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멘붕게에 다양한 멘붕 혹은 사이다썰이 많이 올라오길래 제가 겪은 멘붕썰 한번 써봅니다.
글을 시작하기 앞서, 이 글은 종교인 전체를 까는 의도가 전혀 없음을 밝힙니다. 제가 겪은 그 할머니가 좀 이상했던거지..
저는 무교이지만, 자기 종교를 신실하게 믿으면서 선량하게 사시는 보통 종교인들에게는 전혀 악감정이 없어요.
아직도 다 안나아서, 오늘도 다친 무릎에 침 맞고 왔으므로 음슴체
올해 5월 중순에서 월말 사이 정도에 일어난 일임.
당시 본인은 한창 운동에 열을 올리고 있었기 때문에, 매일 아침 6시에 조깅을 했음. 사고나던 날도 평소와 같이 6시부터 뛰고 있었음.
자동차 한 대가 좁은 주택가 (차 2대가 바짝 붙어야 겨우 지나갈 수 있을 정도의 폭) 길에서 도로로 진입하려고 정차해있었음.
나는 차가 계속 멈춰있는 걸 보고 계속 달려감. 근데 차주가 나를 못 보고 브레이크에서 발을 떼버림.
(나중에 차주가 하는 말로는, 도로로 진입할 것만 생각하고 반대쪽에서 차가 오나 안오나만 보고 있다가 나를 미처 못 봤다고 함.)
나랑 충돌하고 바로 차주가 브레이크를 다시 밟은게 다행이었음.
차가 출발하자마자 부딪쳐서 넘어진 거라고 해도 쇳덩이에 갖다박은 거랑 그냥 넘어진 거랑은 레벨이 달랐음.
몸 왼쪽을 받치면서 오른쪽으로 넘어졌는데, 넘어진 쪽의 팔꿈치랑 무릎이 다 까졌음.
게다가 얼굴을 땅에 부비부비하는 바람에, 앞니 부러지고 코피가 터짐.
이 때문에 입 안과 입술이 다 찍혀서, 사극에서 사약받은 죄인이 피 토하듯이 커헉! 하면서 입에서 피를 내뿜다시피 함.
뼈까지 다쳤는지 어쨌는지 그 당시엔 알 방법이 없었지만, 일단 입이 터져서 피를 흘리고 있으니까 비주얼 상으로는 상태가 진짜 심각해 보였음.
차에서 운전자분이 내렸는데, 다친 나를 보고 무지하게 멘붕함. 너무 당황하고 놀라서 당장이라도 울것같은 얼굴을 하고 내 상태를 살폈음.
그때였음.
어떤 할머니가 다가와서 운전자에게 말을 거는데, 한국식 이름이 아니라 외국식 이름으로 부름...?
그 전에 운전자가 나를 일으켜 주면서
"보통 이렇게 아침엔 잘 안 다니는데, 오늘 하필 성당 다녀오는 길에 딱 이런 사고가 나서... 어떡해ㅠㅠㅠ 아가씨 괜찮아요?ㅠㅠㅠㅠ"
라는 식으로 말했었기 때문에, 아- 저 외국 이름은 운전자 분의 세례명이고, 저 할머니는 운전자랑 아는 사이구나- 라고 나름대로 추측을 함.
나는 다쳐서 정신도 없고, 스스로가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사실로 쇼크를 받아있는 상태였음.
그리고 운전자 분도 자신이 사고를 내서 사람을 다치게 했다는 사실에 엄청난 충격과 죄책감을 느끼면서 당황+멘붕 상태였음.
근데 이 할머니가 엄청난 오지랖을 시전함..
할머니가 운전자를 붙들고 뭐라뭐라 설교 비스무레한 걸 하는데, 대충 [사람이 지나가는걸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켰어야지, 그렇게 막 차를 출발시키면 어떡하느냐] 는 내용이었음.
한창 할머니가 신나게 떠들고 있는데, 뒤에서 기다리던 다른 차들이, 일단 길 막고 있는 차부터 빼라고 빵빵 거리고 난리가 나서, 운전자는 차를 좀 길가쪽으로 붙여놓으려고 가버림.
그리고 말할 상대를 잃은 할머니가 나한테 오더니 [아가씨도 말이야- 차가 멈춰있더라도 주의를 하고 잘 살피고 건너야지 그렇게 막 뛰어오면 쓰나] 하면서 설교를 시작하려 하는 것임???
아니, 차에 치여서 입 터지고 무릎 까져서 피 흘리는 사람한테 그런 소리를 할 타이밍임?????
내가 제정신이었으면, 지금 병원엘 가야지 설교들을 때냐고 따지면서 화를 냈을텐데 그 당시엔 넋이 나가있어서 그냥 네, 네- 만 하고 있었음.
그렇게 네, 네만 하고 있으니 할머니가 진짜 별의별걸 다 물어보면서 대화를 자꾸 이어가려고 함;;;;;
회사 출근하던 길이었냐는 질문에는 아니오라고 확실히 대답했고, 나머지 질문이나 이야기는 그냥 흘려들어서 기억도 안 남..
할머니가 나한테 뭐라뭐라 말을 하는 사이에 운전자가, 아가씨를 병원에 데려가야 하는데 너무 이른 시간이라 응급실로 가야겠다- 뭐 이런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음.
운전자가 차에 태우려고 날 부축하려고 하는데, 이 할머니가 또 끼어듬.
응급실로 데려갈 정도로 부상이 심각하냐, 걸을 수 있냐, 걸어봐라 뭐 이런 주문을 나한테 하기 시작함.
다행히 뼈가 부러진건 아니어서 내 다리로 일어날 수 있을 정도였음.
그래도 운전자는 눈으로 봐서 부상이 심각한지 아닌진 모르는거다, 병원에 가봐야 한다고 주장했음.
근데 내가 그렇게 일어서는 걸 보더니 (생각보다 내 부상이 가볍다는 걸 확인하고는) 이 할머니가 갑자기 사이에 들어와서 나랑 운전자한테 양쪽으로 어깨동무를 하는거임....???????? 무슨 운동경기할때 선수들 작전타임할 때처럼;;
그러면서 바로 나한테 툭 던지는 말,
"아가씨 종교 있어요?"
....헐.
할머니가 기도를 시작했음...
[운전한 00씨 (자꾸 세례명으로 불름) 와 이 아가씨(나)의 부주의로 사고가 나서 정말 큰일날뻔했는데, 보니까 아가씨가 많이 안 다쳐서 다행이다,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었던 일이 다행히 이 정도로 마무리된 것은 성모 마리아의 은혜 덕분이다, 이번 기회를 통해서 성모 마리아께 감사해야 하고 앞으로는 이런 일이 또 생기지 않도록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고 어쩌고저쩌고]
하는 내용이었음. 대충...
기도가 하도 길어지니까 운전자 분이 얼른 병원 가야겠다며 중간에 끊어버림.
나를 차에 태우고 병원으로 출발하려는데, 할머니가 운전석 창문을 넘어서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함;
운전자에게 [그렇게 무조건 막 병원부터 데려가는 건 아니다, 그렇게 일을 서두르다간 아예 그르칠 수도 있다, 일단 서로 연락처를 교환하고 나서 아가씨가 출근해야 되니까 회사에 데려다주고 나서...]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함.
회사 출근하던 길 아니었다고요!! 하고 내가 살짝 언성을 높이니까 그제서야 토크 끝.
사고에 직접적으로 관련이 있는 것도 아닌데 그 할머니가 하도 사이에 끼어들길래, 난 그 할머니가 운전자의 어머님인줄 알았음.
근데 응급실가는 사이에 운전자 분이 하시는 말씀이...
자기도 너무 놀라고 당황해서 넋이 나가 있었는데, 저 분까지 껴들어서 진짜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고 함.
그 할머니는 그냥 성당 같이 다니면서 안면만 있는 정도인데 왜 그랬는지 자기도 모르겠다고...
사고가 났던 때가 6시반이 좀 안 된 시간이었는데, 응급실에 도착해보니 7시가 넘어있었음. (사고난 장소에서 병원까지는 차로 5분도 안 걸릴 거리였음)
사고 현장에서 그 할머니한테 이삼십분 정도 붙들려있었던 것 같음. 얼마나 쓸데없는 소리를 많이 하고 기도를 길게 했으면...;;
싫다는 사람 붙들고 종교 믿으라고 막 강요하거나 그런 이상한 종교인들도 겪어봤었지만, 이 할머니만큼 멘붕을 준 케이스는 없었음..
글 어떻게 마무리해야 하나..
자나깨나 차 조심! 홍홍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