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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210401
    작성자 : 인중없는아이
    추천 : 19
    조회수 : 1141
    IP : 222.121.***.85
    댓글 : 2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8/08/20 04:50:28
    원글작성시간 : 2008/08/19 20:37:22
    http://todayhumor.com/?humorbest_210401 모바일
    어머니


    집에 돌아오면 아무 생각 없이 컴퓨터를 키는 게 습관이 되었다.



    “너는 다녀왔다는 인사도 안 하고 컴퓨터부터 키니?"



    어머니는 집에만 오면 저 말부터 한다.

    어떤 날은 하루 종일 어머니가 나에게 한 말이 저 말이 다였던 적도 있다.

    그래서 나는 3일전부터 이렇게 말대꾸를 하기 시작했다.



    “어머니는 저한테 할 말이 그것밖에 없으세요?”



    그러나 오늘도 어머니는 말이 없다.

    리모콘에 올려놓은 손가락만 바쁘게 움직이고 있다.

    나는 방문을 닫고 컴퓨터 앞에 앉았다.

    윈도우를 시작하겠습니까? 라는 메시지가 모니터에 띄워져 있다.

    메고 있던 가방을 벗으며 새끼손가락으로 엔터를 누른다.

    모니터 앞에는 어제 먹다 남은 컵라면이 그대로 있다.

    끈적끈적한 마우스에 손을 올려놓고 이리저리 움직여 본다.



    “뉴스나 볼까...”



    자연스럽게 왼손은 턱을 괴고, 오른손으로 마우스를 클릭한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아이콘을 클릭하자 익숙한 메인 화면이 송출된다.

    연예인 결혼, 연예인 노출 따위의 시시껄렁한 기사를 클릭하고, 읽고를 반복한다.

    가끔 댓글로 장난을 치거나, 욕을 하기도 한다.



    “할 거 더럽게 없네...”



    목적 없는 인터넷 서핑 중 출출함이 느껴졌다.

    생각해보니 저녁을 먹지 않았다.

    점심도 간소하게 먹었던 것 같다.



    “어머니 저 밥 좀 주세요.”



    어머니는 아무 말도 없다.



    “어머니 밥 좀 달라구요!”



    아무 말도 없다.

    거실에 티비 소리가 조금 커진 것 같다.



    “아 어머니! 제 말 안 들리세요? 저 배고프다고요!”



    아무 말도 없을뿐더러, 티비 소리가 방금 전 보다 두 배는 커진 것 같다.

    문을 닫은 내 방에서도 티비에 나오는 사람들의 대화가 똑똑히 들릴 정도였다.

    밥을 주기 싫다는 걸까? 나는 한 번만 더 소리를 내어 보았다.



    “어머니! 밥 달라고요!!”



    갑자기 티비 소리가 엄청나게 커지기 시작한다.

    아까처럼 일정하게 키운 것이 아니라 계속 해서 키우는 듯 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일어나 방문 쪽으로 향했다.

    살짝 문을 열어 거실을 보니 어머니가 무심한 표정으로 티비를 보고 있었다.

    아니 그보다 살짝 미소를 띄고 있다고 하는 게 옳을 것 같다.

    시선을 내려 보니 어머니의 손가락이 엄청난 속도로 리모컨의 버튼을 누르고 있는 게 보였다.

    어떤 버튼인지 명확히 보이진 않지만 티비 소리가 점점 커지는 걸로 보아선 볼륨 버튼이 틀림없었다.

    어머니는 기어코 티비 볼륨을 최대로 만들었고,

    집안이 쩌렁 쩌렁 울리기 시작했다.

    나는 극심한 소음에 귀를 부여잡았다.



    “어머니 소리 줄이세요! 아 정말 시끄럽다고요!!”



    내가 말 한 소리가 묻혀서 내 귀에도 안 들릴 정도였다.

    조금 있으면 옆집, 윗집, 앞집 다 찾아와서 항의할 게 뻔했다.

    일주일 전쯤에 구입한 6.1 스피커가 얼마나 성능이 뛰어난지 여실히 느끼게 되었다.

    이렇게 시끄러운데 어머니는 귀도 안 막고 티비를 보고 있었다.

    이해할 수 없는 건 이미 볼륨이 최대인데도 계속 해서 리모컨의 볼륨 버튼을 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쾅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

    드디어 올 것이 왔다.



    “이봐요! 801호! 이봐요!! 지금 뭐하시는 거요!!”



    “아니 지금 장난하나! 문 열어요 어서!”



    사람들이 현관 앞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당연한 현상이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꿈쩍도 안했다.

    오히려 리모컨 버튼을 더욱 세게 누르고 있는 것 같아 보였다.



    “어머니! 사람들이 항의하잖아요! 어서 소리 줄이세요!”



    다시 한 번 외쳐봤지만 어머니는 반응하지 않는다.

    리모컨을 누르고 있는 어머니의 손가락이 새파랗게 변색 되고 있었다.

    너무 시끄럽다.

    고막이 찢어질 것만 같다.

    아니 조금씩 찢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귀에서 약간 진물이 흐르는 느낌이 난다.

    나는 고통을 참을 수 없어 임시방편으로 방문을 닫아 버렸다.

    여전히 괴로운 것은 마찬가지.

    티비에서 나오는, 재미있다고 껄껄 거리는 방청객들의 웃음소리가 내 귀를 송곳처럼 찌르고 있다.

    침대에 머리를 박고, 이불을 뒤집어 써 본다.

    조금 소리가 줄어든 것 같지만 여전히 시끄럽다.

    특히 쿵 쿵 하고 울리는 베이스 소리가 날 때마다 가슴이 철렁 하고 내려앉는 느낌이다.

    어머니는 대체 왜 나한테 이런 짓을 하는 걸까.

    배고파서 밥 달라고 하는 것이 아들로서 하지 못 할 말이었을까?

    서러움에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쾅쾅쾅 쿵쾅쿵쾅콰쾅쾅



    문 두드리는 소리가 요란해졌다.

    아마 발로도 차고, 물건도 집어 던지는 모양이었다.

    티비 소리에 문 두드리는 소리까지 합세하니 이건 정말 참지 못 할 노릇이었다.



    “경찰 불렀어! 어서 소리 줄여 이 미친놈들아!”



    어쩌면 난생 처음으로 철문이 박살나는 광경을 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나는 이불을 박차고 일어나 방문으로 향했다.

    그리고 방문을 열었다.

    이번엔 활짝 열었다.

    여전히 어머니는 리모컨을 누르고 있었고,

    시퍼렇게 변색 된 손가락에서는 핏줄이 튀어나와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았다.

    이마에는 땀이 흥건했는데,

    언제부터 입술을 꽉 물고 있었는지 입가에 피까지 흥건했다.

    티비에서는 연예인의 몸 개그가 한 창이었고, 방청객들은 요절복통을 하고 있었다.

    아마 세상에서 제일 무서운 개그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머니 곁으로 다가갔다.

    역시나 어머니는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리지 않는다.



    “어머니, 왜 이러세요? 제가 뭘 잘못했나요!!?”



    어머니는 입술을 더 꽉 깨물었다.

    그렇게 보였다.

    흐르는 피가 어머니의 목덜미를 타고 흘러 하얀 면 상의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어머니, 무엇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잘못 했어요. 제발 그만 하세요 네?”



    나는 어머니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여전히 내 쪽은 쳐다보지 않는다.

    그런데,



    -중얼중얼



    워낙 시끄러워서 확실하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입에서 살짝 무슨 말이 나온 것 같았다.

    나는 화들짝 놀라 어머니의 입을 바라보았다.

    집중해서 입만 바라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드디어 입을 떼기 시작했다.



    “너는.... 다녀 왔다는.. 흡.. 인사도 안 하고...흡... 컴퓨터부터.. 흡...키니?”



    말하면서도 계속 리모컨을 누르고 있던 터라 가쁜 숨을 숨기지 못 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똑똑히 들었다.

    아니 들었다기 보다는 똑똑히 봤다고 해야 옳겠지.



    “아 ...어...어머니 저 다녀왔어요. 다녀왔다구요, 어머니 다녀왔습니다.”



    어머니의 물음에 나는 조금 머뭇 거렸지만 확실하게 대답했다.

    그러자,



    -뚝.



    어머니의 손가락이 티비 전원버튼을 눌렀다.

    순간 내 귀를 괴롭히던 티비 소리가 사라졌다.

    어머니는 인자한 미소로 내게 고개를 돌리고 있었다.

    그리고 마치 붉은 립스틱을 바른 것 같은 입술로 내게 말한다.






    “그래, 저녁은 먹었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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