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표시를 잘못해놨어서 다시 올립니다.>
이시이 시로에 대한 간략 설명 : '마루타 실험'
일본 지바 현에서 태어나 교토 제국 대학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독선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었지만 교토 제국 대학에서 전체 수석을 할 만큼 뛰어난 두뇌의 소유자였다. 학업에서는 뛰어난 실력을 보였던 그는 1924년 대학원 과정의 일환으로 교토 제국 대학 의학부에서 일을 시작한다.
그 후 이시이 시로는 유럽에서 유학을 하면서 값싸고 저렴하며 강력한 전쟁 무기가 세균 무기라고 판단하여 1932년 “육군 전염병 예방 연구소”의 사령관으로 임명되면서 본격적으로 세균 무기를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시이 시로와 그의 부하들은 종마 수용소를 건설하고 그 안에 “토고부대”라 불리는 비밀조직을 창설하는데 그 부대의 목적은 화학, 생물학 작전을 연구하는 것이었다. 1935년 탈옥과 방화가 발생하여 종마 요새는 폐쇄되었다. 그 후 이시이는 중국 핑팡 지역으로 발령 받아 화학 및 생물학전에 대한 연구를 지속한다.
한 편, 세계 열강이 제국주의의 광기에 휩싸여 제나라의 힘을 키우는데 혈안이 된 가운데 당시 일본의 왕이었던 히로히토는 칙령을 발하여 새로운 무기를 제작할 수 있는 어떤 부대를 창설하라 명한다.
히로히토의칙령에 따라 이시이가 속해있던 부대는 관동군으로 통합되어 1941년 “관동군 방역 급수부”라고 불리게 된다. 이 부대는 제국청년군, 대학 연구소, 헌병대의 지원을 받았다.
일명 731부대라고도 불리는 이시이 시로 중장의 이 부대는 점령지역과 식민지역 (기록에 의하면 95%가량이 중국인과 조선인이고 나머지 5%는 러시아, 유럽, 미국인 이었다고 한다. )에서 전쟁포로나 양민을 수용하여 각종 실험을 수행했다고 한다.
1. 생체 반응 실험
수용자는 마취없이 생체 반응을 측정하기 위한 실험을 당했다.
다양한 질병에 걸린 수용자를 생체 해부하였다.
-과학자들은 수용자에 대한 침습적 수술을 하였다.
-질병이 인체에 미치는 영향을 보기 위해 장기를 제거하였다.
모두 살아있는 상태에서 시행했다. 왜냐하면 부패 과정은 결과에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성인 남자, 성인 여자, 어린이, 영아 모두 대상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노인도 그 대상이 되었다.
-생체 반응 실험은 임산부에게도 시행되었다.
-어떤 때는 의사에 의해 수태되고 그 태아는 꺼내졌다.
-출혈의 연구를 위해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를 절단하였다.
-절단된 팔이나 다리는 가끔 수용자의 반대편에 다시 붙여졌다.
-몇몇 수용자의 팔이나 다리는 얼려져 절단되었다.
-어떤 때는 얼렸다가 녹여서 치료받지 않은 괴저 및 부패의 영향을 연구했다.
-일부 수용자의 위는 외과적으로 절제되고 식도와 장을 연결하였다.
-일부 수용자에게서 뇌, 폐, 간의 일부가 제거되었다.
-피부 표본을 얻기 위해 실험 대상의 피부를 산채로 벗겨내었다.
-의식은 살아 있는 반 시체상태의 마루타는 소각 처리되었다.
-남자와 여자의 생식기를 절단하여 각각 상대방의 국부에 이식하는 성전환 수술실험을 했다.
2. 무기 실험
-보병소총의 성능을 시험하기 위해 수용자를 3개조로 나누고 각각 일렬로 세우는데 이때의 복장은 한조는 팬티만 입은 상태, 또다른 한 조는 평상복, 나머지 한 조는 방한복 차림으로 실시했다.
-수류탄을 시험하기 위해 인간 목표물을 다양한 거리의 다른 위치에 세웠다.
-인간을 대상으로 화염방사기를 시험하였다.
-인간을 말뚝에 묶어 세균방출폭탄, 화학무기, 폭발성 폭탄을 시험하였다.
3. 세균 실험
-수용자에게는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이 접종되어 그 효과를 연구했다. 예방접종이라고 위장하였다.
-치료받지 않은 성병의 효과를 연구하기 위해, 남녀 수용자에게 일부러 매독, 임질을 강간에 의해 감염시키고 연구하였다.
-질병 전파 벼룩을 대량으로 얻기 위하여 수용자에게 벼룩을 감염시키고 세균전의 유용성을 연구하였다.
-일부 수용자에게는 전염병이 퍼지는 속도를 측정하기 위해 질병을 일으키는 세균을 만두에 집어넣고 급식시켰다. 당시 수용자에게 지급되는 음식이 만두였기 때문에 아무도 이를 의심하지 않았다.
-전염성 벼룩, 감염된 의류와 물자가 폭탄 안에 포장되어 다양한 목표물에 투하되었다. 이때 이시이 시로 중장이 직접 개발한 도자기 폭탄이 주로 사용되었는데 도자기 폭탄은 폭발력을 고의로 약하게 만들어 안에 내장된 세균이 죽는 것을 최소화했다. 페스트, 콜레라, 탄저 등 전염병으로 약 40만 명의 중국인이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4. 기타 생체 실험
-일부 수용자는 숨막혀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알아보기 위하여 목매달렸다.
-일부 수용자는 색전이 생기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동맥(또는 심장)에 공기가 주입되었다.
-일부 수용자는 신장에 말의 소변이 주입되었다.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걸리는 시간을 결정하기 위하여 물과 음식을 전혀 주지 않았다.
-일부 수용자는 죽을 때까지 고압의 방에 놓였다.
-일부 수용자는 극저의 온도에 놓이어 동상이 걸리게 하였다. 그런 조건에서 얼마나 생존하는지, 인체 살의 부패와 괴저가 어떤 효과를 일으키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이는 주로 여성 수용자에게 행해졌다.
-일부 실험은 온도와 화상, 인간 생존의 관계를 알기 위한 것이었다.
-일부 수용자는 원심분리기에 넣어져 죽을 때까지 돌려졌다. 인체 수분 함량 비율을 알기 위해서였다.
-동물의 혈액이 일부 수용자에게 주입되어 그 효과가 연구되었다.
-일부 수용자를 가스실에 넣어 다양한 종류의 화학 무기를 시험했다.
바닷물이 몇몇 수용자에게 주사되었다. 바닷물이 생리식염수를 대치할 수 있는지 알기 위해서였다.
-일부 수용자에게는 진공 실험을 실시했다. 진공상태에서 사람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느냐 하는 실험이었다.
5. 실험 외적인 살인행각
-731부대의 판임관(위관급 장교)과 고등관(영관급 장교 및 기사(의사))들은 실험이 이미 끝났지만 살아있는, 그러나 실험으로 인해 쇠약해지거나 병들어 죽음을 앞둔 수용자들을 원판에 묶은 뒤 원판을 돌리며 그 원판에 단검을 던지는 게임을 했다.
이때 판임관들 사이에서 도박이 행해졌는데 명중되는 부위를 걸고 자신이 선택한 수용자의 신체부위에 단검이 명중되었을 경우 그 간부가 도박에 걸어놓은 돈을 전부 획득했다.
-731부대의 군인들은 때때로 아직 실험하지 않은 여성 수용자들을 강간치사하는 경우도 있었다.
-731부대에서는 병사들의 군기를 확립하기 위해 병사들에게 수용자 중에 가장 병약하거나 가장 반항이 심한 수용자를 실험재료로 사용하기 전에 육모방망이로 때려서 숨지게 하도록 강요했다. 이는 수용자를 인간으로 인식한 일본군 병사가 수용자를 탈출시켜 주는 것과 석방을 요구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조치이다.
6. 부대내규
-물의를 일으키거나 탈주를 시도한 수용자는 24시간 이내에 실험을 종료시킨다. 이 때문에 수용자가 폭동을 일으킬 경우 일정에 없던 실험을 하기도 했다.
-731부대의 모든 구성원(부대지휘관 포함)은 731부대에 몸담고 있는 도중 사망하면 그 시체는 생체실험의 대상으로서 해부된다.
-어떠한 경우라 해도 수용자는 석방시킬 수 없다.
실험이 종료된 이후의 수용자는 살아있든 죽었든 간에 무조건 소각 처리한다.
-만약 적과의 교전에서 패배 또는 기타 다른 이유로 어쩔 수 없이 731부대를 해체해야 할 경우에는 모든 수용자를 정리해야 한다. 여기서 정리란 수용자에게는 죽음을 의미한다.
-수용자의 탈주를 도와준 731부대원은 직위해제는 물론이고 중죄인으로 분류되어 사형 또는 이에 준한 형벌을 받는다.
-처음 전입한 신병은 수용자중 가장 품질이 떨어지는 수용자를 때려 죽여야 한다. 이는 수용자를 인간이 아닌 짐승으로 인식하게 하기 위함이다.
당시 731부대에서 복무하던 한 장교는
"처음 할 때는 무서웠다. 두 번째부터는 쉬워졌고, 세 번째가 되자 내가 먼저 나서서 하고 싶어졌다"라고 말했다.
일본이2차 대전에서 패망하자 승전국인 미국과 소련은 731부대의 실험이 비인륜적 실험임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731 부대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눈독을 들였다.
그 결과 731부대의 장교들은 연구결과를 인도한다는 조건으로 형량을 감량받거나 면책을 받는다.
실제로 미국의의학관련 지식은 이 때를 기점으로 큰 성장을 이루게 된다. 731부대와 미국의 관계는 타임지 2002년 9월 Black Death에 자세히 나온다.
석방된 731부대원들은 이후 일본사회 각 분야에서 큰 성공을이루고 이시이 시로 박사는 “미도리쥬지” 즉, 녹십자의 창립 멤버로서 활동한다.(우리나라의 녹십자와는 관련이 없다) 또한 도쿄올림픽 대회조직위원회 위원장을 지내며 천수를 누리다가 67세에 암으로 죽을 때까지 단 한번도 기소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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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기 : 이시이 시로의 행적 -> 행적에 대한 국민들의 반응 (재판이라던지, 오히려 명예를 누리는 등. 물론, 백미는 단 한번도 기소된 적 없다는것.) & 일본군 장교의 미친듯한 진술.
출 to the 처 :
http://zmdzmd.com/2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