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뽀삐 님이 새 글을 올리기 전에 작성하던 글입니다. 귀찮아서 그냥 씁니다.
popipopi 님(이후 포피 님)께서 더 이상 반응하지 않으리라 여겼던 제 예상을 깨고 또 다시 장문의 글을 올려주셨더군요.
잘 읽었습니다.
해당 글에 동의하시는 분들이 계실지는 모르지만 제 입장에서는 보면 볼수록 기가 차는 글이기에, 절필과 동시에 탈퇴를 하신 마당에 추가적으로 글을 작성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하면서도 이렇게 키보드를 두드리게 되었습니다.
지금부터 써내려갈 이야기는 포피 님은 물론 포피님의 글이 언뜻 진솔한 글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께 보내는 제 메시지이며, 부끄럽지만 제 창작론의 일부와 닿아 있다는 점을 미리 말씀드립니다.
1. 그리고 싶은 만화를 그리지 못하는 문제에 대해.
세상에는 빛나는 재능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손톱만한 고품질 다이아몬드를 얻기 위해 나머지 부분을 깎아내야 한다는 건 완전히 무시된 채로, 그들의 재능은 칭송받습니다. 어디선가 갑자기 뚝 떨어진 것과 같은 재능은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마음을 품게 합니다.
혹자는 그들의 재능에 감탄하며 그들이 만들어 내는 결과물에 함께 기뻐할 것이고, 혹자는 그것을 시기하며 깎아내리려 할 것입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은 나에게도 그런 재능이 있지 않을까 하고 막연한 기대감을 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재능을 가진 사람은 흔치 않습니다. 그들을 제외한 우리들의 세상은 재능보다 노력이 더 확실한 결과를 불러오도록 짜여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노력은 노오오오오력과 동의어가 아닙니다. 단순히 ‘성실함’을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평범한 누군가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 일을 맡길 때에는 그의 재능보다 성실함을 봅니다.
성실함은 배신하지 않습니다.
지금껏 성실했던 사람이 새로운 일을 내팽개칠 가능성은 우리가 기대하는 것만큼이나 적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성실함을 증명하지 못하면 제아무리 빛나는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 해도 기회가 주어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나 혼자 골방에 틀어박혀 몇날 며칠 일을 할 게 아니라 누군가와 협조하여 일을 해나가야 하는 경우는 더더욱 그렇습니다.
자신이 재능을 가지고 있다고(혹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굳게 믿는 사람일수록 자신의 잠재력 대신 고리타분한 성실함을 요구하는 상대방에게 답답함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어른의 세계, 특히 금전과 어떤 결과물이 오가는 사람 대 조직 사이에서는 그 무엇보다도 성실함이 먼저 요구됩니다.
나의 번뜩이는 재능을 믿고 모든 걸 맡겨달라는 말을 할 수 있는 건 자신의 성실함과 그에 못지않은 재능을 증명한 사람뿐입니다. 그게 아니면 사기꾼이지요. 그렇게 말하는 사람이 정말 생각지도 못한 다이아 원석일 수도 있겠지만, 앞서 말했다시피 그럴 확률은 희박합니다.
따라서 신인이 초장부터 내 멋대로 일을 휘두를 수 있는 확률은 극히 적습니다. 꾹 참고 하나하나 마무리를 지어가다 보면, 언젠가는 내가 떠맡기 싫은 일도 ‘네가 좀 알아서 해라.’라며 떠밀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나의 성실함을 증명할 수 있는 증거들이고, 그게 어른의 세상이 돌아가는 방식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걸 ‘갑의 횡포’로 치장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이제 와서 아무렴 어떻습니까.
2. 사행성과 뽕빨물
두 번째 항목을 시작하기에 앞서, 제 댓글을 유심히 살피셨을 포피 님께 한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제 댓글 찾기 쉬우셨을 겁니다. 제가 저 불리하다고 글을 지우고 그러는 성격은 아니라서요. 물론 댓글 사진 중에는 예쁜 여캐도 있고 웃기는 사진도 있고 해서 그리 심심하지는 않으셨을 겁니다.
(이미지는 본인의 댓글)
자,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사행성 게임에 돈을 쏟는 사람들이 하는 생각에는 그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습니다.
동등한 소비자 입장에서라면 그래도 괜찮습니다.
남이 돈 쓰는 이유를 내가 억지로 이해할 필요는 없으니까요.
하지만 자신 역시 생산자의 입장일 때, 다시 말해 게임에서라면 개발자, 웹툰에서라면 작가의 입장일 때는 이런 시각이 상당이 곤란합니다.
단지 어떤 작품이 자기 눈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까내릴 수는 있습니다.
철학이 없다든가, 자극적이라든가.
그러나 우리가 어떤 작품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할 수 있는 경우는 그 작품이 전하는 메시지가 윤리 및 도덕적으로 어긋났는지, 혹은 정량적으로 옳고 그름을 판단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을 던질 때뿐입니다.(여기서 정량적이라는 것은 고증 같은 것을 이야기합니다.)
물론 입 밖에 내는 것이 금기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신이 쓴 글이 독자들에게 어떻게 읽히는지 예측하지 못하는 사람 입에서 나올 말은 아니겠지요.
독자들이 자신의 글을 어떻게 받아들이는지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하면서, 다른 작품이 해당 작품을 향유하는 독자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어찌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어떤 작품에 ‘작품성’ 유무를 논하는 것은 본인에게 안목이 없다고 광고하는 꼴이나 다름없습니다.
물론 오로지 섹슈얼리티만을 위한 작품들도 있지요. 헌데 그것은 그것만의 의미가 없습니까?
작품성(이 뭔지는 잘 모르겠지만)은 없을지언정 인간이라면 대부분 가지고 있을 성적 욕구에 대한 해방구가 될 수는 있겠지요.
그런 작품의 의의는 그런 곳에서 찾으면 됩니다.
그런 작품은 독자들의 음흉한 상상력을 최대한 자극하는 것이 덕목에 해당할 것입니다.
3. 증거가 필요한 부분
참고로 나는 특정 업체와 일하는 과정에서 왕따 사건 피해자를
성적인 패티쉬로만 활용하는 만화 장면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여자는 하등한 생물이다'라는 문구가 아무 근거없이
타작가의 전체이용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져 나왔을 때,
내 안에서 온갖 짜증이 터져버렸다.
이 부분에 대해서는 명확한 증거가 필요합니다만, 탈퇴하신 시점에 큰 의미는 없겠지요.
(누가 이런 대사를 썼습니까? 그리고 문맥 상 저 묘사들이 작가의 의도와 일치한다는 증거는?)
하지만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는 응당 증거가 필요하다는 것을 지금부터라도 숙지하시길 바랍니다.
이건 창작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내 주장을 펼치기 위한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오지 못하는 사람이, 자기 작품에는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면밀한 분석을 거쳐 소재를 채용할까요?
글쎄요? 독자들이 추궁하면 밝힐 수는 없지만 그런 게 있다고 얼버무리면 되긴 하겠습니다만.
4. 찻잔 속의 태풍
이미지를 보시면 대형 포털들과 그 외 군소 플랫폼들에 대한 응답자별 이용 빈도 점유율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경멸을 느끼는 대상이 점유율 90%대에 육박하는 포털이 아니라 ‘특정’ 군소 플랫폼이라면 우리가 그의 고뇌에 크게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을까요?
어차피 거의 대부분의 이용자를 휘어잡고 있는 대형 포털의 작품들은 그런 군소 플랫폼의 저질 작품들과는 거리가 멀 것이고, 뒤집어 말하면 대다수의 독자들에게 도덕적으로 타락한 작품을 멀리할 식견이 있다는 뜻이 됩니다.
게다가 그 도덕적으로 타락한 싸이트들에도 환경 탓 안 하고 열심히 작품 활동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혹자는 개운치 않지만 커리어를 위해 누군가의 시선에 도덕적으로 타락한 것으로 비치는 작품을 하고 계실 수도 있지요.
(그래도 그 분들은 연재 종료하면 성실함에 대해선 정당한 평가를 받을 겁니다.)
5. 결국 증명하면 해결될 문제.
포피 님의 가장 큰 문제는 이것저것 언뜻 가치 있어 보이는 것을 설파하면서도, 정작 자신에게는 그것을 증명할 만한 자산이 없다는 것입니다.
이건 1번 항목과도 어느 정도 겹치는 부분입니다. 쌓아놓은 것이 있어야 믿어줍니다.
포피 님의 경우에는 본인이 그렇게 강조하신 ‘약한 사람을 보듬으며 작가의 내면을 투영한 가치를 품고 있는’ 작품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그런 작품을 가지고 계신가요? 헌데 그걸 읽은 독자들이 전혀 공감하지 못했다면, 작품이 나쁜 걸까요, 아니면 독자가 나쁜 걸까요?
하지만 포피 님이 본인 시각에서 옳은 것들이 잔뜩 든 작품을 들고 오셔도 저희는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왜? 독자는 작품에 대해 무엇이든 말할 수 있으니까요.
작가가 뒤에서 '내 작품을 이해하지 못하는 어리석은 민중들'이라고 욕을 한다고 해도요.
잘못된 거 아닙니다. 독자니까요.
6. 도대체 그 자신감의 원천은?
5번 항목과 닿아있습니다.
저는 누가 비평해달라고 하는 거 아니면 남의 작품에 손 잘 안 댑니다.
그게 예의라고 생각하거든요.
물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었습니다.
어떤 분(포피 님 아님. 근데 그 분도 글 잘 지움)이 댓글 다는 사람 의견 싸그리 무시하고 어그로 취급을 하시기에.
물론 제 비평은 크게 의미가 없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포피 님의 작품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으니까요.
하지만 상관없습니다. 제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건 작품의 세밀한 부분보다 그 근간에 위치한 요소입니다.
말씀하시는 걸 보면 ‘막장 마마마’에 대해서 상당히 큰 자부심을 가지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헌데, 막장 마마마에서 마마마를 빼면 뭐가 남습니까?
우로부치 겐이라는 걸출한 라이터가 만들어낸 두 명의 캐릭터, 그것도 한 분기에 걸쳐 천천히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거의 완벽한 캐릭터와 세계관을 빼면요?
마마마의 세계관에서 빌려온 모든 요소를 빼고도 본인의 ‘막장’이 만족할 만한 호응을 얻을 거라고 생각하시는지요?
제가 보기에 포피 님은 짜파게티 요리사입니다.
대기업에서 만든 짜파게티를 사다가 끓이시죠.
물론 물을 끓이고 면을 넣고, 먹기 좋은 상태가 되었을 때 불을 끄고 뻑뻑하지 않을 만큼 물을 남기는 실력은 갖추고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제가 먹어보진 않았지만)
그러나 어디까지나 짜파게티는 짜파게티입니다.
유탕면도, 건더기 스프도, 올리브유도 전부 누군가가 최적의 레시피로 만들어낸 기성품이지요.
진짜 요리사가 수타로 면을 뽑고 신선한 재료를 골라 즉석에서 춘장과 함께 볶은 짜장면과 같은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
본인이 생각하신 소재로 연재 제안을 했다가 리젝 당하셨다고 했는데, 당연한 결과입니다.
짜파게티 요리사를 중국집 주방에 앉히고 전권을 쥐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일단 감자부터 깎아야 하는 거 아닐까요? 하루도 빠짐없이. 열심히.
물론 유료연재를 정상적으로 종료하신 작품이 있다면 제 이야기는 단순히 근거 없는 비난이 되겠지요.(여태 감추어 두셨던 것은 둘째 치고)
7. 그렇게 스토리에 자신 있으신 분이...
제가 실제로 웃었던 부분이 있는데 바로 아래 부분입니다.
'여자는 하등한 생물이다'라는 문구가 아무 근거없이
타작가의 전체이용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져 나왔을 때,
내 안에서 온갖 짜증이 터져버렸다.
오랫동안 참아온 까닭이다.
어머니가 그 문장을 보더니 딱 한소리 하셨다.
'X새끼!'
어머니는 40년차 역사 교사이다.
여기서 도대체 어떤 의미를 도출해야 하는지 평범한 제 머리로는 도저히 알 수가 없습니다.
40년 차 역사 교사이신 어머니께서 육두문자를 날리신 것과 ‘여자는 하등한 생물이다.’라는 문장 사이에 접점이 있습니까?
혹시 그건가요? ‘우리 어머니는 40년 동안 역사를 가르칠 정도의 지적 능력을 가지고 계신다. 따라서 여자는 하등하다는 저 문장은 옳지 않다.’ 이게 아니라면 가르쳐주시기 바랍니다.
이 의도라면 ‘40년 간 역사 교사를 할 정도의 지적 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여성은 하등할 수도 있다.’는 의미로도 읽히거든요.
다시 한 번 언급합니다만, 본인의 글이 독자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가는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시는 것 같습니다.
독자들은 좋은 글이 어떤 건지, 그리고 작가가 어떤 의도로 글을 썼는지 감각적으로 압니다.
감각적으로.
8. 끝으로
정작 시장을 주도하는 큰손들의 사정은 무시한 채 5%도 안 되는 군소 싸이트의 도덕적 타락에 분노하시는 그 모습,
포피 님처럼 파수견 역할을 하는 분들도 계셔야 한다는 건 충분히 압니다.
하지만 그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는다는 말씀 드리겠고요, 다음에는 시장에 파급력 큰 싸이트들이 가지고 있는 위험요소에 대해서 이야기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를 등지고 서면 자기 그림자만 보입니다. 해를 보십시오.
추신 :
1. 내가 말한 내용이 미야자키 하야오랑 같다고 해서, 내가 미야자키 하야오 만큼의 통찰을 가진 건 아닙니다.
2. 세간의 통념 상 절필이라는 건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던 ‘프로 작가’가 스스로 중단하는 것을 뜻합니다.
지망생이 작품 활동을 접는 건 절필이 아니라 포기입니다.
3. 그동안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열심히 글 쓰겠습니다.
4. 제가 하루에 쓰는 원고량 미니멈 5천 자인데, 이 글이 6천 자가 넘습니다.
3월 들어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주경야작하였는데 내가 이러려고 계약서 썼나 자괴감 들고 괴로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