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마음의 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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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제가 예전에 써 두었던 초고의 일부인데 어떤 반응들이실지 궁금하고 염려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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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서울대학교 사회과학대학 인류학과에 다니고 있는 학부생이다.
모두가 익히 아시다시피 서울대학교는 민족을 왼쪽 어깨에, 국가를 오른쪽 어깨에 짊어지고 나아갈 겨레의 동량들이 몸담고 있는 세계 제일 명문대학이다. 민족과 국가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다니다보니 그 부담감으로 인해 어깨가 종종 결린다. 지금은 오른쪽 어깨가 좀 쑤시다. 민족의 내일은 그래도 희망찬데, 국가의 행태를 보고 있자니 영.
간혹 서울대학교를 연세대학교나 고려대학교 따위의 민간 대학교와 묶어 같은 범주로 분류하고 '스카이'(SKY)니 하는 듣도 보도 못한 수식어를 갖다 붙이는 이들이 있는데,-점잖은 사람이라 웬만하면 한 마디 하지 않는데-, 가소롭다. 어찌 바다 건너 오버우든지 언더우든지 모를 양인이 제 사재를 털어 세운 민간 학교와 지방 실업가가-그 사람 살던 동네가 인촌이었던가- 세운 민간 학교를 같은 수준에 놓고 동등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만약 서울대도 스카이고, 연대와 고대도 스카이라면, 같은 스카이라도 층위가 다른 스카이다. 연대나 고대가 대기권이라면, 서울대는 성층권은 훨씬 뛰어 넘어 열권 쯤은 된다고 해야 하나.
물론 우리 서울대의 학우들은 그런 속세의 등수 놀이에 개의치 않는다. '한 가운데'라고 이름 붙인 어떤 일간지가 서울대보다 성균관대학교의 순위가 더 높다고 외쳐도, 우리로서는 그네들은 그렇게 생각하나 보다 하고 개의치 않는다. 원래 학문에 밝지 못한 이들이나 등수 놀음에 연연하는 법이다. 이도관지하여 도가 통한 이들은 나와 남을 비교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를 비교하는 것이 이치다.
간혹 서울대의 학우들을 '성적만 뛰어나고 다른 것은 보잘 것 없다'는 식으로 폄하하는 이들이 있다. 가령 성적은 뛰어난데 인성은 그만 못하다거나, 성적은 뛰어난데 체력은 노인 수준이라던가, 하는 폄훼성의 풍문이 떠돌고는 한다. 점잖은 사람이라 웬만하면 이런 일로 구구절절 변론을 일삼지 않는데- 그것은 사실 서울대의 학우들이 다른 학교의 학우들이 느낄 상대적 박탈감과 좌절감을 없애고 그들의 자기 계발을 돕기 위해서 부러 우리의 역량을 감추기 때문인 까닭이다. 본래 지와 덕과 체는 뿌리가 하나인지라, 어느 것 하나가 못 하면서 다른 것 하나만이 뛰어날 수 없는 것이 이치다. 서울대의 학우들은 인성도 고결할 뿐 아니라, 신언서판이 출중하다. 요즘 아해들은 한자에 능숙치 못해 신언서판이 무슨 말인지 모를까 염려되어 굳이 설명해 주는데, 신은 몸의 건강함을, 언은 말씨의 유려함을, 서는 글씨의 단정함을, 판은 용모의 탁월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용모 이야기가 나왔으니 서울대 학우들의 용모에 대해서도 한 마디 언급하고 지나치지 않을 수가 없다. 왜 서울대의 미모로 김태희 선배를 꼽지 않는가. 그런데 사실 김 선배의 미모가 서울대 학우 용모의 평균에 조금 못 미치는 정도라고 하면 놀라지 않겠는가. 실제로 그러하다. 그렇지 않다고 반박하고 싶어 입이 간지러운 독자들이 몇 있을 터인데, 님들 관악 02 타고 관악사 와 봄? 5516범타고 서울대 정문에서 내려봄? 아마 없을 것으로 짐작하니, 그냥저자와 독자 간의 신뢰를 믿고 따르기를 바란다.
용모 이야기가 나왔으니 예악에 대해서도 말하자면, 서울대학교의 뮤지션이라 하면 속세의 대중들로서는 뭐 브로콜리 선배나, 장기하 선배나, 인디 밴드들이나 빈지노 학우나 뭐 이런 이들을 떠올릴 게다. 물론 이네들은 서울대의 이름을 널리 알린 훌륭한 선배들이요 학우들이다만, 우리 서울대 학우들의 예악에 대한 취향은 약간 다르다고 언급하고 넘어가고 싶다. 서울대학교의 학우들은 모두 타고 난 소리꾼들이요, 재기가 넘치는 재주꾼들이다만, 대중과 몇몇 평론가의 무리들이 이러쿵 저러쿵 평하는 그런 기준에 맞추려 하지 않을 따름이다. 대부분은 동서고금의 고전들 다른 말로 하면 클래식들에 조예가 깊고, 저잣거리의 음률에 대해서는 낯설음을 느끼는 것이 일반이다.
그렇다고 해서 지금 내가 저잣거리의 음률을 평가절하한다고 섣불리 넘겨 짚지는 말라. 이것은 서울대 학우들 간의 사상의 차이이다. 어떤 이들은 문화를 향유함에 있어 고유성과 특수성에 우선성을 두고 어떤 이들은 보편성에 우선성을 두는 데에서 비롯한 예술 철학의 사소한 차이일 뿐이다. 이러한 예술 철학의 방향성의 차이를 두고서, 대중 문화네 고급 문화네, 순수 예술이네 아니네, 네가 훌륭하네 내가 훌륭하네 이러쿵 저러쿵 다투는 평자들을 보고 있자면 배움과 익힘의 일천함에 마음이 아플 뿐, 점잖은 사람이라 웬만하면 이런 일에 대해서는 그만 언급하려 한다.
내가 서울대 학우의 용모와 예악의 평균적 경향에 대해서 이렇게 구구절절히 늘어놓은 까닭은 오늘 내가 겪은 일에 대해 털어 놓기에 앞서 독자 제군들이 가질 오해를 미리 불식시키고자 함이었다. 그러니까 독자 제군들은-이렇게 말한다 하여 나를 원망치 말라- 길에 가는데 아리따운 처자가 먼저 번호를 물어본다던지 뭐 이런 우리로서는 일상적이다 못해 권태로운 일을 겪어 보는 일이 거의 없을 것을 내 미리 짐작한다.
말하자면 나는 그 날은 여느 때와 달리 어머니가 보내주신 리무진을 타지 않고 버스를 타고 등교하였다. 까닭인즉슨, 오늘 아침의 나는 바하나 베토벤, 챠이코프스키나 쇼스타코비치 같은 개성파들의 절도 있는 음률이 지겨워진 나머지 저잣거리의 소란스러움이 그리웠던 것이다. 그래서 나는 구태여 억지를 부려 버스를 타고 등교했다. 내가 750번 버스에 올라 타자마자, 서울대 학우라면 대부분이 지니고 있을 세계 제일 명문대의 '후광' 때문인지 버스 기사 선생님을 비롯해 많은 승객들이 눈 부셔 하며 모두 얼굴을 가렸다.
- 아아, 학생. 서울대에 다니는가. 이것이 서울대 학생의 후광인가 과연 범상치 않구나 범용한 우리로서는 못견디겠군.
나 때문에 기사님이 하마터면 핸들을 놓칠까 우려되어 나는 냉큼 버스 맨 뒷좌석으로 가 앉앗다. 사람들이 나의 후광에 질식되는 것은 막아야 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는 개인의 편리를 따지기에 앞서 공공선을 우선 생각하는 사회 책임주의적 자세를 전신에 체화하고 있다.
마침 버스에서는 라디오가 흘러나오고 있었고, 어느새 나는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유행가 한 소절을 스스로도 모르게 흥얼거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흥얼거림이 승객들의 풍파에 지친 몸과 세사에 굳어진 애간장을 녹여 버린 모양이다. 모두들 짐작하여 아시겠지만, 민족의 미래는 희망찬데 국가가 하는 뻘짓 때문에 이 사람 저 사람 모두가 지치고 굳어진 현상황이다. 그래서 어는새 모두가 흐느끼면서 소위 힐링이라는 현상을 경험하기 시작했고, 그 중에 한 아리따운 아가씨는 내가 버스에 내릴 때 쯔음에 다가와 내 앞을 막아 서서
- 아아, 유행가를 읊조리는 목소리의 장단이 어찌 그리 학의 자태와도 같으신지요. 그리고 버스 좌석에 기대 앉은 그대의 실루엣은 어찌 그리 저를 설레게 하는지요. 저는 당신에게 필연적으로 반해 버리고 말았답니다. 부디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시어, 제가 그 목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해주시겠사와요?
했던 것이다.
그러자 백미러로 전후 상황을 보고 있던 버스 기사 선생께서는 짐짓 화를 내며,
- 여보게 아가씨. 그 총각은 전국 제일 세계 제일의 명문대학교의 학생으로 민족과 국가를 양 어깨에 짊어지고 남는 시간에는 국제 정세까지도 고민해야 할 귀한 몸일세. 아가씨의 개인적인 사리 사욕 때문에 서둘러 등교해야 할 그의 앞길을 막아서야 쓰겠는가? 어서 그를 놓아 보내주시게.
하였다. 해서 나는 아가씨에게,
- 아가씨, 아가씨의 그 마음은 감사하게 받겠노라, 하지만 나는 지금 청춘남녀가 즐겨야 할 연애보다는 무수한 갑남을녀들과 사해동포의 처지가 염려되어 다른 데에 신경을 쓸 여지가 없노라. 부디 더 고운 목소리를 가진 이를 만나 청춘을 행복하게 지내시라.
하고 달리는 750번 버스에서 몸을 날렸던 것이다.
그러나 이토록 한 버스에 탄 승객들에게 힘과 원기를 북돋는 에피소드를 만들어 버리고만 필자의 용모와 예악은 서울대 학우들의 평균에서 한참에 한참을 못 미치는 바에 불과함을 주지하는 바이다.
버스에 내려 보니 서울대입구였으며, 나는 늘상 그러하듯이 서울대입구에서 서울대 정문까지 걸어올라갔다. 서울대입구에서 서울대정문까지는 세간에 알려진 것과 달리 그리 멀지 않으며 잠시 조깅하면 스무 번 남짓은 왔다 갔다 할 그런 거리이다. 왜 발 없는 말도 천리를 간다 하는데 발 있는 우리네 청춘이 이 정도 거리 쯤이야 우습지 않겠는가? 해서 나는 서울대입구에서 서울대정문을 향해 오르는데, 이 길을 벤츠, 리무진, 캐딜락, BMW 등이 쉴새 없이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은 일상다반사다. 그 많은 리무진 중 하나의 창문이 열리더니 나를 불렀다.
- 아니, 선배.
- 어서 타시게.
나는 "선배"의 리무진에 자연스럽게 올라탔다.
- 아니 선배께서는 새누리당의 방미 일행에 수행 차 동반하기 위하여 미국에 계신 것으로 되어 있지 않으셨수? 어느새 학교로 등교를 하니 이게 어찌 된 일이시우?
"선배"는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의 학생회 총무를 맡고 있으며, 짬짬히 새누리당 관계자들의 이런 저런 정무 수행을 도와주는 것을 소일 거리로 삼고 있었다. 전국 제일 세계 제일의 명문대학교에 몸담은 유수의 인재들인지라 정계 관계 법조계 재계 업계 노동계 예술계 학계 언론계 교계 교육계 심지어 화류계 연예계에 이르기까지 재학 중인 학우들임에도 불구하고 러브 콜이 찾아 오는 것은 놀랍지 않은 일이다. 인턴으로 일해달라, 보조로 일해달라, 직함은 그러하지만 실제로는 국가의 중대소사를 관장하는 것이 우리의 학우들이다. "선배"도 그들 중 하나였다.
- 어 그러려고 했는데, 이 어르신들께서 내 말을 영 귀담아 듣지 않으셔서 말일세. 해서 하 답답해 내 먼저 귀국했네.
- 그 큰절 사진 때문 말이군요.
- 그것도 있고.
- 내가 보아도 그건 별로 좋은 행보가 아니었지 싶수. 형 주변에서 핀잔 좀 듣겠네요.
- 내가 누누히, 남의 나라에 손님으로 초청되어 가서 되레 큰절을 하는 것은 인민들이 따르는 가내의 예법에도 어긋나고, 경국대전의 법도에도 어울리지 않을 뿐더러, 국제 관례에 어긋날 뿐 아니라, 국제정치적으로도 계산될 실익이 없다고 어르신들께 누차 간언을 했네. 게다가 나와 함께 일행에 있었던 언론정보학부의 K 학우도 이같은 해프닝은 미디어 정치에서도 전례가 없고, PR 전략에서도 전무후무한 기행이라고 일침을 가했네. 하지만 이 어르신들이 여간해 말을 들어야 말이지. 호사가들과 모리배들이 달려들어 어떻게든 기삿거리를 만들어 이슈화되어 선거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하려는 정략에 의해서만 움직이게끔 판을 끌어가니, 나는 도오저히 당해낼 여력이 없었으이.
나의 오른쪽 어깨가 다시 쑤셔왔다.
- 아무래도 국내 정치는... 국제 정치에나 기대를 걸어야 하겠어요 그래.
- 나 역시 정치외교학을 공부하는 학생으로서 참으로 부끄럽다네.
- 선배도 나보다 더 잘 알고 있을 테고, 또 많은 노력을 기울여 온 것은 알지만, 이 한 마디는 해야 겠수. 선배께서는 작년 입학하실 적 입구역 풍경소리에서 벌어진 술자리에서 국제 경제의 동향을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로, 국내 경제의 방향성을 그 동안의 유례없는 호황의 반동이 될 전무후무한 불황의 국면으로 규정하지 않으셨수? 많은 다른 사회과학대학의 선배들이 '국제 경제의 역동적 변화에 대한 국가 경제의 대응력을 키우는 것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민주화의 성과를 보존하고 발전하여 민주주의의 공고화를 이룩하는 것이 더 시급한 일이기에, 우선은 민주주의를 주도한 어르신들의 집권을 위해 우리 서울대 학우들이 나서야 한다', 이렇게 이야기했었수. 그래도 선배는 고집을 부리면서, 맹선생의 명구인 "유항산유항심 무항산무항심"까지 인용하며 인민에게는 먹고 사는 문제가 우선 선결되어야 하니, 그러므로 국가 경제에 대한 안목을 가진 어르신들이 그래도 있는 기존 정권이 재집권하는 것이 당장으로서는 낫다, 이렇게 고집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보세요. 그런 논리를 주장한 선배나 선배에게 동조한 다른 선배들의 도움으로 재집권한 기존 정권이 과연 국제 경제에 대한 국가 경제의 대응력을 키우는 제도적 조건들 중 뭐하나 제대로 완비한 것이 있는지, 과연 들 수 있는게 뭐가 있수?
다른 대학교였다면, 특히 요즘과 같이 권위주의와 서열주의가 다시 판치는 이 어두침침한 시국에서는, 이렇게 몇 학 번 위의 선배에게 당돌하게 대어드는 것이 감히 허용되지 않았을 것이나, 조국의 민주화를 견인하는데 이바지한 바 있으며 지덕체가 훌륭히 함양된 서울대 학우들은 민주주의의 정신을 몸과 마음에 깊이 새기고 있는 바이기에, 선배 앞에서 반기를 들고 이의를 제기하는 것을 허용할 뿐 아니라 장려하고, 독려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다. 미래의 엘리트들이 그러한 민주주의적 의사소통의 습관을 기르지 않는다면, 민주 조국의 앞날이 그야말로 아득하기 때문이다.
-그래 내 지금 생각해보면 신입생의 패기로 배움이 부족하여, 현실의 구체성을 간과하고 정치학 교과서 경제학 참고서에서 배운 추상적 이론에만 근거하여 비귀납적이고 연역적으로만 성급하게 결론을 내리다보니 기존 세력의 재집권이 민주 조국의 존속을 위해 역설적으로 올바른 방향이었다고 오판하게 되었던 모양이야. 그 때는 내가 막 수능을 치고 어렸던 까닭에 나이브했었지.
어느새 이런 이야기를 하다 보니 리무진은 서울대학교 교문에 지나 올라가고 있었다.
- 선배, 그럼 나는 이제 수업을 들으러 가보겠수.
- 그래, 다음에 또 보자. 아, 그리고 정치외교학과에서 오늘 하계 계절학기 종강 파티가 있으니 오시게.
내 듣자 하니 다른 대학교에서는 학생들이 같은 학과 내에서도 서로 서로 동무의 우애를 나누며 친하게 지내지 못하고, '인싸'니 '아싸'니 하는 것을 만들어 배타적으로 집단화하며 배척한다 하였다. 심지어 어떤 학생은 동무들과 어울려 밥을 먹는 것조차 어려워 화장실 용변소에서 홀로 밥을 먹는다 들었다. 그러나 우리 서울대학교에서는 결코 이러한 일이 벌어질 수가 없는 것이니, 지덕체를 두루두루 구비한 재원들이 가득한 이 학교에서는 사교성의 출중함에 있어서는 모두가 인싸이며, 학생 한 명 한 명의 개별자적 독창성에 있어서는 모두가 아싸나 다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정치외교학과와 인류학과가 어우러져 서로의 개강 종강 파티에 참여하는 것은 다반사이며, 심지어 인문대와 자연대, 문과와 이과가 어우러진다. 요즘 일군의 사람들이 문과가 낫네, 이과가 낫네, 공대가 낫네, 법대가 낫네, 따지는 것은 장난삼아 하는 것이라 해도 소인배들이나 하는 짓인 것이다.
강의실로 들어가는 데, 누군가가 뒤에서 나를 소리쳐 불렀다.
- 족가!
미리 밝혀 두지 않았으나 내 이름은 족가다. 족은 민족의 '족'이오, 가는 국가의 '가'이다. 민족과 국가를 양 어깨에 짊어지라는 가족 어르신들의 염원과 기대가 담겨 있는 이름이라 할 수 있다.
-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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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세월호를 아직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