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임병 웃겨라’ 지침에 “분대장이 개그맨입니까?”
국방부 홈페이지에 사단장 앞으로 글 올려
국방부 "강한 훈련, 편한 내무생활 강조했을 뿐"
미디어다음 / 이성문 기자
최근 군대내 각종 가혹행위로 인한 사고가 잇따른 가운데 모 부대에서 선임병들에게 ‘하루에 열 번씩 후임병들을 웃겨라’, ‘후임병이 잘못을 해도 상관하지 말라’는 등의 지침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군 기강 해이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이는 해당 부대 한 병사가 국방부 홈페이지 게시판(http://www.mnd.go.kr)에 올린 ‘친애하는 O사단장님께’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알려지게 됐다.
‘군인’이라는 필명으로 게시판에 글을 쓴 이 병사는 최근 하달된 군내 가혹행위 대비 지침에 대해 선임병으로서의 고충을 토로하면서 일선 병사들의 기강이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표했다.
특히 이 병사는, 연대장이 대대에 자살징후자를 관찰하기 위해 방문한 자리에서 ‘저 아이한테는 가르치려 하지 말고 어떻게 해도 상관하지 마라. 군대가 바뀌어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전역해야 한다’라고 말했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후임병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방관하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 우리 군의 기강 자체를 해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다치지 않으려고 서로 힘든 일 안하려고 하면 전시에 누가 전쟁을 하려고 총 들고 나가겠냐”며 “서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가려고 다툼이 일어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소한 군대에 왔으면 힘든 일도 해보고 때론 꾸중도 들으면서 참 군인으로 변모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이 병사는 또 최근 ‘분대장들에게 분대원들을 하루에 10번씩 웃기라’고 내린 사단 지침에 대해 “분대장이 무슨 개그맨이냐? 우리들이 병영체험하러 군입대 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그는 나아가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전시에 승리를 보장받을 수 없다”는 말까지 서슴지 않았다.
한편 이 글에는 각종 사고를 근절하기 위해 일부 부대에서 도입하고 있는 ‘분대 건제단위 유지’(병사 혼자 이동하는 것을 금지하고 10명 안팎의 분대 단위로만 활동하게 하는 제도)가 체육활동, PX이용, 전화 통화 등 기본적인 개인 활동에도 지장을 줘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었다.
이 병사는 “군생활이 2년으로 단축된 지금 열심히 군생활을 해도 부족한데 갈수록 해이해진 우리 군을 보면서 제 소견을 말씀드린 것”이라며 “사단장님의 답변을 듣고 싶다”고 끝맺었다.
이에 대해 국방부 측은 "해당 부대에 확인한 결과 '훈련은 강하게, 내무생활은 내 집처럼 편하게 하자'는 사단 지침을 글쓴이가 잘못 이해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아래는 이 병사가 올린 글 전문이다.
-------------------- 아 래 -------------------------------
친애하는 O사단장님께
“단결”
사단장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모 대대에서 근무하고 있는 병사입니다.
다름이 아니오라 군생활을 하고 있는 일원으로서 사단장님을 비롯한 여러 윗분들의 생각과 저희 병사들의 생각이 다른 것 같아 결례를 무릅쓰고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우선 요즘 강조되고 있는 분대건제유지에 대해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자살과 탈영이 늘어나고 있는 현 시점에서 분대원들끼리 같이 모여서 자살과 탈영을 줄여 보자는 취지는 좋은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다수의 병사들이 생활을 하는데 피해를 입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체육활동을 할 때 당직사관들은 분대원들끼리 같은 운동을 하라고 시킵니다. 저는 축구를 좋아해서 하고 싶은데 분대원 대부분이 농구를 좋아해 하고 싶은 축구를 못하고 있습니다. 비단 저 뿐만이 아니라 다수에 밀려 원하는 운동을 못하는 병사들이 많으리라 여겨집니다. 항상 같이 움직여야 하는 관계로 기본적인 개인 인권이라 할 수 있는 전화 통화나 PX 이용시에도 단체로 움직여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을 하고 있는 타분과 분대원들에게 선임병으로서의 진심어린 충고나 조언도 해 줄 수 없는 현실이 정말 답답합니다. 저희 분과는 분대장을 제외하고 10명입니다. 어떻게 1명의 분대장이 10명의 분대원들을 하나 하나 챙길 수 있겠습니까? 후임병들이 잘못된 길을 걸어가고 있는데 그것을 방관하고만 있어야 하는 현실이 우리 군의 기강 자체를 해이해지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일전에 연대장이 저희 대대에 자살징후자를 관찰하러 와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저 아이한테는 가르치려하지 말고 어떻게 해도 상관하지 마라... 군대가 바뀌어서 못하면 못하는 대로 전역해야 한다.” 어떻게 들으면 맞는 이야기인 것 같지만 그 당시 제 머리 속을 지나간 생각은 ‘그러면 군생활 노력해서 열심히 할 필요가 없네...’ 였습니다.
처음부터 잘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희도 처음엔 더듬거리고 못했지만 노력해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다치지 않으려고 서로 힘든 일 안 하려고 하면 전시에 누가 전쟁을 하려고 총 들고 나아가겠습니까? 서로 자신의 안위를 위해 도망가려고 다툼이 일어날 것입니다. 각자 편해지려면 한도 끝도 없다는 것은 모두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그러면 그것이 군대입니까? 최소한 군대에 왔으면 힘든 일도 해보고 때론 꾸중도 들으면서 참 군인으로 변모하는 것이 군대 아닙니까?
제가 앞에서 말씀 드린 병사는 그 이후로 지도할 목적으로 선임병들이 한 마디 해주면 돌아서서 욕설을 해댑니다. 최근에 사단장님께서 분대장 교육 때 이런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내무실 신발 줄도 맞출 필요 없다... 내무실 내부가 어지럽혀져 있어도 상관이 없으니까” 정말 사단장님의 지도방향이 그러시다면 휘하 간부들에게도 그 뜻을 전달해 주십시오. 간부들은 내무실 정리가 되어있지 않으면 엄청 꾸중을 합니다.
또 분대장들에게 분대원들 하루에 10번씩 웃기라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분대장이 무슨 개그맨 입니까? 그리고 저희들이 병영체험하러 군입대 한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언제 전쟁이 터질지도 모르는 우리나라에서 군 생활하고 있는 저희들 입니다. 이런 식으로 가다간 전시에 승리를 보장할 수 없다고 봅니다.
일전에 사단장님께서 말씀하신 대로면 저도 남은 군생활 누구에게도 구애받지 않고 편하게 보낼 수 있습니다. 보상심리로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군생활이 2년으로 단축된 지금 열심히 군생활을 해도 부족한데 갈수록 해이해진 저희 군을 보면서 다만 제 소견을 말씀드린 것이고 사단장님의 답변을 듣고 싶을 뿐입니다. 그럼 이만 줄이겠습니다.
“단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