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회사에서 진행했던 중요한 업무가 끝나고 2일 간의 휴가가 내려졌다.
짧다고 한다면 짧다고 느껴지겠지만, 그 업무 때문에 거의 한달 내내 야근하다싶이 했던 내게는
달콤한 초콜릿과도 같은 황금의 시간이였다.
오랫동안 회사일에 목 매여있다보니까 집안꼴이 장난 아니였다.
집청소를 하다가 문득 구석에 쳐박혀있는 물체가 보였다.
신문지로 꽁꽁 싸매고 또 그 위엔 커다란 비닐봉지가 덮혀있었다.
저게 뭐지, 잠시 생각했다가, 그 물체의 정체가 무엇인지 기억이 나자 소름이 끼쳤다.
다시 떠올리기도 싫은 기억이다.
내가 한참 철이 없고... 그저 갑자기 내게 찾아 온 자유에 정신이 나가있었을 때였다.
고등학교 내내 입시에 찌들어 있다가 수능을 보고서 드디어 공부에서 해방됬다는 행복감에 모든게 좋았었다.
그러나,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공부했던게 한순간에 허사가 되었다.
원하는 대학에 붙질 못해서 재수를 준비하다가 또 원하는 대학에 떨어져서 어쩔 수 없이 지방대로 갔다.
가고 싶지 않았던 대학에다가, 과 역시 내가 원했던 과는 커녕 전혀 엉뚱한 과로 들어갔다.
재미가 없었다. 모든게 다 짜증이 났었다. 대학입시에서의 좌절이 내 삶의 전부를 뺏긴 느낌이였다.
그런저런 복합적인 상황에 내 정서는 메말라가고 있었다.
그런 가뭄에 땅이 쩍쩍 갈라지듯 공허했던 내 마음을 어느 순간부터 쇼핑으로 해결하고 있었다.
알바를 하면 모든 돈을 거의 쇼핑에 투자할 정도였다.
그러다보니 당연히 나는 돈이 매번 모자랐다.
그러던 찰나에, 같은 과동기생이 내게 사귀자고 고백을 했다.
나는 이도저도 생각할 것 없이 그냥 승낙을 했다.
왜냐면 그때엔 옷을 사기 위해 돈이 궁했으니까.
그 돈은 나 좋다고 쫓아다닌 그놈에게서 뜯으면 될 거라 생각이 들었다.
솔직히 처음에는 별 기대도 안하고 사겼던 놈이였는데, 가만 볼수록 나를 진심으로 깊이 사랑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장난으로
"그럼 너 내가 원하는 거 다 이뤄줄 수 있어?"
라고 말했더니 그놈은 한치의 망설임도 없이 두 눈을 반짝이며
"물론! 너를 위해 난 모든지 할 수 있어. 언제든지 부탁만 해."
라고 말했다.
그놈은 그냥 형식상 말했던 것이였는지는 몰라도 점점 지내다보니 그 말이 사실이구나 라고 확신이 들었다.
내가 재수해서 그 과 애들보다는 1살 많았지만, 그놈은 군대 때문에 휴학했었기 때문에 나보다는 1살 많았다.
그리고 그놈도 역시 서울에서 지방으로 내려온 경우였다.
우리 대학은 2학년만 되도 기숙사를 못쓰기 때문에, 그놈은 대학 근처 자취방을 얻어 혼자 있었다.
시간이 지나자 나 역시 2학년이 되어서 기숙사를 나와야 했었다.
엄마에게 자취방 들어갈 돈이라고 받았던 것은 이미 쇼핑에 써버렸다.
나는 그놈에게 붙었다. 그놈도 남자였는지 흔쾌히 나의 부탁을 받아주었다.
그놈과 같이 동거를 시작하고 몇 번씩은 그놈과 함께 잠자리를 가졌다.
그래, 쇼핑을 위해서라면... 그러한 것들은 참을 수 있다.
오히려 나에게 이득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살 곳과 돈, 쾌락을 얻었고 그놈은 나의 몸과 쾌락을 얻었다.
나의 목적도 이루고 그놈의 목적도 이루고, 서로 윈윈(win-win)관계인 셈이였다.
그러나, 나는 이상하게도 그럴수록 더더욱 쇼핑의 길로 빠져들었다.
어느 날이였다.
이쁘장한 과후배가 그 시골촌구석 대학생 답지 않게 명품가방을 들고 강의를 들으러 온 적이 있었다.
교수도 그 가치를 알아봤고, 다른 과애들의 입에 그 가치에 대한 의견을 펼쳤고,
심지어 그 가치를 들고 다닌 이후로 그 후배는 우리대학의 화제의 중심이 되었다.
그 가치는
그 후배에게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적어도 내 눈에는 너무나도 거슬렸다.
나 역시 그 후배의 가치에 부합될 정도로 고가 브랜드의 물품을 많이 가지고 다니는데,
왜 저 애는 주목을 받는데? 다들 왜 나는 못 알아보지?
그때 나는 결심했다.
그 가치보다 더 알려져있지만 희소성이 있는 가치를 가지고 말거라고.
"왜! 왜 안 사주는데! 나한테 들이는 돈이 그렇게 아까워?"
다시 생각해보니 내가 너무 한심했다.
"...그건 너무 비싸잖아....차라리 다른 명품가방 사줄게."
"나 사랑한다매."
이제와서 떠올려보니 내가 너무 그놈에게 심했다.
"그래, 사랑해. 하지만.. 이거는....."
"내가 원하는 거 다 이뤄주겠다매. 거짓말이였어?"
그때의 그놈의 표정이 눈앞에 그려졌다. 참혹했다.
"....."
"그렇게 약속까지 해놓고선, 이젠 내 몸 가지니까 볼 거 다 봤다는 거야?"
"아, 아니야, 아니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마. 아직도 난... 너를..."
"나를, 뭐. 뭐! 남자들은 다 그런거 아니야?! 섹스하면 이 여잔 내 곁을 안 떠날꺼란 안심이 생기지?"
"제발.....그만해.....그만 좀 해!"
그놈이 나에게 소리를 외치는 모습은 처음이였다.
그놈을 진심으로 그렇게 미워하고 싫어하는 것은 아니였다.
그놈은 너무 순진했다. 세상물정도 몰랐다. 너무 착했다.
"........"
나도 말이 없었고
"........"
그놈도 말이 없었다.
그 침묵은 그놈이 깼다.
"......알았어. 사줄게......"
그러고 나는 미소를 짓고 그놈에게 단 한번도 먼저 말해본 적 없었던
"사랑해"라고 말했다.
아아, 그때의 나는 그놈에게 어떻게 비춰졌을까.
이제서야 되돌아보니 나는 너무나도 나쁜년이였다.
그렇지만 그놈의 아픔 보다 그 가치가 너무나도 좋았다. 가지고 싶었다. 꼭 이 내 팔에 걸고 다니야만 했었다.
그런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있었다.
몇 일 동안 그놈이 자신의 자취방을 나가있었던 적이 있었다.
아무리 쇼핑에 미친 년이였어도 그놈이 살짝 걱정되긴 했었다.
그놈도 역시 이 시골촌구석에 내려와 혼자 살고 있는 놈이기에 몇 일 동안 그놈이 지낼 곳은 없었다.
자취방에서 그놈의 부재는 걱정과 동시에 알 수 없는 희망이 솟았다.
왠지 그 놈이 돌아오면 가치가 내 손에 들어올 것 같은 막연한 흥분이 느껴졌다.
새벽이였다.
걱정하다가 어느새 혼자 있는게 또 익숙해져서 아무렇지 않게 잠을 잤다.
갓 잠에서 깨서 비몽사몽 했지만, 바로 내 코에는 진한 알코올 냄새가 가득찼다.
이불보에서 일어나보니 그놈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았다.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뭔가 그놈의 두 눈이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다.
기분이 이상했다.
그놈은 왠만하면 술을 그렇게 거나하게 마실 놈이 아니였다.
간이 선천적으로 안좋아서 술을 많이 못 마신다고 매번 선배에게 꾸중을 듣던 놈이였다.
그리고 그 냄새가 왠지 술냄새도 아닌 병원에서나 느껴볼 그런 냄새였다.
게다가 비위 상하는, 뭔지 모를 비릿한 냄새도 살짝 섞여서 났다.
"여기 너 가방."
그놈의 목소리가 깊고 낮게 울렸다.
뭔가 이상했다.
잠자다가 뜬금없이 돌아와서 건내는게, 그놈 답지 않게 안부 인사가 아니라 먼저 선물을 주다니.
의아했지만, 금새 잠에서 깨어나 불을 키고 포장지를 뜯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정말 진품이였다.
"와! 진짜네! 어디서 돈을 구해서 사온거야? 설마 훔친건 아니지?"
가방을 만지고 돌려가며 구경을 하면서 말했는데,
대답이 없어서 그제서야 그놈의 얼굴을 쳐다봤다.
...나는 아직도 그 새벽을 잊지 못한다.
그놈은 몹시 피곤했는지, 내가 잠을 자고 있던 이불보에 그대로 쓰러져있었다.
그래도 고맙다는 인사는 해야되겠다 생각이 들어서 그놈을 흔들어 깨우는데,
'아, 얼마나 피곤하면 바로 오자마자 잠들었겠어. 아침에 고맙다고 말해야겠다.'
란 생각이 들어서 흔드는 것을 멈췄다.
잠자기 편하라고 엎어져 있던 놈을 제대로 눕혀 놓았다.
그러고 바로 확! 알코올 냄새가 진하게 풍겼다.
비릿하고 역한 냄새도 동시에 느껴져서 구역질이 났지만,
일단 옷을 벗겨야 나도 옆에서 같이 잘 수 있을 것 같았다.
두꺼운 야상을 벗겨냈더니 냄새는 더욱 심하게 풍겼다.
도저히 이건 뭔가 썩는 냄새가 아닌 이상 날 수가 없는 악취였다.
기분이 더 이상해졌다.
상의를 붙잡고 위로 올려보니,
".............!"
배에 칭칭, 그리고 겹겹이 둘러 매여있는 많은 붕대.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 붕대 사이로 피가 스며들어 축축했다.
그놈의 얼굴을 다시 보니까, 그건 잠을 자는 모습이 아니였다.
입술은 마를 데로 바싹 말라있었고
얼굴 혈색은 커녕 백지장처럼 하얬으며
일부러 잠 잘 때 추운게 싫어서 보일러를 틀어놓아서 훈훈한 방안인데도
뭐가 그리 추운지 몸을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그놈의 상태를 파악하자마자 딱 내 머리에는
'내가 사람 한 명을 반병신으로 만들었구나'
였다.
실제로 본 적도 없고 겪어 볼 리가 없는 이야기라 생각했는데...
나도 또라이였지만,
이렇게까지 해서라도 명품가방을 사준
그놈도 또라이였다.
내가 그렇게나 사치스러운 년이였던거 알면서 내 뒷바라지 해주고 사달라는거 다 사주고
자기를 이용해 먹는다는 것도 알아챘으면서, 나랑 헤어지질 못하고 계속 사랑했던 또라이.
간이였는지 이자였는지 위였는지 대장이였는지 신장이였는지 심장이였는지 무엇이였는지
그놈이 장기매매 관련 사람에게 뭘 떼다준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내가 그놈을 어떻게 할 것이냐' 였다.
나는 본능적으로 더이상 이곳에 머물면 안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나는 그 본능을 따르기로 했다.
외투를 입고 방을 털어서 100원짜리 동전도 다 긁어 모았다.
짐? 짐은 필요 없었다.
옷? 옷 역시 상관할 바가 아니였다.
돈만 있으면 옷은 언제든지 살 수 있기 때문이였다.
옷을 입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사는 것'이 목적이였다.
얼추 서울로 향하는 고속버스 비용이 생기자 나는 그놈이 사준 명품가방을 들었다.
그놈을 다시 한 번 더 뒤돌아 쳐다봤다.
언제 정신이 들었던 것인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멍청한 새끼는 자기 인생을 조져놓은 년이 자기를 버리고 가는 그 순간까지도...
좋다고 벙긋 거리고 있었다.
"너를 사랑해."
죽어가는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너무나도 무서웠다.
나도 정말 미친년이고 죽여버릴 년이였지만,
그놈의 그 모습이 더 무서웠다.
두려웠다. 그래서 도망쳤다. 달리고 또 달렸다. 내 귓속을 어지럽히는 것만 같았다.
그놈이 마지막으로 내게 죽어가는 웃음을 지어준 그 모습이 계속해서 내 앞에 떠올랐다.
미친 듯이 소리쳤다. 도망쳤다. 달렸다.
그런데 그와중에도 나는 정말 미친년이였다.
그놈을 조져버린 원인인 가치를 버릴 수 없었다.
그놈 인생을 망쳐버렸고
동시에 내게 씻을 수 없는 죄악과 저주를 준 그 가치를................
아직도 꽁꽁 싸메놓고 내 집안 한 구석에 쳐박아놨던 것이였다.
*이 글은 제가 아는 분께 직접 들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소설입니다.
저는 남자의 관점인 이야기만 들었는데..
여자의 입장에서의 생각은 과연 어땟을까...해서 써봤습니다.
원래 들은 내용↓
아는 분의 엄마네 친구 분의 아드님(한마디로 그 아줌마의 아들)이
대학을 원래 집이랑 먼곳에 가서 자취 생활을 하는데,
언제서부턴가 아드님이랑 연락이 끊기더래요.
그래도 남자애니까 그 아줌마는 연락이 안돼도 걱정이 안됐는데,
어느날부터 계속 그 아드님 자취주인이 자꾸 아줌마한테 전화가 오는거예요.
한달에 한번, 잊을만 하면 또 전화와서 "한 번 아드님 좀 보라고...."이렇게
부탁을 하는거예요.
그 주기가 짧아지자 이상한 느낌이 든 아줌마는 아드님 자취방에 찾아가게 되는데,
알고보니 그 자취하는 곳에 아줌마 몰래 같이 동거하던 여자친구가 있었대요.
하도 자취주인한테서 연락 오니까 설마 여친을 임신시켰나, 생각을 했는데
그 여친이 된장녀라서 자주 아드님한테 비싼 명품을 사달라고 했나봐요.
특히 어느날은 명품백 사달라고 쫄랐는데 대학생이 무슨 돈이 있겠어요.
아드님은 결국 자기 신장을 팔아서 여친한테 명품백 사다 줬는데...
그 ㅅㅂㄴ은 명품백 먹튀했다고 함.................
아줌마가 자취방 딱 들어가자마자 사람 살 썩는 냄새에
아드님은 침대에 반송장처럼 누워서 일어나지 못할 정도로...그런 상황이였다고 함...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름.
저는 그저 그 아드님이 건강을 되찾고 새삶을 살았으면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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