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창하게 제목을 붙였지만 몇몇 일화만 소개하겠습니다. 나름 역사라 생각되어 역게로왔습니다.
외할아버지는 12년 전에 돌아가셨지만 당시 기골이 장대하고 (키가 175cm가량쯤)과거 사진을 봐도 매우 잘생긴 얼굴이셨습니다.
1. 해방
외할아버지는 31년생이셨고 안동의 시골마을에서 자랐기 때문에 소식이 굉장히 늦었다고 합니다. 저의 친할아버지와 일제강점기 당시 함께 소학교를 다녔던 친구사이셨죠. 1945년 더운 여름날 중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외할아버지는 농삿일을 도우며 보내고 있었는데 안동 읍내에 다녀오신 마을 어르신께서 해방이 됐다고 전해오셨다고 합니다. 그게 8월 17일~18일 경이었다고 하네요. 워낙 안동에서도 구석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보니 소식이 늦었다고 합니다.
2. 한국전쟁
사실 이 이야기의 메인입니다. 외할아버지는 1950년 20살의 건장한 청년으로 자랐습니다. 그러던 여름 전쟁이 터졌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는 이미 안동을 인민군이 점령했던 시기였습니다. 그때 외할아버지와 친구 두분은 인민군에 입대하기로 결심하고(그 당시는 외할아버지의 회상에 의하면 공산당이고 민주주의고 개념보다는 힘센사람에게 붙어야 살수있다는 생각을 하셨답니다. 순식간에 안동까지 내려올 정도면 이미 전쟁은 끝났다고 생각을 하셨다고 합니다) 인민군에 보내달라고 일주일 내내 밥도 먹지않고 시위를 했다고 합니다. 외증조부께서도 인민군이고 국군이고 간에 막내아들이 군에 간다는 것 자체를 반대하셨다고 합니다. 들리는 소문만 들어고 건너마을 누가 전사했다더라 산넘어 어디 누가 군에갔다가 죽었다 라는 이야기뿐이었으니 ...
하지만 외할아버지의 고집을 꺾지 못하고 결국 하락하셨고 외할아버지는 마을 친구 2분과 함께 인민군에 자원입대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가보니...들리는 말과는 전혀 다르더랍니다. 밥도 제때 나오지도 않고 계속되는 행군에 이대로 계속 가다간 북한으로 끌려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답니다(그 당시가 인천상륙작전 직후 북한군이 패주할 때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상식 밖의 행동을 서슴치않았다고 합니다. 소대에서 가장 어리거나 부상병들을 강제로 나무기둥에 묶고 기관총을 앞에 달아놨다고 합니다. 국군이 쫒아올때 그 묶인 사람들이 총을 쏘며 시간을 버는거죠... 그리고 혹시 도망가거나 투항할 수도 일으니 나무기둥에 묶었다고 합니다 손도 물론 기관총이 묶어놓구요. 그러다 결국 외할아버지와 친구분 한분은 탈출을 해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새벽에 함께 탈영을 하여 한달만에 집으로 돌아왔다고 합니다. 나머지 친구분 한분은 다른 지역으로 가시는 바람에 함께 나오지 못했고 그분은 아직도 연락이되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렇게 우여곡절끝에 집으로 돌아온 외할아버지는 다락방 한켠에 굴을 파고 그 안에서 전쟁이 끝날 때 까지 숨어살았다고 합니다. 전쟁이 너무 무서웠고 또 밖을 돌아다니면 자신을 잡아갈까봐 너무 무서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전쟁이 끝난 뒤 외할아버지는 국군으로 입대를 하여 대구에서 헌병대로 약 5년?7년?정도를 복무하셨다고 했습니다.
3. 강남개발
얼마 전 김래원 주연의 영화 강남 1970이 개봉했었죠. 딱 그 영화의 설정시기와 비슷한 시점인 1960년대 후반이었습니다. 외할아버지는 안동의 고향에서 농사를 지으시며 생활하던 중 서울로 상경한 친구와 만나 술을 한잔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야기를 나누던 중 그 친구분께서 강남지역에 땅을 사서 서울로 가서 농사짓고 살자. 딸들도 이제 교육시키고 서울가는게 나을것 같다. 한강남쪽은 가지고있는 논밭 다팔면 거기도 비슷하게 살수있다고 이야기를 했다고합니다. 그러나 외할아버지께서는 농사꾼이 고향버리고 거기가서 언제 농사짓고 언제정착하냐며 땅을 사지않으셨고 2년 후 쯤 강남이 개발되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친구분께서 말씀하셨던 땅이 지금의 잠실쪽이라고 들었던 것 같습니다.
4. 10남매
외할아버지께서 결혼을 하신 때는 1951년경이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창 딸들이 태어날 때는 바로 베이비붐 세대들이 태어나던 그 시기였습니다. 외할아버지께서는 베이비붐 세대가 형성되는데 매우 큰 공헌(?)을 세우셨습니다. 10남매의 자녀를 낳으셨기 때문입니다. 물론 저에겐 8명의 이모와 한명의 외삼촌 그리고 엄마가 있죠.. 막내이모가 저랑 띠동갑인데...네 여튼 외할아버지께서 살아계실 때 생신에 모이면 45명?정도 모였던 것 같습니다. 다들 외갓집에서 잠을 못자 봉고차 시트를 눕혀 침대처럼 만들어 자는 가족, 아예 텐트를 들고와 마당에 텐트를 치고 자는 가족 등 스펙타클했습니다.......
써보니 꽤 기네요 ㅠㅠ 별 내용은 없는데... 외할아버지와 추억은 많지 않지만 오늘따라 외할아버지가 주시던 누룽지사탕이 생각나는 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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