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공화국` 통해 본 `섹스-스포츠-스크린`//
파이미디어 | 기사입력 2005.06.28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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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MBC 드라마 `제5공화국` 때문에 80년대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 높다. 12.12, 5.18 등 역사적 사건 뿐만 아니라 당시 신군부의 집권을 막으려 했던 장태완 당시 수도경비사령관, 정병주 특전사령관이 화제의 인물로 부상했고, 5공화국 당시 대통령이었던 전두환씨는 팬카페가 만들어질 정도로 관심의 대상이 됐다.
그런데 80년대는 문화 사회적인 면에서도 특징적인 코드가 많았던 시대였다. 섹스(Sex), 스포츠(Sports), 스크린(Screen)에서 맨 앞자를 따온 `3S(Sex, Screen, Sports) 정책`이 지배하던 시대가 바로 80년대다.
특히 80년대 초반은 대대적인 유화정책이 펼쳐진 해다. 45년 9월부터 37년간 시행된 통행금지제도가 해제됐고 중고교생 교복 및 두발이 자유화됐다. 프로야구가 82년 출범하며 선동열과 최동원, 김봉연과 이만수 등 라이벌 구도를 만들면서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다.
출범과 동시에 큰 사랑을 받은 프로야구의 주인공은 해태 타이거즈였다. 삼성과 더불어 막강한 전력을 과시했지만 항상 승리의 월계관은 해태의 몫이었다. 80년대 7시즌이 열리는 동안 해태는 무려 5차례 우승 트로피를 가져갔다. 삼성은 85년 전후반기 우승을 차지하며 간신히 체면치레를 했다.
85년 입단한 선동렬은 막강 해태를 상징하는 선수였다. 86, 89 시즌 최우수선수(MVP)를 차지한 그는 86, 87년 연속 0점대 방어율을 기록했다.(95년 한 번 더 기록한다.) 89년 투수 4관왕(다승 방어율 구원 승률)을 기록한 그는 이후 91년까지 3년 연속 기록을 같은 기록을 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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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영화가 허용될 정도로 성에 대한 분위기도 상당히 누그러졌다. 애마부인 제1편이 상영된 82년에는 전체 한국영화 56편중 무려 35편이 에로영화일 정도로 성인영화는 붐이었다. 그러나 이면엔 엄격한 통제가 진행됐다.
박광수 이장호 영화감독이 털어놓은 당시 경험담은 정치적인 부분에선 어느 때보다 엄격한 검열이 이뤄졌음을 보여준다. 모 영화배우가 물지게를 지고 봉천동 고개를 넘어가는 장면이 나왔던 한 영화는 연탄재가 있는 장면이 문제가 돼 해당 부분이 삭제됐다. `공포의 외인구단`이 `이장호의 외인구단`이 된 이유도 엄격한 검열 때문. `공포`라는 단어를 절대 쓰지 말라는 정부의 입장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였다.
영화 `애마부인`도 말과 여자의 조합을 뜻하는 `愛馬`라는 단어가 너무 음란스럽다는 검열당국의 판단 때문에 `대마초를 사랑하는 여인`인 `愛麻婦人`으로 둔갑했다.
70년대 만들어진 정윤희 유지인 장미희 여배우 트로이카 체제도 80년대 중반까지 이어졌다.
또한 이 시대는 국산자동차 `스텔라`가 큰 인기를 끈 시기이기도 하다. 83년 이전까지 순수 국산 기술로 만들어진 자동차는 포니 한 종류에 불과했다. 그러나 83년 순수 고유모델로 만들어진 스텔라는 97년 단종되기까지 14년 동안 큰 사랑을 받았다.
80년대의 스타 정윤희
80년대를 기억나게 하는 배우는 두 사람이 있다. 외국배우는 왕조현, 한국배우는 정윤희다. 정윤희는 7, 80년대를 대표하는 배우지만 80년의 반도 채우지 못한 채 84년 연예계를 떠났다. 당시 트로이카를 이루던 배우중 지금까지도 연기활동을 하고 있는 유지인 장미희와 비교하면 무척 짧은 연기생활이었다.
짧은 순간 활짝 꽃피고 영원히 사라진 대상이라는 점 때문에 더욱 진한 그리움을 남긴 배우다.
75년 이경택 감독 작품인 `욕망`으로 연예계 데뷔를 한 정윤희는 TBC의 쇼 프로그램 `쇼쇼쇼`에서 위키리와 진행을 맡으며 방송 신고식을 치뤘다.
`고교얄개`(76) `고교우량아`(77) `얄개행진곡`(77) 데뷔 당시 조연 역할에 머무르던 그는 78년부터 주연을 꿰차기 시작했다. `꽃순이를 아시나요`(78), `가을비우산속에`(79),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80),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80) 등 매년 4편 안팎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다.
77년과 79년엔 음반도 출시했다. 힛트레코드가 출시한 음반에서 각각 `왜 내가 슬퍼지나요` `그대는 모르리`(79년 공통) `목마른 소녀`(79년 공통)와 ``가르쳐 주세요` `안녕하긴 싫어요` `기다려`를 불렀다. 독집 음반은 아니었고, 정미조, 한영애, 어니언스 출신의 이수영 등이 함께 참여했다.
80년대 초반은 영화인생의 절정기였다. 82년 한 해에만 8편의 영화에서 주연을 맡았고, 80년, 81년 2년연상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뻐꾸기도 밤에 우는가`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가 수상작품. 두 편 다 `새`와 `울음`이 제목에 쓰였다는 묘한 공통점이 있다.
드라마 `달동네`의 열연으로 `똑순이`라는 별명을 얻은 김민희와 출연한 `사랑하는 사람아`도 큰 인기를 얻었다. 그 작품은 대만에도 수출돼 한류붐을 일으키기도 했다. 당시 세계적인 스타 성룡과 스캔들이 났다는 기사가 실렸고, 정윤희에 반한 성룡이 한국을 사랑하게 됐다는 소문도 들렸다.
어린이 야구회원 붐
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면서 어린이들의 관심은 삽시간에 고교야구에서 프로야구로 옮아갔다. 당시 경남지역에선 MBC 청룡과 롯데 자이언츠의 인기가 높았다. 투수를 하면 날렵하게 생긴 아이들은 박철순(당시 OB)를 자임했고, 몸집이 있는 쪽은 하기룡(MBC)를 선택했다. 몸을 숙이면서 언더핸드형으로 던지는 이들은 노상수(롯데), 이길환(MBC)라고 말했다.
유격수를 하면 저마다 김재박(MBC) 또는 오대석(삼성)이라고 우겼고, 포수는 무조건 차동렬(롯데)이었다. 1루수를 보면서 신경식(OB)을 흉내내려고 다리를 찢다가 낭패를 보는 아이들도 있었다. 타자중에선 김우열(OB)이나 김용희(롯데) 이만수(삼성) 이종도(MBC)가 인기가 좋았다.
82년 당시 어린이회원에 가입하면 여러가지 혜택이 많았다. 야구모자나 점퍼를 비롯, 회원카드, 팬북, 문구세트 등이 지급됐고, 방학시즌 선수들과 함께 하는 캠프 참가자격도 주어졌다.
어린이회원들에게 나눠준 점퍼를 입고 밖에 나가면 흡사 선수라도 된 것처럼 몸이 가벼웠다. 생일과 연말엔 선수들의 사인이 담긴 엽서가 보내져왔다.
올해초 실시된 롯데 자이언츠 어린이회원 모집 내용을 보니 선착순 500명만 모집했다. 과거에도 선착순 제한이 있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500명이라면 꽤 적은 인원이지 싶다.
다른 구단도 거의 비슷하거나 많아야 1천명 수준이다. 지난해 경향신문(7월 19일)은 `야구장 어린이팬 어디로`란 기사에서 야구장에서 어린이 관중이 줄고 있다고 보도했다. 1995년 5만명에 이르렀던 LG 어린이 회원이 지난해 1만명 미만으로 급감할 정도로 감소세가 뚜렷하다는 내용이었다.
"연회비 1만5천원을 내면 푸짐한 선물에다 홈경기를 외야석에서 무료관람할 수 있는 혜택을 주는데도 회원 모집하기가 갈수록 어렵다는 것이 마케팅 담당자의 토로다. 관중동원능력이 1위인 LG가 그 정도면 다른 구단은 더 말할 것도 없다."
프로야구는 지금도 계속 열리고 있다. 손민한 배영수 박명환 투수 3인방이 벌이는 자존심 대결이 볼만하고, 롯데와 한화의 돌풍 등 흥행요소도 가득하다. 그러나 몇 가지 사례들을 살펴보면 어린이들의 관심사는 온라인쪽으로 눈을 돌린지 오래인 듯하다.[TV리포트 김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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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깊고 깊은 그곳에"는 "현실 부정"이 존재
// 민중의소리 | 기사입력 2004.05.19 0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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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자료원(www.koreafilm.or.kr)은 "한국영화 속의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로 18일부터 22일까지 자체 시사실에서 애정 영화 13편을 모아 상영한다. 이는 2004년의 좋은영화보기의 행사의 일원으로 이번 상영 작품들은 당시 신군부 시절, 성을 주제로 시대적 상황을 되짚어 볼 수 있는 동시에 당시의 "성" 을 읽을 수 있는 자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영화자료원은 에로티시즘이라는 주제와 관련, "성에 대한 우리의 환상은 영화사의 끊이지 않는 주제로 다루어졌다"며 "6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후반까지 한국영화들 중 "에로틱"한 영화를 골라 상영한다"고 밝혔다. 이는 영화사적 가치가 뛰어난 작품들을 발굴하는 한편, 보다 풍부하고 흥미로운 프로그램 기획으로 즐거운 영화보기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한다는 것.
추후의 상영 주제는 ▲한국액션영화시리즈 II: 만주의 무법자 ▲"그 여름밤 두견새 우는 사연" 납량 영화 ▲한국여성감독 영화전 ▲"매혹과 혼돈의 시대 II" 1950년대 영화전으로 구성될 예정이다.
애로 영화로 불리는 이번 영화전에서는 추억속에서 회자되는 "애마부인"의 첫편을 볼수도 있다. "애마부인"은 82년 2월 6일 서울극장에서 개봉해 6월11일까지 4달간 장기상영하며 31만명이 넘는 관객을 불러들였다. "애마부인"은 그해 한국영화 가운데 최고 흥행작이 됐다.
"애마부인"이 나온 82년은 80년 광주에서 피로 권력을 장악한 전두환 정권이 이른바 3S정책을 꽃피운 시기였다. 스크린, 스포츠, 섹스라는 3S의 요소 가운데 섹스와 스크린이 결합한 프로젝트로 "애마부인" 흥행성공이 있었고 88년 서울올림픽 유치, 프로야구 출범이 스포츠에 대한 열광을 부추겼다.
5ㆍ18 광주항쟁에 대한 사실이 민중들 사이로 조금씩 번져 나가는 중 독재정권은 37년간 존재했던 야간통행금지도 해제하고, 유흥업소의 심야영업을 풀어준 다음 중ㆍ고등학생 머리와 교복을 자유화한다는 발표를 했다.
선정적이기로 치면 "영자의 전성시대"(75년)같은 70년대말의 호스티스물이 못지 않았음에도 "애마부인"이 히트를 친 건 여성이 남성이나 돈에 구애받지 않고 주체적으로 자신의 성을 결정한다는, 변화하기 시작한 세태와도 무관하지 않았다. 애마부인이 일종의 전환점으로 정치적 검열과 윤리적 도덕률에 눌려 있던 욕망이 분출하면서 생겨난 사회현상이 에로 영화의 전성시대를 만든 것. 참, 한마디 더 덧붙이면 "말을 사랑하는 여인"인 "愛馬婦人"은 겸열과정에서 "대마초를 사랑하는 여인"인 "愛麻婦人"으로 둔갑했다. 이는 "애마(愛馬)"의 馬가 야하다며 공연윤리위원회의 검열에 걸린 것. □ 상영일시 : 5월 18일(화) - 5월 22일(토) (5일간) □ 상영장소 : 한국영상자료원 시사실 "봄" □ 상영안내 : (02)521-3147 내선 1번 및 자료원 홈페이지(www.koreafilm.or.kr) * 시사료 : 2,000원 (경로우대증 지참시 1,000원)
상영일정 |
2시30분 |
5시 |
7시30분 |
5.18(화) |
산불(67년. 김수용 감독. 도금봉ㆍ신영균) |
내시 (68년. 신상옥 감독. 윤정희ㆍ신성일) |
벽속의 여자(69년. 박종호 감독. 문희ㆍ남궁원) |
5.19(수) |
겨울여자(77년. 김호선 감독. 장미희ㆍ신성일ㆍ김추련) |
죽음보다 깊은 잠(79년. 김호선 감독. 정윤희ㆍ신광일) |
성숙(74년. 정소영 감독. 양정화ㆍ장용기) |
5.20(목) |
안개마을(83년. 임권택 감독. 정윤희ㆍ안성기) |
앵무새 몸으로 울었다(81년. 정진우 감독. 정윤희ㆍ황해) |
애마부인(82년. 정인엽 감독. 안소영ㆍ인동진) |
5.21(금) |
뽕(86년. 이두용 감독. 이미숙ㆍ이대근) |
무릎과 무릎사이(84년. 이장호 감독. 이보희ㆍ안성기) |
서울에서 마지막 탱고(85년. 박용준 감독. 오수비ㆍ김동현) |
5.22(토) |
벽속의 여자 |
매춘(88년. 유진선 감독. 나영희ㆍ마흥식) |
상영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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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S 정책
요약
3S, 즉 스크린(screen:영화), 스포츠(sport), 섹스(sex) 또는 스피드(speed)에 의한 우민(愚民)정책.
본문
대중을 이와 같이 3S로 유도함으로써 우민화하여, 대중의 정치적 자기 소외, 정치적 무관심을 유도함으로써 지배자가 마음대로 대중을 조작할 수 있게 하는 정책을 말한다. 식민지정책에 있어서 순치(馴致)정책의 한 전형이다.
배경
전두환 정권시절.. 12.12쿠테타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정권은
민심을 수습하는 것이 가장 급선무였습니다..
그시절을 사셨다면 몸소 느낄 수 있었을 텐데..
물론 저도 그때 겨우 울음소리를 냈으니까..나중에 들은 얘김다..^^
그러한 국민적 여론을 무마하기 위해 대중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릴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만든것이 야구였죠..(스포츠)
당시 가슴에 맺힌 것이 많았던 우리 아버님들은 야구를 즐기며 그 한(?)을 푸셨죠..
영화와 섹스는 말할 것도 없겠죠?
큰 개념으로보면 영화가 맞겠습니다마는 1980년 전두환의 국민정치의식을 환기하려는 정책을 살펴보면
섹스,스포츠,스크린 인데요.구체적으로 명시하면 다음과 같겠습니다.
첫째,컬러TV 방영과 VTR 보급입니다. 이른바 비디오는 섹스산업과 매우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었지요.
둘째, 80년대 급속히 퍼져나간 포르노테잎은 전두환이 노린 국민정치성향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죠.
셋째, 80년10월에 우리나라 프로야구단이 창단됩니다. 당시 프로야구는 지역을 기반으로한 창단으로 자연스럽게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역할까지 하게됩니다. 해태-전라도,삼성-경상도,삼미슈퍼스타-경기(인천)
엠비씨청룡-서울 등등 말이죠.
전두환때...
전두환이 정치를 상당히 거칠게 했었죠. 군사독재하고 막 그랬었습니다.
그러면 당연히 국민들의 불만이 극에 달했겠죠?
이런 불만들을 최소화 하기 위해서 전두한은 국민들의 관심을 정치가 아닌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서 3S 정책이라는것을 실시합니다
그것은 바로 Sports, Sex, Screen sex
영어로 시작하면 다 S로 시작하는 이 3S 사업을 실시하면서 우리나라에
프로 축구단과 프로야구단 등이 생겨났습니다.
원래 인간은 근본적으로 본능을 추구 하기 때문에 격렬한 몸싸움을
주로하는 스포츠나 섹스(인간의 기본욕구가 성욕입니다)..그리고
에로영화같은 영화들이 붐을 이루며 이 정책은 결국 먹히게 되죠
국민들은 정치에 대한 불만을 이러한 3S로 해소하곤 했습니다.
아마 우리나라에서 집단적이고 조직적인 스포츠 붐은 이때부터 일어난
것으로 학자들이 대부분 분류하고 있습니다
첫째, 스크린....
스크린 자체의 뜻은 영화를 뜻합니다만.. 여기에서 말하는 스크린 정책은...
컬러TV 방영과 VTR 보급입니다.
이는 두번째에 얘기할 섹스 정책;; ( 뉘앙스가 참......;; ) 과도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둘째, 섹스....
이 무렵, 포르노 테입은 무지하게 판쳤습니다. 여기에 기본적으로 일조한 것이 앞서 말한
VTR보급입니다. 이것이 전제가 되었기에 섹스 정책도 큰 빛을 발휘하게 되고.. 이는 국민들의
정치성향을 희석시키기에 충분했죠.
마지막으로 스포츠입니다.
아시다시피 우리나라 프로야구는 전두환 정권 때 ..생겼습니다.
정확히는 80년 10월??
프로야구 출범당시 각 팀은 지역연고제를 실시하였으므로 자연스레 지역감정도 알게모르게
조장하게되었습니다.
해태-전라도, 삼성-경상도, 삼미슈퍼스타-경기(인천), 엠비씨청룡-서울 등등 말이죠
삼S를 Sports,Screen,Sex라고 합니다.
80년 당시 군부가 다시 정권을 잡기 위해 국민들이 정치에 관심을 가지지 못하게 다른 곳으로 신경을 쓰도록 스포츠 부분에서는 프로야구를 출범시켰다고 합니다.
스크린은 연예인들을 이용한 대단한 구경거리를 마련해서 국민들의 정신을 빼놓는 것인데 거기에 해당할만한 것이 "국풍81"이라고 하여 무슨 잔치같은 것을 떠들석하게 했었습니다. 일종의 노래자랑같은 것이었는데 거기서 배출된 가수가 이 용으로 "바람이려오"라는 노래를 불러서 조용필의 독주를 견제하며 인기가수의 대열에 서게 되었습니다.
'영화(screen)'은 끊임없이 개봉되는 영화를 통해 다른 것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하고, 영화를 통해 현재를 달래고 체념적으로 만들어 현실에서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리게 만든다.
Sex, Sports, Screen이 그것인데 이 세 가지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좋아하는
그러한 속성의 것들로서 한 마디로 오락을 나타낸다고도 할 수 있지요.
만약에 질문자께서 지금 컴퓨터 오락을 하고 있는데, 옆에서 자꾸
숙제라하라던가 심부름을 시키려고 짜증나고 하기가 싫지요?
정치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보다 중요하고 시급하게 처리해야 할 현안이 있어서 국민들의 불만이 높아지고
있는데, 이를 잠재우기 위해서 국민들의 인기를 끌기 위한 정책을 펴는 것을
Populism이라 합니다. 역사속에서 가장 대표적인 Populism의 사례는,
영화 'Gladiator'에서도 보셨듯이, 로마의 검투 경기였습니다.
한 마디로, 우는 아이 사탕줘서 달래는 식의 정책이라 할 수 있겠지요.
screen sports sex...
그리고 스포츠에서 우리 나라 최초의 프로리그가 생기게 됩니다.
그 프로리그가 바로 야구였고
처음 생긴 프로리그니 만큼 사람들의 관심은 대단했죠.
마침 그때만해도 특별한 여가가 없던 시절에
야구와 영화는 정말 큰 인기 였습니다.
그리고 그때 인기를 끌었던 야구가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거지요.
독재정권이 들어섰을때 국민의 정권에 대한 비판을 억제하기위한 우민화의 수단으로, 혹은 감상적 민족주의를 유도하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되어졌던 것 같습니다.
대표적으로 독일제3제국 시절 나치의 선전상인 괴벨스는 이를 활용하기위해 베를린올림픽을 유치했고, 이 올림픽은 최초로 TV전파를 타고 세계로 중계된 대회이기도 했지요. 게르만의 우월성을 강조하여 공격적인 독일민족팽창의 욕구를 국민들에게 강하게 어필할수 있었던것 같았습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5공화국이 들어서자 괴벨스를 닮고싶어하던 허문도의 머리에서 3S정책이 추진되었던걸로 생각됩니다. 다들 잘 알다시피 80년대 초반엔 프로야구, 프로축구, 민속씨름, 실업배구, 실업농구..등등 각종 프로리그들이 속속 창설되어 국민들을 그쪽으로 집중시켰지요. 애마부인시리즈, 산딸기시리즈, 변강쇠....등등 소문난 에로영화들이 그 시절에 전성기를 누렸던것도 그와 무관하진 않을것입니다.
Color TV 방영도 포함됩니다.
흑백 TV시대에서 컬러TV시대로 바뀌게 된 것이지요.
덕분에 가전회사도 새로운 시장이 열리게 됨에 따라 큰 덕을 보지요.
스크린 정책의 하납니다.
출범 배경이라고하면.. 당신 전두환이 내세운 국가 운영 방책이 3S로
국민들을 열광시켜라! 라는 논리에서 출범 되었죠.
3S 란.. Sports Screen Sex.
이 세가지 인데요.
스포츠의 경우는 당시 축구를 먼저 출범 시키자는 의견이 많았으나
전두환이 야구를 더 좋아했다고 합니다.
스포츠 경기 같은 경우 많은 뉴스거리를 낳게 되는데
그것에 의한 국민들의 시선 분산을 노렸던 거죠.
역시 자기가 생각해도 정치는 아니었으니...
출처 : 지식인과 인터넷