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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하준 "이미 파탄난 신자유주의, 왜 뒷북치며 따라가나"
[ 2008-09-19 21:35:12 ]
미국발 금융위기로 세계경제가 혼란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사태가 어떻게 전개될지, 우리나라는 어떤 상황에 있는 것인지 영국 캠브리지 대학교 장하준 교수를 연결해서 말씀 듣겠습니다.
▶ 진행 : 고성국 박사 (CBS 라디오 '시사자키 고성국입니다')
▶ 출연 : 영국 캠브리지대학 경제학과 장하준 교수
( 이하 인터뷰 내용 )
- 미국정부가 AIG에 대한 긴급 구제금융을 제공했지만 미국의 금융위기는 계속되고 있습니다. 미국정부의 긴급 구제금융을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상황이 이렇게 되면 아무리 시장주의를 좋아하는 정부라도 구제금융을 안 할 수가 없거든요. 일본이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했던 것도 구제금융을 너무 늦게 하고 제대로 안 해서 그런 거니까 지금 같은 상황이 오면 구제금융을 하는 게 맞죠. 그런데 문제는 이렇게 해놓고 부담은 결국 납세자들이 지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옳은 방법은 이런 일이 벌어지면 규제를 제대로 해서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하는 건데, 규제완화는 규제완화대로 해서 금융가에 있는 사람들이 자기들 돈 벌 건 다 벌고, 그 다음에 일 어려워지면 정부가 납세자 돈으로 메워주는 건 장기적으로 보면 옳지 않죠.
- 특히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시키고 AIG는 구하는 식으로 원칙이 없다는 비판이 일면서 '정실자본주의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그럼요, 정실자본주의죠. 97, 98년에 한국과 아시아 외환위기가 났을 때 아시아만 그런 게 있는 것처럼 얘기했지만 사실 그런 건 다 자기들도 하는 거거든요. 우리는 순진하게 믿으면서 미국은 항상 올바르고 원칙에 맞는 일만 하는 나라라고 생각하는데 그런 게 아니죠.
- 미국의 금융위기가 수습단계로 들어섰다고 보십니까, 아니면 앞으로 더 확산될 거라고 보십니까?
아직 한참 남았죠. 지금 미국정부에서 너무 급하니까 악성부채들을 정부가 다 떠안겠다는 안까지 나오고 있는데요. 지금 문제는 금융위기가 한창 진행형이지만 실물위기는 아직 시작도 안 됐거든요. 이런 식으로 금융이 말려들기 시작하면 돈 빌리기 어려우니까 기업들이 투자를 못해서 일자리도 못 만들고, 금융기관이 망하면 거기서 해고되는 사람들이 생기고, 그 금융기관과 거래해서 먹고살던 사람들도 일자리를 잃어버리게 되고, 그런 식으로 하면서 실물에서 소비가 위축되면 또 그게 다시 파급효과가 오는 거거든요. 그런 게 다 지나가고 해소되려면 2,3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는 "헤지펀드 수백 개가 떼도산을 할 수도 있다"는 경고도 하고 있는데요?
제가 지금 할 수 있는 얘기는 '누가 망할지는 모르지만 누구라도 망할 수 있다'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특히 지금 어려운 건 지난 20년 동안 금융자유화가 되면서 굉장히 복잡하고 투명하지 않은 파생상품과 복합상품이 많이 생기고, 조세도피처나 역외자본 같은 게 생겨서 사실 지금 아무도 어떤 회사의 부실이 어떤 규모인지 알 수 없거든요. 아마 본인들도 잘 모를 겁니다. 회사 입장에선 부실규모를 축소해서 발표하는 게 자기 이익에 맞겠지만요. 그러니까 본격적으로 터진 건 2007년 여름이지만 2006년 말에 처음으로 미국의 서브프라임 문제가 제기됐을 때 미국 정부는 부실규모가 500~1000억 불이니까 금방 해결된다고 했거든요. 그런데 지난 몇 달간 미국정부가 투입한 공적자금만도 직접적으로 투입한 게 5000억, 간접적으로 시장에 유동성 푼다고 투입한 게 4000억 정도 돼서 총 9000억불 정도를 투입했어요. 처음엔 500~1000억 불을 얘기했는데, 그러니까 아무도 정확히 규모도 모르고 어디에 악성부채들이 숨어있는지도 모르기 때문에 루비니 교수 말이 맞을 수도 있고요. 제가 드릴 수 있는 말씀은 누가 망할지는 모르지만 누구라도 망할 수 있다는 거죠.
- 미국정부가 구제금융을 해서 개입하면 이 사태를 수습할 능력은 가지고 있는 겁니까?
그건 모르죠. 문제의 크기가 얼마나 되는지 아직 잘 모르기 때문에. 예를 들어 덜컥 모든 악성부채를 정부가 떠맡아서 해결해보겠다고 했는데 너무 규모가 커버리면 미국정부도 다른 정부보다는 능력이 뛰어나지만 한계가 있는 건데, 문제의 규모가 어떤지 모르기 때문에 어떻게 될지는 말씀을 못 드리겠네요.
- 이런 위기의 근본원인은 어디에 있다고 보십니까?
기본적으로 70년대 말부터 시작된 금융규제완화와 자유화에서 문제를 찾아야죠. 과거 50~70년대 중반까지는 금융과 실물이 동반하는 관계였는데, 금융이 고삐가 풀리면서 지금 금융기관이 하는 많은 부분의 일들이 실물경제와는 상관없이 금융자산 가지고 먹고사는 거거든요. 그렇게 되다보니까 점점 실물과 금융이 괴리가 생기면서 자꾸 거품이 생기는 거죠. 이미 80,90년대 개도국을 시작으로 해서 거품이 생겼다가 꺼지면서 문제가 된 것이고, 미국도 90년대 후반에 닷컴 붐부터 시작해서 거품이 엄청나게 끼었는데 그게 처음에 주식시장 나스닥에 끼었다가 빠진다고 하니까 경기 살린다고 이자율 내려서 그게 주택시장으로 옮겨가면서, 말하자면 거품을 계속 돌려막기를 한 거거든요.
- 그린스펀 의장이 있을 때 그런 상황이 벌어진 거죠?
네. 그러나 결국 한계가 온 거죠. 금융이 아무리 괴리가 돼도 어느 점엔가는 실물 부분과 연결이 되어있는 거니까 결국 무리하게 돈을 꿔서 집을 산 사람들이 못 갚고, 가계부채 때문에 파산하고, 기업들이 도산하기 시작하니까 결국 문제가 터진 거죠.
- 이런 상황을 신자유주의라는 정책기조의 실패라고 볼 수 있을까요?
그렇죠. 신자유주의가 가장 자랑했던 게 그런 식으로, 특히 금융 부분에서 규제를 완화해서 자본이 제일 수익성이 높은 데 왔다갔다하게 해야 경제가 잘된다고 주장했는데 그 시스템의 한계가 명확하게 드러난 거죠.
-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신자유주의가 파탄을 보인 건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도 신자유주의가 대세인 것처럼 여겨지고 있지 않습니까?
네. 원래 변두리에 있는 나라들은 중심국에서 한물 간 걸 받아서 하는 경우가 많은데 우리도 그런 게 아닌가 싶어서 걱정됩니다. 한 1년 전까지만 해도 그게 맞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지만 지난 1년 동안 국제금융시장을 비롯해서 세계경제가 신자유주의의 결과로 망가져가는 걸 보면서도 우리는 이걸 해야 한다고 우기는 분들을 보면 이해가 안 갑니다.
- 이번 사태와 관련해서 우리 정부는 "이번 위기로 오히려 불확실성이 제거됐다, 수출은 어려워지더라도 내수는 회복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는데요?
불확실성은 계속되는 거죠. 솔직히 저를 포함해서 2주일 전에 백 년 이상 대공황까지 살아남은 리먼브라더스나 메릴린치 같은 기업들이 망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그리고 루비니 교수의 말처럼 헤지펀드들도 불확실 상황이 계속되는 거죠. 그리고 수출이 안 돼서 내수가 상대적으로 좋아지면 그게 좋은 거라고 하는 건 완전히 억지소리라고 보는데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수출의존도가 너무 높다고 걱정하면 '세계화 시대에 촌스러운 소리 하지 말라'고 하던 분들이 이제 와서 언제부터 자기들이 내수 걱정했다고, 그것도 절대적으로 내수가 좋아지는 게 아니라 수출이 찌그러지니까 상대적으로 좋아지는 건데 그런 식으로 해서 내수 비중이 올라가는 게 좋은 거라고 말하는 건 상황이 변하는 데 따라서 말을 바꾸는 거죠.
- 산업은행이 리먼브라더스 인수를 추진했던 걸 두고 '그만큼 우리나라 국력이 커진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는데요?
저는 그것 때문에 국제무대에서 웃음거리가 됐다고 보는데요. 사실 리먼브라더스는 파산선고 하기 전까지 영국의 유수 은행인 바클레이즈나 미국의 뱅크오브어메리카 같은 기업들이 인수하려고 했다가 인수했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으니까 미국정부에 채권 최소한 일부라도 보증해달라고 나왔는데 미국정부가 그렇게는 못하겠다고 해서 다 발을 뺀 거거든요. 그런 몇백 년 역사를 가진 유수한 선진 금융기관들도 머리 내저으면서 도망간 금융기관을 우리나라 산업은행이 데려다가 무슨 수로 살립니까. 그리고 설사 운이 좋아서 살렸다 하더라도 왜 우리나라 납세자 돈 가지고 운영하는 산업은행이 가서 미국의 망한 은행을 도와줘야 합니까. 그건 우리나라에서 굉장히 잘못 인식하고 있는 겁니다.
- 지금 시점에서 우리 정부에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노무현 정부 때부터 시작해서 금융허브니 금융중심지니 하면서 계속적으로 우리 정부가 금융자유화와 규제완화를 통한 금융산업의 발전이라는 노선을 추구해왔는데요. 저 개인적으로는 이런 걸 계기로 해서 그런 노선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최소한 그걸 지지하는 분들도 한번 재고는 해보셔야 하지 않느냐는 겁니다. 왜냐면 그분들이 바라는 모델이 미국식의 금융자본주의이고, 그 미국식 금융자본주의의 꽃이라고 하는 것이 최근에 망한 리먼브라더스 같은 투자은행인데, 지금 1등부터 5등 하던 것 중에 3,4,5등은 없어지고 1,2등도 휘청휘청하잖아요. 모건스탠리는 중국에서 돈 받아서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는데, 지금 그렇게 엄청난 문제점이 드러난 모델을 왜 우리가 뒷북치면서 쫓아가야 하는지 다시 한번 생각해봐야 한다고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