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작가 소개
히가시노 게이고는 우리나라와 일본을 통틀어 가장 유명하고 잘 팔리는 추리 소설 작가입니다. 그래서 언급을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이기도 합니다. 마치 판타지 소설 장르의 해리 포터랄까요... 이 작가도 조앤 롤링처럼 항상 말이 많은 작가입니다. 특히 추리 소설을 깊게 파는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 입문용아님?'이라던가 '언페어하다'라던가 '트릭이 뻔하다'다런가...
저도 추리 덕력이 그리 깊지는 않지만,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의 꽤 많은 작품들을 읽은 후에 느끼는건데 저 말 다 맞습니다.
다만 입문자에게는 너무 고평가를, 추리 소설 장르 팬들에게는 너무 저평가를 받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항상 이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 팬은 아니지만 정말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비난을 감수하면서까지 소설을 쓰고, 항상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자기 반성 역시 철저합니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품 라인을 쭉 따라오다보면 이 작가가 이번 소설에서는 무엇을 전달하려는지 명확히 보이니까요. 물론 추리 소설 작가로서의 역량은 뛰어나다라고 평가하기는 힘든 작가지만 대단한 작가라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알리고 싶어 쓰게 되었네요.
#2 입문자를 위한 작품 소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입문자용이라고 격하되는 경향이 있습니다만 정말 입문자에게 추천하면 모두 동의할 정도로 재밌습니다. 저도 히가시노 게이고로 추리 소설에 입문하기도 했고요. 그만큼 드라마가 파격적이고 신선하고 재밌습니다.
다만 입문용으로 평가받는 만큼 추리 트릭은 식상합니다. 추리 소설 중수쯤 되면 어디서 많이 본 트릭이자 예상가능한 트릭이라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작품 읽는 순서가 좀 중요한 작가라고 생각합니다. 아래 작품은 제가 읽었던 작품들 중, 괜찮은 작품이라고 생각하는 것들만 넣었습니다.
가장 먼저 추천드리는 작품은 <용의자 X의 헌신>입니다. 엄청 유명한 작품이고 영상화도 많이 되었습니다.
신본격 추리 소설
가가 교이치로 시리즈
<졸업>, <붉은 손가락>, <악의>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장편만)
<용의자 X의 헌신>, <성녀의 구제>, <한여름의 방정식>
사회파 성향의 추리 소설
<백야행>, <유성의 인연>, <방황하는 칼날>, <비밀>, <게임의 이름은 유괴>
이것들을 다 읽으셨다면 이제 두가지 선택이 남았습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깊게 파고 다음 작가로 넘어가느냐, 아니면 다른 작가들의 소설들을 읽고 좀 더 내공을 쌓고 다시 넘어오느냐... 저는 후자를 추천합니다.
#3 추리물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소개
약스포 주의
제가 이 글을 쓴 이유는 이 항목 때문입니다.
히가시노 게이고는 다양한 작품을 쓰지만 신본격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입니다.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대표작이라고 생각하는 작품은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 중 단편 모음 작품들, <명탐정의 규칙>,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 그리고 히가시노 게이고의 정수라고 생각하는 <편지>입니다. 제가 추천하는 이 작품들은 재미 측면에서는 다소 떨어지는 작품들이 많고 그래서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 중에서 많이 언급되지는 않습니다. 그래도 히가시노 게이고가 어떤 작가인지 파악하려면 꼭 읽어봐야 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유가와 마나부 시리즈는 장편이 재밌습니다. 다만, 이 단편 소설들을 추천한 이유는 이것이 '이과적'트릭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정말 이과생이 아니면 생각지도 못한 트릭으로, 하지만 완성도 있게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소설은 왜 나왔는지 생각해보면 히가시노 게이고가 자기 반성을 참 열심히 하는 작가이자 대단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히가시노 게이고가 가장 비판받은 것은 뻔한 트릭이거든요. 그것을 탈피하기 위해 자신의 최대 강점인 드라마를 완벽히 배제하고 트릭에 집중하여 '자신의 특징적인 트릭'을 완성하기 위해 쓰여졌다는 것이 보입니다.
<명탐정의 규칙>은 명탐정이 등장하여 독자에게 말을 겁니다. 보통 서술자가 독자에게 말을 거는 형식은 소설 가치가 낮다고 평가되기 십상이지만, 이것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는 추리 소설 전반에 대한 비판을 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언페어한 트릭, 분명 관할이 아닌데 등장하는 형사 등 특히 추리 소설 시리즈물에 대한 강도 높은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 역시 본인이 가장 비판받은 공정하지 않은 추리 소설에 대한 자기 반성이 포함되고 있지만 이 소설은 추리 소설계에 대해 비판한 측면이 큽니다. 그래서 나오자마자 일본에서는 꽤 반향을 일으켰고요. 추리 소설계에서 꼭 나오는 클리셰를 모두 비판했거든요.
<둘 중 누군가 그녀를 죽였다>는 이 중에서 그나마 유명한 장편 소설입니다. 이 작품은 해결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끝까지요. 보통 추리 소설이 문제 발생->탐색 및 추리->해결의 구조로 이루어졌다고 가정하면 문제 발생 -> 탐색 및 추리에서 작품이 끝납니다. 이 작품 발간 당시 출판사에 문의 전화와 메일이 쇄도하여 그 다음부터는 평론가가 답의 힌트를 제공하여 책 맨 뒷편에 봉인된 채로 출간됩니다. 다만 이름은 OOOO식으로 표시되어 등장하지 않습니다.
이 작품을 출간하고 히가시노 게이고는 추리 소설가들에게 신선한 경험이었으므로 다른 사람들도 도전해보라는 식의 인터뷰를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리고 끝까지 답을 제공해주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미루어보아 이 작품은 독자와 추리 소설가들을 모두 비판한 의도로 쓰여졌는데 추리 소설임에도 추리 하지 않는 독자들과 언페어하고 뻔한 추리 소설을 쓰는 작가들을 모두 비판한 의도에서 쓰여졌다고 보시면 됩니다. <명탐정의 규칙>의 연장선상으로, 그 책에서도 해당되는 사람들을 비판했지만 이번에는 직접 실행에 옮긴 것이죠.
이렇게 신본격 추리 소설에 대한 전반적인 자기 반성 + 비판 + 실행으로 이 사람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는 알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의 최고 소설이라고 꼽는 것은 <편지>입니다.
이 소설은 자기 반성적 소설이 아닙니다. 신본격 추리 소설도 아닙니다. 이 소설은 히가시노 게이고 최고이자 유일무이한 사회파 추리 소설입니다. <비밀>은 사회파로 치는 분들이 많은데 그러기보다는 미스터리 계열이고 <백야행>은 사회파라기엔 '사회'적 요소가 없어 사회파라고 하기 애매합니다.
이것이 최고의 소설이라고 소개하는 이유는 다음에 있습니다.
뛰어난 신본격 추리 소설을 묘사할 때 사람들이 '뒷통수를 후려치는 결말'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분류해보면 범인이 의외인 경우, 또는 트릭이 의외인 경우 두 가지로 보통 생각합니다.
그런데 히가시노 게이고가 저평가 받는 이유 중 하나는 이 두 가지에 해당된다기보다는 범행 동기가 의외인 경우이기 때문인데, 제가 히가시노 게이고는 사회파 추리 소설에 더 적합한 소설가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회파 추리 소설가들은 범행 동기가 의외인 경우로 뒷통수를 잡아채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잘 발휘된 소설이 <편지>이기 때문에 이 소설이 최고라 생각합니다.
만약 히가시노 게이고가 추리 소설가로서 입문자에게 소개하기 좋다는 이상의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신 분은 <편지>를 읽어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