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사군은 뭐... 어휴,, 수렴되지 않는 싸움이네요 ㄷㄷ
그냥 한번 제가 생각해본 한사군 문제입니다.
(쓰다보니 높임말이 아닌 낮춤말로 썼습니다. 양해바라며 편하게 읽어주시길 바랍니다.)
A: 한사군은 한반도에 없었다. 기록들이 다 말해주고 있다.
ㄴ제생각: 어.. 기록들을 보니 좀 이상하긴 허네?
B: 사서말고 고고학 증거들을 봐라. 평양에서 나온 유물유적들 이만큼이나 있다. 증거도 없이 날조하고 있네.
A: 그거 다 일제의 조작임
ㄴ제생각: 흠... 일제의 조작이 전혀 없지는 않았겠지만..
고조선 말에 중국 연,조,제나라 유민 유입이 엄청났고
중국의 영향을 받은 유적들이 분명 한반도 북부에서 나오고 있어...
현실적으로 중국이나 북한 쪽 땅을 직접 파헤쳐 발굴하고 조사할 수 없어서 안타깝긴 하지만
한사군 요서설은 고고학적 증거가 전혀 없잖아.
A: 이것봐라 이것봐라 요서에서 임둔태수 봉니 나왔다.
ㄴ제생각: 어????
B: 한반도 낙랑 금석문,봉니들 400여개가 더 설득력 있나? 요서 봉니 1개가 설득력 있냐?
ㄴ제생각: 그래 그건 맞어, 근데 한사군 요서설 주장하는 쪽에서 좀 더 심한 사람들은
한사군 자체가 없었다고도 했는데;; 어쨌뜬 한사군이 존재했다는 사실 하나는 빼박 팩트군. 하나는 정리되었다. ㅎ
A: 낙랑에서 나온 목간은 원래 요서에서 만들어 진 것을 나중에 한반도로 망명한 사람들이 들고 온거 아니겠나
B: 요서에서 나온 봉니는 원래 한반도에서 만들어서 요서로 보낸 거 아니겠냐?
ㄴ제생각: 양쪽 다 절대 수렴되질 않아 ㄷㄷㄷㄷㄷㄷ
A: 한사군이 한반도에 있고 갈석산이 황해도에 있으면 진나라 만리장성이 황해도까지 오냐?? 저 매국학자들
ㄴ제생각: 워워.. 인신공격은 자제하셈... 위치비정 자체가 누가 하든 다 지명유사성으로 때려 맞추는 것이긴 한데...
이병도의 위치비정도 몇개 분명한 것으로 보이는 몇개 현 빼고는 다 추측으로 될 수 밖에 없었고..
이병도의 수성현, 갈석산 비정을 중국에서는 <<진나라가 황해도까지 먹었징, 조선이 요동에 복속했고 만리장성을 황해도까지 지었징>>하고
낼름 받아 먹고 이용하기는 했지... 하지만 이병도 역시 진나라의 만리장성 한반도 연장에 대해서는 부인했는걸?
A: 요동군 험독현이 조선왕 만의 도읍이랬어, 고조선은 망할 때까지 요령쪽이 중심이었던 만주의 큰 나라야.
B: 사서의 기록은 정확하지 않아, 더군다나 중국이 머나먼 곳의 일을 사관이 듣고 들은 걸로 기록한 걸,
그러므로 모든 기록에 대해서는 교차검증과 고고학적 유물이 뒷받침되어야 사실이 될 수 있어.
ㄴ제생각:
고조선은 연나라와 맞짱뜰 정도로 성장하기 전까지는..
즉, 만주,한반도의 여러 크고 작은 부족사회들이
<중국세력과의 경쟁으로 자극받아 성장한 조선이라는 집단>이 주도하기 전까지는..
제국이라고 하거나 할 수 없는 것 같아. 당연한거지..
그냥 예족,맥족,한족들이 각기 집단을 이루고 있는 샤먼 단군들이 제정일치하는 부족국가들?
일단, 학계에서도 고조선의 중심지 이동설이 있지.. 난 그게 가장 타당하다고 본다.
요동군 험독현이라는 곳은 고조선이 연나라에 요동을 잃고 한반도 평양으로 오기 전에 중심지이지 않았을까?
기원전 4세기, 연나라의 지배를 받게 된 요동지역은 연나라 문물이 들어왔고
요동에 남아 피지배 당하던 조선인들도 그 영향을 받았을테고
이후 중국의 혼란으로 더욱 하북,산동,산서 지역 사람들이 만주,한반도로 피난 오면서
그들의 유입으로 만주한반도에서 가장 중국과 가까웠던 조선이 다채롭게 발전해 나갔고,
위만조선에 이르러서는 주변의 예맥,임둔,진번,옥저,진국,개국 등을 통제하며 중국에 맞서는 국가로 발전한 거 아니겠어?
(위만은 연나라에서 왔지만, 어쩌면 연나라의 지배를 받던 요동지역 옛 조선인이었을지도..)
그리고 나서 흉노에 시달리던 한나라가 조선의 성장을 위협으로 느껴 조선을 정복하고 한사군 설치..
조선의 후기 중심지가 평양이었으니 한사군도 한반도 북부에...
사서의 기록들이 좀 헷갈리거나 이상한 부분들은..
그거 같다. 낙랑군이 고구려에 축출 당하고 나서..
낙랑의 중국계 사람들이 요서쪽으로 도망가니까
그때 나라가 ... 한족의 진나라? 아, 선비족 연나라였나..
하이튼 여간에 요서에 낙랑군을 설치해서 백성들을 거둬들였다던데..
그래서 이후에 기록들이 엉킨 것들이 아닐까??
현도군도 원래 있던 곳에서 고구려에 쫓기면서 제1 -> 제2 -> 제3 현도군으로
점점 서쪽으로 밀려나 무순 지방까지 밀려났듯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