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할 수 있다는 것은 서로 무엇인가를 교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잠이 안와서 어렸을 적 일기를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제 일기를 통해서 저 먼 기억에서 잊혀져 버린 조각들을 들추어보는 작업을 해보았습니다.
이런 작업들이 어떤 큰 의미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같이 무언가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
자체하나만으로도 공감을 통해 서로 교류할 수 있는 장은 마련될 수 있을거라 생각됩니다.
지금도 무척이나 영화 보는 것을 좋아하지만 어렸을 적 보았던 호소자는 그 이후에 본
용소야(만화) 만큼이나 내 정신산만한 몸을 뒤틀게 하는 동기유발 작품이었습니다.
우뢰매와 같이...
여름방학때 또마라는 영화를 봤다고 하는데, 나 조차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역시 영화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나도 영화감독이 장래희망이지만, 사람의 기억에 남는 영화는
사람의 머리속에 30개 안팎인 것 같습니다.
그래도 가족들끼리 티비 앞에 모여 본 유일한 외화(?)였다는 생각이듭니다. 맥가이버...
뺀찌하나를 들고서도 맥가이버 흉내를 내곤 했었는데...
난 페렝이꽃이 뭔지 한참 고민했었습니다. 그러나 가만히 생각해보니 도깨비풀을 페렝이꽃으로
착각했나봅니다. 도깨비풀을 기억합니까? 뒷산에 올라가서 서로의 옷에 툭툭 던져대던
그 도깨비 풀...
아시안게임과 88올림픽을 거친 나의 어린시절은 우리 동네에서도 동네 올림픽이라는 놀이를
탄생시켰습니다. 나름데로 우리끼리 종목을 결정하여 놀이를 하곤 하였는데, 제자리 멀리뛰기,
철봉에 매달려 멀리뛰기, 뛰어가서 멀리뛰기, 그네타고 멀리뛰기, 오래달리기, 일본 팔씨름등이
종목이었던 것 같습니다.
부자집에 살던 아이밖에 XT라고 불리던 200만원대의 컴퓨터를 사던 시절에
우리는 10만원대의 재믹스를 가지고 놀았습니다.
티비에다 꼽고서 할수 있는 최초의 국산 게임기라는 것 하나만으로도 우리동네에선 컬쳐 쇼크였습니다.
다 그렇겠지만 평균 몇점을 넘으면 자전거를 사준다느니 재믹스를 사준다느니 해서 부모님은
우리의 성적을 올리게 하기 위해 장난감을 미끼로 던졌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니 심형래, 김보화, 이주일씨가 코미디계를 평정했나 봅니다.
난 크리스마스 캐롤중에 심형래씨걸 샀습니다. 어찌나 웃기던지.
영플레이모빌을 압니까? 내가 어렸을 때 제일 많이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인데
그 CM송 기억 날텐데...
플레이 모빌은 내친구 내 친구 플레이 모빌
아~ 영 플레이 모빌 좋아요
영플레 모빌 영플레이 모빌! 마지막에 아저씨 목소리로 영실업이라고 하죠.
영플레이 모빌 다음으로 많이 가지고 놀았던 것이 다이아몬드 게임인데
요즘 중딩이상의
학생들은 다 알거라 믿습니다. 잘 모르겠으면 검색엔진에서
'다이아몬드 게임'이라고 쳐보세요.
구슬치기에 관련된 룰은 각 지방마다 틀린건지는 모르겠지만, 양 네
모서리 구멍 뚫고,
가운데 구멍 하나 해서 총 다섯개의 구멍을 뚫은 다음에 다섯바퀴
돌고 가운데 구멍하고 왔다갔다
다섯번 한다음에 가사자라는 구멍에 갔다가 다시 와서, 세바퀴 돌고,
가운데 구멍 다시 왔다갔다
왕사자 구멍에 넣으면 이기는건데... 구멍 넣었을때 근처에 있는
구슬 쳐내면 다음 구멍으로 자동으로
가는 룰... 기억은 선명한데 다들 이렇게 놀았는지 모르겠군요.
어름땡, 진돌이,거머리라는 놀이를 많이 했던 것 같습니다.
어찌보면 그맘때 얼음땡이라는 놀이는 얍삽한 아이가 술래가
절대 되지 않는 게임이었던 것 같습니다.
꼭 채변봉투 겉으면 겉봉이 손실되거나 바깥이 새서 담임한테 잔소리 듣곤 했죠.
그리고 엄격한 선생님은 집에 가서 똥싸오라고 시켰습니다.
난 아직도 제일 이해가 안가는 것이 일기를 쓰고 검사를 맡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정신마저
지배하려고하는, 아직까지 고쳐지지 않는 이런 말도 안되는 관행은 하루 빨리 고쳐져야 할것 같습니다.
그래도 나름데로 강제로 시켜서 이런 일기장이라도 남아있나 싶지만, 강제보다는 창의적으로
기억되는 추억이 더 가치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