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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22419
    작성자 : aurelius
    추천 : 10
    조회수 : 1090
    IP : 61.72.***.142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5/08/09 22:27:00
    http://todayhumor.com/?history_22419 모바일
    유럽은 과연 운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

    최근에 매우 재미있는 책이 발간되었습니다.


    미국의 권위있는 싱크탱크, 스트랫포(Stratfor)의 CEO이자 베스트셀러 <100년 후>의 저자, 조지 프리드먼이 또 하나의 도발적인 책을 저술했는데, 유럽의 미래에 대한 책입니다.


    제목은 <Flashpoints>. 


    그는 기본적으로 유럽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헝가리계 유대인의 자녀로 태어난 그는 유럽을 세계대전으로 몰아간 <유령>이 아직 죽지 않고 살아 있는 곳이라고 평하고 있습니다.


    그의 아버지는 1912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에서 태어났고, 중산층으로서의 삶을 살다가, 나치가 대두했을 때 남들처럼 피하지 않고 국내에 머무른 대가로 여러 차례 죽을 위기를 넘겼다고 합니다. 그는 어머니와 누이를 시골로 피신시켰는데, 도시보다 오히려 시골에서 유대인에 대한 수색이 심해서 그들은 결국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보내지고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프리드먼의 아버지는 평생 유럽을 혐오했다고 합니다. 그는 세계대전이 끝나고 소련이 헝가리에 진주하자 바로 미국으로 망명을 떠났고 그후로 단 한 번도 유럽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어린 프리드먼에게 이야기하길 유럽은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지내지만, 그 <괴물>은 감춰저 있는 것뿐이며 절대 죽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나치의 악랄함을 영속시킨 소련을 절대 용서하지 않았고, 6주만에 패배한 프랑스 또한 용서하지 않았으며, 프랑스만 믿고 있었던 폴란드를 용서하지 않았고, 그리고 무엇보다 그의 가족에게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안겨다준 독일을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프리드먼에 따르면 유럽은 <상반된 기억resentful memories>과 <지정학geopolitics>의 장소이며, <유럽연합>은 이 뿌리 깊은 갈등을 잠시 감추어놓은 망토에 불과합니다. 


    지난 500년간 유럽은 세계를 호령했고, 세계의 운명을 좌지우했습니다.

    아메리카, 인도, 동남아시아, 그리고 (간접적으로) 동아시아까지. 

    유럽이 세계였고, 세계가 곧 유럽이었습니다.


    인류의 궁극적인 진보와 문명은 유럽에 있는 것만 같았고, 유럽이야말로 인류의 앞길을 밝히는 등불인 것처럼 생각되었습니다.


    압도적인 힘, 기술, 자본, 학문 등으로 유럽은 세계를 분할했습니다. 





    하지만 유럽이 세계 분할을 완료한 후에 넘처나는 힘을 주체하지 못하고 결국 자기들끼리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왜냐면 <유렵>은 결국 지리적 표현에 불과했고 유럽을 구성하는 것은 서로 치열하게 경쟁하는 <국민국가>였기 때문입니다. 애초에 <국민국가>는 전쟁을 통해 만들어진 산물이며, 국민국가 간의 이해관계는 평화적으로 조정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1914년 이래 31년 동안 서로 죽고 죽였습니다. 가공할 힘으로 닥치는대로 모두 죽였습니다. 그 결과 31년 동안 군인, 민간인을 포함하여 대략 1억 명이 다양한 이유로 죽임당했다고 합니다.


    그 결과 유럽은 지난 500년 이래 처음으로 자기 운명을 스스로 결정할 수 없는 위치로 전락해버렸습니다.


    소련과 미국이 유럽의 운명을 대신 결정하게 된 것이죠. 


    그러한 비자연스러운(?) 상황을 극복하고자 했던 노력의 결과가 바로 <유럽연합>이었습니다.


    지구를 호령했던 유럽열강이 더 이상 세계무대에서 중요하지 않게(irrelevant) 되는 것을 막기 위해 프랑스는 오랜 숙적 독일과 화해를 하고 독일과 함께 유럽을 다시 부활시키고자 했습니다. 아니, 발명해내고자 했습니다. 지리적 표현에 불과헀던 유럽을 정치적 실체로 만들고자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소련과의 일전을 항상 염두에 둘 수밖에 없었던 미국은 유럽의 부활에 반대하지 않고 오히려 반겼습니다. 아울러 <제국Empire>을 상실한 영국의 입장에서도 유럽이라는 새로운 체제에 가담하는 것이 이득이었습니다. 


    그리고 냉전이 종식됨에 따라 <유럽>이라는 정치체는 평화와 번영을 목적으로 하는 새로운 차원의 고차원적인 프로젝트가 되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평화와 번영 자체가 유럽의 존재이유가 된 이상 이 두가지 중 하나라도 지키지 못한다면, 유럽의 정통성(legitimacy)는 심각히 훼손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유럽>은 이 두가지를 지킬 수 있는 실재적 수단을 마련하는 데 그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유럽은 19세기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엄청난 오만에 빠졌다고 합니다. 


    19세기 말 유럽인들이 서구사회가 <이성의 진보>, <문명의 등불>, <백인의 사명>, <기술의 무한함>을 대표한다고 믿었듯이


    20세기 말 유럽인들은 유럽연합이 <영속적인 평화>, <영속적인 번영>, <인류의 신지평>을 대표한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낙관주의에 기반해 유럽은 엄청난 확장을 시도하고, 구공산권 국가들 모두에게도 손을 내밀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진정 자기들이 19세기 유럽과 마찬가지로 <인류의 조직방식의 또 다른 단계> 탄생시켰다고 자부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유럽이 보장한다고 하는 <평화>와 <번영>이 깨지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프리드먼에 따르면 이 두 가지는 2008년에 모두 깨졌다고 합니다.


    2008년, 러시아는 조지아를 침공했고,

    2008년, 미국의 서브프라임위기는 유럽에도 돌이킬 수 없는 위기를 초래했습니다.


    2008년, 유럽은 러시아에 대해서도, 미국발 경제위기에 대해서도 그 어떤 대응도 할 수 없었습니다. 1945년의 유럽처럼, 유럽은 또 다시 <상황>에 압도되었던 것입니다. 


    장미빛 유럽에 대한 믿음이 깨지자 <오래된 유령>들이 다시 나타났습니다. 


    <민족주의>, <국민국가간의 경쟁>, <지정학적 갈등> 등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근본적 원인에는 <지정학적 구조>가 있습니다.


    찰스 킨들버거의 표현을 빌리자면


    독일은 이제 너무 강대해졌지만, 책임을 떠맡기 싫어하고

    프랑스는 열정적으로 리드하고자 하지만,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동안 유럽의 균형은 프랑스-독일 간의 균형과 미국의 적절한 개입, 그리고 소련의 위협으로 인해 유지가 되었지만


    현재의 유럽은 그러한 균형요소가 모두 사라졌습니다.


    독일은 지나치게 강해졌고, 프랑스는 이에 비해 너무 약해졌으며, 미국은 유럽의 정치에 더 이상 관여하고 싶어하지 않고 오히려 중동 및 아시아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물론 소련의 위협은 러시아의 위협으로 대체되었지만, 러시아의 위협은 유럽을 모두 결속시킬만큼 충분히 크지 않습니다. 


    이러한 지정학적 불균형은 다시 오래된 기억을 되살려내고 있고, 그러한 기억들로 인해 <유럽>이라는 프로젝트가 중대한 위기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게다가 3세대 만에 유럽의 지도가 너무 자주 바뀌는 바람에 서로 사람들은 더욱 혼란스러워하고 있고, 여기에 안보와 경제문제 같은 통제할 수 없는 거대한 변수들까지 겹쳐, 사람들은 안정을 다시 <민족>에서 찾고자 하고 있습니다.


    1차대전 전의 유럽


    2차대전 이후의 유럽


    냉전 이후 현재의 유럽



    불과 3세대만에 너무 많은 나라들이 사라지고, 또 새로 탄생하고, 또 국경이 새로 그려졌습니다.


    그러한 역사의 소용돌이와 이로부터 파생되는 온갖 갈등은 <유럽>이라는 꿈으로 일시적으로 봉합된 상태였지만, 그 꿈이 깨지고 나니까 역사의 소용돌이가 다시 그 위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합니다. 



    프리드먼이 주장하는 유럽의 불안요소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너무 강한 독일 (강하지만 공공재를 제공하는 것에는 인색한...)


    2. 너무 약한 프랑스 (유럽의 꿈을 부활시키고자 하지만, 그러기엔 국력의 한계가 너무 딸리는)


    3. 부상하는 푸틴 치하의 러시아 (소련의 부활을 이룩하고자 아주 냉철한 지정학적 전략을 짜고 있는 푸틴)


    4. 러시아와 유럽 사이에서 갈등하는 동유럽(프리드먼은 유럽이 동유럽을 보호할 수 없다는 게 분명해지면, 이들은 러시아와 불편한 타협을 할 수밖에 없다고 보고 있습니다)


    5. 유럽에서 부상하는 민족주의(프랑스의 국민전선, 독일의 PEGIDA, 그리스의 시리자 등 유럽차원의 연대에 대한 희망을 부정하고 독자적인 길을 주장하고 있는 세력의 부상...)


    6. 영국의 detachment (지극히 현실주의적인 전통을 갖고 있는 영국은 유럽 프로젝트에 현실주의적 이득을 극대화시키고자 가담했지만, 그러한 전망이 흐려지자 바로 my way를 추구하려고 하는 상황. 하지만 영국의 my way는 그리스 같은 나라의 my way와는 그 충격의 급이 다름)


    7. 유럽 내 이슬람계의 문제 (유럽각국에 이슬람계는 적지 않은 숫자로 엄청난 규모의 사회를 구성하고 있으며, 최근 유럽의 정치/경제 문제로 신음하는 유럽의 일반인들은 언제든지 분노의 화살을 이들에게 돌릴 수 있음... 그리고 이는 다시 이슬람계의 반격을 초래할 수 있고, 이는 민족/종교적인 광란을 불러올 수 있음)


    제2차 세계대전의 광란을 피부로 알고 있는 프리드먼은 현재 유럽의 상황을 제2차 세계대전 전야의 유럽처럼 아주 취약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그는 또 다시 유럽 한복판에서 대규모 전쟁이나 인종청소가 벌어질 것이라고 예단하고 있지 않지만, 그 징후들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프리드먼이 한 말 중에 인상적인 게 있어 이를 인용해봅니다.


    "미국인으로서 사는 세계에서는 만사가 <결정decision>에 따라 좌지우되었다. 유럽인으로서 사는 세계는 결정이 무의미했고 역사의 파도가 모든 것을 압도했다. 미국인으로서 나는 운명에 맞서는 법을 배웠다. 유럽인으로서 나는 운명을 피하는 법을 배웠다"


    유럽은 과연 역사와 운명을 극복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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