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애국심이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역사관계는 명확히 해야죠.
걱정되는게 한 가지 있습니다.
한국인들이 미국에 지나치게 환상을 품고 우호적이라는거죠.
미국은 세계 그 어느 나라보다도 이기적인 집단이자 역사가 짧고 역사적 평가를 타국으로부터 받아본 적 없는 강대국입니다.
미국이 여지껏 일본과 한국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 발단은
1853년 쿠로후네 사건 이라 불리는 일본의 개항이었습니다.
미국이 북아메리카 원주민을 학살하며 개척지를 넓히고나서 한참 후의 일이죠.
무력시위로 겁을 줘 개항된 후 일본 내의 금은 시세는 요동치게 됩니다.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무역을 한 미국이 그 과정에서 엄청난 시세차익을 벌어들이죠.
주목받지 않은 유럽의 후손들이 이룬 대항해시대의 막바지라고 할까요.
일본이라는 약소국은 불평등조약이 체결되어 미국인들의 야만적인 행위에도 아무런 처벌을 하지 못합니다.
흔한 이야기죠.
그것은 몇십년후 일본의 적성국이었던 한국에게 고스란히 전가되어 결국 한일합방에 이르게 됩니다.
미국이 막강한 무력으로 일본을 점령하지 않은게 아니라 그 당시 미국은 노예해방 즉 링컨대통령의 남북전쟁의 내전 중이었습니다.
노예제가 남아있던 시절, 일본은 미국의 문화를 고스란히 한국에게 적용시킨거죠.
그 이후의 한국에 일어난 참상은 굳이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중요한건 미국의 권위에서 벗어나 심리적 압박감을 떨쳐내고 주도적으로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야 한다는 겁니다.
현재는 한국이 미국의 속국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전시작전권을 환수해서 전쟁을 하자는게 아닌 전쟁을 대비하고 막을 결단력을 갖추는게 옳다는거죠,
역사는 전쟁의 역사만은 아닙니다.
역사는 강자의 역사이어왔을 뿐이죠.
wing it
달콤한 우정
아름다운 이성을 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 얼굴을 보고 싶거든 정면으로 당당하게 보고
옆에서 엿보지 마라.
성철 스님의 주례사 
오늘 두 분이 좋은 마음으로 이렇게 결혼을 합니다. 
하지만 이렇게 결혼하기를 원해놓고 살면서는 아이고 괜히 결혼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안 할 걸 후회하는 마음을 냅니다. 
이 결혼 할 때 마음이 어떠냐? 선도 많이 보고 사귀기도 하면서 
돈은 얼마나 있나?, 학벌은 어떻나? 성질은 어떻나? 건강은 어떻나? 
이렇게 다 따지고 이리 저리 고릅니다. 
손해 볼 마음이 논꼽 만큼도 없습니다. 
이렇게 골랐다는 것은 덕보겠다는 마음이 있습니다. 
이 덕보겠다는 마음이 살다보면 다툼의 원인이 됩니다. 
아내는 30%주고 70% 덕보자고 하고 남편도 30%주고 70% 
덕보자고 합니다. 
둘이 같이 살며 70%를 받으려고 하는데 실제로는 30%밖에 못 받으니까 
살다보면 십중팔구는 결혼을 괜히 했나, 속았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덕보려는 마음이 없으면 어떨까요? 
아이고 내가 저분을 좀 도와줘야지, 저분 건강이 안 좋으니까 내가 평생 
보살펴 줘야겠다. 저분 경제가 어려우니 내가 뒷바라지해 줘야겠다. 
아이고 저분 성격이 저렇게 괄괄하니까 내가 껴안아서 편안하게 
해 줘야겠다. 
이렇게 베풀어 줘야겠다는 마음으로 결혼을 하면 길가는 사람 
아무하고 결혼해도 별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덕보겠다는 생각으로 고르면 백 명중에 고르고 고르고 해도 
막상 고르고 보면 제일 엉뚱한 것을 고르게 됩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오늘 이 순간부터 덕보겠다는 생각을 버려야 
됩니다. 
내가 아내에게 내가 남편에게 덕 봤다는 생각이 들도록 해 줘야겠다고만 
다짐하면 사는 데는 아무 지장이 없습니다. 
제가 말로 부조를 하니까 두 분이 꼭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도 매일 밤마다 반복되는 그리고 번복되는 어제의 각오는 잊은 채 
시시한 욕구를 채우려고 너 스스로와 했던 약속을 기만하고 모욕하고 비웃었지.
굳은 다짐으로 쓰여졌던 약속의 증서는 휴지조각으로 버려지고 또다시 내일을 외치며 도대체 언제쯤 관둘지 모르는 그 공허를 외치며 스스로에 대한 자기혐오와 미래에 대한 불안감을 애써 가능성이라는 이름의 거적으로 덮어놓고선
남이 쌓아올린 탑을 남들에게 뽐내는 역겨운 대리만족을 넘어, 마치 그 주인이라도 된 양 허세를 부리는구나.
부끄러움은 잊은지 오래- 오히려 민망할 정도로 당당하다.
검은 밀물은 매섭게 밀려드는데 모래성은 높아져만 간다.
꿈은 화려하기 그지 없는데 어째서 시궁창에서 한심한 꼴로 허우적대는가.
그래놓고 후에 가서 이상의 날개는 현실에 의해 꺾이어졌다는 되지 않는 감상을 늘어놓을 것인가.
시간보다 빠르게 달려야 하는데 어째서 뒷걸음질만 치는가 - 바로 뒤엔 절벽있는데
지금 네가 즐기는 그 쾌락이 죄 많은 너의 가슴을 찢는 고통으로-
그리고 수십배는 더 고통스러울 죄 없는 어머니의 소리없는 오열로 돌아온다는 것을 알면서 어째서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자신감으로 그렇게 퇴보를 반복하는 것인가. 
.
.
.
들어라.
하루의 절반을
눈물로 지워본 적이 없는 이들아.
또한
들어라.
노력없는 희망만큼이나 
또 절망적인 것은 없음을 아직 모르는 이들아.
언젠가는 가장 비참하게 찢길 오만과
지독한 비린내를 풍기는 나태로 찌들어
이제는
끝없이 내일만을 되뇌이는
그 검은 입으로
감히 
너의 꿈을 모욕하지 말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춤추라, 아무도 바라보고 있지 않은 것처럼.
  노래하라, 아무도 듣고 있지 않은 것처럼.
   사랑하라, 한번도 상처받지 않은 것처럼.
     일하라, 돈이 필요하지 않은 것처럼.
      살라,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알프레드 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