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의사 박준철 - "아프고 어려운 사람 돕는 게
의사의 보람이고 자부심" 10여년간 꾸준한 봉사활동
45세에 덮친 심근경색 - "내가 죽으면 인체조직 기증" 고인 뜻 받들어 가족들 동의
딸 혜진양 - "하늘나라에 불쌍한 애 많아 아빠가 서둘러 떠났나봐요"
지난 7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내의 서울 성모조직은행. 박준철(45)씨의 시신에서 피부와 뼈, 혈관, 판막 등이 하나씩 떼어졌다. 전날 심근경색으로 갑작스럽게 숨진 그의 인체 조직은 모두보건복지부산하 한국인체조직기증 지원본부에 기증됐다.
그는 김포시 하나성심병원 일반외과 과장인 중견 외과 의사였다. 그리고 죽어서도 아픈 사람들을 위해 몸을 바쳐 인체 조직을 기증한 첫 번째 의사다. 최대 150명이 그의 인체 조직을 기증받아 새 삶을 살 수 있게 됐다.
"돈벌이보다 어려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 그게 의사의 보람이고 자부심이다"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하던 의사. 주변에서 '천사 의사'라는 별명을 붙여줬던 그는 시신조차 온전하지 않은 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의 인체 조직 기증은 평소 아프리카 등지에서 의료 봉사를 해 온 그의 삶을 곁에서 지켜본 가족이 결정했다.
▲의사 박준철씨는 세상을 떠나면서 모든 것을 남을 위해 남겼다. 지난 2009년 국제적 의료 봉사 단체인 머시십(mercy ship)에서 신중한 표정으로 환자를 살피는 모습(사진 위). 그는 아프리카 빈민들을 위한 의료 봉사에도 열심이었다. 그는 언젠가 빈국(貧國)에서 살며 봉사하고 싶다는 꿈을 갖고 있었다. /박준철씨 유족 제공부인 송미경(46)씨는 "죽으면 장기나 신체를 남을 위해 기증하고 싶다"고 했던 남편 말을 떠올렸다. 건강하던 그에게 갑작스럽게 죽음이 찾아온 탓에 시간적으로 장기 기증을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송씨는 제주도의 시부모에게 울면서 전화를 걸었다. 시어머니는 울먹이면서도 "아비가 살아 있었다면 뭐라고 했을지 뻔하지 않겠니"라며 인체 조직 기증을 허락했다.
박씨는 2009년 국제 의료봉사단체인 머시십(mercy ship·자선의 배)에 승선해 한 달간 아프리카에서 환자들을 돌본 시간을 그리워했다고 한다. 입버릇처럼 "은퇴하면방글라데시나 아프리카로 건너가서 봉사하면서 살고 싶다"는 말을 했다.
큰딸 혜진(19)양도 아버지의 아프리카 이야기에 끌려 지난 6월부터 9월까지 아프리카 모잠비크에서 아이들에게 음식을 제공하는 봉사 활동을 했다.
그의 봉사 활동은 오래전에 시작됐다. 그는 2001년부터 2007년까지 경남 창원에서 개업의로 일하면서 매월 1회 교회 의료 봉사팀과 함께 요양원이나 아동보호시설 등을 찾아 의료 봉사를 해 왔다. 매년 1주일 정도씩은필리핀오지 등을 찾아다니며 해외 봉사도 했다. 막내아들 예찬(8)군은 "아빠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의사니까 하늘나라에서도 아픈 사람들을 고쳐줄 거예요"라고 말했다.
뇌사 상태에서만 가능한 장기 기증과 달리 인체 조직 기증은 사망 후에도 이뤄질 수 있다. 그러나 한국인체조직기증 지원본부에 따르면 통계 자료를 작성한 2005년 이후 국내에서 인체 조직을 기증한 뇌사·사망자 수는 600여명에 불과하다. 장기 이식은 시신의 겉모습이 온전하게 남지만, 피부·뼈 등을 적출하면 시신이 훼손된다고 알려져 거부감이 큰 탓이다. 현재 국내에서 필요한 인체 조직의 78%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딸 혜진양은 "내년이나 내후년쯤 아프리카로 함께 가서 아빠는 아이들 병을 고쳐주고, 나는 아이들에게 공부를 가르쳐주기로 약속했다"면서 "하늘나라에 불쌍한 아이가 더 많아서 아빠가 서둘러 떠났나 보다"고 말했다. 유족들은 화장한 그의 유골을 고향인 제주도 바다에 뿌리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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