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형태의 취업필살 카운슬링
-세상은 학벌과 외모와 인맥이다!
이십대 태반이 백수라는 수식이 붙은 이 암울하고 절망적인 시대에, 속수무책으로 웅크린 청년들이여. 정녕 그대들을 절망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그대들의 꿈과 삶을 가로막는 벽은 과연 무엇인가. 거리에 늘어나는 수입자동차들과 소주 대신 와인을 마시는 어른들과 해외 어학연수를 떠나는 코흘리개들을 보라. 대한민국은 불경기가 아니라 아주 잘 살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민들 중에 단 한 부류, 20대에게만 불경기가 있고, 경기침체가 여전하고, 취업대란이 계속되고 있으며, 삶의 질은 공황 상태이다. 왜? 20대가 뭘 잘못했다고 저렇게나 풍요로운 세상에 이렇게나 혹독한 시련을 주는가. 이유는 단순하다. 그대들이 못난 탓이다.
지금은 자본주의가 지구를 완전히 장악했다.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속에서는 국가를 막론하고, 세대를 막론하고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인간’들은 살기가 참 고달픈 시대이다. 그런 지구 위에 인간이 자그마치 60억이 넘게 살고 있다. 우리는 좁은 지구위에 끄트머리 반도땅, 그나마도 반토막을 할당받은 국토에 5000만명에 육박하는 사람들이 살고 있다. 60억 인구중에, 5000만명 가운데, 그대는 무슨 남다른 가치가 있는가? 오늘도 입사원서에 첨부하는 그대의 이력서에는 그 남다른 가치가 기록되어 있는가? 이 세상의 어느 기업이 자기 돈을 내주면서 그대를 채용해야만 하는 이유를 한가지라도 납득할 수 있게 설명할 수 있는가? 매번 취업의 문턱에서 탈락 당한 그대. 그대는 면접관에게 그대가 60억 인구중에 그래도 이 세상을 위해서 살아있을 이유가 있는 인간이라는 것을 설명 해본 적이 있는가? “그저 월급만 주면 시키는 일은 무엇이든 하겠습니다요.”라고 큰소리로 말하고서는 스스로 당찬 젊은이답게 면접을 잘 치뤘다고 믿고 있었던 것 아닌가?
10명의 새 일꾼을 모집하는 회사는 말 그대로 ‘열 사람’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결코 하나같은 열명이 아니다. 하지만 일자리를 달라고, 기회만 주면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일하겠다고 다짐하며 몰려드는 100명이 하나같이 다 똑같다. “제가 할 일은 아직 모르고, 할 줄 아는 것도 아직 잘 모르고, 하고 싶은 것도 특별히 없지만 월급만 주십쇼. 시키는 일은 무조건 하겠습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이런유의 인간도 한 명 쯤은 필요하긴 하다. 10명중에 하나. 그렇다. 그런 인간은 한 명이면 족하고, 나머지 9명은 제 각각 능력, 개성, 가능성, 인성, 장점, 단점 등등 모든 것이 다르면서 유능한 인간들이 필요하다.
취업을 꿈꾸고 사회로의 진출을 갈망하는 그대여, 그대는 무엇이 다른가? 기성세대와 무엇이 다르고, 같이 경쟁하는 또래들과 무엇이 다르고, 함께 학교를 다닌 동문들과 무엇이 다른가. 조금이라도 다른점이 있다면, 그 다른 점이 널리 세상을 이롭게 하는 유익한 것이라면 지구위에 생존하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세상에 필요한 인간은 세상이 보호하기 때문이다.
한때 집중적으로 20대의 진로상담을 받아 본 결과, 대체적으로 취업에 있어서 20대들이 가장 큰 벽으로 여기는 것이 세가지- 학벌, 외모, 그리고 인맥이다. 이것은 사회적 편견이기 때문이 너무도 부당하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그 벽을 넘을 수 없어서 절망한다고 말하는 것을 나는 수없이 많이 보고 들어왔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세상은 정말로 학벌과, 외모와 인맥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 세가지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겠다면 그대는 이 사회에 진입하기를 포기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학벌과, 외모와 인맥으로 사람을 판단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보편적 잣대로 만연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이 진리이기 때문이기보다 그보다 더 쉬운 판단 기준이 없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불평만 늘어놓고 절망만 할게 아니라 이 세가지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해야한다.
첫째로 학벌 문제. 학벌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지 말아 달라고 공익광고까지 하고 있는 현실이지만, 입사원서를 넣으면 대부분 일류대학 아니면 폐기처분이다. 일류대학 졸업장이면 정말 인간의 능력을 보장하는 것인가? 세상은 정말 그렇게 믿고 있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일류대라서 신뢰가 가는게 아니라, 서류전형에서 우열을 가릴 수 있는 것이 고작 최종학력 한가지 뿐이기 때문이다. 이력서에 초등학교부터 대학 졸업까지 학교 다닌 경력만 잔뜩 나열한 모두 똑같은 이력서를 보고 대체 무슨 초능력으로 학력이 아닌 다른 능력을 찾아 내라는 것인가. 일차적으로 학벌을 보고 사람을 판단할 수밖에 없는 현실은 국가적으로도 참 암울 한 것이다. 그러나 그런 현실은 기성사회가 만든 것이 아니라, 그대들이 만든 것이다. 이력서로는 학력말고는 아무런 차이도 발견 할 수 없는 인간들. 자기소개서마저 대행업자에게 의뢰하는 현실. 그것이 지금 취업원서의 현실 아니던가. 학벌의 차별을 넘어서 자신의 능력을 인정받고 싶다면 남다른 이력서를 작성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라. 그래서 최종학력은 비록 일류대가 아닐지언정, 그것을 상쇄할 수 있는 다른 메리트를 이력서에 작성해야만 한다. ‘남다른 이력서’에 대한 아이디어는 각자가 고민하고 해결할 문제이다.
두 번째 외모 문제. 어렵게 서류전형을 통과하면 면접이 기다리고 있다. 면접 시험은 왜 하는가. 얼굴 보려고 하는 것이다. 깊은 대화로 숨겨진 가능성을 일일이 체크하는 것도 아니다. 불과 몇 분 만에 얼굴 생긴거 보고 사람 됨됨이를 결정해버린다. 서류전형보다 더 냉정한 것이 면접이다. 외모로 인간을 판단한다니 얼마나 비정한가. 이 대목에서 수많은 ‘못난이’들이 억울함과 부당함을 호소한다. “못 생긴게 죄인가요. 잘 생기면 다 인가요.” 잘생기면 다는 아니지만 못 생긴건 죄다. 우리가 표현하기를 ‘잘 생겼다’라고 말할 때는 ‘~을 잘하게 생겼다’라는 말이 생략된 것이다. 반대로 ‘못 생겼다’라는 말은 ‘~못하게 생겼다, 못되게 생겼다’라는 뜻이다. 즉, 무능하고 도움될거 없게 생겼다는 뜻이다. 그러니 당연히 못생긴 사람은 취업이 안된다. 나이 40이 넘어가면 반 점쟁이, 관상쟁이가 된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도 인상만 척 봐도 대략 그 사람의 성격이나, 됨됨이를 가늠할 수 있다. 세상은 독심술이 아닌 이상, 분명 사람을 외모로 판단한다. 그대들이 생각하는 외모와, 기업에서 판단 기준으로 삼는 외모는 다르다. 스스로 생각하기를 외모 때문에 취업이 안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스스로 거울을 보라. 자신의 얼굴은 무엇을 잘하게 생겼는가. 교양을 쌓고, 신념이 분명하고 매순간 노력하는 사람은 분명 잘 생겨진다. 유능해 보인다는 뜻이다. 모든 기업에서는 해마다 ‘잘 생긴 젊은이’들을 자기 회사로 영입하려고 혈안이 되어있다. 기업에서 원하는 잘생긴 사람이란, 섹시하고 관능적으로 잘생긴 사람이 아니다. 기업은 연애하려고 신입사원을 뽑는 게 아니다. 그러니 외모 때문에 기회를 박탈당했다는 불평은 집어치워라.
셋 째 인맥 문제. 이렇게 말하면 정말 분통이 터지겠지만, 세상은 온통 인맥으로 통하고 인맥으로 똘똘 뭉쳐있다. 내가 회사 사장이라도, 난생처음 보는 일류대 졸업자와 삼류대 졸업자지만 내가 믿는 사람이 추천한 사람중에 고르라면 아는 사람쪽을 택할 것이다. 인맥없고 빽 없으면 남들 몇배로 노력하고 또 노력해야한다. 그럼 인맥은 어떻게 만드나. 학벌 문제는 다른 특기와 능력으로 커버하고 외모는 교양과 성격 개조로 극복하면 된다고 해도 인맥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특별한 방법은 없다. 그냥, 스스로 훌륭한 젊은이가 되면 그게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게 되어있다. 어느세월에? 미국에서 한사람이 재미있는 실험을 했다. 동부에서 서부 끝에 전혀 알지 못하는 어떤 사람과 연락을 하려는데 과연 몇 명을 거치면 그 사람과 인맥이 닿을까 실험을 했는데, 평균 6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최근에 같은 실험으로 한국에서는 3.5명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대한민국 안에서 3.5명만 거치면 다 아는 사람이라는 얘기다. 만약 그대가 좋은 성품과 유능한 능력을 가졌지만 그것을 이력서에 기재도 못하고 첫인상에서 드러나지도 않는다고 걱정하지마시라. 가까운 친구, 친지들에게부터 칭찬을 듣도록 하라. 입소문이 한다리, 두다리, 세다리 거치게만 잘해라. 그러면 대기업 회장님부터 대통령에게까지 전해진다. ‘멋진 젊은이 결핍증’에 시름시름 앓고 있는 우리 사회는 매일 매일 도처에서 멋진 젊은이를 수소문 중이다.
학벌과, 외모와, 인맥이라는 사회적 잣대 때문에 부당하다고, 억울하다고 불만만 토로하는 사람은 자신의 게으름과 무능함을 사회탓으로 돌리는 비겁자이다. 세상은 무능한 사람을 변호해 줄 겨를이 없다. 비겁자는 더더욱 신경써 줄 여력이 없다. 세상의 문앞에서 방황하는 그대, 학벌과 외모와 인맥이라는 지극히 현실적인 기준을 정면으로 대면하고 오늘부터 변화하라.
2006.1. 월간 커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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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김형태의 생각도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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