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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의 정치 의식은 타자에 대한 부정에서 생겨난다. 예를들어 친노의 정치 의식은 보수 우익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것이란 것이다. 그 역, 즉 친노에 대한 보수 우익의 경우도 명백한 사실이다. 우리는 이 두 정치 세력 사이에서 환원 불가능한 입장차가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친노와 보수 우익 뿐만 아니라, 좌파와 친노, 좌파와 보수 우익 사이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 어설픈 관용이나 차이론자들이 말하는 정치 세력간의 정치적 대립은, 그저 그렇게 차이와 다름이 있을 뿐... 이런식의 문제는 아닌 것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정치 의식이라는 것은 선 이분법적이며, 그 자체가 타자에 대한 부정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러므로 관용을 베풀자거나 똘레랑스를 발휘하자는 것은 사태를 나이브한 손쉬운 윤리틀로 환원하는 것이다. 한계가 있을 수 밖에 없다.
관용? 친노의 의식 속에 보수 우익에 대한 존재적 '부정'을 함축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관용? 이때의 관용은 우익에 대한 부정성을 정치 의식으로 삼은 상태에서, 단지 너는 너 나는 나라는 식의 선긋기, 즉 대화 불가능, 양립 불가능의 정치 본질을 관용이라는 휘장으로 가린 것 밖에 되지 않는다.
허나 몇몇 얼치기들은 정치가 가진 본질적 틈새를 소통이란 단어를 메꾸려고한다. 이런 발언을 하는 부류들은 그 (정치적)틈새가 벌어지길 기다리다, 그 극단적 사례에 들러붙어 비난하길 좋아하는, 나태하고 살찐 거미 색키들이다. 정치가 애초부터 환원 불가능한 것임을 인정한다면, 문제는 관용이 없는 정치 세력간의 태도가 아니라, 정치 그 자체가 되지 않겠는가? 그걸 알면서 번번히 거미줄을 치고 먹이를 기다리는 나태한 거미 색키들이 너무 많다. 이런 부류들이 문제는 근본적으로 자신의 입장이 모순이라는 사실 그 자체에 있다. 어떻게해도 그 정치 대립이 가지고 있는 타자에 대한 부정은 변하지 않는다. 그걸 비판하려면 처방부터 제대로해야 하지 않을까? 정말 그게 문제라고 생각한다면?
관용이나 똘레랑스는 해결책이 되지 못한다. 소통이란 논리도 마찮가지다.
그렇다면 해법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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