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 어디 가서 똥줄 야구 봤다고 말하지 마세요
그리고 최고의 야구 경기를 봤다고도 말하지 마세요 ㅠㅠ
이런 야구가 또 있을까요 ㅠㅠ
일본 만화지만, 슬램덩크에서 북산 후보 선수가 했던 말이 생각납니다.
"정말 이 팀에 들어오길 잘했어."
"정말 대한민국에 태어나길 잘했어. 그리고 야구를 좋아하길 잘했어."
내 심장은 바람에 풀렸어.
--
첫사랑, 류시화
이마에 난 흉터를 묻자 넌
지붕에 올라갔다가
별에 부딪친 상처라고 했다
어떤 날은 내가 사다리를 타고
그 별로 올라가곤 했다
내가 시인의 사고방식으로 사랑을 한다고
넌 불평을 했다
희망 없는 날을 견디기 위해서라고
난 다만 말하고 싶었다
어떤 날은 그리움이 너무 커서
신문처럼 접을 수도 없었다
누가 그걸 옛 수첩에다 적어 놓은 걸까
그 지붕 위의
별들처럼
어떤 것이 그리울수록 그리운 만큼
거리를 갖고 그냥 바라봐야 한다는 걸
--
못, 김재진
당신이 내 안에 못 하나 박고 간 뒤
오랫동안 그 못 뺄 수 없었습니다.
덧나는 상처가 두려워서가 아니라
아무것도 당신이 남겨놓지 않았기에
말없는 못 하나도 소중해서입니다.
--
겨울 강가에서 - 안도현
어린 눈발들이, 다른 데도 아니고
강물 속으로 뛰어내리는 것이
그리하여 형체도 없이 녹아 사라지는 것이
강은,
안타까웠던 것이다
그래서 눈발이 물위에 닿기 전에
몸을 바꿔 흐르려고
이리저리 자꾸 뒤척였는데
그때마다 세찬 강물소리가 났던 것이다
그런 줄도 모르고
계속 철없이 눈은 내려,
강은,
어젯밤부터
눈을 제 몸으로 받으려고
강의 가장자리부터 살얼음을 깔기 시작한 것이었다.
--
방파제 끝, 황동규
언젠가 마음 더 챙기지 말고 꺼내놓을 자리는
방파제 끝이 되리.
앞에 노는 섬도 없고
헤픈 구름장도 없는 곳.
오가는 배 두어 척 제 갈 데로 가고
물자국만 잠시 눈 깜박이며 출렁이다 지워지는 곳.
동해안 어느 조그만 어항
소금기 질척한 골목을 지나
생선들 함께 모로 누워 잠든 어둑한 어물전들을 지나
바다로 나가다 걸음 멈춘 방파제
환한 그 끝.
--
그애의 백제 미륵반가사유, 김진경
이제 여중학교짜리 애가
남자애와 살림을 차렸는지
찾아간 산동네
단칸방 앞에서 불러도 대답은 없고
방문을 여니
희미하게 비쳐드는 햇빛 속
옷궤짝 위에 턱을 괴고 멍하니 앉아 있다
슬퍼하는 겐지
무슨 비밀스러운 걸 알았다는 겐지
빙긋이 웃는
솜털이 보송보송한 그애의 눈빛이 깊어
그냥 방문을 닫다
--
너를 기다리는 동안, 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 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 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 에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
나의 가난은 - 천상병
오늘 아침을 다소 행복하다고 생각하는 것은
한 잔 커피와 갑 속의 두둑한 담배,
해장을 하고도 버스값이 남았다는 것.
오늘 아침을 다소 서럽다고 생각는 것은
잔돈 몇 푼에 조금도 부족이 없어도
내일 아침 일도 걱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가난은 내 직업이지만
비쳐오는 이 햇빛에 떳떳할 수가 있는 것은
이 햇빛에서도 예금통장은 없을 테니까......
나의 과거와 미래
사랑하는 내 아들딸들아,
내 무덤가 무성한 풀섶으로 때론 와서
괴로웠을 그런대로 산 인생 여기 잠들다, 라고,
씽씽 바람 불어라......
--
즐거운 편지, 황동규
1연
내 그대를 사랑함은 항상 그대가 앉아있는 배경에서
해가 지고 바람이 부는 일처럼 사소한 일일 것이나
언젠가 그대가 한없이 괴로움 속을 헤매일 때에
오랫동안 전해오던 그 사소함으로 그대를 불러보리라
--
가을에 대한 보고서, 夢龍
[序]
여태 가을이란 게 유혹이었고 낭만이었다
지금도 계절이 유혹이거나 옷깃 세울 낭만으로
그대 맘에 다가올까, 삶에 가을이 온 건 아닐까
[本]
계절의 아름다움을 벗어난 편안한 생각이
똬리를 틀고 수성守城의 혀를 날름대고 있다
눈 오는 겨울 길거리 어지러울 게 심란하고
화려한 봄날 불로장생 산나물이 먹고 싶고
후끈한 여름 꿈쩍 않고 버티는 게 보약이라
붉은 빛 가을이면 이내 올 겨울이 못 미덥고
[結]
가을이란 설레는 그리움 또는 그 옛 아련함
혹 이것에 의문이 생긴다면 당신도 파도치는
세월 다 지나, 당신 삶에도 가을이 오는 것이다
--
SONNET 89, William Shakespeare
어떤 허물 때문에 나를 버린다고 하시면,
나는 그 허물을 더 과장하여 말하리라.
나를 절름발이라고 하시면, 나는 곧 다리를 절으리라.
그대의 말씀에 구태여 변명 아니 하며,
애인이여, 사랑을 바꾸고 싶어 구실을 만드시는 것은
내가 날 욕되게 하는 것보다 절반도 날 욕되게 아니 하도다.
그대의 뜻이라면 아직까지의 친교를 말살하고
서로 모르는 사이처럼 보이게 하리라.
그대의 가는 곳에는 아니 가리라.
내 입에 그대의 이름을 담지 않으리라.
불경한 내가 혹시 구면이라 알은 체하여
그대의 이름에 누를 끼치지 않도록.
그대를 위하여서는 나를 대적하여 싸우리라.
그대가 미워하는 사람을 내 사랑할 수 없나니.
--
얼굴, 이상
배고픈 얼굴을 본다.
반드르르한 머리카락 밑에 어째서 배고픈 얼글은 있느냐.
저 사내는 어디서 왔느냐.
저 사내는 어디서 왔느냐.
저 사내 어머니의 얼굴은 박색임에 틀림이 없겠지만 저 사내 아버지의 얼굴은 잘 생겼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함은 저 사내 아버지는 워낙은 부자였던 것인데 저 사내 어머니를 취한 후로는 갑자기 가난든 것임에 틀림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이거니와 참으로 아해라고 하는 것은 아버지보다도 어머니를 더 닮는다는 것은 그 무슨 얼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행을 말하는 것이지만 저 사내 얼굴을 보면 저 사내는 나면서 이후 대체 웃어 본 적이 있었느냐고 생각되리만큼 험상궃은 얼굴이라는 점으로 보아 저 사내는 나면서 이후 한번도 웃어 본 적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울어 본 적도 없었으리라 믿어지므로 더욱더 험상궃은 얼굴임은 즉 저 사내는 저 사내 어머니의 얼굴만을 보고 자라났기 때문에 그럴것이라고 생각되지만 저 사내 아버지는 웃기도 하고 하였을 것임에는 틀림이 없을 것이지만 대체로 아해라고 하는 것은 곧잘 무엇이나 흉내내는 성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저 사내가 조금도 웃을 줄을 모르는 것같은 얼굴만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본다면 저 사내 아버지는 해외를 방랑하여 저 사내가 제법 사람구실을 하는 저 사내로 장성한 후로도 아직 돌아오지 아니했던 것임에 틀림이 없다고 생각되기 때문에 또 그렇다면 저 사내 어머니는 대체 어떻게 그날 그날을 먹고 살아왔느냐 하는 것이 문제가 될 것은 물론이지만 어쨌든 간에 저 사내 어머니는 배고팠을 것임에 틀림없으므로 배고픈 얼굴을 하였을 것임에 틀림없는데 귀여운 외톨자식인지라 저 사내만은 무슨 일이 있든 간에 배고프지 않도록 하여서 길러낸 것임에 틀림없을 것이지만 아무튼 아해라고 하는 것은 어머니를 가장 의지하는 것인즉 어머니의 얼굴만을 보고 저것이 정말로 마땅스런 얼굴이구나 하고 믿어버리고선 어머니의 얼굴만을 열심으로 흉내낸 것임에 틀림없는 것이어서 그것이 지금은 입에다 금니를 박은 신분과 시절이 되었으면서도 이젠 어쩔 수도 없으리 만큼 굳어버리고 만 것이나 아닐까고 생각되는 것은 무리도 없는 일인데 그것은 그렇다 하더라도 반드르르한 머리카락 밑에 어째서 저 험상궃은 배고픈 얼굴은 있느냐.
--
뮤직박스, 류시화
나 어렸을 때
뮤직박스 하나를 갖고 있었다
태엽을 감으면 음악이 흘러나오는
세상에 태어나 처음으로 집착했던 것
유리상자 안의 인형이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내 머리맡에 늘 놓여 있던
뮤직박스
나 잠이 들면
세상 전체가 뮤직박스가 되어
별자리들의 음악에 맞춰
끝없이 돌아가곤 했다
그것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슬픔을 잊었다
나는 나이를 먹고
뮤직박스는 어느새 내 곁을 떠났다
그리고 나는 이 생에서 마지막으로
당신에게 집착했다
당신이 곁에 있을 때
나는 세상 모든 것을 잊었다
당신이 내 태엽을 감으면
나는 음악에 맞춰 빙글빙글 돌아가는
뮤직박스 속의 인형이었다
그런데 어느날 당신은
그 뮤직박스를 버렸다
아무도 태엽을 감아 주는 이 없이
춤을 추던 그 동작 그대로
나는 영원히 정지해 있다
--
댓글 분란 또는 분쟁 때문에 전체 댓글이 블라인드 처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