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화실에서의 대화 이후 화실에서 희진이는 이전과 틀리게 노골적으로 내게 친한척을 하였다.
아이들은 내게 또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희진이 조차도 이상한 아이 취급을 받기 시작했다.
" 재들 뭐니.......둘이 사귀는거야? "
" 재수없는 새끼......혼자 분위기는 다 잡더니...호박씨 까는거 봐라.. "
" 희진이는 머 저런 새끼랑.... 희진이도 취미 특이하다.. "
" 희진이 저 기집애도 원래 쫌 똘아이 기질 있었어.. "
왠지 전처럼 무신경하게 들리지 않고 아이들의 이야기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화실이 거의 끝나고 아이들이 돌아갈 무렵 급기야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놈 1 " 야!! 재수없는 놈.....너 희진이랑 사귀냐? "
놈 2 " 존만한 새끼 ..... 머라고 하고 희진이 꼬셨냐?
하여간 저런새끼들이 뒤로 호박씨만 까댄다니깐."
낙하 " 무슨소리야. 괜한 트집 잡지 마라 "
놈 1 " 어쭈.....또 맞고 싶냐? "
낙하 " 너희들 하고 다툴 생각 없다. 그냥 내버려 둬라. 제발"
놈 2 " 이런 싸가지 없는 새끼가 죽고싶냐? "
녀석들이 먼저 덤벼들었고 난 얼굴이 돌아갈 정도로 한대 맞고 말았다.
한녀석의 주먹에 맞고 돌아가는 내 눈에 이미 집에 간줄 알았던 희진이가 다시 들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희진이가 본다는 생각이든 순간 맞고 있던 난 손에 잡히는 의자를 들어 휘둘렀다. 놈 2가 내가 휘두른 의자를 피하다 넘어졌고
난 다시 의자를 들어 놈1을 향해 휘둘렀다. 놈1은 의자에 맞고 그대로 고꾸라졌고 난 의자를 집어 던지고 녀석들을 걷어 찼다.
무엇에 이성을 잃은 것인지 눈앞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내 성질을 감당하지 못하고 난동을 피우다가 제지를 당한 것은 원장형으로 부터 였다.
원장 " 낙하 너 무슨짓이야. 그만해 이자식아."
낙하 " 놔!!! 이 개새끼들 다 죽여 버릴꺼야."
원장 " 이자식아. 정신 차려 임마."
난 울부짖으며 원장형의 손을 뿌리쳤고 나를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희진이를 발견하고 화실을 뛰쳐 나갔다.
멀리서 희진이의 목소리가 환청처럼 메아리 치며 내 귓가에 맴돌며 들려왔다.
" 낙하야............................................ "
' 아 씨발. 이게 어떻게 된거야. 그럴 생각이 아니었는데. '
다음날 난 화실을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날 화실에 들어서자 아이들은 모두 웅성거렸고 기브스와 붕대를 감은 녀석들이 날 노려보았다.
희진 " 왔구나. 원장님이 보자신다.
그리고 원장님 이야기 끝나고 나랑 이야기 해 "
낙하 " ................. "
난 희진이에게 어떤 말도 없이 원장형방으로 들어갔다.
원장 " 낙하야. 네가 무엇때문에 왜 그랬는지 김선생한테 대충 들었구나.
어제 학부모들이 난리치고 경찰에 신고한다고 하는걸 간신히 말렸다.
그 대신 낙하 네가 여기 계속 다니긴 힘들게 됐구나.
내 선배가 하는 화실이 있는데 내가 이야기 해놓을테니
거기로 가라. 여기랑 크게 틀리지 않을꺼야. "
낙하 " 죄송해요 형. "
원장 " 괜찮아 사내놈들이 그럴수도 있지 뭐.
오히려 이렇게 널 보내는 내가 미안하다. 저녀석들 부모들이 워낙 극성이라
나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더구나. "
낙하 "아니요. 고마워요 형."
원장실을 나와서 내 물건을 조용히 챙기고 있을 때 희진이가 내게 다가왔다.
희진 " 잠깐 나가자. "
낙하 " 할 이야기 없다. 가만 내버려둬 줄래? "
희진 " 따라와. "
희진이는 내 손목을 잡아 끌었고 난 크게 뿌리치지 못하고 희진이를 따라서 화실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옥상에 올라온 후 나는 담배를 피웠고 말 없이 담배연기를 깊게 들이 마셨다..
희진 " 원장님이 뭐라고 말씀하셔? "
낙하 " 네가 신경 쓸일 아니자나. "
희진 " 김선생님한테 이야기 들었어. 그때 그 녀석들이 너랑 내이야기 하면서 놀렸다며? "
낙하 " 너 때문이 아냐. 신경쓰지 마라. "
희진 " 그건 그렇고.원장님이 뭐라고 하시는데? "
낙하 " 넌 대체 뭐가 알고 싶은건데. 나 이제 여기 다시 올일 없으니까. 너도 신경 끊어. "
희진 " 그게 무슨말이야? 화실 그만 두라고 하셔?
네 잘못만도 아닌데 왜 네가 나가야하는데? "
낙하 " 암튼 신경 끊어라 이제. 그래도 그간 심심치 않게 신경 써준건 고맙다. "
난 돌아서며 피던 담배를 튕겨 허공에 포물선을 그리며 날렸다.
내려와서 몇가지 안돼는 짐을 가지고서 원장형에게 인사를 하고 난 화실을 빠져 나왔다.
마지막 나올때 나와 마주친 희진이의 눈에는 눈물이 맺힌 것처럼 보였다.
그때 눈빛은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 다시 볼수 없기에 더 그리운 그 눈이기에 그러한가 보다.
희진이의 그 눈빛 때문이었는지 난 그날도 잠을 이룰 수 없었고 머리속에는 온통 희진이의 눈만이 떠올랐다.
난 원장형의 배려로 새로 옮긴 이 화실에서도 일을하며 같은 조건으로 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전 화실 원장형의 후배라는 이하영 선생님을 알게 되었고
내게 무척이나 친절하게 그림을 알려주던 이선생님을 나도 좋아했었다.
그러던 일주일 후에 희진이가 화실을 옮겨 이곳으로 왔다.
낙하 " 어떻게 된거야? 네가 왜 여기 왔어? "
희진 " 원장님한테 말씀 드리고 허락 받고 이리 옮긴거야. "
낙하 " 참내. 누가 반가워 한다고."
희진 " 그래도 나보니까 반갑지? "
낙하 " 내가 널 왜 반가워하냐? 귀찮게나 하지마라. "
이선생님 " 낙하가 아는 친구니? "
낙하 " 아뇨. 전에... "
희진 " 낙하 여자 친구예요. 잘 부탁드립니다. "
이선생님 " 그래? 낙하 이쁜 여자친구도 있고 능력 있네? "
낙하 " 아뇨. 여자친구 아니예요. "
사실은 뜻하지 않게 희진이를 다시 보게되어 너무 반가웠고 기뻤다.
여자친구라고 말하는 희진이가 싫지 않았고 오히려 이전보다 희진이가 더 가깝고 친하게 느껴졌다.
아니 그건 느낌뿐만이 아니었고 내 바램이었을지도 모른다.
비록 화실에서만 만나는 희진이었지만 점점 난 희진이에게 빠져들었다.
낙하 " 일찍 가서 쉬라니깐. "
희진 " 아냐 내가 좋아서 하는건데 뭐. 그리고 둘이 하면 더 빨리 끝나자나.
빨리 끝난 만큼 나랑 데이트 하는거다. "
낙하 " 데이트는 무슨 나가서 라면이나 먹자. "
희진 " 데이트가 별거야? 그런게 데이트지. "
처음 내가 가지고 있던 선입견과 틀리게 소탈하고 밝은 희진이의 성격이 좋았고 희진이와 함께 할때면
이젠 나도 같이 밝아지는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림을 그리기 위해 다른 즐거움은 모두 포기했던 나에게 희진이는 그림 이상의 즐거움과 의미가 되었다.
그렇게 화실생활에 재미를 붙이고 희진이와도 서로 말은 안하였지만 분명히 친구이상의 연인관계임을
우린 서로 느끼고 있을 때였다.
희진 " 낙하야. "
낙하 " 왜? "
희진 " 우리 사귀는거 맞지? 너 나만 좋아해줘야 해. "
낙하 " 무슨 소리야? "
희진 " 우리 애인 맞지? "
낙하 " 그런걸 말로 해야하는거냐? "
희진 " 그럼 이거 껴. "
희진이는 내 새끼손가락에 자신의 반지를 끼워주었다.
낙하 " 뭐야 이건? "
희진 " 우리 할머니가 주신건데. 내가 아끼는거니까 빼면 안돼. "
낙하 " 이거 그냥 네가 끼고 나중에 반지하나 내가 해줄께. "
희진 " 아냐. 그건 나중에 하고 이건 절대로 빼지마. 알았지? "
낙하 " 그래. 고맙다. "
그렇게 그녀는 내 새끼손가락에 반지 하나를 끼워주고 어느때 보다도 밝은 모습으로 미소지으며 날 바라봐 주었다.
난 그렇게 희진이를 사랑하게 되었다.
희진이와의 만남이후 둘이 사랑이란걸 하게 되면서 나의 생활은 행복함에 피곤함을 못느꼈었고 나의 화실 생활은 행복 그 자체였다.
그런 이유에서였는지 난 원장형의 신뢰와 이하영 선생님에게 제일 귀여움 받는 원생이었다.
이하영선생님은 선생님이라고는 하지만 사실 그 당시 대학3년생의 학생이었고 막내여서인지 친구처럼 편안한 선생님이었다.
희진이와 한참 잘 지내던 시기에 이하영 선생님과 크다면 크고 작다면 작은 일이 벌어졌다.
화실이 쉬는 일요일 .
그날은 여름비가 장대처럼 쏱아지고 있었다.
희진이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다가 어머니 생신이라 희진이는 일찍 돌아가고 난 화실에서 혼자 그림을 그리고 있을 때였었다.
늦은 저녁시간 화실이 있는 건물은 조용했었고 찾아 올 사람도 없었을 시간인데 또각 거리는 발자욱이 점점 커지면서
화실 문이 열리고 이하영 선생님이 흠뻑 비를 맞은 모습으로 들어왔다.
하영 " 낙하 있었구나 있을것 같더라. "
낙하 " 선생님. 어디서 이렇게 비를 맞고 오셨어요? "
하영 " 괜찮아. "
부축하는 내게 선생님의 입에서는 진동하는 술냄새가 퍼졌다.
낙하 " 왠 술을 이렇게 드셨어요. "
하영 " 간단히 한잔 하다가. 낙하 생각 나서 혹시나 하고 왔지. "
낙하 " 이리 앉으시고 잠깐만여. "
난 수건을 여러장 가져다가 선생님에게 건네주었다.
그때 본 선생님의 눈가에는 빗물이 아닌 눈물이 흐르는 듯이 보였다.
낙하 " 선생님 무슨 일 있으세요? "
하영 " 일은 무슨 아무일도 없어. "
낙하 " 아무일 없으시면 다행이지만 "
하영 " 낙하야. 내가 매력이 없니? "
낙하 " 네? 무슨 말씀이세요. "
하영 " 내가 여자로서 매력이 없어 보이니? "
낙하 " 누가 그런 소리해요. 선생님이 얼마나 이쁘신데요. "
하영 " 그래? 희진이 보다 내가 더 이뻐? "
낙하 " 하하 그건. 좀. "
하영 " 하긴 넌 희진이 한테 콩깍지가 씌웠는데 내가 이뻐 보이겠어? "
낙하 " 선생님 진짜 매력있고 이쁘세요. 진짜로 맹세하고요. "
하영 " ................................................. "
선생님은 말이 없으셨다. 아니 어느새 선생님은 흐느끼고 있는 것 같았다.
소리를 삼키며 울고 있었다.
낙하 " 도대체 무슨 일이세요. "
하영 " 박선배는. 왜. "
난 짐작할수 있었다. 선생님은 내가 전에 다니던 화실 원장형을 짝사랑 했었다.
얼마전 원장형은 약혼식을 했었고 어이 없게도 뒤늦게 선생님은 사랑 고백을 한 후에 퇴짜를 맞은 것이다.
낙하 " 선생님. 원장형은 이미 다른사람이 있잖아요 "
' 이런...이걸 위로라고 하는건지. '
더욱 서럽게 우는 선생님을 어떻게 달래야 할지 몰랐고 나 혼자 우왕좌왕했다.
한참을 울던 선생님은 울음을 멈추시더니 다시 생긋 웃으며 말을 했다.
하영 " 낙하 그림 잘 그려지니? "
낙하 " 아뇨. 좀 힘들어요. "
하영 " 그래? 어디 좀 볼까? "
선생님은 내 스케치북을 한참을 바라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하영 " 이제 아그리파는 그만 그려도 돼겠는걸. "
낙하 " 정말요? 괜찮은가요? "
하영 " 이정도면 이제 비너스도 무난하겠다. "
낙하 " 비너스는 좀 힘들던데요. "
하영 " 힘들수록 많이 그려봐야지. "
사실 아그리파는 이제 석고상 없이도 왜워서 그릴 만큼 지겹게 그려댔던 터라 희진이도 그랬지만 이제 좀 더 난이도 있는
비너스나 다윗 전신상까지 시도해보라구 하던 터였다.
하영 " 방해 안돼면 선생님이랑 소주 한잔 할까? "
낙하 " 전 괜찮은데 선생님 많이 취하신거 같은데요 "
하영 " 괜찮아 임마. 아직 끄떡 없어. "
난 가까운 수퍼에 가서 소주 두병과 안주거리를 사들고 돌아와 선생님과 마주앉아 소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선생님은 술기운 때문이였는지 그만큼 힘들어서 였는지 원장형에 대한 이야기 선생님의 마음을 나에게 전부 이야기하며
때로는 울다가 때로는 웃으며 이야기를 이어 나갔고 난 소주를 마시며 선생님의 이야기를 건성으로 듣고 있었다.
그때 술기운이 많이 오른 선생님이 화제를 바꾸었다.
하영 " 낙하야. 너 크로키 할줄 알지? "
낙하 " 네. 조금. "
하영 " 여자 몸 크로키 해봤어? "
낙하 " 아뇨. 그림으로 보긴 했어요. "
하영 " 그럼 오늘 내가 모델 해줄테니 연습해볼래? "
낙하 " 네? 아뇨 괜찮아요. "
하영 " 괜찮긴 이자식아. 대학가도 다 하는거야. "
낙하 " 그렇긴 해도 선생님 지금은....... "
내 대답도 끝나지 않아 선생님은 옷을 벗고 있었고 어느새 몸에 걸쳐진 모든 천으로된 것을 한켠에 벗어논 상태였다.
낙하 " 선생님. "
하영 " 어서 그려 10장 그리는거다. 1장당 30초야. "
희미한 촛점으로 아른거리는 선생님의 나신을 똑바로 볼 수도 없었다.
하영 " 낙하야 그림 그리겠다는 놈이 그러면 안돼는거야.
그냥 석고상을 바라본다는 생각으로 보고 그려. "
낙하 ".......................예 "
기억도 나지 않는 순간을 나는 선생님의 모습이 아닌 내손이 움직이는 데로 크로키를 하고 있었다.
잠시 후 선생님은 내그림을 보시고 말씀을 하셨다.
하영 " 자식 사내라고.하긴 첨엔 다들 그런다드라. "
낙하 " 죄송해요. "
하영 " 죄송하긴. 이제 네가 모델이다. "
낙하 " 네? "
하영 " 그림 그리는 사람은 모델의 입장에도 서봐야 하는거야. "
낙하 " 그렇지만. "
하영 " 어서!!!!!! "
난 어쩔수 없이 아니 한편으로는 해보고 싶은 마음도 없지 않았다.
그렇게 나체가 됀 나는 쑥스러운 모습으로 어정쩡한 포즈를 취했다.
그런 내모습이 재미있는지 선생님은 웃으며 크로키를 해나갔다.
크로키를 마치고 그림을 내게 보여주던 선생님은 다시금 옷을 벗고 내게 다가왔다.
낙하 " 선생님.왜 그러세요 "
하영 " 낙하야. 예술하는 사람은 무엇이든 경험해 봐야해. "
낙하 " 그래도 이건. "
하영 " 혹시 너 처음이니? "
낙하 " 선생님 취하셨어요. 그만 하세요. "
난 선생님을 뿌리치며 피한다고 하긴 했지만 어쩌면 그건 생각 뿐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난 선생님의 손에 이끌려 이성에 눈을 뜨는 의식을 치루고야 말았다.
어떤 죄의식을 느꼈다기 보다는 선생님을 안고 있던 그 순간에 희진이를 떠올렸고 처음 느끼는 여자의 몸은 너무도 아름다웠다.
곤히 잠든 선생님의 눈을 바라보며 난 후회를 하고 있었다.
' 내가 무슨짓을 한거야.... 재기랄 '
그제서야 무언가 잘못됐다는걸 깨달았지만 이미 저질러진 일에 대해서 후회와 눈을 감고 있는 선생님에 대한 연민이 생겼다.
이하영선생님의 감은 두눈에는 눈물이 흘러 내리고 있었다. 반짝이는 눈물에 고운 선생님의 얼굴이 쓸쓸한 푸른빛을 더하며
더없이 슬프게 보이고 한편으로 너무 아름답게 보였다.
무심코 바라보던 선생님의 얼굴을 나는 어느 순간 그려 나가고 있었고 그림이 그려진 후 내 스케치북에 그려진 것은
바로 이하영선생님이 아닌 희진이의 울고 있는 모습이었다.
어쩌면 내 느낌만 그러했을뿐 선생님도 희진이도 아닐지 모른다.
멍하니 내려다 보는 그림에서 희진이가 나를 원망하듯 바라보며 울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