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7년 시리아와 예루살렘 + 이집트 간의 공방전을 묘사한 지도입니다.
해를 넘겨 1167년이 밝았습니다. 십자군 국가들의 눈을 피해 시나이 사막을 지나 행군하여 이집트 영토에 도
착한 시리아군의 앞에는 해로를 통해 먼저 도착한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와 사와르가 파견한 이집트 군이 기
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말릭보다 먼저 이집트에 도착하여 사와르를 격파하고 뒤늦게 도착한 아말릭 1세의 군
대마저 격파한다는 시르쿠의 계획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누레딘 휘하에서 산전수전
다 겪은 시르쿠가 그저 손놓고 있을 사람이 아니었죠. 시리아 군은 그 주축이 기병대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
런 연유로 아말릭과 사와르의 군대보다 기동력에서는 훨씬 앞서있었습니다. 시르쿠는 이 기동력을 무기로 승
부를 걸기로 합니다. 시르쿠는 노련한 용병으로 일단 적들을 혼란에 빠트리기 시작합니다. 정신없이 치고 빠
지면서 적들을 혼란에 빠트린 뒤에 본대를 이끌고 기자의 대 피라미드 근처로 빠른 속도로 이동하기 시작했
습니다. 그 뒤를 분노한 아말릭 1세가 이끄는 예루살렘 + 이집트 군이 따르고 있었죠. 발빠른 기병을 이용하
여 적을 유인한 뒤 격파하는 것은 시리아군의 주축인 투르크 기병들의 대표적인 전술중 하나였지만 어째서인
지 아말릭 1세는 이 전술에 꼼짝없이 걸려들고 만 셈이었습니다.(전투 경험이 없는 사람도 아닌데 왜 그랬을
까요? 미스테리입니다.) 신나게 적을 추격하던 아말릭이 시리아 군을 간신히 따라잡은 곳은 나일강 유역의
비옥한 경작지가 끝나고 사막이 시작되는 언덕이었습니다. 이곳에서 달아나던 시리아 군은 반전하여 공격을
가해오기 시작했고, 이곳은 모래로 이루어진 급경사 지역이라 사막에 익숙한 시리아 군에게 훨씬 유리한 상
황이었습니다. 본격적인 전투가 시작되자 아말릭은 시리아군의 중앙에 기사들과 기마 궁사들로 구성된 부대
들을 돌격시켜 맹공을 퍼부었습니다. 시리아군의 중앙을 지휘하고 있던 사람은 살라딘이었는데 적들이 공격
하자 어느정도 맞서 싸우다가 서서히 힘에 부치는 듯 군대를 뒤로 물리기 시작했습니다. 이것 자체가 시르쿠
와 살라딘이 상의하여 짠 작전이었는데도 아말릭은 적의 중앙이 붕괴되기 시작했다고 생각, 이곳에 전 병력
을 밀어넣어 그야말로 "닥돌"을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너무도 당연하게도 시리아군의 좌익과 우익이 아말릭
군대의 배후를 우회하여 포위하기 좋은 형국이 되었고, 아말릭의 대군은 이곳에서 포위되어 전멸에 가까운
대패를 당하게 됩니다. 아말릭과 그를 호위하던 몇몇 기사들만이 간신히 혈로를 뚫고 카이로로 도주할 수 있
었죠. 이 전투가 바로 1167년 3월 18일에 벌어진 알 바베인 전투입니다. 이 어처구니 없는 패전 소식은 알렉
산드리아에 주둔하고 있던 사와르에게도 전해졌고, 사와르가 이 패전에 대해 분노할 시간도 없이 뒤이어 시
리아군이 알렉산드리아로 진군해오고 있다는 급보가 그 뒤를 당도해 왔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 공방전이야
말로 이번 전쟁의 분수령이 될 것이 자명한 일이었습니다. 원래 이곳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 내의 다른 곳들
과는 달리 대부분의 주민들이 수니파로 구성되어 있었고, 그런 연유로 시아파인 사와르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사와르에 대한 불만을 가슴속에 품고 있었습니다. 사와르는 이런 적대적인 상황에서 농성전을 벌이다간 자
신의 옛 부관 디르감의 선례를 따르게 될 것이란 것을 깨달았고, 시리아 군이 알렉산드리아에 당도하기 전
에 휘하 병력들을 데리고 카이로로 도주했습니다. 그곳에 자신을 따르는 나머지 병사들과 동맹을 맺은 아말
릭이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었죠.사와르는 아말릭과 알 바베인 전투에서 목숨을 건져 도주한 소수의 예루살
렘군 패잔병들을 합류시킨 다음 시르쿠가 카이로 공략을 위해 알렉산드리아를 비울 때를 노려 알렉산드리아
를 함락시킬 계획을 세우고 카이로를 떠나 알렉산드리아에서 좀 떨어진 곳에 주둔하여 기회를 엿보고 있었습
니다. 한편, 알렉산드리아 주민들은 시리아 군이 도착하자 스스로 성문을 열고 환영하며 시리아 군을 해방자
로 칭송했고, 이런 결과에 고무된 시르쿠는 완전히 전쟁을 종결짓기 위해 살라딘에게 알렉산드리아의 방어
를 맡기고 칼리프가 있는 카이로 공략에 나섰습니다. 신속하게 카이로를 함락시킨 다음 시르쿠가 없는 틈을
노리고 있는 사와르와 아말릭을 격파할 생각이었죠.그런데 시르쿠는 카이로 공략에 의외로 애를 먹게 되었
고, 아니나다를까 시르쿠가 없는 틈을 타 살라딘이 지키고 있는 알렉산드리아로 사와르와 아말릭의 군대가
공격을 가해 왔습니다. 아마 이들은 살라딘을 애송이라 생각하고 쉽게 성을 함락시킬수 있을거라 생각했던
모양입니다. 하지만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살라딘은 주민들과 합심하여 성을 잘 지켜냈고. 시르쿠와 사와르
모두 강력한 저항에 밀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시간만 보내고 있는 상황이 계속됩니다. 성 내의 살라
딘 역시 위기를 느끼고 있었죠. 지금은 잘 버티고 있지만 이런 고립상황이 계속된다면 방어하는 쪽이 불리해
진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었습니다. 이런 교착상태는 결국 모두에게 독이 될 뿐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시르
쿠와 사와르는 결국 서로 포위를 풀고 휴전 협상을 맺는 것에 동의하게 되었습니다. 이 협상을 진행하는 도
중에 살라딘은 적의 진지에 머무르게 되었는데 이 때 이미 예루살렘 왕국의 기사들에게 상당한 호감을 샀다
고 합니다. 훗날의 적들에게마저도 그 인품에 대해 존경을 받았던 살라딘의 모습이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