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5년 제2차 봉직전쟁 직후의 주요 군벌 형세도, 출처 : 위키백과>
군벌(軍閥)이란 간단히 말해서 지방의 군사령관이 자신의 무력을 배경으로 중앙정부의 지배에서 스스로 독립하여 주둔지를 중심으로 일정한 지반을 장악하고 통치권을 행사하는 것을 말하죠. 중국은 혼란기마다 이런 군벌들의 싸움의 연속이었는데,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조조나 유비, 손권, 원소도 전형적인 군벌의 일종입니다. 수를 무너뜨리고 당을 세운 이연도 군벌이었고 그 당을 무너뜨린 절도사들의 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는 왕건과 이성계가 군벌출신에 해당되겠죠.
중국 근세 군벌시대는 원세개가 죽고 북양군벌들이 할거하는 1916년부터 장개석이 북벌을 완료하는 1928년까지로 보지만, 간단하게 선 긋듯 규정하기는 어렵습니다. 원세개 살아있을 적에도 그의 세력권은 화북일대에 국한되었고 남쪽 동네는 카오스 상태였죠.
또 만주대빵 장작림은 원세개에게 형식상 복종했지만 사살상 반독립된 상태였습니다.또 중국을 통일한 장개석 정권 역시 봉건적인 군벌의 집합체였고 북벌이후에도 권력을 놓고 큰 전쟁이 여러차례 발발합니다.(이른바 "反蔣전쟁") 1936년 양광사변에서 이종인, 백숭희의 광서정부가 남경중앙정부에 복종함으로서 장개석에게 대적하는 지방정부는 없어지죠. 더 포괄적으로는 장개석이 대만으로 쫓겨갈때까지를 군벌시대의 종착역으로 보기도 합니다.
군벌시대를 크게 3가지로 나눈다면, 원세개 사후 북양군벌들끼리 분열되어 안휘파, 직례파, 봉천파가 서로 치열한 싸움을 벌이는 "군벌혼전의 시대"(1916~1926), 장개석이 북벌을 선언하고 구 군벌들을 토벌하여 천하를 통일하는 "북벌전쟁"(1927~1928), 북벌과정에서 장개석과 손을 잡았다가 장개석 독재에 반발한 신군벌들간의 전쟁(1929~1936)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위의 형세도는 장개석의 북벌이 시작되기직전 봉건군벌들간의 가장 큰 전쟁이었던 제2차 봉직전쟁직후의 주요 군벌 형세도입니다. 이 전쟁은 장작림의 봉군과 조곤, 오패부의 직군간의 전투였는데 쌍방 수십만을 동원한 일대 결전이었으나 직예파였던 풍옥상이 배신때리고 뒷치기함으로서 오패부가 패망하면서 장작림이 전 중국의 패왕이 되기 직전까지 갑니다.
군벌시대에는 위의 그림처럼 여러 성에 걸쳐 광대한 영지를 통치하는 대군벌도 있지만, 촌동네 한개 현을 장악한 소군벌들도 산재해 있었습니다. 토탈해 총 1300여명의 군벌이 있다고 합니다. 또 사천같은 경우는 가장 강한 군벌은 류상이지만 사천 전체를 통일한 대군벌이 없고 고만고만한 소군벌들이 산재해 있어 이웃의 침략(?)을 받기 일쑤였습니다. 즉 옆동네 운남이나 귀주, 호북같은 곳에서 쳐들어와 삥뜯고 다시 쫓겨나는 것이 반복되었죠. 물론 힘없는 농민들만 죽어나는 것이죠.
여기서 봉천파는 북양군벌에서 직계라기보다 방계에 속하며(한마디로 원세개가 직접 키운 애들이 아님), 정통북양군벌은 직예파와 안휘파입니다. 북양군벌은 주로 북경-천진을 중심으로 화북, 화중지역을 장악하고 있었으며 양자강이남에는 원세개와는 아무 상관없는 비북양 계통의 서남군벌들이 있었습니다. 세력면에서는 북양군벌들에 비해 열세했습니다. 손문과 그 뒤를 이은 장개석은 자신의 황포군관학교 교도단을 중심으로 이 서남군벌들을 규합하여 북벌을 시작했고 북양군벌들과 싸워 중국 전토를 통일하였습니다. 이 외에도 사천성에는 류상, 유문휘, 양삼 등 여러 소군벌들이 자기들끼리 치열한 각축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호남성에는 조항척→당생지가, 청해성 일대에는 이른바 "서북삼마"라 불리는 마씨 일족들이, 신강성에는 양증신→김수인→성세재 이런 계보로 서로 뺏고 뺏기는 권력싸움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이들 올망졸망한 놈들은 장개석이 천하를 통일하자 스스로 알아서 복종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군벌은 기본적으로 중앙집권이 아닌 중세시대 봉건관계이기에 대군벌 역시 다수의 대소군벌들을 부하로 거느렸습니다. 이들은 반독립적인 관계로서 단지 이해관계에 의해 손을 잡거나 복종키로 한 것이기에 언제라도 배신을 때리거나 독립하여 따로 놀 수가 있었습니다. 직계의 풍옥상이 보스인 조곤과 오패부를 배신하고 장작림과 손을 잡은 것도 이때문입니다.
장개석 이전 최강을 자랑했던 장작림은 개인의 강력한 리더쉽과 카리스마로 가장 강력한 권력을 누렸지만, 그의 세력 역시 산동의 장종창이나 곽송령, 이경림, 장작상, 장경혜등 다수의 봉건적인 소군벌로 구성되어 있었습니다. 숫적으로 훨씬 열세했던 북벌군에게 박살난 것도 이들간의 내분과 협조결여때문이었습니다. 한편으로 "군벌타도"를 외쳤던 장개석의 북벌군도 그 실체는 여러 군벌들의 연합체였으며 따라서 북벌과정에서도 북벌군과 국민당내 주도권을 놓고 서로 내분을 겪었을 뿐더러 북벌에 성공하여 천하를 통일한후에도 자신들의 독자적인 왕국을 형성한채 서로 더 많은 지분을 차지하려고 또다시 싸움을 벌이게 됩니다.
군벌시대는 철저하게 국가와 민족보다 군벌 개인의 이익과 출세만을 지향했고 이를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습니다. 돈에 눈이 멀어 이권을 파는 매국노짓도 아무렇지 않게 했죠. 중국이 강대국들의 반식민지가 된 것도 청말이래 이런 군벌들의 무능함과 부패함, 비열함때문이었습니다. 장개석이 북벌에 성공하고 중앙정부 수립후 이전의 불평등조약과 관세자주화, 조계 반환 등 반식민지관계에서 점차적으로 벗어나게 됩니다. 물론 장개석 역시 반봉건적인 군벌의 잔재가 남아 있었으나 이런 점에서 이전의 친일 매국적인 군벌들과는 명확하게 차별되었으며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다음에는 군벌시대 주요 군벌들을 중심으로 군벌들간의 전쟁과 중요사건, 그 시대의 상황에 대해 하나씩 다루어 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