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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을 높여주는 책. 책게로 오세용'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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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가족은 식탁에 둘러앉아 있었다.
누나는 냉정했다. 말끝마다 아닌데? 혹은 그건 아빠가 잘못했지 하고 평가를 내리기 일쑤였다.
엄마는 냉정한척 했지만, 실은 미련이 많은 말들을 자주 꺼냈다.
너 자꾸 그러면 아웃이야. 아웃이야.
엄마 말에 의하면 우리 가족들은 이미 훨씬 전에 아웃되어야 했다.
아빠의 말은 사실 자기 자신한테 하는 다짐이었다.
형은 그저 허허 웃으면서, 그렇죠- 그래야죠 하고 추임새만 덧붙였다.
가장 먼저 눈물을 흘린 사람은 누나였다. 맥주에 잔뜩 취한 아빠가 너무나 당연한 말들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가족, 사랑, 우리, 행운 등등. 누나가 갑자기 입술을 우물대더니 아, 나 눈물난다 라고 예고를 했다. 그리고 눈물을 쏟아냈다. 얼굴을 보이기 싫은지 고개를 숙이거나, 옆에 앉은 엄마의 팔에 얼굴을 기댔다.
엄마는 왜 그러냐면서 누나의 어깨를 살짝 감쌌다. 남의 눈물에 약한 엄마는 벌써부터 울고 있었다. 이 이상한 가족회의를 연 아빠는 정작 멀쩡했다. 아빠는 사실 피곤한것 같았다. 이제 자야한다는 생각,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자꾸만 같은 말을 반복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알아차렸다. 형은 입술을 물어뜯으면서, 엄마와 누나를 지켜보았다. 항상 그렇지만 형의 생각은 읽기 어려웠다. 누나가 울기 몇 분 전에, 엄마는 형에게 갑자기 넌 무슨 색깔같니? 하고 물었다. 누나는 엄마의 말을 벌써 이해한듯, 의자에 양 무릎을 세워 앉으며 형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형은 무슨 소리냐고 물었다. 뭐가? 좋아하는 색?
엄마는 답답해했다. 아니 그냥 네가 무슨 색깔같냐고. 다짜고짜 물어댔다. 아빠는 자기가 할 말을 생각하고 있는 중인지, 이에 동조하지도 반박하지도 않았다.
글쎄 갈색? 아니 검은색.
엄마는 검은색은 괜찮다. 개성있네 라고 말했고, 누나는 어디든 어울리는 색이잖아- 재빨리 덧붙였다. 나는 정말 형이 검은색을 좋아할지 의구심이 들었다.
아빠가 식탁을 먼저 떴다. 형은 자기 방에서 노트북을 가져오더니, 아까 주문하던 보충제를 주문하겠다고 말했다. 누나는 감정이 아직 남아있는지 눈 주위를 계속해서 닦아냈다. 그리고 흘끔흘끔 형과 엄마를 번갈아보았다. 엄마는 맥주 캔을 치웠다. 누나가 입을 열었다.
그래, 너 보충제 산댔지.
응.
내가 쓴 소설 보여줄까?
누나는 작가 지망생이었다. 아무도 누나의 소설을 본 사람이 없었다. 가끔 형을 보여주긴 했지만 일부였다. 나는 갑자기 누나가 무슨 바람이 불었나 싶었다. 형은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식이었다.
누나는 약간 들뜬 얼굴로 노트북을 식탁으로 가져왔다. 맥주 때문에 얼굴이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누나는 아마 이 순간을 오랫동안 고대해왔을 것이다. 자신의 글을 가족들에게 읽히는 순간! 그렇지 않으면 내가 보여달라고 했을 때, 바득바득 노트북을 가릴 이유가 없었다.
형과 엄마는 식탁 의자에 앉았다.누나는 엄마의 정수리에 턱을 살짝 대고, 노트북을 보는 엄마를 지켜보았다. 엄마가 글씨를 더듬대며 읽자, 누나가 대뜸 소리내어 읽기 시작했다.
나름 재밌는 소설이었다. 우리는 모두 그렇게 결론을 내렸고, 누나는 흡족한 얼굴로 노트북을 가져갔다. 다시 거실에 나타난 누나는 무슨 말을 더 기다리듯이 거실에 앉아 있었다. 형은 보충제 결제를 마무리지었다. 엄마는 싱크대에 물을 틀었다. 누나는 노트북 덮개를 만지작댔다. 그러다 노트북을 열고 자기 소설을 다시 보았다. 몽롱한 얼굴로.
사실 아까 누나는 우리 가족 때문에 운 게 아니었다. 누나는 자기 생각에 푹 빠져있었다. 누나는 아빠를 똑 닮았으니까. 최근에 누나는 힘든일이 있었을 것이다. 그냥 그게 복받쳐서 우는 게 분명했다. 우는 누나는 재미가 없었다. 지극히 평범한 말들을 뱉어냈기 때문이었다. 더 열심히 할게요. 감사해요 항상. 이런 말들.
가족 회의는 끝이 났다. 넷의 시선은 전혀 딴 방향이었다. 아주 가끔씩 만나거나 교차되었다. 누나가 운 이유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유령이라서 잠시 슬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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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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