고, 그러면서도 여전히 높은 생산량과 낮은 가격을 유지했습니다.
수직 후방 손잡이라 할만한 이상한 위치에 달린 쓰레기는 어딜 잡아야 할지 당혹스러운 병사들의 원성을 샀고, 개머리판 컵은 당시 최초 최후로 시도된 쓸모없는 개념이었습니다. 이런 옵션들을 포함하고도 저렴했던 완벽한 비지떡이었습니다.
이런 명설계였기 때문에 미군 또한 이 총의 설계에 자국의 30구경 소총탄의 규격으로 컨버팅한 모델을 생산하고, 보병 전투력의 근간이라 할만한 훈련과정에서 조차 이 총을 사용하게 됩니다. 이 총으로 훈련받은 병사들이 제 1차 세계대전을 승리로 이끈것이지요.
기관총을 발명해놓고도 그 중요성을 모른 미국은 두번의 세계 최초 기관총(수동 크랭크식, 기계식)들이 개발되고, 후자가 유럽에 넘어가 적아를 가리지 않고 모든 국가들이 자국 탄약규격으로 생산해서 서로 쏴대다가 지원군을 부르는 지경이 될때까지 손놓고 있다가 프랑스에 깡소총병으로 상륙, 전량 프랑스에 얻어쓰기는 뭐하다는걸 깨닫고 쇼샤의 30구경 미군 버전의 생산을 지시합니다.
수직손잡이의 전방으로의 이동, 구멍 안뚫린 정상적인 형태의 박스탄창등 여러가지 문제해결에 신경을 쓰는듯 하지만 여기서 미국의 전통적인 전매특허를 실행합니다.
지 혼자서 다른 도량형 쓰면서 치수 변환 대충하기. 인치 피트 온즈 베럴 야드 파운드... 제발 그만해!
전설적인 미터법을 만든 그 프랑스에서 총을 타다가 인치법으로 대충 변환, 총들이 말 그대로 폭발하기 시작합니다. 왜군
(그리고 선조의 기운을 본받아 다음 세기에는 스케일을 더욱 키워서 같은 방법으로 화성 탐사선을 날려먹습니다.)
생산량의 절반은 불량판정받고 폐기, 통과한 녀석들도 훈련소로 돌려집니다.
네, 이미 쓰레기의 물건의 개악화 버전인 아메리칸 쇼샤로 병사들은 훈련받았고 1차대전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다른 무기를 사용해서 말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