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2년 2월 28일, 육군차관 기무라 헤이타로는 이하라 준지로 조선군 참모장에게 아래와 같은 전보를 받습니다
「반도인의 영미 존경 관념을 없애고 필승은 신념을 확신시키기 위해 매우 유효하다고 사료되어 총독부와 군이 함께 희망함. 영미 포로 각 1000명을 조선에 수용하고 싶으니 특별한 배려를 바람. 참고로 수용소 건물은 경성부의 신학교 2곳, 평양부 외국인학교와 신학교로 충당할 수 있으며, 상세한 내용은 수용 여부에 관한 중앙의 의향을 확인한 뒤 구체적으로 보고하겠음. 」
여기에 긍정적으로 반응한 기무라 헤이타로 육군차관은 백인 포로 약 1000명을 보낼 것이며, 시기와 기타 사항은 추후 통지할 예정이라는 점, 단 조선군이 수용소로 예정하는 건둘은 포로에게 과분하므로 다른 장소를 고려해 보라는 내용을 담은 회신을 보냅니다.
며칠이 지나고 1942년 3월 23일, 조선군 사령관 이타가키 세이시로 이름으로 「조선군 포로 수용 계획」이 도우조우 히데끼에게 보고됩니다.
그 내용이 무엇이냐 하면
「조선군 포로 수용 계획」
1. 목적: 영미인 포로를 조선 내에 수용해서 조선인에게 제국의 실력을 인식시킴과 동시에 여전히 조선인의 마음속에 남아있는 영미 숭배 관념을 불식시키기 위한 사상 선전 공작의 수단으로 삼는다
(중략)
3. 관리: 조선에 있는 포로수용소는 조선군사령관이 관리하라. 수용을 위한 기관은 따로 정하는 바에 따른다.
4. 수용기간: 포로가 도착한 때부터 대동아전쟁이 끝날 때까지
5. 실시요령
1) 1번의 목적을 달성하기 장교 제외 포로가 조선 주요 도시, 특히 민심이 흉한 곳에서 각종 작업에 종사할 수 있도록 한다.
2) 수용소의 모든 시설은 기거하기에 지장이 없는 최소한의 수준을 시설을 갖춘다.
3) 식사는 일본 군대에 따르지만, 일부 관용식을 지급할 수 있다.
4) 포로의 수용, 취급과 경계는 엄격히 한다.
그리고 기무라는 싱가포르에서 포로가 된 백인을 5월에서 8월까지 대만에 약 2400명, 조선에 약 1100명을 이송하도록 남방총사령관에 5월 16일 명령합니다
몇개월뒤 8월에 조선에 도착한 백인 포로 1000명이 조선에 입성하고 이에 따른 조선 민중들의 반응을 보고한 보고서가 제출되는데, 그 내용이란
「영국인 포로 수용에 따른 일반 민중의 반향」 제출에 관한 건
1942년 10월 13일 발신: 조선군 참모장 이하라 준지로 수신: 육군차관 기무라 헤이타로 영국인 포로 수용에 따른 일반 민중의 반향
1. 개관
말레이 반도에서 보낸 포로 998명이 도착했다. 이 일은 일반 민중, 특히 조선인에게 큰 영향을 끼쳤다. 포로를 수송하는 도중에 모여든 부산 경성 인천 지방의 관중 인원도 조선인 약 12만명, 일본인 약 5만 7000명으로 추정한다. 포로들의 추태와 얼빠진 모습을 조롱하고, 이런 국가 관념이 부족한 군대가 황군에게 패배하는 것은 당연하다며 황군 필승의 사실을 재확인하며 영미 숭배 사상을 완전히 없애야 한다고 말하는 사람, 황국신민으로서 행복감과 대동아전쟁을 완수해야 한다는 결의를 밝히는 사람이 많았다. 특히 조선인 감시원을 통해 직접 대동아전쟁에 참여할 수 있음을 알릴 수 있었다. 일반적으로 영미 숭배 사상을 완전히 지우고 시국 인식을 철저히 하는 데 커다란 효과를 거두었으며, 조선 내 여론은 다음과 같다.
2. 주요여론
A. 반도 청년이 황군의 일원으로서 포로를 감시하는 것을 본 순간 눈에서 눈물이 핑 돌 정도로 기뻤다. 이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보라! 반도 청년이 영국인 포로를 감시하지 않는가!" 라며 큰 소리로 외쳐서 알리고 싶은 충동에 휩싸였다.
B. 기독교 관계자는 영미인한테 지도를 받았던 관계로 서양물이 좀처럼 빠지지 않았지만, 포로를 본 순간 일본의 강대함을 느꼈고 일본만의 기독교를 확립해야 한다는 강한 시사를 받았다.
C. 굶더라도 전쟁에 져서는 안 된다. 일본인의 은혜와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D. 우리들을 하등인으로 취급하고 무시했던 영미인이 포로가 된 것을 보는 순간 꿈만 같았다. 반도인도 일본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낄 수 있었다.
E. 휘파람을 불며 느긋하게 걷는 포로들을 봐도 국가관념이 부족한 것을 알 수 있다. 참 칠칠맞지 못한 군대다.
F. 포로들의 허탈한 모습을 보면 일본군에게 지는것도 이해가 간다.
G. 포로를 눈앞에서 보고 전쟁에서 반드시 이겨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포로들을 조롱하기 전에 우리들이 더욱 분발해야 한다.
H. 지금까지 신문과 영화로 황군의 전과를 들으면서도 다소 의혹을 품고 있었는데, 포로를 보고 그 보도가 거짓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I. 일본인으로서 산다는 것의 행복을 절실히 느낄 수 있게 조선인 모두에게 포로를 보여 주고 싶다.
J. 놈들 때문에 전쟁이 지연되는 것이니 죽을 정도로 일을 시켜라
K. 포로가 불쌍한 모습임에 비해 우리가 평안히 사는 것도 모두 군대 덕분이다
....주작 스멜이 나는거같지만, 계속 보자면,
2. 중국인의 여론
A. 일본인의 위대한 실력을 직접 보고 신뢰하게 되었다. 우리들은 일본 덕분에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어 감사하기 그지없다.
B. 꼴불견인 포로의 모습이야말로 몰락하는 영국의 모습이다. 중국인은 일본을 신뢰하며 한층 신동아 건설에 노력하고 싶다.
4. 프랑스인의 여론
A. 포로가 조선에 도착했다는 것은 같은 서양인으로서 부끄러운 일이다.
B. 포로들은 얼마나 창피할까? 참 불쌍한 노릇이다.
5. 독일인의 여론
A. 영미의 비인도적인 처사에 우리들도 똑같은 방식으로 보복해야 한다. 더 학대해 주기를 바란다.
6.백인계 러시아인의 여론
A. 포로는 휘파람을 불며 태평스럽다. 불명예라고 생각하지 않는가 보다. 복장도 개판이다. 그러니까 전쟁에서 지는것이다.
3. 포로들의 언동 포로는 하나같이 체념한 듯하며 순순히 말을 듣고 규칙을 지키며 일본군의 공정한 대우에 감사해 한다. 황군의 우수함을 찬미하는 자도 있지만, 여전히 교만한 태도를 보이며 우리나라를 열등시하고 최후의 승리는 영국의 것이라며 공언하는 자도 있다. 포로가 된 것을 명예스럽게 말하며 허세를 부리는 자도 있다. 언젠가는 영국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최후 승리를 할 것이라고 우기며 미국의 자원을 맹신하고, 아직 황군의 승승장구를 알지 못한 채 단지 영국의 승리를 기대를 거는 상황이다
출처: 「속기록」 146호, 조선인 B,C급 전범ㅡ해방되지 못한 영혼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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