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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일어났으면 아침 먹어요!"
"으응.. 세수부터 하고.. "
아침부터 수정이의 잔소리가 들려온다.
하긴, 하루 이틀 된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여전히 잔소리는 듣기 껄끄럽다.
"아니.. 또 김치찌개야?"
"뭐, 아침에 고기라도 먹을려고요? 딴소리말고 밥이나 먹어요!"
"네, 네..알겠습니다 마님!"
벌써 결혼한 지 2년이 지나갔다..
사실 수정이와 맺어진 것은 일방적인 수정이의 구애때문이었지만,
나는 그런 수정이가 싫지 않았다. 오히려 그런 깔쌈한 면이 더 보기 좋았다.
그리고.. 수정이와 만나다 보면 혜경이의 모습을 잊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커피숍 알바로 지내던 수정이와 만나기 전, 나는 혜경이와 사귀고있었다.
혜경이와는 회사동료로써 만나게 되어 그의 여자다움과 매력에 푹 빠져 사랑에 빠져버렸다.
지적인 용모도, 당찬 행동도, 그녀를 내가 사랑할 수 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나는 입사한 지 몇 달 안 되어 그녀에게 데이트를 신청하고.. 우리는 그렇게 연인이 되었다.
"여보.. 이거 당신 지갑이에요?"
"응?"
"이거 당신지갑이냐구요!"
"아아.. 미안, 딴생각좀 하느라구.. 그거 내 옛지갑이야, 옛지갑."
"흥.. 간수좀 잘해요!"
"어, 어... 이리내, 이리내. 넣어놔야지."
지갑을 놓고 갈 수는 없지..
사실 이건 비밀이지만.. 지갑에는 혜경이의 사진과.. 하나의 실이 있다.
가끔씩 운전을 하며 그녀의 사진과 실을 보면서 혜경이와의 추억을 되새긴다.
우리가 연인이 된 후 1주년...
그녀는 뜬금없이 하나의 실을 꺼내더니, 자기의 약지에 실을 칭칭 감은 후, 나머지를 나에게 건내주었다.
"자기.. 이게 뭔지 알아?"
"..내가 바보니? 실이잖아, 실!"
"후후.. 그래, 실이지! 이 실이 말이야~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대! ..무슨 능력일까~?"
"..능력? 바늘 가는데 실 가니까... 바늘 따라가는 능력? "
" ..뭐야 그게~!! 장난도~"
"농담이야 농담.. 이 실 하나가 무슨 능력을 가지고 있는데?"
그녀는 잠시 피식 웃더니.. 내 약지에 실을 감아주며 말 했다.
"이 실은... 우리의 운명을 이어주는 실이야..
우리가 서로 사랑하니까.. 이 실은 항상 이어져 있는거야!"
" ..흠.. 잘 이해가 안가는데!"
"자기야.. 이 실이 우리의 사랑을 이어준다구..알겟지?"
그러더니 혜경은.. 갑자기 실을 뚝 끊어버렸다. 그리고 나에게 쓴웃음을 지으며..말했다.
"그러니까.. 자기가 이 실을 가지고 있는 한 우리의 사랑은 영원한거야.."
나는 놀랐다. 평소에 이렇게 직접적인표현은 잘 하지 않던 그녀인데..
뭔가 다른 일이 있는 것일까..
"응.. 영원히..함께하는거야."
그녀는 내 말을 들은 후 한껏 기뻐하며 활짝 웃어주었다..
나는 그것이 그녀의 마지막 웃음일 줄은 몰랐다.
그 다음 날, 혜경은 시체가 되었다.
상사를 위해 커피를 사다 주던 혜경은, 신호를 위반한 트럭에 부딪혀.. 숨을 잃고 말았다.
나는 그녀의 시체 앞에서 울음조차 나오지 않았다.
경찰에게서, 그녀가 마지막까지 피투성이의 실을 꽉 쥐었다는 소리를 듣고,
그저 멍하니 실을 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래, 멍하니..
그 후로.. 난 하루도 빠짐없이 미친사람처럼 혜경이 사고를 당한 곳에 갔다.
왜 가는지.. 아무 이유도 없이.. 그저, 그 장소에 가면 마치 혜경이 돌아올 것만 같았다.
항상 그곳에 서서 멍하니, 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바라보자면 그녀의 추억이 아련이 떠올라서..
어느 비 오던 날, 그 날도 거리에 서서 멍하니 있던 내게 커피숍에서 한 여자가 나오며 말했다.
"저기,, 비오는데, 감기라도 걸릴라... 이 안으로 들어오세요."
그것이 수정과의 첫 만남이었다.
수정을 만나고, 정신을 차리게 되면서 회사에서의 직급도 올라 나는 물질적 풍요를 얻을 수 있었다.
결국 혜경은 수정과 만족감의 그늘에 가려지고 말았다.
"..여보, 그런데 언제부터 손가락이 부었어요?"
"응? 아아.. 모르겠어, 갑자기 부어서... 오늘 병원에 가볼려고."
"흠.. 그럼 빨리 다녀와요! 승나면 어쩔려고. 절단해야되는거 아냐~?"
"에이.. 절단은 무슨! 그럼 다녀올게.."
"일찍들어와요~ 좋아하는 부대찌개해놓을게."
요즘들어 .. 갑자기 약지가 부었다. 결혼반지가 있는 곳인데, 반지가 안 빠질 만큼 부어버렸다.
그런데, 통증은 별로 없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이상하기도 하고.
붓기가 한참 된 듯이 푸른색빛을 띄며 오동통해졌다.
"저기, 이거 붓기가 너무 심한데.. 아프진 않고.."
의사는 나의 손가락을 이리저리 관찰하더니,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음.. 이거, 고름을 짜내야 할 것 같은데.. 통증이 없다니 신기하군요."
의사는 간호사에게 마취준비를 시키고 내 약지를 쿡쿡찔러보았다.
"일단, 반지를 빼셔야 하는데요."
"아.. 이게 안빠지지 않을까요? 너무 크게 부어올라서.."
나는 반지를 빼는 시늉을 했다. 그런데, 놀랍게도 반지는 너무나 쉽게 빠지고 말았다.
"흠.. 아프지 않으셨습니까?"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 무언가를 들고 오면서 말했다.
"아.. 네.. 별로 아프지않았어요.."
반지는 내 손에 꽉 맞았는데, 전혀 아프지 않게 빠졌다.
나는 이리저리 잡생각을 하기 시작했지만, 내 손가락에 칼이 들어오는 것을 보며 이내 긴장했다.
사실.. 수술은 중학교 때 맹장수술 이후 처음이었기 때문에.. 수술부위에서 눈을 돌렸다.
그런데, 수술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되어 의사가 말했다.
"어..손가락 안에 뭔가 있네요?"
"네에? 그게 무슨..?"
평소에 손가락을 다친적도, 찔린적도 없는데..
나는 손가락에서 빠져나오는 그 이물질이 무엇인지 확인해 보았다.
찌지직.. 찌직..
붉게 물들고 뭔가가 잔뜩 묻은 긴 무엇인가가 손가락에서 계속해서 나오고 있었다.
의사가 의문스러운 듯 갸우뚱 거리며 말했다.
"어.. 이거 실인 것 같은데... 그것도 제법긴데요? 어떻게 이렇게 긴 실이 손가락 안에.."
뽑아내던 의사도, 나도 불안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실을 뽑는데, 의사가 갑자기 멈추며 말했다.
"이것이 뭔가에 걸린 듯..뽑아 지질 않습니다. 일단 이상태에서 봉합을 하고 내일 다시 와서 정밀 검사를
하죠..
생명엔 지장이 없을지 모릅니다만.. 아무래도 붓기는 잘 사라지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의사는 이상하다는 듯 중얼중얼 거리며 간호사들에게 무언가를 지시했다.
나는 이내 처방전을 들고 병원을 나왔다..
'실...이라니..'
나는 지갑에서 실을 꺼내 보았다. 그런데, 그토록 하얗던 실이 지금은 선홍색 물에 물든 핏빛 실이 되고 말
았다.
고개를 들어 문득 지갑의 혜경이의 사진을 보자, 혜경이가 핏빛 눈물을 흘리면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사랑은... 실로 영원히 이어진 거잖아.. 이제 곧 그 실이 우리를 이어줄 거야.."
- 툭..
실을 들고 있던 내손에서 뭔가 떨어져가는 느낌이 들며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고통은 전혀 없었다.. 바닥을 주시하자, 결혼 반지가 끼워있던 나의 약지가 떨어져 있었다..
나는 보았다.
나의 손가락 사이사이에, 마치 운명을 이어주는 끈처럼.. 선홍색 피를 머금은 가는 실이 칭칭 감겨있는 것
을..
이윽고, 결혼 선물이라고 사다준 시계를 찬 손목에 조임이 느껴지고 있었다..
잠시 후, 내 팔목과 손목이 분리되고 말았다..
나의 목에는 결혼 전 그녀가 예쁘다며 걸어 준.. 황금 빛 목걸이가 태양빛 아래 반짝이고 있었다.
- 자기야.. 이 실이 우리의 사랑을 이어줄꺼야.. 죽어서라도..
End - [단편] 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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