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ekly chosun] 탈북자 대북 송금 요지경… 은밀한 루트를 추적하다
중국·북한에 점조직 브로커 활개
보위부원들도 눈 감아주고 ‘뒷돈’
<이 기사는 weekly chosun 2042호에 게재된 기사입니다>
강철환 조선일보 통한문제연구소 기자 기자의 다른 기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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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눈덮인 혜산시 풍경/조선일보 DB한국·중국서 3만~4만명 정기 송금… 브로커 커미션은 15~20%
신흥부자 집단된 北 가족들 “1000달러만 받아도 상류 생활”
탈북자 A씨는 최근 북한에 있는 가족으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에게 송금을 해주면, 북한에서 그 돈을 받아 사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A씨는 아껴뒀던 1000달러를 주저 없이 보냈다. 북한의 사정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여기(남한)서 내가 한 끼를 먹는 돈이면 북한에 있는 가족이 수개월간 생활할 수 있다”며 “굶는 한이 있더라도 돈을 보낼 것”이라고 말했다.
A씨처럼 북한에 있는 가족에게 돈을 보내주는 탈북자들이 늘고 있다. 정부 관계자는 “국내에 정착한 탈북자가 약 1만5000명에 달하는 것으로 보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6000명 이상이 북한에 돈을 보내고 있는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송금 규모가 점점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탈북단체 관계자는 “북한의 가족에게 송금하는 탈북자가 1만명 이상은 될 것”이라고 추정했다.
정부 추계대로 약 6000명의 탈북자가 북한에 돈을 보내고 있으며, 한 사람당 1년에 1000달러를 송금한다고 가정하면, 매년 600만달러(약 78억원)가량이 북한으로 전달된다는 계산이 나온다. 여기에 10만명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중국 탈북자 중 북한에 송금하는 것으로 보이는 2만~3만명을 더하면 매년 약 3만~4만명의 탈북자들이 북한에 돈을 보내고 있는 셈이 된다.
▲ 마약 판매한 대가로 미국 달러와 오토바이를 건네 받는 북한 해군 경비병들/조선일보DB
미국 달러나 중국 위안화로 송금
브로커들 매일 환율 변동까지 체크
송금 루트는 은밀하다. 중국에 있는 브로커 계좌로 국내의 탈북자가 돈을 보내면 이 브로커는 북한에 있는 다른 브로커에게 연락을 취한다. 연락을 받은 북한 브로커는 탈북자가 지명한 북한 사람에게 자신의 돈을 지불한 뒤, 중국의 브로커와 추후 정산하는 방식을 취한다. 따라서 서류상 ‘증거’가 남지 않게 된다.
송금할 때 사용하는 화폐 단위는 통상 미국 달러와 중국 위안화가 병용된다. 브로커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일반적으로 브로커마다 15~20%가량의 커미션을 취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휴대전화를 이용해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며 매일 환율 움직임을 체크하는 ‘전문가’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한 탈북자는 “북한 내부에서 먼저 브로커를 찾아 송금하는 경우는 거의 신용이 확실하지만, 중국에서 알게 된 브로커들은 돈을 전달해주지 않고 가로채는 경우가 허다하다”고 전했다. 이들 브로커들은 수십만달러를 쥐고 움직이는 큰손들로 조직폭력배와 연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전에도 송금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막대한 뇌물이 필요했다. 수년 전만 해도 북한 내부로 돈을 보내려면 우선 사람을 보내 국경경비대에 막대한 뇌물을 줘야 했다. 수수료도 40%가 넘었다. 그나마 단속에 걸리면 다 뺏기고 남는 것이 없었다. 배보다 배꼽이 더 컸다는 얘기다. 하지만 송금 브로커가 등장하고, 조직적인 전달 체계를 갖추게 되면서 북한의 가족에게 보내는 송금액과 탈북자 수가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화폐 단위도 ‘원’이다. 하지만 국제시장에서의 가치는 미미하다. 2008년 말 현재 북한근로자의 한 달 평균 임금은 2500~3000원 선이다. 시장에서 1달러가 북한 돈 3200원 안팎에서 거래되는 점을 감안하면, 1000달러는 북한 근로자 100년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액으로, 함북 청진이나 함흥 같은 곳에선 아파트 두채를 살 수 있는 액수다.
1000달러면 北서 아파트 두채 살 돈
‘탈북자 경제’가 새로운 경제 기둥으로
평양의 고급아파트라 해도 4000~5000달러면 구입할 수 있는데다, 최근엔 돈만 있으면 평양시내에 거주하는 것도 가능해지고 있기 때문에 ‘송금’이 갖는 위력은 엄청나다. 한순간에 상류층으로 도약해 상대적으로 편안한 생활을 누릴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이른바 ‘탈북자 경제’라고 불리는 제3의 경제 시스템이 북한 내부 밑바닥에 깊게 뿌리내리게 된 이유다.
1970년대 북한정권이 안정돼 있을 때엔 북한서 이른바 ‘백두산 줄기’란 말이 유행했었다. “김일성에 붙어 항일운동을 했다”며 얼굴만 들이밀 수 있어도 평생 혁명투사 가족으로 대접받으며 고위직을 맡아 귀족처럼 살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재일동포들의 북한 방문이 러시를 이뤘다. 북한으로 건너간 가족을 만나기 위한 것이었다. 당시 재일동포들은 엔화를 들고 왔다. 이 덕분에 일본에 친척을 둔 사람들은 ‘후지산 줄기’라고 불리며 신흥세력으로 대접받게 됐다. 여기에 김정일 위원장이 북송동포 고영희와 결혼하면서 “재일동포에 대한 차별을 풀어주라”고 지시, 부유한 북송동포들은 권력집단과 어울리게 되면서 새로운 귀족으로 부상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재일동포 1세대 중 상당수가 세상을 떠났고, 그에 따라 대북 송금액이 줄어든 데다, 일본이 대북(對北) 압박 정책을 취하면서 재일동포 가족들의 삶은 나락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일본에서 송금이 끊기면서 일반 북한 주민보다도 더 비참한 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 최근 북한에선 ‘한라산 줄기’란 말이 새롭게 뜨고 있다고 한다. 남한으로부터 송금이 이뤄지면서 월남자나 탈북자를 둔 가족들이 급부상, 백두산 줄기와 후지산 줄기에 이어 신흥 경제세력으로 주목받게 된 것이다.
월남자 가족은 북한에서 가장 비참한 생활을 강요 당해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이젠 상황이 달라졌다. 남쪽의 가족들이 비공개 루트를 통해 북한의 친척들에게 많은 돈을 전달하면서 하루 아침에 벼락부자가 된 ‘친척들’이 늘어나면서 주변의 부러움을 받게 된 것이다.
사실 이런 현상이 최근에 나타난 것은 아니다. 남북 공개 이산가족 상봉이 진행되면서 북한 사회에선 남쪽의 가족을 만나러 가는 것을 부러워하는 모습을 자주 볼 수 있었다. 금보다도 귀한 달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 지난해 1월 조선일보 취재팀이 중국 투먼 두만강변에서 발견한 30대 북한 여성의 시신/조선일보DB
탈북자 가족 보는 시선도 크게 달라져
반역자 취급하다 이젠 부러워하는 분위기
그런데 이젠 탈북자 가족들도 이와 유사한 상황에 놓이게 된 것이다. 탈북자 가족들은 그동안 월남자 가족과 마찬가지로 반역자 취급을 받으며 멸시를 당해 왔다. 하루아침에 현직에서 쫓겨나는 것은 물론이었다. 그런데 탈북자의 송금으로 거액이 생기면서 처지가 달라지게 된 것이다.
한 고위 탈북자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탈북자는 ‘반역자’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부러운 사람으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도망갈 기회가 없어서 못 가는 것이지 탈북은 누구나 꿈꾸는 희망으로 변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는 “특히 함북도 지방엔 탈북자가 너무 많다”며 “가족 중 한 사람이라도 남한으로 가서 성공하는 것이 북한의 가족을 살릴 수 있는 길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고 덧붙였다.
북한 정권은 탈북 러시를 막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국과 마주한 국경지역엔 중앙에서 파견된 검열원들의 감시가 번득인다. 검열의 타깃은 국경지역의 국가안전보위부와 국경경비대. 중앙에서 “탈북자들을 막으라”며 아무리 지시를 내려도 탈북이 근절되기는커녕 갈수록 더 늘어나기만 하기 때문이다.
국경경비대 출신의 한 탈북자는 “경비병들은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며 “이들이 살길은 두만강과 압록강에서 벌어지는 갖가지 일에 개입하면서 생기는 부수입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부수입이 없으면 모두 영실군(영양실조군대의 약자)으로 전락한다”고 했다.
국가안전보위부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중앙의 보위부는 국가로부터 물자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만, 지방에는 식량 공급조차 제대로 이뤄지지 않기 때문에 뇌물을 받아야만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돈 나올 구멍은 국경 너머 중국과 한국밖에 없다”고 탄식한다.
이 같은 현실 때문에 지방의 보위부원들은 문제가 생겨도 보고하지 않고 깔아뭉개는 경우가 다반사다. 아무리 엄중한 사건도 ‘돈이 된다’는 사실만 확인되면 흥정거리로 삼기 위해 뒤로 숨겨놓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봐주고 있는 브로커들이 중앙 보위부의 추적을 당하게 되면 거꾸로 브로커를 감싸주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보위부원들 “돈 나올 구멍은 국경 너머뿐”
브로커 감싸주고 문제 생겨도 ‘쉬쉬’
최근 국경을 넘은 탈북자는 “요즘 북한에서는 돈이 애국자고 돈 없으면 반역자”라는 말이 유행한다고 말했다. “돈만 있으면 가족 중 누군가가 도망쳐도 살아날 수 있지만 돈이 없으면 남한 비디오만 봤어도 처형될 수 있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쯤 되면서 요즘 북한에선 보위부 요원 사이에 “탈북 가족 5가구만 관리하면 먹고사는 데 문제없다”는 말이 돌고 있다. 탈북자 가족을 집중 감시하다 보면 외부에서 전달되는 달러 냄새를 맡을 수 있고, 이것을 문제삼아 처벌하기보다는 지속적으로 돈을 전달받아 공생(共生)하는 것이 훨씬 낫기 때문이다.
탈북자들이 가장 많은 곳은 중국과 접한 국경지역이다. 특히 함북 온성, 무산, 회령과 량강도 혜산시는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장 살기 힘든 ‘추방지역’이었다. 하지만 중국의 개혁개방으로 인해 옛날의 추방지역이 거꾸로 살기 좋은 지역으로 바뀌면서, 함남도 내륙이나 황해도 지방이 오히려 추방지역으로 바뀌고 있다. 국경지역엔 “한 집 건너 한 사람은 남한에 와 있다”고 해도 될 정도로 탈출자가 많아 텅 빈 집들이 마을에 널려있다고 한다.
대남부서 출신의 한 탈북자는 “과거엔 탈북자 가족에 연좌제를 적용해 엄중 처벌하는 것이 탈북을 막는 효과가 있었지만, 이젠 가만 놔두는 것이 오히려 체제유지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웃 중 누군가가 탈북자 가족으로 낙인 찍혀 추방되면 오히려 그 소문이 더 퍼져 나가 사회가 불안해지기 때문”이란 것이다. 여기엔 “가족 중 누군가가 탈북했다는 이유로 다른 가족을 처벌하면 적대 계층을 양산해 사회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게다가 탈북은 출신 성분을 가리지 않고 벌어지는 일이라 자칫하면 핵심계층마저 적대계층으로 돌아설 수 있어 탈북 가족을 처벌하기가 곤혹스러운 것도 사실이다.
때문에 북한 정권 입장에선 더 이상 탈북 행렬이 확대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최선책이다. 하지만 북한 체제의 근본적 구조 변화가 없는 한 탈출 주민은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고 북한 사회의 불안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
탈북자들은 “보다 많은 탈북자를 받아 그들을 통해 자연스럽게 북한 주민을 지원하는 것이 진정한 대북지원이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탈북자들을 통해 북한 밑바닥으로 흘러간 현금이 북한에서 적대계층으로 전락한 비참한 사람들의 목숨을 구해주면서 북한 사회의 문을 여는 강력한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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