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들보고 너무 황당해서
여러분도 한번 봐주세요..
당시 대전에 임시 수도를 차린 이승만은 인민군이 평택까지 내려왔다는 미확인 소문만 믿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전주로 도망갔다가 사실을 확인하고 다시 돌아와 당시 머물던 대전 성남장에 투숙하였으나 그들의 한심한 작태에 분노한 여관 주인 김금덕 여사가
"너같은게 대통령이냐"며 그들의 투숙을 거부하는 사태(대전 성남장 사태)가 벌어졌다.
이승만의 피난길은 대전에서 3일을 머물다가 다시 대구로 내려왔으나 "너무 멀리 내려오셨다"는 참모들의 조언에 따라 다시 대전으로 올라가기도 하였다. 여기에서 다시 이리(지금의 부산), 이리에서 목포, 목포에서 부산으로 이어진다. 박명림은 1950년 7월 1일 이승만의 대전 탈출은 어떤 의미에서도 설명이 되지 않는 '도망'이라고 표현하였다. 7월 1일부터 7월 9일까지의 이승만의 행적은 우왕좌왕 그 자체였다. 특히 대전을 탈출했다가 대구를 거쳐 다시 대전으로 돌아온 12시간 30분, 대전에서 호남을 거쳐 부산으로 도망친 32시간동안 그는 아무와도 연락을 취하지 않았다. 전쟁이란 비상사태 속에서 국가의 최고 통치자가 시간으로만 48시간이 넘는 시간동안 스스로 살기 위해서 잠적해버린다. 한마디로 자신이 살기위해 국가의 위기상황에서 최고 통치자의 유고사태를 스스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2.
이승만이 죽도록 저주하였던 독립운동가 3분이 있었으니 단재 신채호선생, 도산 안창호선생, 성재 이동휘선생이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1936년 2월 21일 여순감옥에서 뇌일혈로 옥사 하셨고,
도산 안창호선생은 1938년 12월 24일 서대문형무소에 수감중 간암말기로 병보석으로 풀려나 1938년 경성제국대학병원에서 별세하셨고,
성재 이동휘선생은 러시아 지역 여성사회독립운동가 킴 알렉산드라 스탄케비치의 주선으로 러시아로 건너가 러시아 지역에서 독립운동중 1935년 1월 31일 독감에 결려 병사하셨다.
역사학자들은 3분이 생존하여 해방후 조선으로 돌와왔어도 결국은 빨갱이로 몰려 죽었을것이라고 기술한다.
단재 신채호선생은 약산 김원봉, 석정 윤세주선생등 조선민족혁명당 계열이라결국 이승만에게 학살 당했을것이고,
성재 이동휘선생은 러시아 독립단체인 한인사회동맹 계열이라 결국 이승만에게 학살 당했을것이고,
도산 안창호선생은 독립운동 초기 이승만과 같이 친 미국적인 정책을 지향하였으나 스스로 지난 과오를 반성한후 독립운동 후기에 들어 민족주의계열, 사회주의계열과 다양한 활동을 하였고 무력독립운동을 주장하는 세력과 뜻을 같이하여 결국은 이승만에게 학살당했을것이라고 말한다.(도산선생의 독립운동 계열인 흥사단 출신중 국내파들은 친일파로 변절하였으나 중국파 임시정부 활동자들은 국내로 들어와 빨갱이 몰려 학살 당함)
3.
돈먹는 하마 이승만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었던 임시정부 수뇌부는 이승만에게..."
부분에서 그돈 어디에 썼냐하면 하와이 교민이 독립운동하라고 모아준 돈으로 당시 미국 재벌들도 타기 힘들었다는 롤스로이스 사서 몰고 다녔죠.."
4.
당시 외교의 중요성이 대두되던 분위기에 힘입어 초대 상하이 임정 대통령으로 취임.
본인의 직함이 상하이 임정 대통령임에도 불구하고, 임기 내내 상하이에는 거의 가보지도 않음.
밑에서 실무를 담당하던 안창호 선생 혼자서 대통령의 결제서류를 다 처리하느라 과로로 녹초가 됨.
지쳐버린 안창호 선생이 이승만에게 상하이에 한번이라도 와볼것을 간청하자, 이승만은 이렇게 대답함.
'상하이는 위험한 곳이다. 고로 나 이승만, 귀하신 몸은 대해를 건너 그곳으로 갈 수가 없다.'
5.
이제는 말할 수 있다라는
동영상의
"천황을 살려라 도쿄전범재판의 흑막"에 보면
이승만 대통령이 당시 맥아더 사령관에게
"일본에 있는 많은 조선인 징병자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라고 물었더니
대답..
"일본에 가있는 인간들은 공산주의자 아니면 다 친일파 놈들입니다..
난 신경 안써요.."
그 때문인지..
해외에서 "2차대전 포로 잔학행위"를 조사할때
조선인 징병자들이 몽땅 죄를 뒤집어쓰고 사형당할때
(일본인 고관들이 조선인 징병자들중에 문맹이 많다는걸 이용해 뒤집어 씌움..
왜 재판 받는지 하나도 안 알려줬다고 함)
그냥 보고만 있었지요...
당시 검사 선우종원의 증언
"우리가 대통령의 그 얘기를 들을때 완전 황당했지'
\.. 거기 가 있는 사람들은 강제로 끌려간 사람들인데..
어떻게 친일파니 공산주의자니..라는 얘기를 하냐고.."
6
당시 이승만 대통령이
반공을 강조하던 미국보다
더 심하게 "공산주의자를 반드시 없앨것"이라고
야당이나 일반 사람들까지 공산주의자라면서
잔인한 박해를 가하니까
미국에서 "뭔가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면서
"정신과 치료를 받아보라"면서 권했다는 황당한 이야기..
7.
미군정 관리 하지 중장이
"좌익이건 우익이건 수많은 정치인들이
"연립정부를 세우고 이승만도 참여시킵시다"라는 얘기가 있고
당시 이승만을 연립정부의 국회의원이나 어떤 중요한 자리에 추대하려는 움직임이 있는데
한번 해보라.. 한국을 안정시킬 좋은 기회 아니냐"고 했더니
대답은
"나는 공산주의자든 사회주의자든
독립운동을 했더라도 반역자라고 생각합니다..
한명의 반역자라도 있는 정부에 나는 참여 못합니다"라고 거절해서
기회는 깨지고 하지는 엄청 화를 내면서 욕을 퍼부었다는 얘기..
8.
금정산 공비 사건 조작.
당시 선우종원은 장면 총리 비서실장이었는데 국무회의에 들어가니
(당시 고문과 폭력, 부패로 온갖 비난을 받던 김창룡이 자기 말 잘듣는다고..
이승만이 "김창룡 대령 같은 애국자가 없다"고 하면서 비서실장 고모씨에게 "김창룡을 국무회의에 불러라"고 지시.
조병옥이 "안됩니다. 일개 대령을 국무회의에 부르시다니요.
상을 주시려면 차관을 시켜서 해도 되는데.."라고 했으나 국무회의실 문이 열리며 김창룡을 위시해 장복선(당시 경위, 김창룡과 같이 근무, 사건 조작 전문 기술자, 나중에 미국 이민) 등이 사건 증거물인 총기류 등을 들고 들어와. 이승만과 약속이 다 돼있던 상태.
계엄 해제 후 당시 사건 서류가 검찰에 넘어왔는데 하루는 조진만 법무장관(장면 국무총리가 제청한 장관)이 선우종원 불러서 "그 사건 조작입니다. 사건의 범인은 원래 김창룡 부하였는데 김창룡과 사이가 나빠져 미군 정보대에 가서 근무 중이었는데 김창룡이 사건을 조작해 잡아넣었다"고 말해.
조진만은 국무회의에서 조작 사실 폭로하겠다고 주장----> 선우종원은 안그래도 총리가 추천한 장관들에 미움 갖고 있는데 안통할 것이라며 말렸으나 말 안들어---> 국무회의에서 조작사실 보고하자--->이승만은 "댁이 누구시더라?"고 해--->
조진만이 "법무장관 조진만입니다"라고 하자---> 이승만은 "장관이 사건 잘못봤어"라고 단언---> 결국 조진만은 이승만에 미운털 박혀 임명 6개월만에 사표.
으휴.. 답답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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