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치솟는 실업률..중기, 77% 구인난 호소
- 업계, "구직자 눈높이 탓" vs 구직자 "비전 부재"- 전문가, "인식 미스매치 해소해야"[이데일리 채상우 유현욱 전상희 기자] “3명이 해야할 일을 1명이 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가뜩이나 회사 운영이 어려운데 남은 사람마저 과도한 업무 부담에 회사를 떠납니다.”
국내 유명 컨벤션 기획 전문회사 메씨인터내셔날의 김분희(47) 대표는 “나름 업계에서 입지를 굳힌 저희도 이런데 다른 중소기업 사정은 어떻겠느냐”고 말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도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에 허덕이고 있다. 사상 최악의 취업난에도 불구 구직자들은 좀체 중소기업으로 발길을 돌리지 않는다. 입사하더라도 1년 내 3명 중 1명이 회사를 떠난다.
중소기업에서는 연봉 격차가 크지 않은데도 구직자들이 대기업 입사에만 목을 메는 현실이 문제라고 말한다. 반면 취업준비생들은 비전 없이 대기업 하청에만 매달리는 사업구조와 구시대적인 기업문화가 더 큰 문제라고 입을 모은다. 인력의 미스매치’(불일치)를 넘어 ‘인식의 미스매치’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 “스펙 아까워 대기업 입사 포기 못해”
유명 사립대 경영학과를 나온 이모(29)씨. 고등학교부터 익힌 덕에 중국어에 능통한 그는 대기업에 입사한 뒤 최고경영자(
CEO)가 되는 게 꿈이었다.
군대에 다녀온 뒤
CEO에서 임원으로, 다시 부장으로 꿈은 점차 쪼그라들었지만 이씨는 졸업도 미뤄가며 대기업 입사에 계속 도전 중이다.
이씨는 “그동안 쌓아놓은 학점과 토익 점수, 자격증 등 스펙이 아까워서라도 대기업을 포기하지 못하겠다”고 말했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8월 기준 청년실업률은 9.3%로 지난해 같은 달보다 1.3%포인트 올랐다. 6개월 이상 장기 실업자는 18만 2000명으로 17년 만에 최대 규모다. 아르바이트를 하며 직장을 찾는 취업준비생이나 입사 시험 준비생, 비자발적 비정규직 등을 포함하면 청년실업률은 더 올라간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최근 ‘청년 고용보조지표의 현황과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청년 체감실업자는 179만 2000명으로 15~29세 청년 중 34.2%는 체감실업 상태라고 분석했다.
체감실업률은 근로 시간이 주당 36시간 미만이면서 추가로 취업을 원하는 근로자와 비경제활동인구 중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했지만 취업이 불가능한 경우를 모두 실업자로 보고 계산한 비율이다.
이런 상황에서도 중소기업들은 ‘입사지원자가 너무 적다’고 호소하고 있다. 지난 7월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대표 이정근)이 중소기업 779개사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중소기업 10곳 중 8곳(77.7%)은 구인난에 시달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중소기업들은 입사 지원자가 적은 이유를 낮은 연봉 탓으로 보고 있. 설문에 응한 10명 중 7명(69.4%)은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 격차를 구인난의 원인으로 꼽았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중소기업 월 평균 임금 총액은 293만 8306원으로 대기업(484만 9460원)의 60.6% 수준이었다.
아울러 중소기업에 대한 막연한 선입관과 대기업 선호현상 또한 구인난을 가중시키는 원인이라는 분석이다. 이 조사에서 절반에 가까운 응답자(46.6%)가 구직자의 편견이 구인난의 원인이라고 답했다. 해법도 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이 54.6%로 가장 높았다.
세계 1위 양궁 제조업체 윈앤윈의 박경래(60) 대표는 “업계 세계 1위 기업인데다가 신입 사원에게 3000만원 이상의 연봉을 지급하지만 구직자들은 중소기업이라는 이유로 외면한다”고 말했다.
◇ 중소기업, 비전없고 구시대적 조직문화 만연
김모(30)씨 역시 작은 시공회사에 입사했지만 채 1년을 버티지 못했다. 밥 먹듯 하는 야근, 주말도 쉬지 못하는 근무 환경과 상사의 폭언에 시달리다 결국 회사를 그만 뒀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인 그는 “업계에서 적지 않은 연봉을 받았지만 비인간적인 처우에 크게 실망했다”며 “대기업과 달리 사회의 감시망에서 떨어져 있어 부조리한 대우가 더욱 만행해 있다”고 말했다.
취업준비생들은 낮은 급여보다 대기업 하청에만 매달리는 사업구조와 비전 부재, 구시대적인 조직문화 등을 더 큰 문제로 꼽는다.
대학원을 졸업한 후 지난해 말부터 구직에 나선 이모(28·여)씨는 잇딴 대기업 입사 실패에도 불구 중소기업에는 지원조차 하지 않았다.
‘중소기업은 대부분 대기업 하청이어서 비전이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에서다.
이씨는 “대기업 하청에만 매달릴 뿐 기술력 확보 등에 노력하는 성장가능성이 있는 중소기업이 많지 않다. 급여는 적더라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는 스타트업에 지원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장모(29)씨는 “작은 부품 제조 업체에 입사한 친구가 총무, 비서는 물론 설문조사까지 담당하더라”며 “한 사람이 지나치게 많은 일을 담당하는 등 체계가 엉망인 중소기업 입사는 생각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중소기업에 취직한 신입사원들은 대기업에 비해 낮은 업무수행 만족도가 크게 낮다.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306개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6년 신입사원 채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대졸 신입사원 업무수행 평균 만족도는 300인 미만 기업이 74.8점으로 300인 이상 기업(79.8점)에 비해 5.1점 낮았다. 2014년 같은 조사 당시 격차(3.3점)보다 더 벌어졌다.
중소기업의 조기 퇴사율도 증가 추세다. 300인 미만 기업의 퇴사율은 32.5%로 지난 2014년(31.6%) 대비 0.9%포인트 높아졌다. 반면 300인 이상 기업의 퇴사율은 같은 기간 11.3%에서 9.4%로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정책 지원 못지 않게 중기 스스로 변화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준호 중소기업연구원 본부장은 “무작정 꿈을 갖고 도전해 보라고 외치는 건 공허한 소리”라며 “중소기업만의 장점인 다양한 해외 경험과 단기간의 폭넓은 실무경험 등을 부각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정유신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부조리한 문화를 갖고 있으면서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며 “탈권위, 출퇴근 자유제 등 대기업과는 다른 기업 문화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