궤변
좋은 작품이 어떤 건지
독자들도 감각적으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예나 지금이나 좋은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건
작가가 약자의 편에 서서 그들의 삶을 보듬는 작품이다.
나올 수 있는 많은 대답중의 하나라 생각한다.
3월의 라이온이 그렇고, 미생이 그렇고, 그대를 사랑합니다가 그렇다.
그것은 잘 팔리고 안 팔리고의 문제가 아니다.
작가가 사회적 약자를 보듬지 않으면 누가 그들을 보듬을까라는 질문에
내 자신이 달리 할 말이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국가가?
아니. 그건 이 시점에선 글러먹은 대답이다.
세월호 사건이 터지고,
초등학생들이 여중생을 강간하며,
같은 반 여학생을 모텔로 끌고가서 집단폭행하고 윤간하는 세상이다.
갈수록 사람들이 퍽퍽해진다는 것을 수도 없이 느꼈다.
이런 시대에 내가 무엇을 그려야 하나 자문하다가,
현 시대를 살아가는 학생들의 만화를 그리기로 했다.
이 이야기 속에서 내가 설정한 인물들은 하나같이
자기 안에서 소중한 가치를 잃고 비틀려져 방황하는 사람들이었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함으로 인해 불안한 나머지,
자기 장래에 대한 확신 없이 그냥 남들처럼 하루하루 공부하고,
친구들과 잡담하고 놀며 세상에 대한 자신의 기분을 애써
외면하려는... 그런 인물들이 계획되어 있었다.
왜냐하면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건 '빠꾸'를 먹었다.
업체가 노리는 시장성은 그쪽에 있지 않았다.
만화를 그리다 보면 자기가 원하는 것을 그릴 수 있는 때가 있고,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음지에는 그렇지 못한 작가들이 훨씬 많다.
시장에서 잘 팔릴 연애 만화를 그려야 했다.
얼마 안가 내 자신을 향한 혐오감과 경멸감이 쏟아졌다.
나같은 경우는 그것을 누르느라 내내 힘들었다.
물론 권한은 업체쪽에 있으니
내게 주어진 선택권은 그리 많지 않았다.
업체가 금전적인 이득을 노리는 것은 분명 틀린 것이 아닌데,
작가라는 타이틀이 낯부끄럽고, 낯설고,
너무나도 왜소해지는 건 왜였을까.
사행성이 있으면 안 하면 되고,
작품성이 없으면 알아서 거르면 된다라는 것은,
소비자의 입장에서 맞는 말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것은 대체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그래서 그 맞는 말 속에,
나같은 제작자의 입장은 들어갈래야 들어갈 수가 없는 것이다.
시장성이 아닌 작품성을 논할 때
실제 이야기를 각색해서 그리려면
작가 스스로 뉴스 기사나 문헌을 반복해서 읽으며
내용을 딸딸 외울 정도로
사건 피해자들의 감정과 기분을 상상하고 헤아려야 한다.
실제 피해자들과 작가의 감정이 일치되어있지 않으면
자기화는 이루어질 수 없고,
페이소스나 진솔한 장면은 작품 속에서 나올래야 나올 수가 없다.
상상만으로 이야기를 진행하는 경우 가당찮은 갈등이 나오는데
나는 그것을 내내 '거짓갈등'이라 불러왔다.
장면 속에서 작가가 다루고자 하는 중심 가치가 없기 때문이었다.
이를테면 '저 여자 가슴이 커, 내 가슴이 커?'같은 질문에
어떻게든 주인공이 대답해야 하는 선택을 강요받는.
참고로 나는 특정 업체와 일하는 과정에서 왕따 사건 피해자를
성적인 패티쉬로만 활용하는 만화 장면을 보고
피가 거꾸로 솟구치는 걸 느낀 적이 있다.
'여자는 하등한 생물이다'라는 문구가 아무 근거없이
타작가의 전체이용가에서 아무렇지 않게 튀어져 나왔을 때,
내 안에서 온갖 짜증이 터져버렸다.
오랫동안 참아온 까닭이다.
어머니가 그 문장을 보더니 딱 한소리 하셨다.
'X새끼!'
어머니는 40년차 역사 교사이다.
오락성과 쾌락성을 위해 일부작가들이 선을 넘어버렸는데,
그들은 그것을 장르와 만화의 다양성이라 불렀다.
하지만 그 상품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시장에서 아주 잘 나가는 중이다.
자극적이니까.
일반 독자를 위한 네이버나 다음을 중심으로 만화를 보는
독자들은 잘 모를 것이다.
솔직히 그 당시엔 그런 만화를 사준 소비자들이 밉다 못해 경멸스럽기도 한 것이 사실이었다.
이전 내 짧은 글에 나온 '소비자'라는 것을 '전체 소비자'로 받아들였다면
응당 오해할 만 하다. 댓글에도 써놓았지만 내가 그 글을 쓰며 머릿속에 떠올린 건 전체가 아니라 특정이다.
...예전에 내가 오유에 prrr이라는 닉네임으로 스토리 관련 8편의 강의글을 써놓은 적이 있다.
그때처럼 마지막으로.... 스토리 관련해서 이야기를 좀 하고 싶다.
상업성쪽으로 확 기울어져 섹슈얼리티나 애로티시즘에 의존하는 그런 이야기가 아닌,
정말 굵직한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분들에게 드리고 싶은 말이다.
'적대적이고 부패한 세계 속에 인물을 배치한 후 그 인물을 깊이 파고들면
입체감과 인물묘사를 뽑아내기가 다른 장르보다 훨씬 수월해진다'는 것을 가장 먼저 알아두셨으면 좋겠다.
적대적인 세계로의 설정은 공부가 정말 많이 된다.
그리고 시대나 역사를 모티브로 차용해서 이야기를 쓰면 작가가 역사를 공부안 할수가 없게 되어
작가 스스로 단단해지고 이야기는 당연히 리얼리티가 살아있게 된다.
그래서 이야기가 붕 뜨지 않게 된다.
다소 작은 세계관 속에서 자신의 감정을 진솔하게 써내 울림을 주는 것도 좋은 방식이다.
개인적으로 네이버의 '여중생A'를 상당히 좋아한다.
물론 이 모든 작품들의 중심에는 '가치'라는 것이 들어있어야 한다.
친구라는 가치도 좋고, 가족이라는 가치도 좋고,
자신이 소중하다고 여기는 가치가 있다면
뭐든지 이야기로 만들어 낼 수 있다.
작가 스스로 수많은 가치중 어떤 가치를 지금 가장 다루고 싶은가,
혹은 어떤 가치가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나 자신은 생각하는가에 따라
전체 방향을 결정하고 이야기를 다룰 수 있게 된다.
참고로 이런 걸 많이 스스로 답해보면 좋다.
'국가'와 '개인'중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까?
'내가 사랑하는 사람'과 '이름은 모르지만 다수의 세상 사람들' 중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까?
'내 감정'과 '당신의 감정'중 무엇이 더 소중한 것일까?
'자유'와 '안보'중 어느 것이 더 소중한 것일까?
'당장의 돈'과 '언제 올지 모르는 황금빛 미래'중 어떤 것이 더 소중한 것일까?
양립할 수 없는 두개의 소중한 가치중 어느 한쪽을 위해 다른 한쪽을 버려야 한다는 것은
굵직한 이야기의 핵심이다. 이런 비극이 거듭될 때 페이소스라는 것이 생겨난다.
가장 소중한 가치를 위해 다른 소중한 가치를 버린다는 의미이다.
실제로 우리는 자신의 억화 심정을 위해 악다구니를 질러 부모님의 기분을 망가뜨리게 될 때가 있다.
자신의 감정을 위해 부모의 감정을 희생시키는 것이다.
나이트런은 이런 딜레마의 진의가 반복적으로 잘 드러나 있어 좋아하고 있다.
반대로 내가 좋아하지 않는 만화는 이런 가치에 대한 작가의 고민이 담겨있지 않고
전투씬만 계속 그리거나 얼빠진 농담으로 장면을 채워 이야기에 힘이 없다.
아무리 일본만화가 상업성이 강하다 해도 거기엔 작가 자신의 자기투영이 어느 정도 들어가 있다.
거기서 가치라는 것이 나오게 되고 거기서 차이가 나게 된다.
가치라는 정신적인 것에 대한 고민이 없으니 무게감이 떨어지고 텍스트 퀄리티도 떨어지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자면 취향이 아니라 클래스라고 여기는 부분이다.
사실 나는 이미 오래전부터
작품 100개를 보면 만족할 수 있는 게
1-2개가 될까 말까여서 솔직히 남들보다 염증을 많이 느껴왔다.
내 재능은 쓰레기에 가까울 정도로 전무했기 때문에
10년 넘는 기간동안 내가 본 모든 영화, 만화, 소설의 장면과 대사를 전부 카피하고 받아써왔다.
인문학쪽과 이과계열 쪽도 부족한 머리로 어떻게든 해왔다.
실로 무식한 짓이었고 두번 다시 하고 싶지 않은 짓이지만, 그것이 나를 성장시켜온 것은 틀림없다.
참고로 이전 글에 어떤 분이 막장 마도카마기카 정도의 퀄이면 200컷 가능하겠다고 조롱 비슷하게 써놓으셨는데,
그 만화는 그 날 일어나서 그 날 스토리 쓰고 그 날 그려서 올린 콘티만화이다.
마도카 팬분들과 업체 편집자 분들이 보고 상당히 좋아해주셨던 만화이니, 내 부족한 표현에 대해선 비판할 망정,
그림만 슥 보고 단언하는 것은 조금 피해주셨으면 좋겠다. 만화는 그림이 전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저 당시는 내게도 왜색이 남아 있어서 일본식 대사를 습관처럼 썼다. 보신 분들은 아시겠지만
만화 자체는 즉흥적으로 쓴 것 치고는 나름 괜찮게 나온 편이다.
애니 좋아하고 출판만화식 발그림이라도 괜찮다면, 안 보신 분들은 한번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거라 생각한다.
이제까지 살아오면서 내 나름대로는 없는 재능에 정말 열심히 해왔다고 생각했는데 잘 안된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한 마음에 무심코 쓴 글이 베오베까지 가면서 오유 이용자 분들 불쾌하게 했다.
죄송하다.
이미 나는 얼마전에 작가를 그만두었기에 죄송하다는 이 말이
내 밥그릇을 위한 립 서비스가 아니라는 것 정도는 알아주셨으면 한다.
분명 내가 잘못 표현한 부분이 있으니까 반응이 그렇게 나온 거라 생각한다.
확실히 나는 덜 컸다.
...그래도 오랫동안 스토리라는 것을 진심으로 대해왔다고 생각한다.
도전만화를 거쳐, 베도를 거쳐,
부족한 그림에 출판형식으로 180, 200컷 그리느라 하루에 16~18시간 정도를
강행군 했던 기억이 난다. 확실히 난 미쳐있었다.
그렇게 해서 정식으로 오기까지 딱 2년반~3년이 걸렸다.
몸은 많이 망가졌었다.
당시 조회수가 평균 8만~18만 정도로 괜찮은 편이었지만, 그 때는 포텐업이라는 개념조차 없었고
웹툰 플랫폼도 3,4개밖에 없었다.
그래서 무급이었고, 버티고 버틴 끝에 드문드문 작가 생활을 한다는 것이 내 마음을
조금이나마 지탱해준 것 같다.
그러나 나도 한계에 다다라서 이름없는 작가는 이제 그만 여기서 절필하는 게 좋겠다 판단한다.
이전 글에 달린 댓글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고,
이미 오래전에 팝픽이니 티테일이니 여러 일들로 인해 마음에 금이 간 탓이다.
그래도.... 만화는 참 좋았다.
비록 나는 실패했지만 다른 작가분들이 더 좋은 만화 그려주셨으면 독자로서 정말 좋겠고,
자신을 필요이상으로 깎아먹거나, 혹은 작가들이 누군가에게 속지 않아도 되는...
그런 좋은 환경이 언젠가 왔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20대 작가분들이 잊지 않아줬으면 하는 내 개인적인 바람을 담는다.
오만하다 느껴도 좋으니
잊지 말아줬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