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7년. 08?
군 입대하기 전, 유학생활로 인해 한국이 그리웠던 저는
학기가 끝나자마자 성적도 뜨기 전에 한국으로 날아왔습니다.
참으로 순수하고 순진했던 그 때의 저는..
도를 아시냐고 묻는 길거리의 아낙에게는
"삼라만상은 모두가 하나인 것 아니겠습니까.." 라며 개드립을 날리고,
감방에서 나온지 얼마 안 되서 도와달라던 청년에게는
연민 가득한 눈으로 크라운 베이커리에서 샀던 크림빵을 주던.
그러한 곧고 착한 심성의 소유자였지요.
그러다가 군 입대 전,
PC방에서 슈탱이 걸리기를 바라며 랜덤을 고르는 카이지의 모습이었던 제게.
겨울바다를 보러 부산에 가고 싶다는 남자의 고독함이 몰려왔습니다.
나 : "야, 나랑 같이 놀러가자"
A : "음..... 그래"
이렇게 친구의 승낙을 얻고 기차를 타러 서울역으로 갔지요.
서울 살면서 서울역 온 적이 없었기에, 두리번 두리번.
서울 촌놈 둘이 헤벌레 해서 돌아댕기고 있자니 왠 어르신 한 분이 다가오셨습니다.
어르신 : "이보게 청년"
나 : "네? 저요?"
어르신 : "그래, 자네 혹시 천 원 있는가?"
나 : "에 뭐.."
어르신 : "내가 우리 할멈을 보러 부산에 있는 병원에 가야하는데, 표값이 모자라요. 좀 빌려줄 수 있나?"
오호 통재라..
그 안타까운 사연을 들은 저와 제 친구는 결심했습니다.
우리가 이 어르신을 도와드리기로.
우리 : "어르신, 잘 됐네요! 저희도 지금 부산에 가는 길이거든요. 같이 가시죠."
어르신 : "??"
그렇게 우리는 한사코 괜찮다며 청년들 갈 길 가라시던 어르신의 말씀을 못 들은체하고
함께 기차표를 끊어 어르신과 함께 자리에 앉아 기차에 탔습니다.
살짝 멘붕이 오신거 같은 어르신의 표정에 우리는 할머니 걱정이 많이 되시는가보다.. 라며 음료수도 드리고 했었는데.
그렇게 부산에 도착하고 어르신께 할머니 꼭 건강해지실거라고 말씀드리고는 놀러갔습니다.
....3일 뒤.
집으로 가려고 부산역에 갔는데, 낯익은 어르신이 어떤 여자분을 잡고는..
"처자, 우리 할멈이 서울 병원에 있는데 내가 기차표값이 부족해서.. 천 원 있나?"
'아아... 할머니와 길이 엇갈리신게로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