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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찬 (1916~1983)
대한민국 제6대 육군참모총장 / 제8대 국방부장관
할아버지는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유명 친일파 이하영.
아버지 역시 자작 작위를 물려받고 각종 고위직을 지낸 친일파.
이종찬 본인은 일본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일본군 장교로 임관하여 태평양 전쟁 당시 최전방 지휘관으로 전장을 누빔. 최종 계급은 소좌(소령)
1945년 4월 아버지가 죽고, 아버지의 자작 작위를 물려받게 되었는데 이종찬은 작위 습작을 거부함.
광복 직후 많은 일본군 장교 출신들이 그대로 한국군으로 흡수되어 요직을 차지했으나
이종찬은 자신은 민족의 죄인이므로 반성해야 한다면서 4년간 모든 공직제의를 거부.
이 즈음에 결혼을 하게 되는데, 어머니가 상대 여자의 집안이 형편없다고 아들에게 뭐라 그러자
'친일파 집안인 우리 집안이 뭐가 그리 잘났습니까' 라며 어머니에게 항변.
한국전쟁 당시에는 수도사단장, 3사단장을 지내며 많은 공적을 세움
이때의 일화 몇개를 소개하면
1. 그의 사단이 읍내를 공격하는데 읍내에 틀어박힌 북한군의 저항이 완강해서 들어갈 수가 없음.
직속상관인 군단장이 '읍내에 포격도 하고 불도 질러서 얼른 진입하라'라고 명령하자
'그런 마적단 토벌 방식을 민간인이 살고 있는 읍내에 쓸 수 없다'라며 거부
2. 북한군이 점령하고 있던 지역을 수복하고 북한군에 협력했던 사람들을 체포.
휘하 지휘관들이 이들을 즉결처분하려고 하자
'아무리 적에게 협력했다고 해도 재판 없이 즉결처분을 할 수는 없다. 경찰에 넘겨서 정식 조사를 받게 하라'라고 지시.
육군참모총장 재임시에는 의도적으로 광복군 출신들을 많이 기용하려고 했고
육군사관학교가 정규 4년제로 개편하며 새로이 개교하게 되자
'적어도 육사만큼은 독립군 출신이 교장을 맡아야 육군의 정통성이 바로 선다' 라고 하며 독립군 출신인 안춘생을 교장으로 임명.
그가 참군인이라고 평가받게 된것은
1952년 육군참모총장 재임시 보여준 그의 모습 때문.
당시 이승만 대통령은 부산 정치파동을 일으켜 자기 뜻대로 개헌을 하려고 했고
계엄령까지 선포하고 군대를 동원해 야당 탄압을 하려고 함.
이에 대해 이종찬은
'군은 군 본연의 임무에 충실하고, 정치적 중립을 지켜라' 라는 훈령을 전 육군에 하달, 이승만에게 정면으로 대항함.
결국 이 일로 이승만의 미움을 사게 되고 육군참모총장에서 해임됨.
또한 3.15 부정선거 당시 이에 개입하라는(군인 표를 전부 여당으로 찍으라고 시키라는) 지시가 위에서 내려오자 거부.
자기 휘하의 장병들은 상관말고 무조건 자유투표를 할 수 있도록 보장.
이런 모습 덕분에 '참군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고, 아직까지도 후배 군인들의 존경을 받는 인물로 남아 있음.
어찌되었든 친일파 집안에서 태어나서, 그 자신도 친일행위를 했던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 친일인명사전에도 수록되어 있음.
그러나 위의 사례에서도 보이듯이 자신이 친일파임을 부정하지 않았고, 평생 이에 대해 속죄하며 살아왔다는 평가를 받음.
출처 | http://m.cafe.daum.net/WorldcupLove/Knj/223876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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