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갱이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유아 이문열
예전에 미국에 체류 중인 이문열(60)이 386 운동권과 참여정부의 실정을 맹렬히 비판하는 소설을 발표했다. 소설 제목은 '호모 엑세쿠탄스'다. 독재시절에는 단 한마디도 못하고 있다가 원님 가고 나발을 불고 있다. 조중동이 자신의 책을 대대적으로 소개해주는 대신에 참여정부를 까는 아량을 베풀 줄 아는 아주 똑똑한 사람이다.
이 소설이 그의 마지막 글이 되었으면 했는데 책이 팔리지 않았는지 무협지같이 10권짜리 '초한지'라는 것을 또 냈다. 이 무협지를 내면서 한 기자회견에 촛불 집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본질은 위대하고 한편으로는 끔찍한 디지털 포퓰리즘이다. 되기 어려운 일을 되게 한 점에서는 위대하고, 또 정말 중요한 다른 문제에서도 이런 게 통하게 된다면 끔찍하다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 스스로 성이 차지 않았는지, 아니면 모처로부터 더 강하게 부르짖으라는 주문을 받았는지 모르지만 또 이런 말을 했다. '촛불 장난'에 비유하며 너무 오래하는 것 같다고 하면서 "촛불 집회에 맞서 사회적 반작용인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는 망언을 했다.
이어서 "예전부터 의병은 국가가 외적의 침입에 직면했을 때뿐만 아니라 내란에 처해 있을 때도 일어나는 것"이라며 "이제 촛불집회에 대한 사회적 반작용인 의병운동이 일어나야 할 때"라고 주장했다. 또 '이른바 조중동 신문에 대한 광고 탄압 논란은 네티즌들의 범죄행위이고 집단 난동'이라고 주장했다.
이문열은 파문이 확산된 이후 YTN 기자와 가진 전화 통화에서 "자신이 말한 부분은 쇠고기 문제만을 외치던 순수 촛불 집회가 아닌 '정권 퇴진' '5대 의제 반대' 등 정치 집회로 변질된 이후의 촛불집회를 촛불 장난에 비유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씨는 또 "국민 소환제가 없는 우리나라에서 정권 퇴진과 정부 정책에 대한 일괄 반대는 대의 민주주의를 거스르는 헌법 파괴 행위"라고 비판했다.
위에 대한 반박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고 판단하여 그만두고…
이문열의 소설이 감칠맛이 나는 이유는 독재에 투쟁하지 못한 방관자들의 심정을 어루만져주고 한편으론 언어의 장난으로 먹물들에게 지적인 유희를 즐기게 해준다는 것이다.
한때는 국민소설가라는 평도 받은 바 있는 이문열의 의식 속에는 진짜 빨갱이 자식의 두려움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의와 불의와는 관계없이 세상의 절대 권력자에 의지하는 한 없이 나약함과 번득이는 기회주의가 있다.
그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에서 잘 나타나있는데 소설의 중반까지는 심리적 묘사가 돋보이다가 마지막에 가서 뜬금없이 나타난 담임선생님이라는 존재가 모든 것을 평정해버린다. 이런 것을 글이라고 할 수도 없다. 그가 등장시킨 담임선생님은 총칼로 반란을 일으키고 깡패 몇 명을 잡아들인 박정희다. 빨갱이 자식으로 한없이 두려움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이문열의 소설은 유신독재시절에는 자신을 허무주의로 위장하고, 80년대 정치참여를 거부하거나 회피한 청년층과 중산층을 주 대상으로 얄팍한 교양을 고취시키고 한편으론 기독교를 폄하해서 상처받은 신자들까지 독자층으로 끌어모았다.
이문열의 소설이 좋지 못한 이유는 시대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사는 현대인의 상처에 소금을 뿌림과 동시에 강력한 진통제를 놔준다는 사실이다. 음식점의 음식이 맛있는 이유는 소금 한 큰술과 백설탕 한 큰술을 함께 넣기 때문이다. 그래서 입안에 쩍쩍 달라붙는다. 그의 소설처럼…
조중동의 패악질은 거짓보도만이 아니다. 이런 자를 등용시키는 길목에 침 흘리는 개처럼 서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문학이 죽은 가장 큰 이유는 친일을 비판하지 못하게 철저히 틀어막고 글에서 영웅주의와 엘리트주의를 조장하기 때문이다. 여기에 겨우 더 한다는 것이 유치한 리얼리즘이다. 그 대표가 이문열이다.
이문열의 의식을 좀 더 파 해치려면 그의 가계도를 살펴야 한다.
어린 시절 부모의 죽음은 큰 상실감을 가져온다. 그러나 그뿐이다. 살아가면서 아무런 이유 없이 죽는 사람을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혼은 다르다. 이혼한 가정의 아이들은 삶 내내 배신감으로 몸을 떨게 된다. 그러나 죽음도 이혼도 아니면서 이데올로기를 따라서 가족과 자신을 버리고 북으로 간 아버지에 대한 이문열의 내면을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이 글을 쓰면서 가장 고민하고 시간이 오래 걸린 부분이다.
한반도의 비극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이문열은 이제 나이도 귀에 거슬림이 없다는 '이순'이 되었기에 자신의 문제를 넘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자신을 빨갱이의 자식이라고 연좌제를 들먹여 어느 날 잡아 가두거나 손가락질하는 사람은 없다. 그런 세상이 다시 와서도 안 된다. 거기에 누가 나서야 하는가! 바로 당신이다. 그런데 아직도 누굴 위해서 미친개처럼 짖고 있는가!
대선 때 장인이 좌익이라고 공격을 받았을 때 '그럼 날더러 아내를 버리라는 말이냐! 그렇다면, 나는 대통령 선거를 포기하겠다.'라는 노무현 후보의 당당한 말을 듣지 못했는가!
본인이 성장하여 역사를 알고 시대를 읽어 낼 줄 알아도 그저 머릿속의 이성적인 판단이지, 어릴 적 아버지로부터 받은 충격적인 감정에서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만큼 아버지라는 존재는 너무도 큰 산이다. 이문열은 아직도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한 어른 아이일 뿐이다. 그래서 더 이상 비판하지 못하겠다.
다만, 윗글에서 '작품'이니, '작가'니 하는 단어는 절대 쓰지 않았다. 이문열은 작가도 아니고 그가 쓴 글은 작품도 아니라는 뜻이다. 혹시라도 그를 작가로 아는 사람들이 있을까봐 노파심에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