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에 간 글을 보고 과거에 읽었던 글을 퍼와봅니다.
시작하면서
고대 이스라엘이라는 주제는 상당히 흥미로운 탐구의 대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실 이스라엘이라는 나라의 역사 자체는 고대 근동의 역사적 전개에 끼친 영향력이 매우 미미합니다. 한번도 강대국이 되어본적이 없었으며, 그렇기 때문에 관련된 기록이나 유물도 변변치 않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적 비중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의 역사가 인류의 정신문명사에 끼친 영향은 어마어마합니다. 헬레니즘과 함께 서구 문명의 한 축을 이루는 헤브라이즘이 거기에서 탄생했으니까요. 이러한 극단적인 대비가 더더욱 고대 이스라엘 역사를 흥미롭게 만듭니다.
하지만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를 정확히 재구성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작업입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역사에 대한 기록은 거의 전적으로 구약성서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바로 이것이겠습니다. "과연 구약성서는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는 문서인가?"
결코 쉽지는 않은 문제
우리 주변에서는 성서에 대해서 매우 극단적인 두 견해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근본주의 개신교인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는 진리", 둘째는 비그리스도교 신자나 그리스도교에 반감이 있는 분들이 흔히 이야기하는 "그냥 환단고기급 판타지". 과연 진실은 무엇일까요? 결론부터 말하자면 둘다 틀렸습니다. 그리고 덧붙여서 고대 이스라엘 역사에 대해서도 아주 잘못된 이해들이 돌아다니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이스라엘의 역사를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이기 때문에, 이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이 시리즈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사료로서의 구약성서
구약성서의 사료로서의 가치에 대해서 의문을 표하게 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것이 종교의 경전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곳곳에서 드러나는 신화적인 요소들과 내용상의 불일치, 다른 고대근동 문서들과의 유사점 등이 이러한 의문을 더욱 강하게 만듭니다.
물론 구약성서는 현대적 의미에서의 '역사서'라고 할수는 없습니다. 성서 저자들의 동기는 어디까지나 역사적 사실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신학적 의도를 담아내는 것이었으니까요. 이는 근대 이후 발전해온 본문비평과 역사비평을 통해서 증명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가 있습니다. 바로 이 시기 문서치고 안 그런게 없다는 점입니다. 이집트, 히타이트, 바빌로니아, 아시리아... 어느 나라를 보든 역사서술법은 구약성서의 서술법과 비슷합니다.
"성서를 보면 신이 등장해서 기적을 일으키고 적군을 섬멸시킨다. 이게 어떻게 역사서냐?"라는 반응은 당연히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집트 기록중에 유명한 투트모스 3세의 카르나크 비문을 한번 볼까요? 여기를 보면 아문신이 파라오의 군대의 앞장을 서며 팔을 뻗어 그들을 돕는다는 표현이 수두룩하게 나옵니다. 다른 근동 기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이들을 사료로 쓰고 있습니다.
이것을 이해하려면 기본적으로 고대근동이라는 우리와는 거리적, 시간적으로 멀리 떨어진 곳의 문화적 심성을 이해해야 가능한 일입니다. 근동에서 왕들은 신이거나 신과 백성들 사이의 중재자였습니다. 그런 배경 하에서 저런 서술이 나오는 것이지요. 다소 골치아프긴 하지만 고대근동을 이해하기 위해 거의 유일한 사료들은 이런 방식으로 쓰여진 텍스트들 뿐입니다. 따라서 이집트, 히타이트, 아시리아의 역사를 재구성하는데 이런 기록들이 사료로 쓰인다면, 구약성서 역시 사료로 쓰이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단, 사료비판과 교차검증을 거친다면 말입니다.
둘째. "구약성서는 철저히 이스라엘 입장에서 쓰여진 책 아니냐? 그래서 사실 왜곡도 많다"는 반응도 나올 수 있습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고대 근동 문서는 다 그래요.
멀리 갈것도 없이 카데쉬 전투 하나만 봐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까?
고대세계에서 역사를 쓰는 저자들은 우리가 아는 것처럼 '객관적인 사실을 기록해 후대에 전한다'는 관념 자체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고대, 특히 근동에서 역사서술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왕이나 신의 위업을 기록하는 것이었지요. 역사 자체가 종교적 텍스트를 겸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목적에서 벗어나서 우리가 생각하는 역사서의 개념이 최초로 등장하는 것은 아시다시피 훨씬 후대인 헤로도토스, 투키디데스부터입니다. 하지만 그조차도 현대적 관점의 역사서는 아니지요.
실상 역사를 쓰는 사람들이 사료비판을 거친 객관적인 사실 서술에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진 것은 르네상스 이후의 일이며,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서술 방법론이 발전하는 것은 19세기의 일입니다. 그러니 3,4천년 전에 살았던 사람들한테 "왜 과학적, 객관적 방법으로 역사를 쓰지 않았수?"라고 따질 수는 없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이스라엘 역사는 어떻게 재구성을 할까요?
우선 구약성서를 기본 텍스트로 삼고, 이것을 비록 양적으로 많지는 않아도 다른 고대근동문서와 대조하고, 또 고고학적 성과와 비교하며 교차검증을 거친다면, 완벽하지는 않아도 대략 그 역사의 재구성은 가능해집니다.
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이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 합니다. 약속대로 오늘부터 시작은 하였지만, 끝내려면 얼마나 걸릴지 모르니만큼 장기적으로 잡고 가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급적 빠른 시일 내에 완결지으려 노력하겠습니다.
덧. 성서 구절을 직접 인용할 필요가 있을 때에는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번역 2005년판 '성경'을 이용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재로서는 가장 원문에 충실한 번역본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한줄 요약: 그 때 역사서는 다 신이 나와서 기적을 일으키는 내용으로 가득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