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우야 나 미애 없이 이제 어떻게 사냐? 응? 흑흑...."
준혁이는 그렇게 울먹이며 소주를 한번에 들이켰다. 술에 취해 이미 이성을 잃은
준혁이는 주위의 시선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마음껏 울고 소리지르며 울부 짖고
있었다. 내가 그에게 해줄수 있는 것이라곤 그저 말없이 들어주는 것과 틀에 박힌
위로 한마디를 해주는 것 밖에 없었다. 나는 간간히 시계를 들여다 보며 어서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였다.
"으헝헝.....내가 얼마나 저를 사랑했는데....나를 그렇게 쉽게 버려? 엉? 안그래 선우야?"
"그래.....그래.... 늦었으니까 어서 집에가자."
새벽 1시가 넘어가고 있을무렵 나는 더이상 버티지 못하고 억지로 그 녀석을 들쳐매고
주점에서 빠져나왔다. 그녀석을 업고 한참을 가던 나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근처 슈퍼앞
의자에 그녀석을 잠시 앉혀 놨다. 내가 한참 숨을 고르고 있을때 그 녀석이 살짝 정신이
돌아왔는지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정신을 못차리고 주위를 둘러보고 있던 그 녀석의 시선이
갑자기 어느 한곳에 멈추었다. 무엇일까 하고 보니 슈퍼의 열린 문 사이로 보이는 가지런히
진열된 초콜렛이였다. 그 녀석은 초콜렛에 시선을 떼지 않은채 나에게 말했다.
"나 초콜릿좀 사주라."
갑자기 애 처럼 초콜릿을 사주라는 준혁, 나는 어이가 없었지만 그 녀석 눈빛이 워낙
진지했기 때문에 말 없이 슈퍼에 들어가초콜릿을 사왔다. 초콜릿을 받은 그 녀석은
초콜릿 포장을 뜯으며 말했다.
"미애가 나랑 데이트 할때 마다 항상 초콜릿을 사달라고 졸랐거든 큭... 미애가
그렇게 좋아하던 요 녀석 무슨 맛인지나 볼려고 말이다 큭큭.."
그 녀석은 쑥쓰러운 미소를 지으며 초콜릿 한 조각을 뜯어내 입에 넣고 오물 거렸다. 못말리는
녀석, 준혁은 어렸을때도 그랬다. 나랑 같이 다닌 고등학교 3년동안 한 여자만 짝사랑해왔고
부끄럽다고 고백도 못해본채 졸업해 버린 마음 여린 녀석이였다. 그런 순진한 녀석이기에 자신의
사랑을 아낌 없이 그녀에게 쏟아 버린 것이다. 정말 미련한 녀석이였다. 나는 말 없이 담배를
꺼내 밤 하늘을 바라보며 담배를 피우는데 갑자기 들려오는 부시럭 거리는 소리에 준혁이를 바라
보았다. 나는 놀라 손에 들고 있던 담배를 떨어 뜨렸다.
우걱 우걱
굶주린 짐승이 썩은 고기를 뜯어먹는 것처럼 그 녀석은 한 마리 야수같이 초콜릿을 게걸스럽게
먹어대고 있었다. 그래, 단순히 초콜렛을 먹고 있는 것 뿐이야. 그런데 왜 이렇게 무서운거지?
그 녀석의 입에 들어간 초콜릿은 으드득 소리를 내며 부서졌다. 그 소리가 내겐 마치 사자가 영양의
고기를 뼈채 씹어 먹는 소리마냥 공포스럽게 들렸다. 그 녀석의 입가엔 침과 섞인 초콜렛이 잔뜩
묻어 있었고 초콜릿 봉지 마저 깨끗이 핥아 먹고 있는 준혁이의 모습은 너무나 괴이했다.
그날 그 녀석을 집에 데려다 주고 한참을 걸어가다 뒤를 돌아 보았을때 슈퍼쪽으로 다시 걸어가는
그 녀석을 보았다. 초콜릿을 한 아름 들고 나오는 준혁. 나는 준혁이 사라질때까지 한 참을 바라보다가
저 녀석이 초콜릿을 먹던 말던 내가 무슨 상관일까 하는 마음이 들어 밀려오는 의구심을 떨쳐버리고
돌아섰다.
그때 그 녀석을 말렸어야 했다...........
준혁과 마지막으로 헤어진지 일주일이 지났다. 그 일주일동안 준혁은 회사에 오질 않았다. 무슨 일이
그녀석에게 일어났나 싶어 오늘 준혁의 집에 가기로 했다. 준혁이의 집 초인종을 아무리 눌러도 대답이
없자 문을 살짝 밀었는데 그대로 쑥 열렸다.
"문도 잠그지 않고 ....."
나는 집안으로 들어가 보았다. 집안에 들어서자 마자 제일 먼저 느낀 것은 내 코를 찔러오는 진한
초콜릿 향기 였다. 달콤한 냄새, 그 달콤한 냄새가 너무나도 역겹게 느껴졌다. 나는 코를 들이 막고
준혁의 방을 열어봤다.
"준혁아.....?"
거기엔 분명히 준혁이가 있었다. 그런데 나는 너무나 놀라 뒷걸음질 치고 말았다. 준혁의 작은 방안은
온통 초콜릿이 뒤범벅이 되어 칠해져 있었다. 마치 진흙같이 진득하게 방안을 덮고 있는 초코릿들, 그
안에서 준혁은 진흙목욕을 즐기는 돼지 처럼 초콜릿 웅덩이 속에서 뒹굴고 있었다.
"히 히 히 히 "
뭐가 그렇게도 즐거운지 그 녀석은 초콜릿이 잔뜩 낀 검게 변한 이를 드러내며 실컷 뒹굴고 있었다.
준혁이의 모습은 어느새 많이 변해 있었다. 마른 편이였던 그 녀석이 일주일 만에 살이 엄청 나게
불어있었고. 눈엔 그늘이 져 잇었다. 손톱 발톱 할것없이 잔뜩 마른 초콜릿들이 끼어있었고 제 살에
묻은 초콜릿도 핥아 먹고 있었다. 이 녀석은 일 주일동안 이 방안에 틀어 박힌채 초콜릿만 먹고 지낸
것이엿다.
"정신차려 준혁아!"
내 목소리를 들었는지 준혁이는 나를 올려다 보았다. 노랗게 변한 퀭한 눈, 징그럽게 변해 버린
그의 눈길을 나도 모르게 피해버렸다.
"히히히히 선우야 같이 놀자 히히히히"
마치 애 처럼 변해 버린 준혁이. 불현듯 어떤 책에서 초콜릿에 대해 읽은 것이 기억난다.
- 초콜릿의 안에는 적은 양이지만 카페인이란 성분이 들어있다.............카페인은 중추 신경을 자극해
우울한 사람의 기분을 밝게 달래준다....................
슬픔에 잠겨 있던 준혁이는 초콜릿을 먹자 자신의 우울한 기분이 조금 달래지는 것을 느꼈을 것이다.
자신의 그 슬픔을 달랠 길이 없던 준혁이는 초콜릿만 내내 먹으며 가슴속 슬픔을 지우려고 했던 것이였다.
그러나 초콜릿을 일주일동안 엄청나게 먹어댄 준혁이는 그 황홀한 기분에 빠져 미쳐버린 것이였다. 나는
안쓰러움과 착잡한 마음에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준혁이의 방 구석에 초콜릿에 뒤 덮인 어떤 형체가
보였다. 준혁이는 내 시선을 느꼈는지 그 형체로 기어가 그 형체의 윗 부분에 있는 초콜릿을 핥아 먹었다.
준혁이 핥아 먹은 자리에는 사람의 얼굴이 있었다.
"히히히.... 미애........초콜릿 좋아하잖아 히히....많이 먹어......"
아, 눈밑의 작은 점.... 미애였다. 미애는 이미 죽어 있었다. 준혁이 핥아 먹은 자리 빼고 온통 초콜릿에
뒤덮인 미애는 눈만을 부릎뜨고 있었다.
"이....이 미친 자식 사람을 죽였어....죽였다고..!"
갑자기 준혁이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노란 눈, 나를 향해 덮쳐 오던 노란눈..........
지금 흐려져 가는 의식 속에 기억나는 것은 그것 뿐이다. 나는 죽은 미애의 곁에 똑같이 초콜릿에 온통
뒤덮인 채로 죽어가고 있다. 그 녀석은 내가 흐린 눈빛으로 자신을 보고 있다는 것을 느꼈는지 녹은 초콜
릿을 내 얼굴에 부어벼렸다.
나는 진한 초콜릿 향기 속에서 천천히 죽어가고 있었다.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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