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정치권 ‘소득세 인상’ 필요성은 인정
중간 계층 면세자 비율 급증 해결 과제
정치권에서 내년 세금 제도 결정을 앞두고 ‘소득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소득세는 개인이 번 돈에 부과되는 ‘세금’이다. 직장인들은 매달 월급에서 세금을 원천 징수하고 남은 돈을 받는데, 이 때 원천 징수 되는 세금 중 하나가 소득세다.
소득세를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의 근거는 두 가지다. 올해와 내년 세수 증대가 예상되지만, 장기적인 적자 재정을 메꾸기 위해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중이 OECD(경제개발협력기구) 평균 보다 낮은 소득세는 인상할 수 있다는 논리다. 두 번째는 2명 중 1명은 세금을 내지 않는 ‘이상한 과세 구조’를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소득세 인상에 거론되는 대상은 연 소득 3억원 이상의 고소득자와 연 소득이 3000만원~5000만원 정도 되는 중간 계층이다. 세율을 올리거나 세금을 내지 않았던 면세(免稅) 비율을 조정하는 방법을 통해서다. 하지만 소득세 인상은 전체 근로자를 상대로 하는 증세(增稅)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만만치 않다. 지난 2015년 연말 정산 때 ‘세금 폭탄’ 논란이 일며 여론이 들끓었던 것도 소득세 인상 때문이었다. 정치권과 민간 전문가들은 소득세 개편의 필요성에 공감대를 나타내고 있으면서도 쉽사리 방향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사진=조선일보DB ◆ 인상 여력 충분, 면세자 비율도 50%
소득세 인상 주장에는 현재 증세가 필요하다는 인식이 포함돼 있다. 올해와 내년은 과거와 달리 세수 여건이 좋은 편이다.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1~8월 국세수입은 전년 같은 시기에 비해 20조8000억원이나 더 걷혔다. 올해 8월 이후도 세수가 많이 걷혀 정치권에서는 내년 예산안에서 추가경정예산 편성 분을 빼고도 초과 증액할 수 있는 규모가 3조~7조원까지 이를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올해와 내년 세수 증대는 일시적인 현상이라고 보고 있다. 자산시장 효과와 국세청의 ‘쥐어짜기 세무조사’ 등을 통해 올해와 내년 세수 증대가 발생할 예정이지만, 장기적으로는 과거 세수 부족을 막기 위해 연 평균 30조원씩 적자 재정을 낸 것을 세수로 메꿔나가며 균형 재정을 이루기 어렵다는 판단이다. 고령화 사회로 늘어날 수 밖에 없는 복지 지출 증가도 증세의 필요성을 가져오고 있다.
현재 시점에서 증세를 추진할 수 있는 항목은 법인세, 소득세, 부가가치세다. 정치인들과 전문가들은 그 중 인상 여력이 있다고 판단되는 소득세를 주목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은 3.7%(2013년 기준)로 OECD 평균 8.5%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소득세를 좀 더 걷을만한 여력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소득세 인상이 주목 받는 것은 높은 면세자 비율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2명 중 1명은 소득세를 안내고 있다. 내 옆에 있는 친구 중 한 명은 세금을 안내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국민이 세금을 내야 한다는 ‘국민개세주의(國民皆稅主義)’와 조세 형평성에 맞지 않는 현상이다. 외국과 비교해서도 우리나라의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굉장히 높다. 일본의 근로소득 총 신고자 대비 면세자 비율은 지난 2013년 기준 16.1%이며, 미국도 지난 2013년 기준 35.8%다.
그렇다면 왜 우리나라는 2명 중 1명은 소득세를 안낼까. 실제 번 소득에서 일정 금액을 세금에서 제외해주는 공제 규모가 다른 나라 보다 큰 것이 원인이다. 공제 규모가 크다보니 공제 제도를 어떻게 바꾸느냐에 따라 면세자 비율이 크게 영향을 받는 것이다.
소득세 계산 구조/출처=국세청 소득세 면세자 비율은 지난 2005년 48.9%에서 지난 2010년 39.2%, 지난 2013년 32.4%까지 점차 감소하다가 지난 2014년 48.1%로 훌쩍 증가했다. 면세자가 지난 2014년 갑자기 증가한 이유는 공제 제도가 급격히 변경됐기 때문이다.
지난 2013년 정부는 자녀 관련 소득공제 및 특별소득 공제를 세액공제로 전환하고, 근로소득공제를 축소했다. 소득세의 세금 결정은 6단계를 거친다. 내가 번 소득에서 1차로 소득 공제를 받아 일정 금액을 제외한다. 그렇게 나온 금액을 과세 표준으로 정한 후 6~38% 세율을 적용 받는다. 이후 세액공제로 개인의 환경에 따라 일정 부분 금액이 또 제외된다. 여기에 가산세와 기납부세액이 반영되면 최종 내가 내야 할 세금이 결정되는 것이다.
지난 2013년 정부의 정책은 일정 공제 항목이 소득공제에서 나중에 빼주는 세액공제로 전환되고, 일부 공제 항목이 줄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쉽게 말해 공제 항목이 변경되면서 일부 계층에는 세금 부담이 늘어난 것이다. 그러자 갑자기 연말정산 파동이 일어났다. 지난 2015년 1월 2014년 소득에 대해 연말 정산을 계산 하던 직장인들이 갑자기 ‘세금 폭탄’을 받았다며 아우성을 했다.
거센 여론의 항의에 놀란 정부와 정치권은 곧바로 다시 공제 항목을 조정했다. 화난 납세자들을 달래기 위해 공제액을 늘려주기 시작했다. 연 소득 55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나 종합소득금액이 4000만원 이하인 사람에 대한 세액공제율을 기존 12%에서 15%로 상향 조정하고, 연 소득 4300만원 이하의 납세자의 공제한도를 최대 8만원 인상하며 연 소득 5500만~7000만원 사이의 납세자의 공제한도도 최대 3만원 인상했다. 근로소득 세액공제 적용시 55%의 공제율이 적용되는 구간도 산출세액 기준 50만원 이하에서 130만원 이하로 늘렸으며, 자녀세액공제도 확대한 후 출산·입양세액 공제도 신설했다.
그 결과는 국민 절반의 면세자 탄생으로 이어졌다. 여론에 놀란 정부와 정치권이 공제액을 급격하게 조정하면서 현재의 48.1%의 면세자 비율이 발생한 것이다. 근로자들이 공제를 너무 많이 받아 세금을 안내기 시작해다고 보면 된다.
더 큰 문제는 세금을 낼 여력이 있는 중간 계층 이상의 소득자도 ‘면세’ 혜택을 받게 됐다는 점이다. 국회예산정책처의 올해 9월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2014년의 전년 대비 면세자 비율은 연간 소득 8000만원 이하 모든 소득 구간에서 늘어났다.
소득이 적은 연간 소득 1000만원 이하 구간의 면세자 비율은 지난 2013년 92.4%에서 지난 2014년 100%로 관련 구간 모든 근로자들이 면세자가 됐다. 연 소득 1000만~1500만원 구간은 면세자 비율이 48.3% 증가했으며, 2000만~3000만원 구간은 22%, 3000만~4000만원 구간은 26.6%, 4000만~4500만원 구간은 18.7%, 4500만~5000만원 구간은 12.7%, 5000만~6000만원 구간은 5.6%, 6000만~8000만원 구간은 1.1%, 8000만원 초과는 0.1% 늘어났다.
표=국회예산정책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