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건 덕수궁 앞 까페였다.
덕수궁 미술관에서 하는 사진전을 보기로 하였는데, 그날 내가 일이 늦게 끝나져, 30분이나 늦었었다.
처음 만남에 늦은것이 너무나 미안해서 지하철 가는 내내 문자메시지를 했었다. 미안하다, 지금 어디어디다 라고.
그 사람은 내게
'본인 잘못이 아닌거는 미안하다고 하는거 아니에요'라고 말했었다.
그래도 기다리게 한 것이 미안해서 나는 저녁을 사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들어간 집이 남대문에 있는 꼬리곰탕 집이었다.
이 집은 이름을 정확히 기억한다. ㅇㅎ식당이라는 집인데, 나는 당시 시장 안에 있는 식당은 처음 가봤었고, 가격도 생각보다 비싸서 호기심이 좀 들었던 것 같다
사실 나는 뭔가 '오래 끓인 국'을 좋아한다.
국밥, 곰탕, 설렁탕, 순대국, 삼계탕 같은거...
위장이 안좋은 관계로 자극적인 것 대신에 잘 먹는 음식인데 그날 먹은 꼬리곰탕은 환상적이었다.
그냥 살살 녹는 고기를 청양고추 들어간 간장에 찍어서 먼저 발려먹고, 국물에 밥을 말아먹었다.
초면이고 뭐고 그냥 뼈를 건져 손으로 쥐고 뜯어먹었다.
나중에 생각하니 좀 민망했던지라 메일에 그렇게 썼는데 그는
'음식 앞에놓고 내숭떠는거 보다 백번 나아요'라고 했었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믿었다.
그리고 한번의 만남이 더해진 날 그 사람은 외국으로 간다고 했다.(두 번째 만남은 분당의 파닭집이었다. 지금은 없어졌지만)
여자친구와 결혼을 해서 나가게 되었다고...
잘 가라고 했고 그로부터 7년이 지났다.
7년동안 나는 그와 두번의 만남과 그 남대문 꼬리곰탕집을 늘 기억했다
단 한번도 가보진 못했지만.
그리고 7년 후에 우리는 다시 만났다.
돈 많은 집 딸 만나 외국가서 일도 안하고 잘 살거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결혼에 실패했고,
그렇게 나와 연락이 닿았었다.
그간에 서로에게 있었던 상상도 못할 아픔에 대해 얘기를 서로 나누고 어느덧 우리는 연인이 되어있었다.
7년만에 다시 간 꼬리곰탕집도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가격은 좀 오른것 같지만 맛도, 반찬도 그대로였다
안쪽 자리에 앉아 다시 그날의 꼬리곰탕을 먹으며 그가 말했다.
'우리 그때는 저쪽 자리에 앉았었어.'
'그래 맞아,'
'그때, 먹으면서 너 먹는거 열심히 다 봤지. 잘먹더라'
...
지금 그사람은 내 곁에 없다.
나는 이제 혼자 몸관리도 해야하고, 학업도 다 마쳐야 한다.
늘 에너지가 부족하고 저질체력인 나는 연초에 암수술을 두번이나 하게 되었고 오늘 드디어 방사선 치료가 끝이 나는 날이다
그 사람이 곁에 있었다면 아마 오늘, 끝난 기념으로
꼬리곰탕을 먹으러 가자고 말해봤을 것이다.
그럼 그는 흔쾌히 '그래, 가자, 몸보신 해야지!' 라고 했을테니까...
내 부족한 인격, 아픈 몸, 조급한 마음 이런 것들로 인해 상대에게 준 상처는
꼬리곰탕 대신 오늘같은 날 혼자 학생식당에서 먹는 밥이 되어 돌아오겠지.
그 사람도 회사 식당에서 입에 맞지도 않는 외국 음식으로 끼니를 해결하겠지만
그래도 잘 먹었으면 하고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