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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11154
    작성자 : 인중없는아이
    추천 : 18
    조회수 : 1117
    IP : 222.121.***.118
    댓글 : 3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08/26 12:58:00
    원글작성시간 : 2008/08/22 01:16: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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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머, 미안.”

    “으...응? 아아. 아니야. 괜찮아. 하핫.”

    긴 생머리.

    청순하면서도 단아한 얼굴.

    모델급 몸매.

    내 얼굴은 화끈거리기 시작했다.

    “미안해. 중심을 못잡고 그만 발을 밟아버렸네. 에에. 어쩌지...?”

    “아...아니래두 그러네. 하핫. 야. 가자. 얼른!!!”

    난 친구를 데리고는 서둘러 매점에서 나왔다.

    아직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있었다.

    “뭐냐, 너? 왜 그렇게 허둥대는건데?”

    “응? 아니 뭐 그냥. 빨리 집에가자는 거지 뭐.”

    “너 설마... 미연이 좋아하는거냐?”

    “으엥? 아...아냐. 좋아하기는 무슨.”

    “하긴. 미연이 정도라면 남자친구가 분명히 있을거야? 그치? 안그래도 저애를 노리는 킹카들이 엄청나게 많은데...”

    “그...그렇겠지...휴우...”

    같은 과, 같은 나이의 차미연.

    그녀는 쉽게 말해 퀸카다.

    퀸카중에서도 퀸카.

    그런 그녀에 비해 나는 그저 평범한 남자학생 중 한명.

    물론 내 주제를 모르는건 아니지만 난 그녀를 처음봤을때부터 좋아했다.

    그녀와 사귀었으면, 아니 이야기라도 마음껏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난 항상 그것만을 바래왔었다.






    그렇게 몇주가 지나고, 시험을 1주일 남둔 어느 날.

    공부를 하다가 모처럼 만난 친구랑 술을 기울인 나는 밤늦게 집으로 향하고 있었다.

    술을 먹은지라 약간은 알딸딸한 상태의 나.

    그러던 중 문득 내 스스로가 말하는 것이 들렸다.

    아니 들린다기보다는 뭐랄까.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처럼 말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처음엔 내 스스로에게 말하는 듯한 혼잣말로 시작되었다.

    ‘내기를 하자고...그렇게 누군가와 내기를 해서 그녀를 얻었으면...내기를...하겠나?’

    혼잣말은 그런식으로 그 누군가가 내게 말을 하는 느낌으로 바뀌었다.

    그리고는 확실히 누군가 내 마음속으로 말을 걸어왔다.

    ‘나와 내기를 하겠나?’

    나는 약간 놀랐다.

    ‘누구야? 나 자신인가?’

    ‘아니다. 난 악마다. 이렇게 말하면 이해하기 쉬울려나?’

    ‘악마? 그런게 있을 리가 없어. 그냥 나 혼자만의 상상일꺼야. 그렇지?’

    ‘믿든 말든 상관없다. 날 불러낸건 너니까. 난 그저 내기만 하면 된다.’

    술 기운 때문에...시험이 코앞이라는 압박감 때문에...

    나혼자만의 망상이라 여겼다.

    어차피 망상이라면 재미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 내기 좋지. 어떤 내기인데?’

    ‘간단하다. 이번 중간고사. 네가 1등을 할 수 있느냐 못하냐이다.’

    ‘중간고사? 1등을 하면 뭐를 얻게 되는거지? 반대로 1등을 못하면?’

    ‘1등을 못하게 되면 내가 이기게 되므로 네 목숨을 가져가겠다. 반대로 1등을 한다면 그녀를 네 여자친구로 만들어주지.’

    ‘그녀라니?’

    ‘니가 꿈에서도 소망하던 차미연. 그녀 말이다.’

    놀라면서도 웃음이 나왔다.

    내 마음속 깊은 곳에서도 차미연이라는 존재가 이렇게 중요했단 말인가?

    하긴 내 스스로의 상상이니 내가 원하는게 뭔지 정확히 알겠지.

    ‘좋아. 어차피 노력한다면 1등은 그렇게 어렵지 않으니까. 그 내기 하겠다.’

    ‘좋다. 그럼 이만. 조만간 다시 찾아오겠다.’

    마무리도 정말 완벽해.

    정말로 악마와 대화하는 듯 한 느낌이잖아?

    그래 좋아.

    혼자만의 망상이라고 해도 일단 1등을 하면 스스로에게도 좋은 일이니까.

    그녀를 차지할수만 있다면 망상이라도 좋다.






    난 그 날 이후로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고작 1주일밖에 남지 않은 시간이었지만 내겐 충분했다.

    마음먹고 한다면 충분히 1등은 할 수 있으리라.

    시험공부를 하는 동안 차미연하고는 몇 번 마주쳤다.

    서로 밝게 인사를 나누었고 그럴때마다 난 의지를 불태웠다.

    저 여자.

    차미연을 가질 수 있다면 이정도는 할 수 있어.

    전에 1등하던 애하고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으니 분명히 할 수 있다.

    드디어 시험 당일 날.

    거의 1주일동안 잠을 못잔 상태라 힘겹게 시험을 치렀다.

    다행히 평소때와는 달리 문제가 잘 풀렸다.

    혼자만의 망상이라고 치부시킨 나였지만 그 기대감이 너무 커져버려 이젠 기정사실이라고 굳게 믿을 정도였다.

    말이 안된다고 계속 생각했지만 1등을 하고나면 왠지 차미연을 가질 수 있을것 같았다.

    가뿐히 시험을 마친 나는 집으로 돌아왔다.

    나에게 말을 걸어왔던 내 안의 나에게 마음껏 비웃어주고 싶었다.

    어떻게 차미연을 내 여자로 만들어줄꺼냐고.

    만들어줄수는 있냐고.

    조롱하듯 내 스스로에게 수백번을 되뇌였다.




    1주일 후.

    드디어 성적이 떴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난 바로 대자보 게시판으로 달려갔다.

    이미 그곳엔 많은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확인하고 있었다.

    힐끔보니 차미연도 친구와 같이 있었다.

    후훗. 왠지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분명히 1등은 나겠지.

    그런 마음으로 확인을 하는데...

    “어머. 미연아. 네가 웬일이야? 1등을 다 하고?”

    뭐? 차미연이 1등이라고?

    “글세. 나 그렇게 열심히 하지도 않았는데. 헤헷.”

    말도 안돼.

    난 애들을 밀치고는 성적을 확인했다.

    이럴수가...

    차미연이 1등이다.

    나는 2등이고...

    “너 항상 20등대였잖아?”

    “뭐 나름 열심히 했다고.^^”

    이런...젠장...

    “어머. 민수네? 네가 2등이구나. 나랑 거의 차이도 안나네. 너도 이번에 열심히 했나봐.”

    “으응? 아아. 그냥... 1등 축하해.”

    “고마워^^.”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을 수가 없었다.

    미친듯이 나는 화장실로 뛰어갔다.

    내가 2등을 할줄이야...

    그렇게 열심히 했는데...

    정말 미치겠다.

    설마 진짜로 내 목숨을 가지러 악마가 오는건 아니겠지?

    아니야.

    아닐거야.

    그건 나 혼자만의 망상이었는걸.

    그래. 난 그저 2등을 한거야.

    10등정도 하던 나는 이번에 열심히 공부를 해서 2등이라는 좋은 성적을 얻은 것 뿐이라고.

    난 그렇게 내 스스로를 위로했다.






    스스로를 위로했다고 해도 몇일간은 두려움에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했다.

    혹시라도 악마가 나타나지는 않을까 걱정이 태산이었는데 다행히 악마는커녕 내 스스로와의 대화조차 없었다.

    그렇게 몇일이 지나자 점차 잠도 제대로 잘 수 있었고 불안감도 어느정도 떨치게 되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집으로 간 나는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 그 때.

    어떤 여자가 뒤늦게 문을 열며 타는게 아닌가.

    여자를 살펴보던 나는 놀라고 말았다.

    “어엉? 너는 민수?”

    “응? 미연...? 네가 여긴 어떻게...”

    “에엥? 나 여기로 이사왔어. 몇일전에. 304호 사는데. 너도 여기 사나봐?”

    “나는 404호인데...”

    “어머나. 이게 무슨 인연이래? 너무 반갑다 얘^^”

    이럴수가.

    차미연이 나와같은 아파트에 그것도 바로 위층에 살게 되다니.

    그 순간 3층에서 엘리베이터가 일순간 멈추었다.

    “어엇? 이게 왜이러지?”

    난 응급버튼을 누르며 도와달라고 외쳤지만 대답이 없었다.

    미연과 이런 좁은 엘리베이터에서 단둘이 갇히다니...

    이런 말도 안되는...

    “에엥. 왜 이러는거지 갑자기? 무서워...”

    “걱정마. 내가 있잖아. 금방 열릴거야.”

    “고마워...”

    불안감을 떨치기 위해 우린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도도할줄 알았던 미연은 예상외로 착하고 순진했다.

    난 점점 더 그녀에게 끌리고 있었다.

    “저기 근데, 남자친구는 있어?”

    “응? 없는데...^^”

    “아...그래?”

    “근데 그건 왜 물어봐?”

    어쩌면 이번이 기회일지도 몰라.

    평소에는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했던 나였는데...

    내 스스로가 놀라웠다.

    “저기...나는 어때? 나랑...사귀지 않을래?”

    “으응...?”

    “아니 뭐 그냥. 아니다. 내가 괜히 헛소리...”

    “좋아.”

    얼굴을 붉히며 대답하는 그녀.

    뭐...뭐라고?

    그 때 엘리베이터 문이 열렸다.

    처음부터 고장나지 않았던 것처럼.

    “아아. 열렸네. 헤헷. 나 이만 가볼게. 내일...학교 같이 가는거지? 내 남자친구로서^^”

    그녀는 밝게 웃으며 집안으로 들어갔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난 꼼짝않고 가만히 서있었다.






    어느덧 5층에 왔고, 난 정신을 추스르며 집으로 들어갔다.

    내방에 들어가서는 침대에 누운 나.

    이런일이 생길줄이야.

    혼자만의 망상이었든 뭐든간에 난 분명히 내기에서 졌다.

    1등이 아닌 2등이었으니까.

    그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다.

    “어이. 잘지냈나?”

    순간 들려온 목소리. 굵고 허스키했다.

    깜짝 놀란 나는 벌떡 일어나 주위를 둘러보았다.

    “내기를 잊고 있었던건 아니겠지?”

    순간 눈앞에 검은색 물체가 모여들더니 사람모양의 형체가 되었다.

    아아 역시 모든게 꿈이었구나.

    하긴...그럴 리가 없지.

    “후훗. 꿈이라고 생각하는가 보군. 하지만 꿈이 아니다.”

    그는 책상에 있던 쿼터칼을 들어 내 팔을 찔렀다.

    안아플거라 생각하던 나는 커다란 비명을 지를수밖에 없었다.

    “봐봐. 꿈이 아니라고 했잖아. 이제야 좀 감이 잡히시나?”

    “으아아아악. 너 뭐야!!! 누구야!!!”

    “나라고 나. 지난번에 너랑 내기를 한 그 악마라 이말씀이야.”

    내 팔에서는 피가 끝도 없이 흘러내렸다.

    그래서인지 약간 정신이 몽롱해짐을 느꼈다.

    “그건 망상이야. 내 스스로의 망상일뿐이었다고!!!”

    “중요한건 넌 내기를 했고 내기에서 졌다는 거야. 이제 네 목숨을 가져가야겠다.”

    “자...잠깐!!! 아니야 이건. 이건 다 환상이야. 그래. 그렇지 않다면 내기에서 진 내가 차미연과 사귈 리가 없잖아? 지금 장난치는거지? 2등이라도 했으니 그녀와 그냥 사귀게 해주는거잖아.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그녀와 사귈수 있겠어? 그치? 그런거지?”

    그러나 내 앞의 남자는 그냥 씨익 웃고만 있었다.

    바닥은 내 피로 인해 빨갛게 물들었다.

    “이봐. 악마와 내기하는 사람이 너 혼자뿐이라고 착각하는건 아니겠지?”

    “뭐...?”

    “차미연. 그녀도 다른 악마와 내기를 했다.”

    “무...무슨말이야? 응? 헛소리...하지말라고!!!”

    “좋아. 마지막이니 설명을 좀 해주실까? 후훗. 차미연 그녀는 너를 좋아했다. 하지만 넌 늘 소극적으로 그녀를 피해다니기 일쑤였지. 그렇게 너에 대한 그녀의 마음은 커져갔고, 어느날 악마가 나타난거야. 물론 그녀는 내기를 했지. 무슨 내기였냐고? 너와 같은 내기였다.”

    뭐...? 뭐라고...?

    “그녀는 1등을 했고, 넌 못했을 뿐이야. 그래서 그녀와 내기를 했던 악마는 그녀를 여기로 이사오게 했고, 엘리베이터를 멈추게 했으며, 너에게 고백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다. 물론 그들의 약속이 이행될수 있도록 나는 그저 기다려줬을 뿐이고. 이제 그녀의 소원이 이루어졌으니 내 약속에 대한 댓가를 받으러 온것뿐이야.”

    “그럼...그녀는 나를 좋아했는데 난 그것도 모르고 내기를 한것이고...내기에서 졌으니 이제 목숨을 뺏긴다는...말...?”

    “그래. 이제야 좀 생각이 돌아가나보군. 하여간 인간들은 이렇게나 멍청하다니까. 후훗.”

    서서히 다가오는 악마.

    공포도 아니었으며 불안감이나 두려움도 아니었다.

    허탈...이라는 감정...

    그 감정만이 내 온몸을 휘감고 있었다.

    “그녀는 너와 사귀게 되었다는 사실에 지금쯤 무지 행복해하고 있겠군. 후훗. 둘 다 멍청하긴 마찬가지라니까.”

    차미연...

    내 눈에선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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