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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12069
    작성자 : 닉네임없음Ω
    추천 : 52
    조회수 : 2324
    IP : 211.172.***.70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09/04 18:31:54
    원글작성시간 : 2008/09/04 16:15:34
    http://todayhumor.com/?humorbest_212069 모바일
    사지마비 프로게이머 “나는 이기고 싶다”



    [쿠키 사회]“서른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마치 외마디 절규처럼 들렸다. 순간 그의 손을 덥썩 잡고 말았다. 얼음장 같다. 온기조차 느껴지지 않는 손바닥의 질감. 그 손끝 마디마디 사이로 고통과 절망과 위태로움이 뚝뚝 묻어난다. 박승현. 근위축병 환자다. 아직까지 좌절하기에는 너무 아까운 스무살이다. 하지만 그가 앓고 있는 병은 소름끼칠만큼 잔인하다. 처음엔 발끝의 세포부터 서서히 죽어간다. 발가락이 마비되고 나중에는 두다리를 옴짝달싹할 수 없게 된다. 상체로 전이된 병은 급기야 온몸 전체의 운동신경 모두를 파괴시킨다. 시간이 흐를수록 육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무용지물이 되고 만다. 마치 닳아서 터져버린 헌 신발처럼 말이다. 아직까지 병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치료법도 딱히 없다. 할 수 있는 일이란, 몹쓸병을 숙명처럼 받아들이는 일. 그것이 전부다. 막다른 길에 들어서게 된다면, 단지 기댈 곳은 기적뿐이다. 그는 그렇게 삶과 죽음의 경계에 위태롭게 놓여있다.

    그런 승현씨에게는 근위축병 환자라는 타이틀 외에 또 다른 타이틀이 있다. 프로게이머다. 그것도 한창 잘나가는, 주목받는 무서운 신예다. 세상의 시선이 그에게 집중되는 이유는 '지체장애1급 프로게이머'라는 특별한 이력 때문만은 아니다. 실제 그는 실력으로 게임계를 주름잡고 있다. 그에게 게임은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하는 유일한 수단이다. 숨통을 조여오는 몹쓸병에서 탈출할 수 있는 비상구. 게임은 그에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창이다.

    고통
    지난 25일 인터뷰를 위해 찾은 대구 신암동 집은 초라했다. 33㎡(10평) 남짓한 아파트는 그의 몹쓸병만큼이나 고단해 보였다.

    "안녕하세요."
    취재진을 본 그가 쑥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나지막한 목소리에는 낯선이들에 대한 서먹함이 묻어있는 듯했다.

    그의 모습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젖은 솜뭉치처럼 축 늘어진 다리에는 근육이라고는 찾아 볼 수가 없었다. 뼈만 앙상하게 남은 팔에는 실핏줄이 선명했다. 가느다란 목은 힘에 겨운 듯 흐느적 거리고 있었고, 삐죽삐죽 정리되지 않은 머리카락은 그가 외출이라는 것을 전혀 생각지도 못하고 있음을 짐작케 했다. 13년동안의 투병생활은 그렇게 그의 몸 구석구석을 헤집고 찢고 할퀴어 놓았다. 그것도 아주 서서히….

    "지금 몸무게요? 30㎏입니다. 예전에 달아 본 거라서 정확하지는 않아요. 키는 다리가 펴지지 않아서 재보지를 못했어요. 한 160㎝는 될려나…."
    고통의 무리가 그의 몸에 내려앉은 것은 7살 때였다. 하지만 그때까지만해도 남들처럼 걷는 것에는 무리가 없었다. 단지 다리에 힘이 없어 넘어지는 횟수가 잦을 뿐이었다. 몸도 건강했고 밥도 잘먹었다. '그러다 말겠지' 부모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불행의 그림자가 덮친 건 초등학교 4학년 여름방학때였다. 다리에 이상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발걸음을 떼고 무릎 관절을 움직이는 일이 불가능했다. 걷는 것은 커녕 일어서는 것조차 힘겨웠다.

    정밀검사를 받은지 일주일 후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가 들려왔다. '근위축병'이라고 했다. 지금은 다리만 못쓰지만 해가 갈수록 팔도 마비되고 최악에는 온 몸 전체를 쓸 수 없다는 게 병원의 진단이었다. 그때부터 그는 직립보행의 깊고 완전한 쾌감을 잃고 말았다. 그것은 느닷없이 닥친 재앙과도 같았다. 잠못이루는 혹독한 불면은 점점 더 깊어져만 갔다.

    불행은 끝도 없이 몰아쳤다. 병원에 갈 형편이 아니었다. 정부보조금으로 간신히 살아가는 살림살이에다 의료보험도 안되는 병원비는 감당하기 힘든 것이었다.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부모는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가는 것조차도 힘겨웠다. 휠체어를 탄 그를 택시는 무심하게도 매번 그냥 지나쳤다. 세상이 야속했다.

    "참 많이도 울었어요."
    그의 옆에 있던 어머니 구계화씨(41)의 눈은 이미 붉게 충혈되어 있었다. 눈 가장자리에는 원망섞인 눈물이 가득 맺혀 있었다.

    "휠체어 없이 승현이를 들춰업고 병원을 갈때는 수십번도 더 넘어지고 또 넘어졌죠. 얼마나 서럽고 원망스럽던지 길 한복판에서 둘이서 부둥켜 안고 펑펑 운 적이 한두번이 아니었어요."
    어렵게 병원을 들락날락거렸지만 몹쓸병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는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었다. 외출하는 것이 두렵고 힘겨웠던지 그도 병원가기를 꺼려했다. 줄달음질치고 싶었지만 그때부터 모든 것을 현실로 받아들이기로 했다. 어금니 깨물고 인내할 수밖에 없었다.

    "승현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게 뭔지 아세요?"
    어머니가 대뜸 묻는다. 답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기자를 보고 어머니는 빙긋 웃으며 말을 잇는다.

    "야속한 세상도 아니에요. 몹쓸병도 아니고요. 승현이는 바퀴벌레를 제일 무서워해요."
    어느날이었다. 등받이 의자에 기대어 있는 승현씨 앞으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기어가고 있었다. 몹쓸 벌레가 그의 축 늘어진 다리 사이로 다가올 때 결국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마비된 팔다리로는 도저히 쫓을 수가 없었다. 스멀거리며 덮치는 공포를 그는 그저 멀뚱거리며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완전히 무장해제 당한 채, 그것은 혹독하고 잔인한 비극이었다.

    '고통이 이런 것이구나.'
    승현씨는 그때 자신이 움직일 수 없음을 한탄했다고 했다. 그것은 아직까지 증발하지도 않고 스며들지도 않은 채 뼛속 깊숙이 남아서 고통이라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었다.

    소통
    감금 아닌 감금생활은 그를 무료하게 만들었다. 하루종일 하는 일이라고는 TV를 보거나 멍하게 누워있는 일이 전부였다. 그러다 우연히 게임을 알게 되었다.

    "그냥 재미있었어요."
    처음에는 게임 채팅창에서 유저(이용자)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다 차츰 게임 본연의 매력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기는 횟수가 차츰 늘어났다. 선천적으로 승부욕이 강했던 그는 지고나면 버럭 화를 내기도 했다. 살아있음을 느꼈다. 운동신경이 마비돼 축 늘어진 팔·다리였지만 게임을 할때면 마치 세포가 다시 꿈틀거리는 듯했다. 2005년 Clan Go(게임 동호회)에 가입했다. 아이디는 Space로 정했다. Clan의 이름 'Go'와 아이디 'Space'가 합쳐져 자연스럽게 Go)Space가 됐다. 지체부자유의 한계에서 벗어나고픈 그의 욕구가 아이디에 고스란히 새겨져 있는 듯했다. 이후 그는 워크래프트3 래더게임 개인순위 1위에도 올랐다.

    하지만 게임세상에도 장애인에 대한 편견은 있었다. Clan Go에 가입하기전 승현씨는 다른 Clan에 가입 하려 했다. 하지만 그가 오프라인 정기모임에 참석할 수 없는 장애인이라는 것을 알고는 Clan에서 가입을 거부했다. 그는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그 일은 그의 인생을 180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 프로게임단 '프나틱'에서 이미 그를 예의주시하고 있었다. 프나틱은 영국에 베이스를 둔 세계 최고의 팀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카운트스트라이커 대회때는 1순위로 초청받는 팀이다. 얼마후 프나틱에서 연락이 왔다. Clan Go에서 먼저 실력을 키우고 있으라는 제의였다. 당시 그는 아마추어 게이머였기 때문에 어느정도 성적이 있어야만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 그후 그의 상승세는 무서웠다. 2007년 10월 AWL 시즌1 워크래프트3리그에서는 프로게이머 박준을 꺾고 4강에 오르며 무서운 신예로 주목받았다. 시즌3에서는 결승까지 올라 워크래프트3 차세대주자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의 성적이 궁금했다.

    "글쎄요. 정확하게는 몰라요. 성적은 별로 신경쓰지 않아요. 단지 게임하는 게 즐거울 뿐이죠."
    의외로 그의 성적은 놀라웠다. 매니저 김민해씨가 보내 준 수상경력에는 그의 실력이 예사롭지 않음을 증명해 주고 있었다. 프나틱과 인연이 된지 3년만에 그는 최근 프로게이머 자격을 얻었다. 'Space 박승현'은 그렇게 세상과 소통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망
    승현씨의 왼쪽 팔목에는 언제부터인가 빨간 팔찌가 채워져 있다.

    "그 팔찌는 뭐죠?"
    "이거요? 올해초에 선물로 받은거예요. 중국에서 대회가 있어 갔는데 그때 제 팬이라면서 어떤 여성이 주더라고요."
    그는 예상밖으로 해외에서 더 유명하다. 유럽에는 그의 팬커뮤니티가 있을 정도다.

    "팬도 있고 부러운데요?"
    "뭘요! 흐흐."
    인터뷰가 끝날 즈음 그에게 물었다.

    "게임하는 모습 좀 볼 수 있을까요?"
    "그럼요."
    하지만 게임은 바로 시작되지 못했다. 그의 어머니가 팔의 위치부터 의자의 기울기까지, 세세한 부분까지 자리를 잡아주고 나서야 그는 게임을 시작할 수 있었다. 한참 게임에 열중하고 있는 그를 보고있는데 이상한 장면이 눈에 들어왔다. 보통 게임머들은 Ctrl키와 함께 1부터 0까지의 숫자 모두를 사용하는데 그는 1부터 4까지만 사용하고 있었다. 다리에서 시작된 마비가 팔로 전이되면서 그는 이제 5번이상의 숫자를 누를 수 없게 됐다. 하지만 승현씨는 그것을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그마저도 이겨내고 있었다.

    "2년전부터는 손가락과 목만 움직일 수 있어요."
    그의 그 말이 기자에게는 다른 의미로 들렸다.

    '손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힘만은 남겨주세요.'
    그도 그렇게 중얼거리고 있는 듯했다.

    "꿈이요? 다 이기고 싶어요.…몹쓸병도 게임도…"
    게임을 마친 그가 갑자기 대답한다. 잠깐동안이었지만, 컴퓨터앞에 앉아있는 그의 모습은 아주 편안해보였다. 전혀 장애인처럼 보이지 않았다. 컴퓨터를 끄고 켤수 있는 힘마저도 없는 지체부자유의 몸이지만, 그는 e-세상속에서 새로운 꿈을 꾸고 있는 게 분명해 보였다. 그 속에서 그의 세포는 다시 꿈틀되고 있었다.

    못다한 이야기
    인터뷰 내내 기자는 괴로웠다. 그의 지난 삶을 조목조목 캐묻는 것이 한편으로는 잔인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곪아터진 상처에 또 다른 생채기를 내는 것 같아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는 그의 외마디를 들었을때는 다음 질문으로 넘어가는 것조차 힘겨웠다. 하지만 꼭 묻고 싶은 것이 있었다. 인터뷰를 마치고 돌아서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서른까지만 살고 싶다고 했죠. 왜 그런 생각을 하게됐죠?"
    한참을 머뭇거리던 승현씨가 어렵사리 대답했다.

    "게임을 못하게 되는 순간이 오면, 사는 게 너무 힘들 것 같아서요."
    그의 어머니 눈에 또 눈물이 맺힌다.

    박승현의 성적은?
    ◇개인리그
    -NicegameTV GWL Season1 1위
    -NicegameTV AWL Season1 4위
    -NicegameTV AWL Season3 2위
    -NicegameTV AWL 왕중왕전 4위
    ◇팀리그
    KEC 2006 4위
    NGL1 Season2007 League 3위
    KEC 2007 2위
    ROTK 2008 Wuhan 4위
    WPL Season13 1위
    ◇현재 승현씨는 NicegameTV에서 주최하는 워크래프트3 개인리그 16강에 진출해 있다. 팀리그로는 NGL, WC3L이 진행중이고 WPL도 곧 시작된다.

    (도움주실 분 (053)954-7576)
    글=국민일보 쿠키뉴스 제휴사/ 영남일보 백승운기자, 사진=우태욱기자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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