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다참다 너무 어이가 없어서 음슴체
치즈인더트랩이라는 웹툰의 손민수라는 발암 캐릭터와 행동이 비슷해 민수라고 칭하겠음.
민수의 첫인상은 '친절하고 밝고 착한 애'. 그런데 뭐랄까 분명 친절한건 맞는데 굉장히 부담스러움. 몇 년 겪어보니까 이제는 그냥 '오랫동안 쌓아 온 친한 척 + 가식의 내공' 같음.
시간이 지나면서 민수는 내게 스트레스 제공자가 됨. 아주 마일드한 수준의 스토커+따라쟁이 인데, 이게 정말 정도가 심하지 않아서 화를 낼 수도 없고, 내가 화를 내면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될 상황이라 미칠듯이 답답함.
나의 모든 것을 따라하고, 어디든 쫓아옴.
일단 본인에 대해 소개를 하자면, 취향이 독특한 편이라 살면서 옷, 물건 등의 스타일이 겹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본 적이 없음. 남들과 비슷해 보이는 게 싫어서 유행인 옷이나 물건은 절대 안 삼.
1. 몇 년전 민수를 처음 만났을 때 나는 항상 렌즈를 끼고 다니는 사람이었음. 그런데 어느 날 각막염을 계기로 처음 안경을 쓰기 시작함. 물론 조금 튀는 스타일의 안경을 고름.
착용하고 다닌지 삼일 째 되던 날, 민수는 같은 안경을 구해서 쓰고 옴.
2. 민수랑 같이 있는데 어떤 친구가 내게 와서 "오 너 머리 예쁘다^0^" 하고 지나감.
다음날, 민수는 나처럼 머리를 자르고 파마를 하고 염색을 하고 옴.
3. 본인은 추위를 전혀 안탐. 유년기 시절 러시아에서 자랐기 때문에 한국의 겨울 정도는 아무 것도 아님. 겨울에도 반팔 반바지 입은 상태로 눈바닥에 뒹굴거리면서 놈. 반면에 민수는 여름에도 에어컨 바람 때문에 춥다며 담요는 물론 핫팩까지 챙겨다니는 사람.
그런데 어느 겨울 날, 얘가 미쳤는지 한여름에 입을 법한 짧은 바지와 나시를 입고 나타남. 외투 입으라니까 덥다고 고집부리더니 감기 걸려서 며칠 고생함.
4. 내 취향 따라하기. 내가 입었던 옷과 똑같은 스타일을 정확히 3일 뒤에 입고 나타남. 옷은 물론 가방, 신발, 노트북, 필기도구도 그대로 따라함.
내가 손재주가 좋은 편이라 옷도 직접 리폼해 입고 핸드폰 케이스도 내 디자인으로 주문 제작해서 쓰는데, 항상 자기 것도 만들어 달라고 함.
(아니 내가 내 손으로 직접 수작업으로 한땀한땀 몇 개월 동안 공들여 만든걸 아무렇지도 않게 '나도 만들어줘!ㅎㅎ' 라며 당당히 요구... 재료비도 안주면서. 10만원인데ㅠ)
같은 옷 찾아서 사 입는 건 정말 끔찍히 싫음..
하 그리고 민수가 돈이 많은지 다른 건 몰라도 전자기기 따라사는 건 신기함. 어떻게 내 걸 보자마자 다음날 같은 걸 사들고 나타나지? 노트북을? 헤드폰을?
5. 내 성격, 말투 따라하기. 아니 민수 얘는 나한테 도청기랑 녹음기를 붙여놨나ㅋㅋㅋ 내가 했던 행동과 말을 고대로 따라함. 진짜 쓸데없는 말도...
사례1) 내가 립밤 바르고 나서 입술 오물거리는 습관이 있음. 언제는 체리향 립밤을 바르면서 혼잣말로 "어 이거 체리향이라고 써있는데 자두랑 파인애플 향 섞어놓은거 같네" 라고 함.
며칠 뒤에 민수가 그 립밤을 사오더니 같은 과 남자 선배앞에서 립밤 바르고 입술 오물거리며 "선배선배선배! 이거 봐요. 체리향이라고 써있죠? 근데 전 자두랑 파인애플 향 같은데. 선배 생각엔 어때요? 앟ㅎㅎ 저 후각이 정말 예민한 가 봐요>_<"
사례2) 같이 쌀국수를 먹으러 갔는데 내가 "와 쌀국수 진짜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먹은 게 4년은 된 것 같아" 라고 했었음.
며칠 뒤 동아리방에서 컵라면 끓여먹는데 "와 컵라면 진짜 오랜만이다 마지막으로 먹은 게 4년은 된 것 같아!!" 라고 함. 옆에 친구가 '뭔소리야 저번 주에도 먹었잖아ㅋㅋ' 하니까 "응??? 아닌데??? 나 원래 컵라면 잘 안먹어!!" 라고...
그 밖에도 많은 말들을 따라함ㅎㅎ
영풍문고보다 교보문고가 좋다던지
더워서 촛농처럼 녹아내릴 것 같다던지
6. 나는 운동을 많이 하고 근육에 신경을 많이 써서 단백질 쉐이크를 달고 삼. 매일 들고 다니며 마심. 그걸 본 민수의 반응: "그거 냄새 이상하던데. 맛도 없는 걸 왜 먹어?"
그리고 며칠 뒤부터 민수도 단백질 쉐이크를 들고 다니며 매일 마시기 시작함. 어디 앉을 때도 괜히 책상 한 가운데 올려놓고 모두가 볼 수 있도록 함. 누가 지나가는 말로 "민수 너 단백질 쉐이크도 마셔?" 라고 했는데 민수 왈 "응. 나 원래 몸관리에 신경써서 단백질 쉐이크 많이 마셔."
7. 내가 한 동안 유학이나 어학연수 알아보러 혼자 박람회 다니고 그랬음. 그때도 민수가 토요일날 뭐하냐고 묻길래 박람회 간다고 했음. 박람회 가서 만남ㅎㅎㅎ 민수 왈 "어? 너도 이거 오는 거였어??!! 우와 우리 텔레파시 통했나봐★"
텔레파시는 무슨 개뿔
8. 시간이 지날수록 민수의 '나 따라하기'는 체계적이고 계획적이 되어감. 민수의 심리를 아직도 알 수 없지만.. 추측해 보자면 내가 되고 싶었나 봄. 이유는 나도 모름ㅎㅎ 나 같은 사람을 뭐하러 따라하는 지 모르겠네ㅎㅎ
내 친구들에게 접근. 민수는 내 다른 친구들과 친하지도 않고 만난 적도 한 두번 뿐임. 그런데 마치 나처럼 행동하며 내 친구들을 대함. 온갖 친한 척. 민수가 나랑 같이 있을 때 누군가 내게 인사하면 "아는 사이야? 친해?" 라고 묻고, 그 사람에게 다가가 친구 행세. 내 인간관계를 복제하는 것처럼 내가 친한 사람이랑은 무조건 친하려고 함.
9. 날 따라다니는 것도 모자라 이젠 수강신청도 배낌. 민수랑 나는 과가 다른데, 내가 듣는 교양을 따라 듣는 다던지, 아니면 간혹 우리 전공 수업을 도강하러 오기도 함. 한번은 내가 일부러 수강신청할 때 내 시간표 안 알려줘서 다른 수업을 듣게 함.
그런데 수강 정정기간을 이용해 나를 쫓아 신청... 허허
10. 나와 모든 걸 똑같이 하고 싶나봄. 공통점을 찾으면 굉장히 좋아함. 별 쓸데없는 공통점도 찾으면 좋아하며 여기저기 광고하고 다님.
"나도 너처럼 피부가 하얀 편이야"
"오늘 우리 둘 다 힐 신고 왔네?^^"
심지어 민수가 날 따라해놓고 '우린 정말 비슷해!' 이럴 때도 많음.
"어쩜 서로 맞춘 것도 아닌데 머리 스타일이 똑같네?"
"어? 나도 그 옷 있는데! 너 나랑 취향 진짜 같구나!"
그외에도 수 없이 많음..
아무래도 민수는 멈추지 않을 것 같음. 얘가 원래 친구도 별로 없고 꾸밀 줄도 몰랐는데 날 따라하고 다니면서 예뻐졌다, 센스있다 칭찬을 들으니 기분이 좋은가 봄.
따지고 보면 민수가 저한테 직접적으로 해를 가한 게 아니에요. 그래서 제가 민수의 행동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도 왠지 제가 나쁜 사람 같아서 혼란스러워요..
저는 민수랑 같이 있는 게 싫고 내 모든 걸 따라하는 그 행동들이 너무 싫어요.
집착하는 애인 같고.
다른 사람들이 민수랑 저를 보고 "둘이 닮았어!" 라고 할 때마다 싫어서 돌아버리겠어요.
아.. 싫어ㅠㅠㅠ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