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는 소리는 악기를 켜는 소리와 똑같이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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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
매캐한 연기가 시야를 가린다. 하지만 내 속 깊은 곳 어두운 마음마저 저 밝게 빛나는 달 만큼은 가리기 힘든 모양인지 달빛이 내 얼굴로 내리쬐었다.
'탁탁,칙칙'
"푸후"
입에 물고 있던 담배에 재를 털어 주머니에 넣어 놓고 한 자리에서 다시 한번 담뱃대에 불을 지핀다.
사람이 없는 밤 시간대에 그것도 편의점 하나 달랑있는 원룸촌이지만 만에 하나 누군가 날 본다면 이렇게 말하겠지
'적당히 피세요. 장래희망이 기차인가요?'
나는 저런 일이 없을거란걸 뻔히 알기에 입가에 실실미소를 띄우며 연신 줄담배를 피웠다.
물론 세상일이 내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는걸 깨달은건 얼마 걸리지 않았다.
'끼익'
"어휴, 담배냄새. 손님 적당히 피세요. 장래희망이 기차인가요?"
"아아. 한때 기차장이 꿈이였지만 기차라니. 나는 변신 로봇 용사가 아니라고?"
뒷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에 나는 몸을 돌려 나른한 대답을했고 그 자리엔 이제 막 새내기 대학생인듯한 여자가 서 있었다.
그녀는 내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떪은 감 씹은 표정을 지으며 빗자루를 들어 내 앞 쪽을 치우기 시작했다.
'슥슥'
"어휴 이 꽁초..이거 다 손님이 버린거죠?"
"이런, 나는 나름 문화시민이라고 자부하고 있는데 말이야"
그녀의 물음에 나는 주머니에 있는 꽁초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문화시민은 한 자리에서 그것도 남의 영업장에서 줄담배를 피우진 않죠."
"..이런 한방 먹었군 그래. 똑똑한걸? 서비스로 나중에 커피 하나 사주겠어. 날 가르친 보답이야."
"저는 커피보단 녹차가 좋아요. 절 오래 봤으면서 모르세요? 그리고 서비스 해주실꺼면 음료보단 담배 그만 피우세요."
그녀의 날카로운 대답에 일순 나는 할 말을 잃었지만, 입에 물고 있는 담배를 버릴 생각이 없었다.
"..오늘 굉장한 일을 겪어서 말이야. 이놈이 없으면 버티기가 힘들어서 그래. 양해좀 바랄께. 단골손님이잖아. 크크"
순간 그녀는 나의 말에 움찔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연신 담배를 태우시작했다.
"후우"
담배라는 녀석이 이렇게 무서운걸 알면 피지 않았을텐데.. 스트레스를 해소할 마땅한 방법이 없으니 계속 손이간다.
"무슨 일을 겪으셨는데요?"
내가 막 담배가 외계인이 되어 나를 인삼공사에 입사시키는 망상까지 도달 했을때쯔음
어느새 그녀는 빗질을 멈추고 내 맞은편에 앉아 나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직 초년생에겐 토르의 묠니르만큼 충격이 클텐데.."
"저 이래뵈도 26살이라구요. 키가 작아서 그렇지 정신연령은 낮지않아요. 한 번 말해보세요. 넒은 아량으로 들어는 드릴테니"
나의 비웃는듯한 말에 기분이 조금 상했는지 고운 얼굴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흠 주름살 생길텐데.
나는 자세를 그녀를 향해 고쳐 잡고 입을 열었다.
"어디부터 설명을 해야하나.. 그래 너는 1주일 내내 이 편의점에서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때?"
나의 뜬금없는 물음에 그녀는 살짝 당황한듯 고개를 갸웃거렸으나 이내 대답했다.
"흠. 글쎄요 저야 괜찮을꺼 같은데요? 시급도 좋게 주고. 몸도 편하니까요. 물론 아저씨같은 진상은 싫지만"
그녀는 내 손에 들려있는 담배를 보며 말했고, 나는 멋쩍은듯 웃으며 슬쩍 담뱃재를 털어 주머니에 넣었다.
"이런, 사과하지. 앞으론 이런 일은 없을꺼야."
내가 담배를 버리자 그제야 만족한듯 웃는 그녀를 보며 나는 계속 말을 이어갔다.
"그래..그럼 그 생활이 한 달 아니, 일 년 이렇게 넘어간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지? 자의가 아닌 타의로 말이야"
나이 또 다른 물음에 그녀는 살짝 고민하다 이내 대답했다.
"저라면..흠 잘 모르겠네요. 우선 여긴 평생 직장이 아니잖아요"
"평생직장이라고 생각한다면?"
"..잘 모르겠어요."
"그래 그게 당연한거지..막연하게 생각하는것이 로또 당첨이 된 후 상상하는 거라면..
닥쳐왔을때의 상황은 손가락이 종이에 배일때만큼 황당하고 화끈하니 말이야"
나의 대답이 시원찮았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조금 커졌다.
"..이제 본문이 나올때가 된거죠? 손에 담배갑은 대지 마시구요."
..아무래도 나의 담배갑이 문제였나보군.
"아아 그래. 미안미안. 이게 무서운놈이라 한 번 손대니 끊기가 힘들군."
나는 손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선 옛날옛적 시골에서 할아버지가 손주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는것 마냥 천천히 입을 열었다.
"내가 한 회사에서... 참 더러운 개새끼들을 만났어. 알다시피 나는 문화시민이라 그런 사람들에게도 웃음을 지어주지."
그녀는 문화시민이란 말에 미간을 찌푸렸지만 반문하지 않았고 나는 씨익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참 열정적으로 모든걸 쏟아부었다고 말할 수 있어. 이직은 꿈도 꾸지 않았고 내 능력을 키울 수 있었지."
"좋은 회사네요? 자기 능력도 키우면"
"그래서 문제야. 계속 크다보면 사람을 로보트로 보고 프로그램하려 하거든."
나는 얍살스런 모 대리의 얼굴이 갑작스레 떠올라 머리를 휘휘 저었다.
"회사에 능력은 안되고 인성은 더러운데 말을 잘하는 사람이 한명 있었어. 내 상사였거든. 나는 그때 막 들어간 신입이였고"
나는 혓바닥으로 입술을 핥고 말을 이어갔다.
"근데 하루 이틀 나흘이 지나가다보니까 그 사람의 밑천이 보이더라고. 어느 날 회식자리에서 그 사람이 술에 취해서 이런 말을 했어
'몸으로 돈버는 사람들은 편하게 사는거 같지 않냐? 나 처럼 머리쓰는 사람이 진짜 고통이라고.' 라고 말야."
이 말을하고 난 뒤 나는 그녀의 반응을 지켜보았지만 그저 나를 지켜보며 계속 이어가란 무언의 압박을 할 뿐이였다.
흠 슬슬 흥분되다보니 목소리가 격앙이 되는군.
"뭐, 이걸로 사람의 인성을 평가하긴 좀 이르긴한데, 사실 그 사람은 자신에게 할당된 업무를 나에게 전부 떠넘겨서 처리하게했지. 막 신입인 나에게
한 번 실수하면 정말 세상에 존재하는 욕이란 욕은 다 나에게 하는것 같았어. 하지만 그래도 참았지 여긴 내 평생직장이니까"
"한 날은 또 그러더라고. 내가 여기 없었으면 너도 여기 없었을 것이다. 나에게 고마워 하라. 라고. 나는 스트레스로 위경련도 오는 판에..근데 참 나도 어리석은게 그걸 다 받아주면서 웃음으로 화답을 했다는거야. 그러니 호구로 보였겠지 낄낄"
나의 자조적인 웃음에 그녀의 표정도 조금은 울상이 되어갔지만 묵묵히 들어주었다. 울상짓는 표정이 귀엽군
"뭐 여기까진 평범한 회사생활이겠지. 어딜가나 병신보존법칙에 의해 또라이가 존재하는 법이니까. 근데.. 회사가 날 못쉬게 하니 미치겠더라고.
오늘 불금이지? 너는 친구들 안 만나고 아르바이트 하고있네?"
나의 갑작스런 물음에 그녀는 조금은 서글픈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친구들은 다 애인이 있어서.. 놀러갔어요. 안 놀아줘요. 저는 아직 애인이 없어서.."
"아니 남자들 눈이 없군. 이렇게 참하고 귀여운 공주님이 편의점에서 썩어가고있는데.. 아직 우리나라에 마왕이 없어서 용사님이 없는건가?"
"..놀리지마시고 계속 하던 말 이어가주세요"
나의 능청스런 대답이 문제인지 뾰루퉁해진 그녀의 말에 나는 피식 웃었다.
"회사가 계속 출근하라고 할때도 나는 참았어. 평생직장이고 능력을 키울 수 있었으니..근데 이 생활이 한 달, 일 년 넘어갈 수 록 정신은 피폐해지고
털어놓을 사람들은 다 바빠 만나기도 힘들었어. 참고 참고 하다 결국 오늘 터졌지."
나는 오늘 낮 사장실에서 있었던 일을 다시 머릿속으로 재생하며 말했다.
"내가 너무너무 힘들고 이런 일이 지속되고 급여는 동결인 상황에서 속된 말로 꼭지가 돌아버려 사장실에 찾아 이렇게 말했지
'사장님, 저는 주 5일 근무에 퇴근시간 준수라는 공고모집을 입사했습니다만, 지금까지 주말에 쉬지 못하고 일 했습니다.
헌데, 열정 페이로 절 대하시다니 조금 섭섭합니다.' 라고 말했더니 뭐라고 했는지 알아?"
"뭐라고 했나요?"
"니가 원해서 입사한거고 능력이 출중해서 주말에도 불러 일을 시켰다고.
물론 수당을 안준건 미안하지만 지금 진행중인 프로젝트가 대박치면 보너스 인센티브를 많이 얹혀주겠데"
"돈도 안주면서 일 시키다니..악덕이네요 악덕"
그녀의 말에 나는 동조를 하듯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악덕이였어 근데 그걸 그 자리에서 깨달았지. 아 여긴 아니구나.. 그래서 말했어
회사 관두겠다고. 하느님도 천지창조를 6일 동안하시고 하루를 쉬셨는데 나는 사람이기때문에 2일을 쉬어야한다고"
"그럼 이제 백수네요?"
"그래 백수지. 나올땐 시원하게 나왔는데.. 앞 날이 캄캄하네 마치 저 가로등 하나 없는 골목길 마냥.. 경력도 어정쩡해서
여차하면 나이 서른 다되가서 신입으로 들어가야할 판이야."
"후회 안하세요?"
"후회? 당연히 하지 좋은 직장 내팽겨치고 내 발로 걸어나왔는데.. 하지만 나는 미래보단 당장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살고싶어 스트레스 안 받고..
물론 사회의 시선은 다르지 나를 패배자, 낙오자라 인식하고 멀리할 것이야. 근데도 좋아 오늘이 좋거든"
"앞으로의 계획은...?"
그녀의 말에 나는 잠시동안 침묵했다. 딱히 이렇다할 계획도 없이 나왔기때문에..
"글쎄.. 잘 모르겠지만 확실한건 여기서 줄담배는 피지 않을꺼란 거야"
그녀는 나의 말에 피식 웃더니 잠깐 매장에 들어갔다 오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후우"
이거 한숨을 내뱉을땐 담배가 있어야하는데.. 좀 아쉽군 문화시민이니까 약속은 지켜야지 낄낄
나는 하늘을 바라보며 달이 참 밝다고 생각했다. 내 앞 날도 저리 찬란하게 빛이 나려나?.
얼마나 지났을까 내 목이 꺾여 뒤로넘어가기 직전에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탁'
"손님, 이거 드시고 힘내세요. 서비스입니다. 앞 날은 아무도 모르는거라고 그랬어요. 제 주머니엔 로또가 들어있어요.
혹시 알아요? 이게 대박나서 제가 편의점 사장이 될지"
탁자위엔 이온음료가 올려져 있었고 그녀는 물건을 정리한다며 매장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녀의 아담한 뒷모습을 보며 고맙다는 말을 한 후 이온음료를 들었다.
"어?"
그녀가 준 음료에는 작은 포스트잇이 붙여져있었다.
"손님, 아니 오빠 다음엔 녹차 사주세요! 아 그리고 담배도 좀 끊어요 전 담배피는 남자가 싫어요"
정말 뜻밖이군 그저 한풀이였을 뿐인데..
들어준 것도 고마운데 다정하기까지.. 이것이 흔히 말하던 그린 라이트 인가?!
나는 음료를 준 그녀의 얼굴을 잠시 떠올리며 후에 그녀와 결혼하면 이것저것... 망상을하다
머리를 휘휘 젓고는 손에 쥔 음료를 단 번에 비우고 집으로 발걸음을 옴겼다. 물론 분리수거 하고.
나는 누가 뭐라해도 문화시민이고 평범한 소시민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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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