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대 이승만 - 선조
역사에 정말 평행이론이란 게 존재할까 싶을 만큼 닮은 두 사람. 전란(6.25전쟁/임진왜란)이 일어났을 때 백성은 나 몰라라 제 몸부터 도망치기 바빴으며, 그런 주제에 돌아와서는 아무 죄 없는 민간인을 학살하고, 전쟁에서 공을 세운 공신들을 오히려 견제하는 등 자신의 권력 유지에만 급급한 작태를 보였다. 일국의 지도자인 주제에 자국은 무시하고 힘센 외세에 의존했다는 점, 그리고 수많은 실정에도 불구하고 역사적으로는 '국부'니 '전란을 극복한 왕(宣祖)'이니 나쁘지 않은 평가를 받았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4대 윤보선 - 목종
나름대로 의욕적인 지도자였으나, 힘센 실권자(장면/천추태후)에 밀려 빛을 보지 못했으며, 결국은 군벌 세력(강조/박정희)에 의해 강제로 하야하고 말았다. 그러나 안습한 존재감과는 달리 윤보선은 나름 박정희와 2차례나 대통령 선거에서 대결을 벌인 적이 있는 박정희 집권 초반 최대의 난적이었으며, 고려의 목종 역시 권신인 김치양과 강조 사이에 치열한 권력 암투를 벌였다. 또한 윤보선은 5.16 쿠데타 때 박정희의 군사 행동을 묵인했으며, 목종은 아예 자신이 직접 강조를 궁으로 불러들이는 등 군사 정변의 빌미를 직접 제공했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5~9대 박정희 - 모본왕
한 쪽은 한국의 경제를 크게 성장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다른 한 쪽은 중국의 혼란기를 틈타 고구려의 영토를 크게 넓혔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집권 초기의 업적에 취해 점점 공포 정치를 휘둘렀다. 박정희의 경우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등을 일으켜 무고한 사람을 투옥하고 무자비한 고문과 인권 탄압을 자행했으며, 모본왕은 앉을 때는 사람을 깔고 안고 누울 때는 사람을 베고 누웠으며, 간하는 이가 있으면 활로 쏘아 죽였다고 한다. 두 사람 모두 측근의 손에 비운의 최후를 맞이한다.
10대 최규하 - 인종
본인들은 나름대로 인격자였으나, 정국이 워낙 어지러워 제대로 된 뜻도 펼쳐보지 못하고 역사의 뒷무대로 사라졌다. 최규하의 경우, 10.26 사건으로 박정희가 피살 당하자 임시로 대통령에 선출되었으나, 전두환의 12.12 군사 반란으로 실권을 쥐지 못하고 그의 전횡을 좌시해야 했으며, 인종의 경우 재위 내내 문정왕후의 패악질에 시달렸으며, 요절하여 어린 동생에게 왕위를 물려주는 바람에 이후 외척 세력이 득세하는 상황을 낳아 버렸다. 정확히 9개월 만에 지도자 자리에서 물러났다는 점 역시 유사하다.
11~12대 전두환 - 이의민
군벌 출신으로 반란을 통해 권력을 잡았으며, 본래는 1인자 아래에 있다가 권력 공백기를 틈타 정상의 자리에 올랐다는 점이 유사하다. 전후의 군벌 독재자 중에서도 가장 잔혹하기도 하다. 이의민의 경우, 무신정변 당시 가장 많은 적을 죽이기로 악명이 높았고, 자신의 주군이었던 의종의 척추를 직접 부러뜨려 죽이는 잔혹함을 보였으며, 전두환 역시 5.18민주 항쟁 때 자국민에게 총부리를 겨누는 악행을 저질렀다. 결국 한 쪽은 주살당하고, 한 쪽은 사형 판결을 받았다. 공교롭게도 두 인물이 나오는 드라마들(5공홛국/무인시대) 모두에서 이덕화가 그 둘을 연기했다.
13대 노태우 - 최의
둘 다 군벌 독재의 마지막 수장이다. 노태우는 일찍부터 전두환의 후계자로 낙점되었었으며, 전두환의 하야 이후 정식 선거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최의의 경우, 최충헌, 최우, 최항으로 이어지는 최씨 무인 정권의 마지막 집권자로서 처음에는 민생을 돌보고 어느 정도의 인기를 얻었으나, 점차 정치적인 무능을 드러내면서 정적에게 밀려 살해당하고 말았다. 각각 비자금 조성(노태우)과 민가 약탈(최의)로 부정하게 재산을 축재한 점도 유사하며, 나름 최고 권력자이면서 한 쪽은 물태우라고 무시당하고, 다른 한 쪽은 '성품이 조용하고 부끄러움이 많았다.'라고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존재감이 약한 점까지도 비슷하다.
14대 김영삼 - 중종
둘 다 나라의 암흑기에서 새로운 시대(중종은 연산군의 폭거 종식, 김영삼은 군부 독재를 끝내고 민주화)를 열었으나... 어째 2% 부족한 느낌이 드는 지도자들. 중종의 경우 반정에 의해 왕위에 올라 연산군의 폐단을 수습하고, 조광조를 앞세워 개혁 정치를 펼쳤으나, 자신이 키운 조광조를 자신의 손으로 죽이고 권신들이 국정을 농단하도록 놔두었으며, 김영삼의 경우 하나회를 숙청하고 금융실명제를 도입하는 등의 업적을 이루었으나, 삼당합당으로 구세력과 타협하고 말년에는 IMF라는 병크까지 터뜨렸다. 두 지도자의 집권기 동안 유난히 사고가 많았다는 점 또한 유사하다.
15대 김대중 - 정조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오르기 전 숱한 목숨의 위협을 받았으며, 집권한 뒤에는 대체로 어지러운 정국을 수습하고 나라를 중흥시킨 지도자로 평가 받는다. 정조는 세손 시절, 사도세자를 죽인 노론 일파의 끊임없는 암살 기도를 받았으며, 김대중 역시 박정희 정권에 의해 투옥, 납치, 사형 선고까지 받는 등 고초를 겪었다. 집권 후 정조는 탕평책을 펴서 인재를 고루 등용하고, 특히 실학자들을 대거 양성해 조선의 상업을 증진시켰으나 권신들의 부패를 막지 못해 사후 세도 정치의 빌미를 제공했으며, 김대중 역시 대한민국 남북 간에 공동선언을 발표해 평화 무드를 조성하고 IMF 위기를 극복했으나 집권 중 각종 게이트와 자식들의 비리에 시달렸다. 두 사람 모두 독서광이라는 공통점도 가지고 있다.
16대 노무현 - 정도전
이상주의자이자 개혁가로,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직접 오르거나 옹립하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현실의 벽에 부딪혀 뜻을 다 이루지 못했다. 혼탁한 고려 말의 유학자였던 정도전은 토지 개혁을 통해 민심을 사로잡고 역성혁명을 일으켜 유교 중심의 국가 질서를 세우는 데에 성공한다. 그러나 신생국 조선으로서는 하기 벅찬 개혁들, 이른바 노비 해방, 과전 몰수, 요동 정벌, 사병 혁파 등을 주장해 기득권과 마찰을 빚었으며 결국 왕위 계승에 불만을 가진 이방원에게 주살 당한다. 노무현 역시 상속증여세의 포괄주의 도입, 증권 관련 집단소송제 시행, 정경유착 혁파 등의 개혁을 추진했으나, 이로 인해 기득권의 끊임없는 견제와 색깔 공세를 받았으며, 결국 친인척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 조사받던 중 스스로 절벽에서 투신하고 만다. 두 사람 모두 거침 없는 입담으로 유명했고, 이 때문에 인기를 얻기도 또 정적을 만들기도 했다는 점, 그리고 그런 정적들에게 탄핵받은 적이 있다는 점까지도 유사하다.
17대 이명박 - 김자점
각각 고성장 시대의 아이콘이자 인조반정의 주역으로 화려하게 정치계에 등장했으나, 집권 이후의 모습은 개인의 사리사욕을 채우는 데에만 급급했다. 김자점의 경우 인조반정의 공신으로 인조의 중용을 받아 영의정 자리에 오르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으나, 정묘호란 때는 경기도 백성을 전부 강화도로 피난시켜 목장을 전부 농토로 바꿔 식량을 확보하자고 주장하는 등 터무니 없는 무대뽀 정신을 선보였으며, 병자호란 때는 도원수로서 청나라 군대가 황해도에 나타날 때까지 길을 뻥 뚫어주는 무능함을 보여주었다. 급기야는 인조 사후 자신의 입지가 작아지자 청나라가 조선을 치게 하려고 종용하다가 발각돼 역적으로 주멸당한다... 이명박의 경우 서울 시장 시절 때부터 무대뽀 정신으로 유명했고, 재임 후 천암함 피격, 북핵 문제 등으로 안보 무능을 여실히 드러내 보였다. 또한 김자점의 노골적인 매국 행위에까지 비할 바는 아니지만 굴욕적인 한미 FTA와 대일외교에서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키기도 했다.
18대 박근혜 - 진성여왕
기득권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아 최고 지도자의 자리에 올랐으나, 정작 본인은 정치에 무능하여 주변 인물들이 권력을 쥐고 국정을 농단했다. (또는 하고 있다.) 진성여왕은 신라의 말년기에 왕위에 올라 처음에는 불교를 통해 민심을 수습하려 했으나, 애인이자 숙부인 위홍이 죽자 정치에 뜻을 잃고 젊은 미소년들과 신나는 찌찌 파티를 즐기는가 하면, 귀족들의 사치 풍조와 권신들의 막후 정치 때문에 백성들은 더욱 궁핍해져 갔다. 더욱이 견훤과 궁예가 각각 서쪽과 북쪽에서 군사를 일으켜 새로운 나라를 세우는 것 역시 수수방관했다. 결국 진성여왕은 자신의 정치적 무능함을 깨닫고 왕위에서 물러났으니 어쩌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